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건설만 러시아 계산으로 4조 5000억원… 해안 부대, 비행장 이전에 추가로 거액 들어
  • ▲ 지난 2003년 12월 11일 북한 개성 인근 철로의 모습.ⓒ 사진출처 : VOA
    ▲ 지난 2003년 12월 11일 북한 개성 인근 철로의 모습.ⓒ 사진출처 : VOA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제73주년 광복절 및 정부수립 70주년 경축식 경축사에서 동북아 6개국과 미국이 함께하는 ‘동아시아철도공동체’를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동아시아철도공동체 구상이) 한국의 경제 지평을 북방 대륙까지 넓히고, 동북아 상생 번영의 대동맹이 돼 동아시아 에너지공동체와 경제공동체로 이어질 것”이란 얘기도 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동아시아철도공동체’ 구상이 미국의 대북제재를 풀고 남북경협의 출로를 열겠다는 목적을 아울러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통령의 주장처럼 ‘동아시아철도공동체’가 가능할까?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반론이 만만찮다. 구체적이고도 본질적인 반론들이다.  

    1. 동해안에 배치된 북한의 해안방어부대

    북한 내부 상황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북한의 동해안을 따라 빼곡하게 배치된 해안방어부대를 근본적인 장애로 지적했다. 이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한 문 대통령의 ‘철도 프로젝트’는 ‘불가(不可)’하다는 설명이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종단철도 구상은 사실 새로운 게 아니다. 지난 2000년 6월 13일 북한을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당시 김정일이 6.15공동선언에서 합의해 진척했던 계획이기도 하다.

    당시도 지금처럼 당장 통일이 될 것 같은 들뜬 분위기였고 남북철도연결에 대한 김정일의 의지도 진심이었다는 것이 2016년 망명한 태영호 전 주영북한공사의 증언이다. 

    태 공사의 증언에 의하면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의 남북정상회담이 있고 나서 1개월 후 러시아 대통령 푸틴이 평양을 방문했다. 이듬해 7월 26일부터 8월 18일까지는 김정일이 모스크바를 방문해 ‘북러 모스크바 선언’을 발표했다.

    당시 채택된 북러 선언의 핵심 중 하나가 한반도~러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철도건설계획이었다. 남북경협에 이어 한반도 종단철도가 연결되면 북한에도 엄청난 경제적 혜택이 돌아가게 될 것을 잘 알고 있던 김정일은 이 계획에 상당한 기대를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 군부는 한반도 종단철도 건설과 부대 이전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던 북한으로선 부대 이전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게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김정일로서도 그 많은 해안 부대를 전부 다른 곳으로 이전할 자신이 없었다. 남북철도 건설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 개성공단 건설 때도 '주둔지' 마련하느라 고생

    유사한 사례가 또 있다. 개성공단 건설 때도 북한군은 새로운 주둔지를 마련하기 위해 엄청난 고생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태 공사는 지난 5월에 출간한 자서전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북한군은 6.25전쟁에서 전세가 역전된 원인을 인천상륙작전 때문이라고 보고, 수십 년에 걸쳐 동해안 철도를 따라 방대한 해안방어선을 구축했다”고 했다. 그는 “그런데 남북을 연결하는 동해안 철도현대화 사업이 시작되면 이 방대한 해안방어선을 처음부터 다시 구축해야 했고 대대적인 부대 이전이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3. 동해안에 수두룩한 비행장들… 천문학적 이전비 누가 대나?

    ‘돈’이 아니더라도, 북한이 동해안 군부대 이전에 적극적일 수 없는 이유가 또 하나 있다.  

    만약 동해안 북한군 방어부대를 모두 이전하게 된다면 부득이하게 해안가에서 내륙으로 모두 후진 배치하게 되고 북한의 동해안 방어는 그만큼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북한군의 입장에서는 남북철도 연결로 인해 동해안 전반에 대한 방어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경제적 이득’과 ‘동해안 방어 포기’라는 딜레마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을 모르고 있는 한국이 여전히 한반도 종단철도 건설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태 공사는 지적했다. 

    태 공사는 “구글 어스를 통해 확인해 봐도 북한의 동해안 철도 주변에는 크고 작은 북한군 비행장들이 수없이 많다”면서 “북한은 지금도 한반도 종단철도 건설이 가능한 것처럼 한국과 러시아에 유혹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한반도 종단철도가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한국이 북한 동해안에 무수히 배치된 비행장과 군부대 등 모든 북한군 군사시설에 대한 이전 비용까지 부담하면 가능하다. 그러나 이에 필요한 재원은 간단히 마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4. 일제 때 철로 그대로 사용… 침목 부식돼 탈선 빈발

    철도 건설에만도 엄청난 비용이 든다.  탈북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의 동해안 철도는 일제가 건설해 놓은 당시의 철로를 현재까지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며 대부분 나무로 되어있는 침목은 오랜 기간 부식돼 열차 탈선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 철도 당국은 지난 6월 22일 한러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종단철도(TKR) 건설에 최대 40억 달러(약 4조4500억원)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 엄청난 비용과 북한군 동해안 방어부대 이전 비용까지 한국이 모두 감수한다고 해도, 김정은이 부친 김정일과 달리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 해 동해안 방어를 포기할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 5. “한국의 철도 계획… 미국 분노하게 만들 수도”

    외신들도 문 대통령의 구상에 회의적이다. 

    15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북한의 비핵화 이행이 지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북한과의 철도 및 도로 연결 계획을 올해 안에 추진하는 것은 미국을 분노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고 보도했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종단철도 구상이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된 정치적 정서와 대비된다는 것이다.

    FT는 "김정은이 지난 6월 싱가포르에서 비핵화 조치에 합의했지만 실제 비핵화에 준하는 행동을 전혀 보여주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핵 기술 지식’을 계속 보유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기까지 했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최근 남한을 비난하고 나섰다. "미국의 눈치만 보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12일 대남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외세(미국)에 대한 맹종맹동은 판문점 선언 이행의 장애물"이라면서 “남조선 당국은 이전 보수 집권시기 조작된 단독 대북제재와 유엔제재라는 것들을 부둥켜 안고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해도 이쪽저쪽의 눈치를 보는 민망스러운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같은 북한의 비판은 한국이 '한반도 종단철도' 구상을 실행할 경우, 구상의 한 주축인 북한의 비협조까지 감내해야 할 상황에 몰릴 수도 있음을 우려하게 한다. 대책없는 한반도 종단철도 구상이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게 되면, 한국은 자칫  헤어날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

  • ▲ 2012년 한 민간단체에 의해 몰래 촬영된 함경도 지역의 북한 철도 상태 ⓒ 유튜브 캡처
    ▲ 2012년 한 민간단체에 의해 몰래 촬영된 함경도 지역의 북한 철도 상태 ⓒ 유튜브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