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말한 ‘적절한 조건’ 한국 상상과 전혀 다르다

존 볼튼 前유엔 주재 美대사 “북한 핵전력 실전배치 전에 군사공격 해야”

전경웅 기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8.02.27 12:06:01
▲ 지난 2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열린 주지사들과의 면담에서 "적절한 조건이 되어야 북한과 대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美백악관 유튜브 채널 캡쳐.
한국 언론들은 ‘천안함 폭침의 원흉’ 김영철이 “미국과 대화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을 전하며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 또한 북한과 대화할 뜻이 어느 정도 있다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다.

트럼프 美대통령이 새로운 대북제재를 조치한 뒤 지난 며칠 동안 “적절한 조건이 되면 북한과 대화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는 게 근거였다. 하지만 트럼프 美대통령이 말한 “북한과 대화할 수 있는 적절한 조건”은 문재인 정부나 한국 언론들이 상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27일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처음으로 대화를 원하고 있으니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자’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소리’ 방송에 따르면, 트럼프 美대통령은 지난 26일(현지시간) 美백악관에서 열린 주지사들과의 면담에서 “북한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자는 것이 내 입장이며, 북한에서 분명 어떤 일이 생겨야만 대화가 가능하다”며 이 같이 말했다고 한다.

트럼프 美대통령은 이어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적절한 조건’ 아래에서만 북한과 대화가 가능하며 다른 경우에는 대화하지 않을 것”이라며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지난 25년 동안 북한은 대화를 위한 대화만 했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트럼프 美대통령은 “지난 25년 동안 북한과의 대화가 있었지만 어땠는지 여러분도 알지 않느냐”면서 “클린턴 정부는 북한에게 뭔가를 지어주고 제공하며 수십억 달러를 날렸지만 그들은 합의서에 서명한 직후 곧바로 약속을 어겼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美대통령은 부시 정부와 오바마 정부 또한 북한에 대해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고 한다. 특히 오바마 前대통령에 대해서는 “말로는 ‘내게 북한 문제는 미국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라고 해놓고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면서 “내 생각에는 과거 정부들이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가 지금보다 훨씬 쉬웠을 것”이라고 비판했다고 한다.

트럼프 美대통령은 이날 ‘적절한 조건’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그의 과거 발언과 저술 등에서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그는 2016년 11월 대선에 출마하기 수 년 전부터 ‘확실한 비핵화’를 조건으로 내걸어 북한 비핵화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라늄 농축을 위한 원심 분리기 등 관련 장비와 핵무기 제조에 사용되는 모든 시설의 완전한 파괴, 탄도미사일 및 관련 개발·생산 시설의 폐기, 미국이 원하면 언제 어디든 가서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개발 또는 생산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사찰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야만 북한과 ‘정상적인 대화’를 할 수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

이것이 바로 트럼프 정부 관계자들이 북한에게 요구하는 “확실하고, 검증 가능하며, 절대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조치”다.
▲ 김여정과 청와대에서 만나는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1991년 12월 남북한이 한반도 비핵화에 합의한 뒤 북한이 남북 상호 핵시설 사찰을 거부하면서 1994년 12월까지 일어난 전쟁 위기 등의 사례를 보면, 북한이 트럼프 美대통령이 말한 ‘적절한 조건’을 달성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트럼프 美대통령과 북한을 보는 시각이 매우 비슷한 것으로 알려진 존 볼튼 前유엔 주재 美대사는 “이런 점 때문에 북한이 스스로 비핵화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거의 없으므로 핵전력을 실전 배치하기 전에 대북 타격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미국의 소리’ 방송은 27일 존 볼튼 前대사와의 인터뷰 기사를 보도했다. 볼튼 前대사는 인터뷰에서 북한이 미국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힌 것에 대해 “북한이 미국에 대화를 제안한 것은 선전 전략의 연장선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볼튼 前대사는 “미국은 북한과 지난 25년 동안 직·간접적으로 대화를 나눠왔지만, 북한은 계속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을 추진하면서 대화를 악용해 이익을 취해 왔다”면서 “북한의 이번 대화 제안 또한 새로운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평가했다.

볼튼 前대사는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의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고, 북한도 핵무기를 포기하겠다는 진지한 뜻을 보여야 한다’고 밝힌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는 예전에도 그가 말한 대로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면서 문재인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美-北 협상 중재’와 이를 바탕으로 한 북한 비핵화 전략이 사실상 무용지물임을 지적했다.

볼튼 前대사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이번이 ‘햇볕정책’을 따르는 한국의 세 번째 대통령인데, 이 정책을 편 두 대통령 당시에도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고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볼튼 前대사는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협상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결국 아무런 결과도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볼튼 前대사는 트럼프 정부의 대북압박 전략에 대해서도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하기에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 지난 23일(현지시간) 트럼프 정부의 새 대북제재가 발표된 뒤 美폭스 비즈니스에 출연한 존 볼튼 前유엔 주재 美대사. ⓒ美폭스 비즈니스 관련보도 화면캡쳐.
한국의 차기 정권을 기다려 그들과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떻느냐는 질문에도 “미국에게는 한국의 차기 정권을 기다릴 만한 사치가 없을지 모른다”면서 “마이크 폼페오 美중앙정보국 국장의 말처럼 북한이 美본토에 핵공격을 가할 역량을 갖기 까지는 몇 달 밖에 남지 않았다”며 ‘시간문제’를 재차 언급했다고 한다.

볼튼 前대사는 이런 문제 때문에 美정부가 테이블에 올려놓은 대북군사옵션의 사용 필요성을 언급했다고 한다. 그는 “대북전략의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어야 한다”고 전재한 뒤 “만약 대북 군사행동을 가할 것이라면, 반드시 북한이 美본토에 대한 핵공격 역량을 갖추기 전에 실행해야 한다”며 “미국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볼튼 前대사는 이어 “미국이 대북 군사행동을 한다면 북한의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관련 시설을 타격할 것”이라면서 “미국의 대북 군사행동 때 한국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비무장 지대 북쪽에 대거 배치돼 있는 북한군 포병대를 타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볼튼 前대사는 또한 한국 정부를 향해 “한국 정부와 한국인들은 핵무기를 가진 북한을 걱정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진짜 핵무기’를 가진 북한은 이를 주한미군 철수용으로 악용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한국 안보는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트럼프 美대통령과 볼튼 前대사의 발언을 종합해 보면, 현재 한국 정부와 일부 언론은 북한의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문제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의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이 한국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 한국이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중재역할’을 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북한이 비핵화 선조치를 하지 않더라도 미국은 결국 대화에 나설 것이라는 상상, 트럼프 정부도 미국 내에서의 여론 때문에 대북 군사행동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 등이 모두 일부 한국 사람들의 ‘상상’에 기반을 하고 있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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