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회피에만 가치를 두면, 그건 곧 항복”
  • ‘비핵화 사기극’은 과연 성공을 거두는가?

    李 竹 / 時事論評家

      “솔직히 나는 오늘 그들[북한]에게 천천히 하라고 말했다. 우리는 빨리 갈 수도 있고, 천천히 갈 수도 있다...”
      “나는 최대 압박이란 용어를 더는 사용하고 싶지 않다... 우리[美-北]는 함께하고 있고, [좋은] 관계를 보고 있다...”

      ‘아직은 동맹국’인 양키나라 ‘도’통령이 북녘 세습독재자의 최측근 똘마니를 ‘하얀집’에서 만나고 난 후에 한 말씀이란다. 그 무슨 ‘종전(終戰)선언’도 거론했다고...
      그 똘마니가 전했다는 “미국과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 우리는 100% 비핵화할 생각이다. 절대 의심하지 말라...”는 세습독재자의 구두 메시지를 신뢰하고 있다는 반증(反證) 아닌가.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오고 있다.
    얼마 전까지 은연중 ‘협상 결렬’과 ‘북폭’(北爆)까지 주장·예견(?)했던 열혈 지사(志士)들은 마냥 당혹·당황해 하고 있단다.
      그저 담담히 받아들여서, 북녘 세습독재자가 진정으로 ‘완전한 비핵화(非核化)’, 즉 핵무기를 순순히 내려놓을 것이라고 믿어야 하는가? 북녘의 ‘완전한 비핵화’는 불가능하다고 확신하고 있던 필자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벌써 일부 언론과 호사가(好事家)들은 지난날 ‘양키나라의 대(對) 한반도 배신(背信)의 역사’를 들먹이고 있다. 그 후과(後果)가 이 민족과 이 나라 국민들에게 국권(國權)의 상실(喪失)을, 또는 실제 전쟁과 전쟁 직전의 위기를 초래했음을 말하고 있다. 결코 지울 수 없는 사실(史實)인 건 맞다. 그렇다면...

      양키나라 ‘도’통령의 북녘 세습독재자 똘마니 만남과 앞으로 있을 ‘미-북 수뇌회담’도 양키나라의 배신을 확인하는 절차가 될 것인가? 바꿔 말하면, 북녘 세습독재자의 ‘비핵화(非核化) 사기극(詐欺劇)’은 성공을 거두는가? 또한 덧붙여서 양키나라와 북녘 사이를 중재하겠다던 ‘거간꾼’은 과연 그에 걸맞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인가? 특히...
      이른바 6·25남침전쟁의 ‘종전(終戰) 선언’과 뒤이은 ‘평화협정’으로 이 땅에는 ‘항구적 평화’가 정착될까?
     
      우선 북녘 세습독재자의 ‘비핵화 사기극’은 현 상황만을 놓고 볼 때 일단 성공의 가능성을 조심스레 점칠 수 있을 듯하다. 당면한 목표였던 ‘경제 제재 해제와 군사적 압박 벗어나기’의 전기(轉機)를 마련했지 않았나.
      이런 관점에서 ‘비핵화 사기극’은 생명 연장의 묘수였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사기극’이 가능했던 것은 핵무기를 손아귀에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여 결코 ‘완전한 핵 포기’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시간 벌기’에 성공한 만큼, 이제 본격적으로 ‘핵무기를 깊숙이 꼬불치는’ 실속 있는 ‘비핵화’(秘核化) 작업에 들어가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 ‘종전(終戰)선언’과 ‘평화협정’ 이후에 다시 ‘보검’(寶劍)으로 등장할지도 모른다. ‘백도혈통’(百盜血統)이 대(代)를 이어, 조선반도 전체를 집어삼키고 호령하기 위한...

      며칠 사이에 벌어진 극적인 반전(反轉)으로 과연 양키나라의 배신을 확인할 수 있는가는 논란이 예상된다.
    다만 그 반전은 이미 여러 날, 여러 번에 걸쳐 예비되었던 것은 아닌지 되씹어봐야 할 듯하다.
    ‘아직은 동맹국’을 ‘언제 적 동맹국’으로 만들기 위한 집요한 움직임이 이 나라에 있었다는 점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간(肝)과 쓸개를 오가며 좌고우면(左顧右眄)하는 옛 친구에 비해, 홀딱 벗고 새롭게 친구[거의 똘마니 수준]가 되겠다고 나선 순정파(?)에 마음이 끌리는 건 인지상정(人之常情) 아니겠는가. 과연 ‘진정성’(眞正性)이 있느냐는 둘째 문제고, 또한 그 진정성이란 것도 상대적일 뿐...

      그래서 ‘거간꾼 나라’의 처지가 가련(?)하다.
    거래의 성사(成事)로 ‘복비’(福費)를 두둑하게 챙길 거라고, 그리고 그 ‘복비’는 돈으로는 감히 따질 수 없는 무한 가치인 ‘평화’가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豪言壯談)해 왔다. 그렇다. 돈으로 ‘따질’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 ‘한반도 비핵화’라는 게 만족스럽게 되던 안 되던 엄청난 비용을 돈으로 ‘걸머져야만’ 하는 건 확실해지는 느낌이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란 이런 것일 게다. 물론 ‘거간꾼’ 개인이야 달리 ‘복비’를 챙길 수도 있겠지만...
      더군다나, 호시탐탐 아(我)의 절멸(絶滅)을 노려온 적(敵)에 대한 신뢰와 믿음과 선의(善意)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후일에 스스로 확인하게 되지는 않을는지...

      자! 누군가는 오매불망(寤寐不忘)하던 일이다. ‘종전(終戰)선언’, 그리고 그에 이은 ‘평화협정’은 말 그대로 전쟁이 끝나고, 전쟁이 다시 오지 않는 여정(旅程)의 시작이 될까?

      많은 국민들이 “시작은 맞다”는 데 동의하긴 하나 보다. 혹자는 덧붙여서 ‘전쟁의 냄새’를 맡는다고 했다.
      ① ‘아직은 동맹국’인 양키나라가 ‘언제 적 동맹국’으로 가는 시작. 즉, 북녘 세습독재자의 입장에서는 ‘외세 배격’의 서막(序幕)이 오르는 것이다.
      ② 6·25남침전쟁은 끝나지만, 새로운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것.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냉전’(冷戰)은 분명 아닐 테고... 북녘 세습독재자에게는 ‘조국통일전쟁’이며, 실제 피를 튀기는 사상·이념전쟁. 그리고 ‘국제전’이었던 6·25전쟁과는 다른 ‘내전’(內戰)일 가능성은 없는가?
      ③ 한 가지 지나칠 수 없는 사실(史實)과 현실. 지정학적으로 ‘낀 나라’가 입과 머리로만 ‘항구적 평화’를 실현한다고? 더군다나 적(敵)과 이웃나라의 선의(善意)에 기대어 전쟁을 막아보겠다고?

      이 나라 수도 서울의 심장부에서 타오르던 촛불이 ‘정권’으로 거듭나고 나서부터 누군가가 어떤 목적에서인지 ‘평화의 판도라 상자’를 열어보겠다고 했고, 그래서 열렸다.
      그리고 이 나라 국민들을 ‘평화’, 현재도 실체가 불분명하고 미래는 더욱 안개 속인 그 ‘평화’의 ‘덩덕개’로 만들고 있다. 국민들이 ‘덩덕개’ 노릇에 휩쓸려서야 나라의 장래가 어두울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지만, 더군다나...

      “북한에 계속 속았다고 해서 미래도 계속 속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북한과] 협상을 하고, 평화를 창출하겠느냐... 미래를 향한 길에서, 약속을 보장하는 시각에서 통 큰 결단을 하고 나오는 북한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북한을 적극적으로 돕고 이해해주면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자신의 결단이 옳았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 올 것이다...”

      이 나라 ‘국방장관’께서 엊그제 ‘제17차 아시아 안보회의’에 참석하여 하신 말씀이라고 전한다. 기사를 읽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최소한 이 나라 ‘국민의 군대’만은 ‘평화의 덩덕개’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그건 나라가 스스로 헤어 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지는 길, 이른바 ‘국가 자살(自殺)의 첩경(捷徑)’이지 않는가.

      “만약 전쟁 회피에 목적을 두고, 나라의 보전과 시민의 자유를 지키는 것보다 더 가치를 둔다면
    이 선택의 결말은 항복이 될 것이다...”
      유명한 보수주의자의 일갈(一喝)을 살짝 표절해 봤다.

    <이 죽>

    # 덩덕개 : 다른 개가 교미[交尾:흘레]를 하고 있을 때 그 언저리를 겅정겅정 뛰어다니면서 덩달아 좋아서
    날뛰는 개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