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측 "실제 사건과 동일한 장면 담겨 피해 막심"쇼박스 측 "형사에 초점 맞춘 영화..피해자 인격 훼손 안해"
  • 용의자가 특정되지 않아 공식적인 범죄통계에 잡히지 않은 암수범죄(暗數犯罪)를 소재로 다룬 영화 '암수살인'이 개봉을 닷새 앞두고 법원에서 50분 가량 상영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보통 관객의 반응을 알아보거나 또는 원하는 관객을 찾기 위해 작고 특수한 장소에서 영화를 선공개하는 일은 있으나 이처럼 재판을 목적으로 법정에서 미개봉 영화가 상영되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0민사부(판사 김상환·유현식·강지엽)는 28일 오전 동관 358호 법정에서 열린 (최OO씨 등 3명이 주식회사 쇼박스를 상대로 제기한)영화 '암수살인' 상영 금지 가처분 신청 공판에서 "전면적인 영화 상영금지를 요구하는 유가족 측의 주장이 합당한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선 영화를 직접 관람하면서 심리할 필요가 있다"며 투자·배급사이자 피고인인 쇼박스 측에 비공개 제한상영을 제안했다.

    이에 쇼박스 측은 미리 준비한 '암수살인' 영상을 법정 내 스크린에 투사, 약 50분간 주요 장면을 상영했다. 이날 법정엔 유가족을 대변하는 소송대리인과 쇼박스를 변호하는 법률대리인을 비롯, 7~8명 가량되는 취재기자들이 참석해 관련 영상을 함께 시청했다.

    투자·배급사의 허락을 얻어 법정에서 공개된 영상은 수감된 살인범 강태오(주지훈 분)로부터 7건의 추가 살인을 자백받은 형사 김형민(김윤석 분)이 시체가 암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 장소를 파헤치는 장면부터 유가족이 문제 삼고 있는 골목길 살인사건의 진상 파악에 나서는 장면까지였다.

    앞서 2007년 11월 26일 부산 중구 부평동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피해자의 여동생 최씨는 영화 '암수살인'이 유족의 동의도 없이 실제 사건을 유사하게 묘사, 고인과 유족의 인격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지난 20일 서울중앙지법에 영화 상영 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했다.

    최씨는 "강태오가 자신의 어깨와 부딪힌 누군가를 흉기로 찔러 죽이고 불로 태웠다는 영화 속 살인사건은 자신의 친오빠가 숨진 사건과 시간대·장소·범행수법 등이 거의 일치하고 있다"며 "해당 영화는 창작이 아닌 실제 사건을 그대로 재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공판에서도 유족 측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었다. 가해자의 범행수법이나 피해상태·사건장소는 물론이고 시신을 불에 태웠다는 내용까지 99% 똑같아 과연 이번 영화가 창작물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는 종전 주장을 되풀이 한 것.

    반면 쇼박스 측은 "제작사(필름295)가 사전에 유가족 동의를 받지 않고 영화를 제작한 점에 대해선 도의적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리지만, 영화 속에서 피해자가 연상되지 않도록 나름의 장치를 했고, 무엇보다 어깨가 부딪혔다는 이유로 벌어진 우발적 살인사건은 평소에도 자주 일어나는 사건이라 사전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는 사안"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신고도 시체도 실체도 없는 암수범죄에 대한 신문기사를 보면 상당 부분 방화로 증거를 불태웠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시신을 태웠다는 설정을 넣은 것은 장기미제사건 특성상 범인이 증거인멸을 위해 방화를 저지르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논란이 된 영상을 시청한 재판부는 "영화를 본 소송 당사자들이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궁금하다"며 "추후 가처분 신청 취지를 보강하거나 변경할 부분이 있으면 내일(29일)까지 서면으로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유족 측은 "정확히 영화 속 어떤 장면이 문제인지를 자세히 특정해 추가 제출하겠다"고 답했고 쇼박스 측은 "반론 입장을 정리해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영화 '암수살인'의 개봉일이 10월 3일로 확정돼 있는 만큼 늦어도 10월 2일까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판결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 쇼박스 / 앤드크레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