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관람객 ‘저체온증’ ‘동상’ 주의…노약자·어린이는 위험할 수도
  • ▲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가 개회식 관람객을 위한 방한대책으로 내놓은 '6종 세트'. 이걸로 '대관령 추위'를 이길 수 있을까.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가 개회식 관람객을 위한 방한대책으로 내놓은 '6종 세트'. 이걸로 '대관령 추위'를 이길 수 있을까.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는 9일 오후 8시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에 있는 ‘올림픽 플라자’, 평창 동계올림픽 스타디움에서 개회식이 열린다. 기온이 영하 2도 안팎이라던 8일 오후 평창 스타디움 주변에 가서 ‘대관령 추위’에 맞서봤다.  ‘저질 체력’이어서인지 50여 분 만에 포기했다. 안내를 해준 올림픽 지원인력 A씨는 "바람이 문제"라며 위로했다.

    많은 국내 언론들이 지금까지 “개회식 때 추위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뒤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 측은 지난 3일 판초우의, 무릎담요, 핫팩 방석, 손 핫팩, 발 핫팩, 방한모자 등 ‘방한 대책 6종 세트’를 선보였다. 평창 올림픽 조직위 측은 또한 지붕이 없는 스타디움 위를 ‘비닐’로 덮는다는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를 보는 현장 지원 인력들은 “과연 그게 될까”라는 반응을 보였다.


  • ▲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이 열리는 '올림픽 플라자' 입구의 조형물. 바람 때문에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
    ▲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이 열리는 '올림픽 플라자' 입구의 조형물. 바람 때문에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
    8일 오후 2시 평창 국제방송센터(IBC)에서 스타디움으로

    8일 오후 2시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용산리 ‘국제방송센터(IBC)’ 앞에 도착했다. 알펜시아 리조트 맞은편에 있는 IBC 안팎에는 국내외 언론 관계자와 평창 올림픽 조직위, 지원 인력, 보안 요원들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기상청과 ‘아큐웨더’ 등의 예보에 따르면 당시 기온은 영하 2도 안팎. 예상 외로 춥지 않았다.

    하지만 IBC 주변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롱패딩’ 또는 히말라야 등산에서나 볼 법한 두꺼운 방한 자켓과 방한용 바지를 입고, 머리를 꽁꽁 싸맨 채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날 평창 동계올림픽 스타디움 일대를 안내해 주기로 한 현장지원인력 A씨는 “바람 때문에 그렇다”고 설명했다.

    A씨의 안내를 받아 8km 가량 떨어진 스타디움 ‘평창 올림픽 플라자’로 향했다. 개회식을 하루 앞둔 스타디움 주변은 보안 요원들과 지원 인력들이 마지막 점검을 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수십여 대의 관광버스들이 왕복 4차선의 좁은 도로를 메우며 분주히 이동하고 있었고, ‘평창 동계올림픽’ 사인을 단 지원 차량들이 도로 주변에 가득 차 있었다.

  • ▲ 스타디움 인근에 있는 셔틀버스 정거장.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기다려야 한다 ⓒ
    ▲ 스타디움 인근에 있는 셔틀버스 정거장.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기다려야 한다 ⓒ
    일단 스타디움에서 가까운 카페를 찾아 A씨의 설명을 듣기로 했다. 카페에는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기자들과 선수, 대회 관계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카페 바로 앞에는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동안 운영하는 ‘셔틀 버스’ 정거장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스타디움 주변 사람들은 IBC 주변에서 본 사람들보다 더 ‘중무장’을 한 채 돌아다니고 있었다. A씨는 “해가 진 뒤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매우 춥기 때문에 저런 복장으로 돌아다닌다”면서 “오늘은 따뜻한 편이어서 저는 하의 내의는 입지 않았지만 평소에는 상하의 내의를 모두 입고, 플리스 셔츠까지 끼어 입고 근무한다”고 설명했다.

    8일 오후 4시 스타디움 옆에서 ‘대관령 추위’에 맞서기

    오후 3시 30분이 지나자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세차게 불면서 체감 온도가 크게 떨어진 것이다. 오후 4시 30분이 되자 슬슬 석양이 지기 시작했다. ‘대관령 추위’를 체험할 시간이었다.

    바람이 불기는 했지만 기온이 영하 2도 안팎이고 9일도 비슷한 온도라는 예보가 나왔기에 바람을 막는 방한 자켓과 장갑, 방한 귀마개, 방한화 등을 신고 시험해보기로 했다. ‘겨우 영하 2도인데’ 라면서.

    오후 4시부터 스타디움 바로 옆에 있는, 탁 트인 주차장에 서 있었다. 기자가 잘못했다.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대관령 추위’에 맞서기를 포기했다. 30분 정도 지나자 손가락 끝이 아파오기 시작했고, 50분이 넘자 입이 어는 듯한 느낌이었다. 25년 전 강원도 원통에서 군 생활할 때 느끼던 그 바람이 손끝에서부터 스며들기 시작했다. 결국 55분 만에 사진 몇 장 찍고 항복했다.

  • ▲ 평창 동계올림픽 스타디움 옆 주차장에서 스마트폰 어플로 측정한 고도. ⓒ
    ▲ 평창 동계올림픽 스타디움 옆 주차장에서 스마트폰 어플로 측정한 고도. ⓒ
    해발 700미터 ‘대관령’의 겨울 밤 따뜻할까

    A씨는 “이곳이 대관령에서도 비교적 높은 곳이고 산에서 차가운 바람이 내려치기 때문에 밤이 되면 생각보다 춥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폰에 설치한 앱으로 고도를 측정하자 797미터라고 나왔다. 대관령 꼭대기가 832미터이므로 어느 정도 오차는 있겠지만 멀리 보이는 풍력 발전기들을 보면 최소한 해발 700미터 이상임은 확실했다.

    9일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시작은 오후 8시. 당일 평창군 일대는 교통 통제가 되기 때문에 개회식을 관람하려면 강릉 등 인근 지역에 차를 세워둔 뒤 셔틀버스를 타고 와야 한다. 그리고 보안 검색 등을 거쳐 스타디움에 입장해야 하는데 소요 시간은 1시간 이상으로 예상된다. 2시간의 개회식이 끝난 뒤에 스타디움에서 나와 셔틀버스를 탈 때까지도 1시간 정도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즉 9일 스타디움에서 개회식을 볼 사람들은 최소한 4시간 동안 바깥에서 ‘대관령 추위’와 맞서야 한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버틸 수 있을까.

    2017년 11월부터 현장에서 근무한 A씨는 “기온이 높다고 해도 밤이 되면 영하로 떨어지고, 게다가 바람도 세차게 부는데 개회식 관람객들이 ‘한랭 질환’에 걸릴 것 같다”고 우려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대관령 일대에서는 10월만 되어도 밤이면 쌀쌀한 바람이 분다고 한다.

    A씨는 “2017년 11월 4일 ‘평창 드림 콘서트’가 끝난 뒤 이동하면서 당시 모습을 봤다”면서 “10대 청소년들이 버스를 기다리며 추위에 벌벌 떨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뉴시스’의 지난 3일 보도를 보면 ‘평창 드림 콘서트’ 당시 기온은 영상 4도였지만 풍속이 8m/s여서 체감 온도가 영하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40대 여성 1명과 10대 여학생 2명이 ‘저체온증’으로 응급 후송됐다고 한다.

    A씨는 “작년 11월에 처음 왔을 때도 추위가 만만치 않다고 느꼈는데 1월이 되자 밤이면 바람이 더욱 세차게 부는 것 같다”면서 “오후 5시 이후에 해가 지면 모두가 춥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오는 9일 개회식 날과 기온이 비슷했던 지난 2일과 3일 또한 “밤에는 추웠던 기억밖에 없다”고 답했다.

  • ▲ 8일 오후 4시 40분 경에 촬영한 사진. 이때 손끝은 얼어서 통증이 왔고, 입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
    ▲ 8일 오후 4시 40분 경에 촬영한 사진. 이때 손끝은 얼어서 통증이 왔고, 입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
    평창 올림픽 개회식서 ‘119’ 안 실려 가려면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이 열리는 9일 오후 8시 예상 기온은 영하 1도, 개회식이 모두 끝나고 난 뒤 오후 11시 예상 기온은 영하 2도라고 한다. 그러나 바람이 얼마나 부는가에 따라 체감 온도는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A씨는 과거 스타디움 현장 견학을 한 때를 떠올리며 “뻥 뚫린 스타디움에는 바람이 더욱 거셀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큐웨더’와 같은 기상예보 앱을 보면, 10일 대관령 지역의 기온은 영하 12도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한다. 11일에는 영하 15도까지 떨어진다. 이처럼 급격히 떨어지는 기온이 9일 밤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을까.  

    물론 피겨 스케이팅, 스피드 스케이팅, 아이스하키, 컬링 등의 실내 종목이 열리는 강릉시는 대관령에 비해 따뜻한 편이라고 한다. 하지만 실외에서 열리는 알파인 스키, 크로스 컨트리 등을 관람할 때에는 방한 대책을 충분히 갖춰야 한다.

    올림픽 조직위 측에서 제공하는 판초우의나 핫팩 등은 개회식을 관람할 때는 편리할지 모르나 행사 전과 후 바깥에서 찬바람을 맞을 때는 큰 도움이 안 될 것으로 보인다.



  • ▲ 평창 동계올림픽 스타디움에서 보이는 대관령 풍력발전소. 대관령은 서울 북악산 2배가 넘는 높이에 있다. ⓒ
    ▲ 평창 동계올림픽 스타디움에서 보이는 대관령 풍력발전소. 대관령은 서울 북악산 2배가 넘는 높이에 있다. ⓒ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을 관람하는 사람들은 도시나 해안 지역의 겨울 날씨를 생각하지 말고 방한 대책을 충분히 마련해야 ‘한랭 질환’으로 구급차에 실려 가는 일이 없을 것이다. 특히 어린이나 노약자의 경우에는 4시간 동안 ‘대관령 추위’에 맞설 수 있으리라 장담하기 어려우므로 주의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심장, 혈관 등에 지병을 가진 사람들은 웬만하면 개회식 관람을 포기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해가 지면 급격히 떨어지는 기온 탓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다.

    건강한 성인들도 두꺼운 외투만 준비할 것이 아니라 머리 전체를 덮을 수 있는 모자나 안면 마스크, 바람을 막을 수 있는 방한 장갑, 방한화 등을 준비해야 ‘저체온증’은 물론 ‘동상’과 같은 질환을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9일부터는 평창군 일대 모두 교통이 통제되고 관람객들은 모두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한다는 점, 셔틀버스 정거장은 모두 실외라는 점은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관람객들 스스로가 방한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은 수많은 응급환자가 생기는 '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