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잠복~대북특사 만찬…‘맹경일’ 넌 누구냐?

김양건 아래서 김정은 체제 구축 동참…김양건은 김정은 모친 최측근

전경웅 기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8.03.06 19:53:19

▲ 2015년 8월 이희호 여사가 방북했을 때 영접하는 맹경일 北통일전선부 부부장. 김양건 아래에서 20년 넘게 일했다고 한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난 5일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사들이 방북했다. 평양 순안비행장에 내린 이들을 영접한 사람 가운데는 맹경일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이 있었다.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방한한 북한 대표단 사이에 끼어 들어와 올림픽 경기장 인근에 19일 동안 머물면서 북측과의 ‘연락 사무소’를 꾸려 놓고 활동하다 몰래 돌아간, 그 맹경일이 맞다. 대체 그는 누굴까.

맹경일·원동연 키운 사람, 고용희 최측근 김양건


맹경일은 현재 北노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을 맡고 있다. 그는 현재 부장인 김영철과 달리 통일전선부에서 계속 일하며 잔뼈가 굵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12월 30일 사망 소식이 나온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의 측근으로도 유명하다.

맹경일은 1990년대 남북 갈등이 고조됐을 당시 통전부 산하 아시아태평양 평화위원회 관계자로 처음 나타났다. 2005년 제16차 남북 장관급 회담, 2007년 2월 남북 장관급 회담 재개를 위한 실무자 회의 때 모습을 드러냈다.

2014년 10월 인천 아시안게임 당시 여론의 시선이 황병서, 최룡해, 김양건에게 쏠려 있을 때 이들을 보좌해 조용히 한국에 왔던 ‘실무 책임자’ 명단에도 맹경일의 이름이 올라 있다. 2015년 8월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방북했을 때 맹경일이 영접을 맡아 눈길을 끌었다. 이때 국내 언론들은 “맹경일이 최근 통전부 부부장으로 승진했다”고 보도했다.

맹경일은 김정일 시절부터 김정은 집권 이후 최근까지도 대남사업에 관여하면서 권력의 핵심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고모부까지 공개처형하는 김정은 치하에서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비밀은 바로 김양건에게 있다.

2015년 12월 30일 평양 시내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는 김양건은 황병서, 김영철 등과 함께 김정은이 집권하는데 전력을 다한 ‘고용희’의 최측근 가운데 한 명이다.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을 맡아 활동하다 평양 시내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리제강’도 ‘고용희 패밀리’ 가운데 한 명이라고 한다.

‘고용희’는 김정철과 김정은, 김여정을 낳은 생모다. 김정일과의 인연은 1974년 만수대 예술단을 부른 최초의 ‘기쁨조 파티’에서 눈에 띤 이후 고정 파트너가 되면서부터다. 김정일은 이후 고용희와 데이트를 즐기다 세 번째 첩으로 만들었고 한다. 북한에서 고용희에 대한 평판은 상당히 좋았다고 알려져 있으며, 네 번째 첩으로 알려진 ‘김 옥’과는 친자매처럼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용희’는 유방암으로 투병하다 2004년 프랑스에서 사망했다. 그런데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이 해외로 내쳐진 2001년 이후부터 자신의 자녀들을 후계자로 앉히기 위해 작업을 시작했다. 당시 마카오와 홍콩, 중국을 떠돌던 김정남과 계속 연락하며 그를 도와주던 김경희-장성택 부부와 권력 투쟁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때 ‘고용희’의 편에 선 김정일의 측근이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리제강(2010년 6월 사망)과 노동당 대남비서 김양건(2015년 12월 사망)이었다고 한다. 김격식 前북한군 4군단장과 함께 김정은에게 군사학을 가르쳤다는 김영철 現노동당 통일전선부 부장, 황병서 前북한군 총정치국장 등은 2006년 전후 김정은이 후계자로 부상한 뒤에야 합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2014년 10월 인천 아시안 게임 당시 황병서, 최룡해와 함께 한국에 왔던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정은, 어릴 적 김양건 부인을 ‘이모’라 불러


일설에는 김정은과 김정철, 김여정 등이 어릴 적 김양건의 부인을 이모라고 부를 정도로 두 집안은 매우 가깝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의 대남사업이 실패를 해도 김양건과 그의 측근들은 숙청이나 철직을 당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김양건의 경우 심지어 김정은 앞에서 삐딱한 자세를 하거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이야기를 해도 아무 탈이 없었다고 한다. 북한군 고위층이 김정은 앞에서 졸았다고 처형당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나마 한바탕 소란이 일었던 것이 2015년 5월 이명박 前대통령의 회고록이 출간된 뒤 김양건을 비롯해 통전부 조직원들이 특별 감사를 받았던 일이다.

당시 이명박 前대통령이 회고록을 통해 재임 당시 중국에서 북측과 비밀 접촉한 사실, 이때 북한의 김양건과 원동연, 맹경일 등이 ‘남북정상회담’을 앞세워 옥수수 10만 톤, 쌀 40만 톤, 비료 30만 톤, 건설용 아스팔트 피치 1억 톤 등을 무상으로 달라며 “빈 손으로 돌아가면 죽는다”고 애걸복걸 했다는 사실을 폭로한 뒤 통전부에 대한 조사가 시작됐다는 소식이었다.

이때도 김양건은 별 탈 없이 다시 김정은의 곁으로 돌아왔고, 원동연과 맹경일 또한 큰 처벌을 받지 않고 돌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정황들 때문에 외부에서는 김양건이 사실상 김정은의 멘토이자 후견인이라고 분석했다. 고용희의 당부를 받은 리제강은 김정은이 권력을 확실히 잡기 전에 이미 사망했고, 김정일 앞에서 큰 소리를 칠 수 있었다는 네 번째 첩 ‘김 옥’의 경우에도 ‘권력 투쟁의 상대방’에게 맞서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김양건 정도가 아니면 김정은을 노리는 세력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봤다.

김정은이 고모부 장성택을 공개처형했을 때에는 이런 정황이 더욱 잘 드러났다. 김정은은 2013년 11월 30일 측근 8명을 백두산이 있는 삼지연군으로 불렀다고 한다. 김병호, 김양건, 김원홍, 마원춘, 박태성, 한광상, 홍영칠, 황병서가 그들이었다. 김정은이 ‘삼지연 8인방’을 부른 이유는 ‘장성택 대책회의’였다고 한다.

장성택 처형에 대해 지금까지도 다양한 설이 있지만, 고용희와 리제강의 사망, 김정일의 급사 이후 장성택-김경희 부부가 김정은의 통치 행위에 간섭하는 일이 많아지자 제거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리고 김씨 일가의 외척인 장성택을 제거하려 나선다면 김정은이 절대적으로 신뢰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북한 권력 핵심층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원로라야 가능하다. 여기에 딱 맞는 인물이 바로 김양건이다. 그는 김정일이 권력을 쥔 지 3년이 지난 1997년 4월부터 노동당 국제부장을 맡았으며, 고용희와 김 옥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가 앞장선다면 뒤늦게 김정은 편에 선 측근들 또한 부담이 매우 적었을 것이다.

실제 ‘삼지연 8인방’에 대한 당시 보도를 보면 장성택 처형은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황병서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이 ‘총대’를 맸다고 한다.

▲ 2015년 12월 29일 김양건이 평양 시내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뒤 장례식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김정은. ⓒ北선전매체 화면캡쳐.

김정은, 김양건의 빈 자리 누구로 메우고 있나?


이처럼 김정은을 지금의 최고 권력자로 만들어 준 김양건은 2015년 12월 29일 새벽 평양 시내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숨졌다. 김정은은 직접 장례위원장을 맡았으며, 그의 관을 운구할 때는 ‘삼지연 8인방’이 직접 나섰다. ‘개국공신’의 장례식 수준이었다. 北선전매체에 따르면 김정은은 장례식에서 “함께 해야 할 많은 일들을 앞에 두고 이렇게 간다는 말도 없이 야속하게 떠나느냐”며 통곡을 했다고 한다.

김양건이 사망했을 때 일각에서는 “김정은이 이제는 쓸모가 없어진 김양건을 교통사고로 위장해 제거한 것 아니냐”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김양건은 평양 내부에서도 특정 파벌로 분류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했던 전문 관료로 꼽혔기에 김정은에게 도전하는 것처럼 보여 숙청당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높지 않다.

그보다는 김정일 시대의 장성택 같은 ‘2인자’ 자리를 노리던 김원홍, 황병서 등이 암살했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아니면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11월 연평도 포격도발, 2014년 8월 목함지뢰 도발과 포격도발을 주도한 김영철 등 ‘정찰총국 파벌’이 나섰을 수도 있다.

아무튼 김양건의 죽음 직후 북한은 본격적으로 대외적 도발을 하기 시작했다. 2016년 1월부터 이어진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는 2017년 말까지 10건의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를 만들어 냈다.

이런 과정에서 김정은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측근은 이제 리수용 노동당 외교위원회 위원장과 김씨 일가의 여성들만 남았다. 리수용과 현재 외무장관 역할을 맡은 리용호는 국제 관계는 잘 알겠지만 ‘대남 사업’에서는 전문가라 부르기 어렵다. 김양건이 사라진 자리를 누가 메우고 있을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통남봉미’로 전술의 방향을 바꾼 김정은은 대남사업 전문 관료에게서 ‘김양건의 그림자’를 찾으려 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부합하는 것은 원동연 통전부 부부장과 맹경일이다. 원동연은 40년 넘게 통전부에 근무하며 김양건의 오른팔로 불릴 정도였고, 김양건을 보좌하며 20년 넘게 일해온 사람이 바로 맹경일이다. 게다가 맹경일은 50대 나이로 ‘세대 교체’를 바라는 김정은의 입맛에도 맞다.

여기에 김정일의 유언까지 생각해 보자. 김정일은 고영희가 사망한지 1년도 더 지난 2006년 7월부터 김 옥과 동거를 시작했다고 한다. 김 옥은 전형적인 전문 관료 스타일로 원칙을 벗어나면 김정일에게도 반말과 큰 소리를 내뱉을 정도였다고 알려져 있다. 게다가 김정은의 생모 고용희는 김 옥이 야심도 없고 소박한 성격이어서 무척 아꼈다고 한다. 고용희는 김 옥에게 “내가 죽으면 정은이와 정철이, 여정이를 잘 부탁한다”는 유언도 남겼다고 한다.

이런 내용을 모두 알았던 김정일은 김정은에게 “권력지향적인 자는 주변에 두지 말라”는 내용의 유언을 남기지는 않았을까. 만약 그랬다면 김양건과 리수용, 원동연, 맹경일 등이 별다른 부침 없이 김정은의 옆에 남아 있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맹경일의 경우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북한 대표단에 뒤섞여 한국에 온 뒤 강원도에서 19일 동안 방안에 틀어박혀 북한과의 ‘연락 사무소’를 꾸렸다고 한다. 그야말로 김정은이 신임하는 ‘제2의 김양건’은 아닐까. 지난 5일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사를 장관급인 리선권과 함께 영접하고 만찬과 면담에까지 참석한 것도 맹경일의 권력 서열이 공개된 것과 다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물론 가장 확실한 것은 김정은 스스로가 모든 내용을 밝히는 것 외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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