한 강연서 밝혀 "김정은, 트럼프에 ICBM 폐기도 제안했을 것... 시간 끌기 위한 것일 뿐"
  • ▲ 발표중인 태영호 전 주영북한 공사 ⓒ 누데일리 공준표 기자
    ▲ 발표중인 태영호 전 주영북한 공사 ⓒ 누데일리 공준표 기자
    마이크 폼페이오 美국무장관이 지난 7일 북한을 찾아 김정은을 만나고 왔다. 폼페이오 美국무장관은 이후 북한 비핵화 협상이 잘 진행될 것이라며 낙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그러나 전날 서울에서 열린 한 모임에서는 전혀 다른 의견이 나왔다. 미국이 김정은에게 속고 있으며 협상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주장이었다.

    지난 6일 오후 4시 30분 서울 고려대 안암캠퍼스에서 태영호 前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의 초청 강연이 열렸다. ‘KASM(Korean American Shairing Movement, 워싱턴 한인나눔운동)’ 주최로 열린 강연에서 태영호 前공사는 “美北회담은 북한에게 시간만 벌어줄 뿐”이라고 주장했다. 태영호 前공사는 지난 6월 싱가포르 美北정상회담이 결과적으로 김정은에게 숨 돌릴 틈을 제공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이 원하는 ‘종전선언’은 비핵화 협상을 지연시키거나 미국에게 포기하게 만드는 전략에 따른 것”이라며 “북한은 ‘살라미 전술’ 또는 美北간 先신뢰구축 後핵포기를 주장하며 시간을 끌어, 결국 미국의 외교적 피로도를 높여 북한 비핵화를 포기하게 만들려는 전략을 펴고 있다”고 주장했다.

    태영호 前공사는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이 지난 6월 11일 美北정상회담 전날 트위터에 올린 “김정은의 인상이 좋았다”는 글을 언급하면서 “국가 정상 간의 결정은 문서로 확인해야 하는데 트럼프는 그것을 느낌으로 확인했다”며 “이는 상당히 비정상적인 접근”이라고 꼬집었다.

    태 前공사는 美北정상회담 공동선언문 내용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美北 간 새로운 관계 수립’과 ‘한반도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고 적은 것이 실은 북한의 先핵포기 後대화 원칙을 뒤로 미루고, 한반도 비핵화 완료를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의 ‘과정을 위한 협상’으로 후퇴시켰다고 비판했다.

    태 前공사는 트럼프 美대통령이 북한에게 속게 된 결정적인 이유를 김정은의 ‘솔깃한 제안’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바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의 폐기를 제안했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미국인들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ICBM부터 없애겠다고 하면 트럼프 정부가 일단 안심할 것이고, 이를 최대한 활용해 시간을 벌어보려는 계산이 깔려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태 前공사 “ICBM 없애겠다고 하면 미국 안심할 것이라는 계산 깔려”

  • ▲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9월 29일(현지시간)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 뉴시스
    ▲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9월 29일(현지시간)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 뉴시스

    태 前공사는 북한이 미국과의 비핵화 약속 보다는 제재 완화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다는 점이 지난 9월 유엔 총회에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엔 총회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9월 평양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했다”면서 “김정은도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비핵화를 실현하고자 하니 이제 국제사회가 도와달라”고 했으나 사흘 뒤 리용호 北외무상의 연설에는 ‘비핵화’에 대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 것이 그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리용호 北외무상은 유엔 총회에서 “미국에 대한 신뢰가 쌓이기 전에는 우리나라의 안전에 대한 확신이 없으며,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일방적으로 핵무장을 해체하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있어 하나씩 단계적으로 실행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우리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즉 북한의 비핵화는 미국의 양보(소위 상응하는 조치)에 맞춰 단계적, 점진적으로만 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태 前공사는 “북한이 주장하는 ‘일방적인 先핵포기 반대’, 그리고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단계적으로 비핵화’한다는 제안은 비핵화 대상 목록은 제출할 수 없으니 영변 핵시설 폐기와 같이 포기할 수 있는 것을 먼저 내놓을 테니 ‘종전선언’과 맞바꾸자는, 그런 의미”라고 설명했다.

    태 前공사가 생각하는 비핵화의 정석(定石)은 미국이 이미 주장했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였다. 태 前공사는 “미국이 주장하는 대로 CVID로 비핵화를 하면 북한은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김정은은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하겠으니 일단 하나씩 순서대로 진행해보자는 입장을 보인 것”이라면서 “만약 김정은이 주장하는 방식대로 북한 비핵화를 한다면 100년이 걸려도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 비핵화는 CVID 방식 외에는 없어

  • ▲ 지난 7일 김정이이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접견했다고 8일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 뉴시스
    ▲ 지난 7일 김정이이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접견했다고 8일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 뉴시스

    태 前공사는 이어 “정상적인 방법으로 비핵화를 한다면, 먼저 북한에게 비핵화 목록부터 받아내고, 여기에 기초해 북한 전역에 있는, 모든 핵무기와 핵시설을 전면적이고 동시다발적으로 비핵화해 나가는 것이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남북한이 ‘남북 간 신뢰관계 구축’을 앞세우며 미국에게 계속 ‘종전선언’을 종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태 前공사는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남북관계 발전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이뤄낸다”는 주장을 앞세우는 문재인 정부의 외교 정책은 결국 남북관계 발전과 북핵 문제를 사실상 분리시키고, 더불어 한미 관계도 삐걱거리게 만들려는 북한의 의도에 휘말렸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태 前공사는 이날 강연 내내 “북한은 핵보유국이 되기 위해 고도의 전략전술을 필요로 했고, 이를 위해 한국과 미국이 수십 년 동안 유지해 왔던 북핵 폐기의 기본원칙을 완전히 뒤집어 놔야 했다”면서 최근 북한의 대남대미 유화전술의 속셈을 거듭 강조했다.

    태 前공사는 또한 “북한의 요구대로 남한에 있는 유엔군 사령부를 해체하고 한반도에서 유엔군과 미군을 모두 철수시키면, 제2의 6.25전쟁이 터졌을 때 그 누구도 남한을 도와줄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