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50주년 기자간담회서 "음악 밖에 모르고 산다" 고백"나이는 들어도 음악만큼은 젊어지고파..최신 음악 '경청'"동물농장 보는 게 유일한 취미..술도 이젠 거의 안마셔"
  • "다른 분들이 좋은 음악을 내면 나는 왜 안되는 걸까 고민하면서 음악을 했습니다."

    가왕(歌王)을 넘어서 가황(歌皇)으로까지 불리는 그의 입에서 '나는 왜 안되는 걸까' 고민하면서 음악을 했다는 말이 나왔다. 그런데 표정이 꽤 진지하다. 결코 농담이 아니라는 얘기다.

    지난 1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데뷔 50주년 기자간담회를 가진 조용필은 '오랫동안 정상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게 힘들지 않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자신은) 정상이 뭔지, 기록이 뭔지 잘 모르고 산다"며 "그냥 좋아하는 걸 하는 것이지, 무엇이 되기 위해 무엇을 이루고자 음악을 하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 그는 자신이 '정상의 자리'에 있다고 의식하기는커녕, 오히려 다른 누군가가 명반을 내면, 나는 왜 저런 음악을 하지 못한 걸까 고민하면서 더 나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는 의외의 답변을 내놨다.

    "음악을 해보니 한 번 하면 계속 가게 되더라고요. 전 지금도 배우고 있어요. 아마도 죽을 때까지 배우다가 끝날 거 같아요."


    코흘리개 시절 우연히 접한 하모니카 소리에 반해 음악의 세계에 빠져들었다는 조용필은 지금도 유튜브를 통해 최근 음악 트렌드를 읽으며 젊은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고 말했다.
  • "그냥 좋아서 듣는 거예요. 그리고 제가 나이는 먹어가지만 음악만큼은 더 젊어지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해외 차트에 오르내리는 노래들이나 요즘 인기 있는 곡들은 대부분 듣고 있어요. 그 안에서 코드와 멜로디를 분석하고 공부를 하는 거죠."  

    그가 말한 것처럼 지금까지 '가수 조용필'이 이룩한 위대한 업적들은 모두, 철저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그 어느 것하나 거저 얻어진 것이 없었다. 입도 작고, 키도 작고, 손가락도 길지 않은 그가 당대 최고의 기타리스트가 되고, 송창식마저 극찬하는 '명창'이 된 것은 오로지 뼈를 깎는 노력과 지치지 않는 열정 덕분이었다.

    "제가 원래 미성인데요. 록음악을 하고 싶어 발성을 바꿨어요. 음역대도 원래는 G 마이너밖에 안올라갔어요. 미8군에서 연주하면서 A 마이너까지 올렸죠. 누가 시킨다고 제가 했겠습니까. 다 제가 좋아서 그런 거죠."

  • 절대 만족함을 모르는 완벽주의에 가까운 성격이 조용필의 발전을 이끈 원동력이 됐지만, 가끔은 이같은 '치밀한' 성격이 발목을 잡을 때도 있다.

    "전 두 가지 일은 못해요. 뭐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해야돼요. 원래는 20집 정규앨범을 내야 되는데 올해 5월에 50주년 투어 콘서트가 있잖아요. 그래서 작업을 중단했어요. 압박감이 너무 심해서요. 또 19집 앨범이 잘돼서 이번 앨범에서 더 잘해야겠다는 욕심이 커졌는데 아직까지는 곡들이 마음에 들지가 않아요."


    오매불망 조용필의 신곡만을 기다려온 팬들에겐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조용필의 정규 20집은 내년에나 만나볼 수 있을 듯하다. 다만 그는 "음원 발매는 가능할 수도 있다"며 실낱 같은 희망을 남겨놨다.

  • 조용필이 작업 중인 신곡들 중엔 최신 EDM(Electronic dance music) 장르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용필은 "여러 EDM 음악 중에 DJ 알란 워커(Alan walker)의 음악이 자신과 잘 맞는 것 같다"고 구체적인 스타일까지 거론했다. 이쯤되면 하우스 음악에 빠져든 조용필이 직접 디제잉을 하는 충격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줄지도 모를 일이다. 63세에 소프트락 '바운스'를 발매한 그가 아니었던가. 가왕의 앞에 더 이상의 '장벽'은 없어 보인다.

    조용필은 뮤지컬 연출에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소문난 뮤지컬 매니아인 그는 "직접 노래를 부르는 건 힘들어졌지만 언젠가 프로듀서는 꼭 해보고 싶다"며 "실제로 (뮤지컬 연출을 위해) 브로드웨이를 찾아가, 조명이나 음향 설비 등을 꼼꼼히 살펴봤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조용필은 지금도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각오로 살고 있다면서 "나를, 내 음악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체력이나 모든 것이)허락할 때까지 음악을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 - '가왕'이라는 호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냥 '조용필씨'라고 불러주시는 게 가장 좋습니다. 가왕은 부담스럽죠. 그런 말 들으려고 음악한 게 아니예요.

    - 오랫동안 정상의 자리에 있는 게 피곤하지는 않은지요?

    ▲저는 정상이 뭔지, 기록이 뭔지도 잘 모릅니다. 그냥 오랫동안 좋아하는 음악을 했을 뿐입니다. 오히려 다른 분들이 좋은 음악을 내면 나는 왜 안되는 걸까 고민하면서 음악을 했습니다.

    - 50년 동안 꾸준히 음악을 해오셨는데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5~6살 때 하모니카 소리를 처음 듣고 충격을 받았어요. 아버지를 졸라서 하모니카를 사고, '푸른 하늘 은하수'를 분 게 시작이었죠. 가요는 축음기를 통해 들었고, 라디오를 통해 팝송을 접하게 됐어요. 서울에 와서는 형이 치던 통기타가 있길래 제가 치게 됐죠. 원래 음악은 취미로만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고 합주를 하다보니 취미가 아닌 게 돼 버렸죠. 미8군에 엑스트라로 나갔던 게 인연이 돼 기타를 쭉 쳤어요. 음악을 해보니 한 번 하면 계속 가게 되더라고요. 전 지금도 배우고 있어요. 아마도 죽을 때까지 배우다가 끝날 거 같아요.

    - 정규 앨범을 19개나 내셨는데, 그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노래나 앨범이 있다면?

    ▲대부분 정성을 기울여 만들기 때문에 어떤 앨범이 좋은지 꼽기는 어렵군요. 다만 13집에 실린 '꿈'과 12집에 실린 '추억 속의 재회'에 애착이 가긴 해요. '꿈'은 비행기 안에서 만든 노래인데요. 지금도 이 노래를 부르면서 목을 풀어요.

    - 매번 앨범을 내시면서 우리 가요의 퀄리티를 높이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우신 분이 아닌가 싶은데요. 항상 도전적으로.

    ▲도전까지는 아니고, 제가 원래 그냥 음악 듣는 걸 좋아해요. 유튜브를 통해 음악을 매일 접해요. 그걸 보면 관련 영상들이 계속 나오거든요. 누가 부른 노래인지는 잘 몰라도 음악은 다 알고 있어요.

    - 지금 작업 중인 곡 가운데 EDM 장르도 있다고 들었는데요. 이렇게 젊은 감각을 유지하는 비결이 있으신가요?

    ▲제가 나이는 많아지지만, 음악만큼은 젊어지고 싶어요. 그래서 계속 음악을 듣죠. 그리고 제가 기타리스트로 시작을 했기 때문에 음악을 들으면 그 코드를 다 적어요.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떻게 멜로디가 이뤄지는지 화음이 어떻게 구성됐는지를 살펴보죠. 이렇게 자주 들으면서 젊은 감각을 유지해야 돼요. 요즘은 라틴이 대세더라고요.

    - 준비하시는 새 앨범을 잠깐 소개해 주신다면.

    ▲19집 반응이 좋아서 이번 앨범에 대한 부담이 커졌어요. 그래서 많은 음악을 듣고 노래도 많이 만들었는데 제 마음에는 안드네요. 한 6~7곡 정도는 완성이 됐어요. 그런데 5월에 50주년 공연이 있거든요. 저는 두 가지 일은 못해요. 6월까지 투어가 끝나면 가을이 되기 전에 그 사이에 앨범 준비를 해야 하는데, 제 성격상 올해는 힘들 것 같습니다. 음원을 낸다면 모를까요.

    - 19집 '헬로'는 정말 전세대를 통합하는 능력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젊은 세대가 조용필에게 열광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열광은 아니었고, 그냥 저를 몰랐던 분들이 저를 알게 됐다는 정도죠. 제가 예전부터 어떻게 하면 음악을 오랫동안 계속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해왔는데요. 저는 나이를 먹고 있지만 젊은 사람들이 제 노래를 듣고 저를 기억해준다면 그들이 60살이 돼도 저를 기억해 줄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떤 음악을 해야 하느냐는 고민에 이르게 되죠. 그 과정에서 나온 노래가 바로 '바운스'와 '헬로'입니다. 제가 록을 많이 듣긴 하는데 막상 작업을 하면 잘 안맞더라고요.

    - 자신이 꼰대가 됐다는 사실을 인정하시는지.

    ▲그렇죠. 거부하진 않아요. 나이를 왜 속여요? 저는 일부러 주위에 내일 모레면 70이란 말을 곧잘 해요. 나이를 먹어도 이렇게 음악을 하고 있다는 게 중요한 거죠. 원래 제가 미성인데 그게 싫어서 발성을 바꿨고요. G 마이너밖에 올라가지 않는 음을 나중에 A 마이너까지 끌어올렸어요.

    - 혹시 요즘에 눈여겨 보는 후배 가수들이 있나요?

    ▲제가 누구라고 말씀을 드릴 순 없을 것 같고요. 지금 유명한 가수라면 다 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뭔가가 있는 거죠.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이나 엑소, 빅뱅의 공연도 다 유튜브로 봐요. 다들 저만의 매력들을 갖고 있죠.

    - 요즘 아이돌 가수들 장르가 거의 댄스 음악이잖아요.

    ▲제가 일찍 태어나 활동을 먼저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지금 활동했으면 안됐을 거예요. 비주얼도 안되고. 키도 작아요. 작은 거인이라는 말이 진짜 작아서 생긴 말이거든요.  

    - 동안을 유지하는 비결이 궁금합니다.

    ▲소식을 하는 편이에요. 간식은 일절 안 먹고요. 아침을 꼭 먹고, 점심과 저녁도 조금씩 먹어요. 밤에 음악을 들을 때에는 배가 많이 고픈데요. 그래도 그냥 참아요. 술도 안마신지 꽤 됐어요. 몇 달에 한 번 정도만 먹죠.

    - 평소에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만나자는 사람도 없고, 그냥 심심하게 지내요. 친구들도 다 사업하느라 바쁘고, 후배들도 바쁘고. 또 보통 공연에 들어가면 1년이 금방 지나가버리거든요. 게임도 안하고 특별한 취미가 없어요. 요즘엔 집에서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나 '동물농장'을 즐겨 봐요.

    - 최근에 평양에서 공연을 하셨잖아요. 어땠나요?

    ▲제 몸 상태가 너무 안좋았어요. 정말 최악의 상태에서 공연을 했던 거 같아요. 호텔 방에만 있어서 옥류관 냉면도 못 먹었어요. 그쪽 음악이 우리와 많이 다르기 때문에 이걸 쉽게 받아줄까 하는 걱정은 있었죠. 사실 표정만 보고는 그 분들 속마음을 알 수가 없거든요. 다만 이렇게라도 우리 음악을 들려줘서 경험적으로 바뀌어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2005년 평양에서 만났던 남자 안내원도 다시 만나 반가웠어요.

    - 혹시 뮤지컬을 제작해보실 의향은 없으신지.

    ▲뮤지컬을 참 좋아합니다. 언젠가는 한 달 동안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본 적도 있어요. '맘마미아'도 보스턴까지 날아가서 봤지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한번 뮤지컬 연출을 해보고는 싶어요.


    취재 = 조광형 기자
    사진 = 정상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