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CIA 선임분석관이 본 김정은: 어릴 적부터 ‘황제교육’ 받은 독재자 김정은의 행동 분석
  • ▲ 2015년 10월 中광둥성에 문을 연 '김정은 테마' 식당.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5년 10월 中광둥성에 문을 연 '김정은 테마' 식당.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돼정은’, ‘체고조넘’, ‘큐브’, ‘로켓맨’, 모두 김정은을 가리키는 말이다. 세계는 북한의 3대 세습 독재자 김정은을 제대로 보고 있을까. 美중앙정보국(CIA)과 국가정보장실(DNI)에서 아시아 태평양 담당 선임 분석관을 지낸 한 연구원의 보고서는 ‘정전 선언’과 美北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좌파 성향의 美씽크탱크 ‘브루킹스 연구소’에는 SK 한국석좌 자리가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박정현 석좌는 지난 2월 ‘김정은의 교육’이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그는 김정일 사후 김정은이 권력을 세습했을 때 한국, 미국, 일본 등의 대응과 외부세계가 김정은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에 대해 설명했다.

    박정현 석좌에 따르면, 김정일 사망 직후에는 김정은이 권력을 안정적으로 승계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과 예측이 많았다고 한다. 20대 중반의 나이에다 경험조차 일천하니 북한 노동당과 북한군 수뇌부의 노회한 권력층에게 쫓겨나거나 3대 세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주민들에 의해 쫓겨나지 않겠느냐는 설명이었다고 한다. 주민들의 봉기는 비슷한 시기 북아프리카와 중동 일대를 휩쓴 ‘재스민 혁명’도 일부 영향을 끼쳤던 듯 하다.

    박정현 석좌는 “그건 그 때 이야기”라며 지난 6년 사이에 김정은이 어떻게 북한에서 권력을 탄탄하게 굳혔는지를 설명했다. 총 6번의 핵실험 가운데 4번이 김정은 집권 이후에 일어났고, 그가 집권 후 발사한 탄도미사일 90여 발은 김일성과 김정일 때 발사한 수의 3배나 된다고 지적했다.

    박정현 석좌는 “북한은 현재 20~60개의 핵무기를 갖고 있으며, 美본토 타격 능력을 가진 듯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도 시현한 바 있다”면서 “이대로 갈 경우 이르면 2020년에는 작전 가능한 핵무기 100여 기와 여러 종류의 탄도미사일을 보유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정현 석좌는 또한 김정남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신경작용제 화학무기로 살해한 일, 해외를 대상으로 사이버 공격을 자행한 일, 내부적으로는 스키장, 워터파크, 고급 레스토랑을 만들어 소개하는 등 ‘경제와 핵무력 병진 정책’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려는 모습을 보였던 점 등을 김정은이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시도로 풀이했다.

    박정현 석좌는 북한 정권의 폐쇄성, 자발적인 고립, 강력한 정보 통제, 사회 전반에 만연한 공포와 피해망상적인 분위기 때문에 북한 정보를 제대로 얻을 수 없다며 “북한은 CIA가 파악하기 어려운 목표 가운데서도 가장 어려운 목표”라고 지적했다. 그는 “몇 조각으로 퍼즐을 맞춰보려는데 상대편이 일부러 다른 퍼즐에 있는 조각을 나한테 던져주고 있는 것 같다”는 전직 CIA 분석가의 고충을 전하기도 했다.

    박정현 석좌는 자신이 CIA에서 일할 때 배운 ‘정보 분석관의 사고방식’도 설명했다. CIA의 훈련 교재 가운데 하나인 ‘리처드 호이어’의 ‘정보 분석의 심리학’이라는 책도 언급했다. 이 책은 저자가 45년 동안 CIA에서 작전관 및 정보 분석관으로 일하면서 추론 프로세스에 숨은 편견과 논리적 약점을 어떻게 극복하고, 이 문제를 어떻게 인지하고 관리하는지를 다루고 있다고 한다. 그가 말하려는 핵심은 “분석가들은 무의식적으로 무엇을 봐야 하는지, 무엇이 중요한지, 본 것을 어떻게 해석할 지를 정한다”는 현실과 이를 극복하는 방법이었다.
  • ▲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애서 문재인 대통령을 웃기는 김정은. ⓒ한국공동사진기자단.
    ▲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애서 문재인 대통령을 웃기는 김정은. ⓒ한국공동사진기자단.
    이는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새로운 분야 ‘행동경제학’에서 지적한 “인간의 경제활동은 ‘무의식적인 고정관념(heuristic)’과 ‘습관적인 선입견(bias)’이 지배한다”는 지적과 매우 흡사했다.

    즉 높은 지적 수준을 갖고 고도의 훈련을 받은 CIA 분석관조차도 김정은과 같은 비정상적이며 정보가 별로 없는 독재자를 분석할 때는 그 외형이나 단편적으로 알려진 정보를 바탕으로 무의식적인 편향성을 갖고 정보를 분석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면 北선전매체들의 황당무계한 선전문, 북한 체제 특유의 우상화 표현 등이 외부 세계 전문가들의 분석이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지적이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외부 세계는 그동안 김정은을 ‘로켓맨’ ‘큐브’ ‘뚱뚱한 똘아이’ ‘평양의 돼지소년’ 등 우스갯거리를 만들었고, 이런 여론이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직접적인 갈등 관계가 아니어도 언제든지 사이버 공격을 자행하고, 필요하면 암살까지 지시하는 김정은의 위험성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박정현 석좌는 “우리의 초점을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는 북한의 사이버·핵·재래식 전력에 맞추게 되면 김정은은 엄청난 무제한의 힘을 가진, 막을 수도 없고 억제할 수도 없는, 전지전능한 수준의 3미터 키의 거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박정현 석좌는 또한 김정은이 어떻게 김정일의 눈에 들어 후계자가 됐는지도 설명했다. 세 아들 가운데 가장 공격적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근거 가운데 하나는 ‘김정일의 요리사’라는 책을 펴냈던 후지모토 겐지 씨의 주장이었다. 후지모토 씨에 따르면 김정일은 김정은이 불과 너댓 살일 때인 1992년에 이미 후계자로 점찍었고, 9살이 됐을 때는 생일 파티에서 ‘발걸음’이라는 곡을 헌정했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김정일에 의해 후계자가 됐지만 김일성, 김정일처럼 험난한 고난이나 역경을 겪은 적이 없었고 태어날 때부터 자라는 내내 보호를 받으며 사치와 특권을 누렸다는 점이 선대와의 가장 큰 차이라고 지적했다.

    박정현 석좌는 김정은은 아주 어릴 적부터 김정일에게 후계자로 선택된 이후 ‘지도자 수업’을 받았던 것으로 추정했다. 강한 자존심과 자신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우러르며 떠받드는 환경 등은 김정은에게 어릴 적부터 자신이 ‘왕’이라는 무의식을 심어주었다고 추측했다. 단적인 사례가 8살 생일 때 어깨에 별을 단 장군복을 입었는데 진짜 북한군 장성들이 그에게 경례를 했던 일, 11살 때 군복을 입고 권총을 차고 다녔던 일 등이라고 지적했다.

    박정현 석좌는 김정은의 유년기와 성장기 심리 상황을 ‘블랙 호크 다운’의 저자이자 대학교수인 ‘마크 보우든’이 잡지 ‘베니티 페어’에다 쓴 글 가운데 일부로 설명했다. 이런 내용이다.

    “다섯 살 때 우리는 모두 우주의 중심이다. 부모님, 가족, 집, 이웃, 학교, 나라 등 모든 것이 우리를 중심으로 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 이후의 여생은 천천히 왕좌(중심)에서 물러나는 과정으로써, 어린 폐하는 점점 더 분명하고 겸허한 진실에 눈을 뜨게 된다.”

    박정현 석좌는 여기에 중요한 대목을 덧붙였다.  

    “그러나 김정은은 아니었다. 다섯 살 때의 세계는 30세인 그의 세계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이 그를 위해 존재한다.”
  • ▲ 2017년 10월 리설주와 함께 화장품 전시장을 찾은 김정은. 이 또한 계산된 행동이라고 한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7년 10월 리설주와 함께 화장품 전시장을 찾은 김정은. 이 또한 계산된 행동이라고 한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정현 석좌는 김정은이 태어난 뒤부터 지금까지 그를 둘러싼 모든 사람과 환경이 우상화에 협조함으로써 그가 외부 세계를 객관적이고 현실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방해했고, 그 결과 젊은(어린) 김정은의 현실 감각과 세상에 대한 기대치를 더욱 왜곡시켰다고 지적했다.

    김정은이 그의 조부와 부친이 수십 년 넘게 사용해 왔던 주민들에 대한 억압, 공포정치 수단을 사용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이런 성장과정과 환경에 있는 것으로 봤다.

    박정현 석좌는 또한 U.S.스틸의 창업자 ‘앤드류 카네기’가 했던 말 “부자는 3대를 못 간다”는 말처럼 되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정은이 김일성 흉내를 내는 것도 ‘고난의 행군’ 이전의 북한을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핵강국’이라는 사실을 주민들에게 깊이 새겨 보다 강력한 통치력을 확보하려는 통치술이라는 설명이었다.

    박정현 석좌는 김정은이 그의 조부, 부친과 달리 부인 리설주를 공개 석상에 데리고 나오는 것이나 北선전매체를 통해 농담을 전달하거나 주민들과 스스럼 없이 어울리는 모습을 공개하는 것은 “김일성과 같으면서도 현대적인 지도자이자 투명성을 가진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대내외적으로 선전하려는 행동으로 풀이했다.

    김정은이 비행기 조종과 탱크 조종, 말을 타는 것을 비롯해 제초작업을 하고 청룡열차를 타는 모습, 핵과학자들과 진지하게 대화를 하는 모습 등을 공개하는 것, 선전매체를 통해 화장품 산업이나 관광레저산업의 육성을 강조하는 것 또한 음침하고 이상한 북한의 대외적 이미지를 현대적이고 정상적인 국가처럼 보이게 하려는 전술의 일환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은의 뜻대로 북한이 정상적인 국가로 비춰질 경우 대외적인 이미지 제고는 물론 북한 주민들의 이탈도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있다는 것이 박정현 석좌의 지적이었다.

    박정현 석좌는 그러나 장성택 처형과 김정남 암살을 보면 김정은의 권력욕과 아집이 드러나며, 이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앞으로도 김정은의 환상과 기대, 북한의 운명에 대한 허황된 목표를 계속 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정현 석좌는 이어 김정은이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개발, 화학무기와 생물학 무기 생산 증대, 북한군 현대화에 집중하고 있으며, ‘소니 픽쳐스’ 해킹이나 금융기관 및 언론사 사이버 공격처럼 미국과 한국을 향해 대담하게 도발을 해대고 있지만 실제로 미국이나 한국과의 전면전을 원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정은 또한 미국과 전쟁을 했다가는 자멸할 것임을 알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 ▲ 2017년 3월 서해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을 찾아 기술자를 업어주는 김정은. 이런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내부 불만을 잠재우고 대외적으로는 정상적인 국가인 척하는 것이라고 한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7년 3월 서해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을 찾아 기술자를 업어주는 김정은. 이런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내부 불만을 잠재우고 대외적으로는 정상적인 국가인 척하는 것이라고 한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정현 석좌는 김정은이 ‘핵보유국’의 지위와 핵무기 보유, 탄도미사일 개발에 집착을 하는 이유가 이라크와 리비아의 선례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40년 동안 리비아를 지배하며 ‘아프리카의 왕’이라 자처했던 무아마르 알 카다피가 핵무기를 선제적으로 폐기한 뒤에 어떻게 죽었는지를 본 김정은은 절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참고로 카다피는 ‘재스민 혁명’이 일어난 뒤 군중들에게 붙들려 폭행당해 사망했다. 그의 시체는 군중들에게 훼손된 뒤 냉동고에 저장된 모습이 언론이 보도됐다.

    박정현 석좌는 이런 해외 사례를 본데다 2017년 여름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이 ‘화염과 분노’를 운운한 때문에 김정은은 더더욱 핵무기 보유에 집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정현 석좌는 김정은이 아직 젊은 탓에 가질 수 있는 문제, 오만함과 미숙함, 예측불가능한 변화의 가능성 등을 고려해 북한 문제에 대응해야 하며, 미국은 이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이라는 동맹국과의 결속을 더욱 공고히 해야 하며, 미국 자체적으로는 “우리가 보는 것을 김정은도 보고 있다”는 점을 떠올리며 오만함을 버리고 겸허한 자세로 북한 관련 정보를 분석하고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는 북한에 대한 압박, 사이버 대응 태세 강화, 미국과 동맹국의 방어 역량 강화, 북한 주민들에게 외부정보 유입 등이 모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박정현 석좌는 이런 동맹국의 공동 대처를 통해 “아직 배우는 중인 김정은이 올바른 것을 배우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정현 석좌의 주장은 사람들이 가진 입장과 시각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그의 경력을 보면 결코 허투루 들을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美컬럼비아大 역사학 박사 출신으로 뉴욕 헌터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다 2009년 CIA에 합류했다. 2011년에는 美백악관에서 동아태 지역 현안을 브리핑했으며, 2014년에는 CIA 동아시아 태평양 담당 선임분석관을 맡았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는 美국가정보장실(DNI) 동아시아 담당 부정보관, CIA 동아시아 태평양 임무센터 국장을 지냈다.

    그의 전문 분야가 북한 대량살상무기 능력, 북한 정권의 정책 분석, 미국과 동아시아가 직면한 안보 문제 분석이라는 점을 떠올려 보면, 김정은에 대한 그의 분석과 평가는 분명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