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너의 결혼식' 촬영하며 시나리오에 '영향력'... 김영광과 '투톱'으로 개봉 6일 만에 100만 관객
  • "아, 감독님…. 타임! 잠시만요. '나도 니가 좋지만, 넌 여친이 있잖아?' 이렇게 승희가 말하면, 사실상 우연이에게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오라는 거잖아요? 이건 진짜 아니다 싶어 타임을 요청하고 다같이 회의를 했어요. 남녀 스태프들에게 일일이 '만일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겠느냐'고 물어보면서 의견 수렴을 했죠."

    박보영(28)은 당시 이석근 감독과 '입씨름'을 할때가 생각났는지 피식 웃으며 "영화 '너의 결혼식' 촬영 초반, 감독님께서 여자의 심리나 마음을 너무 모르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어 '타임'을 걸고 수차례 의견 조율을 했었다"는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이 영화는 3초 만에 이뤄지는 운명을 믿는 '승희'와 오로지 승희만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믿는 '우연'이가 그려나가는 첫사랑 연대기예요. 당연히 사랑을 하는 남녀의 심리가 중요하게 부각될 수밖에 없는 영화인데요. 뭔가 여자들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감독님께서 제대로 캐치하지 못하고 계신 것 같아 최대한 대화를 많이 나누려 노력했어요."

    박보영과 몇 안되는 여성 스태프들의 노력 덕분으로 극 중 산토리니에서 승희가 우연(김영광 분)이와 키스를 하는 신 등 일부 장면이 삭제되거나 보완되는 변화를 겪었다. 이 모든 게 박보영이 작품에 대한 이해도나 애정이 남달랐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연기자인 저도 캐릭터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과연 관객 분들이 이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전 적어도 '승희'라는 친구가 여성 분들에게만큼은 외면 받는 캐릭터가 되지 않기를 바랐어요. 승희 입장에서 이말을 하면 진짜 나쁜 애가 돼버리는데…. 차마 그렇게 둘 수가 없었어요."

  • 사실 박보영이 캐스팅 되면서 시나리오가 수정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8년 개봉한 영화 '과속스캔들'에서 박보영이 맡은 캐릭터는 원래 남자였다. 하지만 당시 신인 배우였던 박보영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한 제작진이 과감한 결단을 내리면서 크랭크 인 직전 '미혼모'로 설정이 바뀌었다. 제작진 입장에선 그야말로 신의 한수를 뒀던 셈이다.

    지난해 인기리에 방영 된 JTBC 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도 박보영이 주인공 물망에 오르내리면서 설정이 대폭 수정된 케이스다. 원래 여주인공 '도봉순'은 사투리를 심하게 쓰고 못생긴 캐릭터였으나 박보영이 캐스팅된 직후 귀엽고 통통 튀는 스타일로 바뀌었다. 방송가에선 보기 드문 'B급 코미디'를 표방한 작품이었지만, 대중친화적인 박보영의 합류로 이 드라마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것은 물론 국내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극찬을 이끌어냈다.

    이 때문일까? 박보영과 김영광 '투톱'을 앞세운 영화 '너의 결혼식'도 개봉 6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현실감 있는 두 남녀의 '첫사랑 연대기'가 남녀노소 전 세대 관객들에게 폭넓은 공감을 얻고 있다는 게 영화 평론가들의 중론이다. "관객들이 납득할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다"는 박보영의 바람이 그대로 적중한 것.

    하지만 '현실감 있는 캐릭터를 연기하겠노라'고 되내는 박보영이 가장 어려워하는 연기는 아이러니하게도 '현실 연기'였다. 신인 시절엔 웃거나 우는 '감정 연기'가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연기 경험이 쌓여갈수록 밥상머리에서 일상 대화를 나누는 신이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다고.

    "영화 '늑대소년'을 찍을 때 제가 너무 한심했어요. 그땐 '생활 연기'가 아예 안됐어요. 그냥 밥 먹으면서 대사를 하면 되는데 그게 안됐던 거예요. 그 다음부터 제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연기할 때 힘을 뺄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어요. 연기를 하면서도 연기가 아닌 것처럼 연기하고 싶었거든요. 그런 면에서 영광 오빠는 정말로 타고난 연기자인 것 같아요. 현장에서 바로바로 느낌을 살려 연기를 하는 모습이 정말 부러웠죠. 저는 언제쯤 그런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요?"

  • 평론가들로부터 '연기력'과 '흥행성'을 고루 갖추고 있다는 극찬을 받는 박보영이 여전히 연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모습은 낯설기만 하다. 스크린에서 비쳐지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 이면에는 이런 치열한 노력과 도전 의식이 자리잡고 있었다.

    "끝난 줄 알았는데, 산을 넘고 나면 또 다른 산이 보이더라고요. 연기에는 정말 끝이라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어떨 땐 '나는 재능이 없나보다'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어요. 매번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이런 걱정이 드는데요. 그래도 성장하고 있다는 건 느껴져요. 특히 남 눈치 보지 않고 할 말은 하고 사는 '승희' 역을 연기하면서 저도 이제는 좀 더 나를 바라보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취재 = 조광형 기자
    사진 = 이기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