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잡는 초등한국사 사전’, 이념 편향적 서술...출판사 “전면 개정 검토”
  • ▲ 개념 잡는 초등한국사 사전.ⓒ주니어김영사
    ▲ 개념 잡는 초등한국사 사전.ⓒ주니어김영사

    "주체사상 배우며 중국·소련과 다른 사회주의 자주(自主) 노선 선언“ 

    -주니어김영사 발행 ‘개념 잡는 초등한국사 사전’, 김일성 설명 중 일부.

    초등생을 대상으로 발행된 역사 교재에, 북한 김일성을 미화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서술하는 등 이념 편향적인 내용이 담겨 있어, 논란을 빚고 있다.

    주니어김영사가 2008년 발행한 <개념 잡는 초등한국사 사전>은 김일성을 '북한 전 국가 주석'이라고 소개하면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1932년에 창바이 산맥과 쑹화 강 유역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했어요. 1936년에는 조국 광복회를 만들고 압록강 상류인 혜산진의 보천보를 공격했어요. (중략) 1948년 9월에 북한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들어섰고 김일성이 수상으로 뽑혔어요. 1950년 6·25 전쟁 때에는 인민군 최고사령관이 되어 전쟁을 주도했어요. 1960년대 초반부터는 주체사상을 배우며 중국·소련과 다른 사회주의 자주 노선을 선언했어요. 1972년에 만든 조선 사회주의 헌법에 따라 국가 주석이 되었으며, 수령 중심의 권력 체제를 확립해 모든 권력을 잡았어요."

    김일성을 ‘항일 투사’ 및 ‘6·25 전쟁 인민군 최고사령관’이라고 소개하면서, 그의 주체사상을 '사회주의 자주 노선'으로 미화하고 있다. 보천보 전투는 김일성 우상화 작업을 위해 북한 정권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꺼내드는 단골메뉴인데도 무비판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부분도 문제다. 무엇보다 김일성이 소련 스탈린의 사주를 받아 6.25를 일으켰다는 명백한 사실조차도 설명에는 나오지 않고 있다.

    반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설명은 "8·15광복 때까지 만주와 중국 화북 지방에서 일본군 장교로 태평양 전쟁에 가담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해당 도서는 '독재', '탄압'이라는 부정적 표현을 사용해 박 전 대통령을 묘사했다.

    "1961년 5·16 군사정변을 일으켜 대통령이 되었어요. 한·일 국교 정상화와 베트남 파병 문제를 국민이 반대하는데도 강행했답니다. 1972년에는 국회를 해산시켰고, 계엄령을 선포했어요. (중략) 유신헌법을 제정하고 8대 대통령이 되었어요. 이런 체제는 박정희가 영원히 대통령을 할 수 있게 하는 체제였어요. 박정희에게 독재의 길을 열어줬고, 이 체제 아래서 민주주의는 크게 후퇴했어요."

    박 전 대통령 최대의 성과로 꼽히는, 경제 발전 및 산업화 관련 서술 역시 부정적이다.

    "새마을 운동을 일으켰고, 경제 개발 계획을 실시해 국민들이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이끌었어요. 그러나 부자는 더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사람은 여전히 가난했어요. 국민들이 유신 체제에 반대하는 민주화 운동을 계속하자 긴급 조치를 발표해 더 심하게 탄압했어요."

    출판사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도서는 약 5천 부 가량 팔렸다. 전문가들은 해당 도서가 어린이들의 역사관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주성 한국교원대 명예교수는 "아이들에게 역사 문제, 특히 남북한을 비교하며 가르칠 때,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대한민국 정체성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큰 혼돈을 줄 수 있다"며, "어린이들이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확립하는 데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더욱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박 전 대통령이 아무리 권위주의적으로 통치했다고 해도, 북한은 수십 배, 수백 배 독재다. 북한 김일성 정권은 이미 3대째 세습하며 민족을 말살시키고 있는데, 그런 부분은 배제하고 오히려 박정희가 우리 국민을 더 탄압한 것처럼 기술하면 어린이들을 오도(誤導)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출판사 측은 <개념 잡는 초등한국사 사전>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는 뜻을 밝히면서도, 10년 전에 발행된 책이라 담당자는 이미 퇴사했는데도 최근 밀려오는 항의전화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출판사 관계자는 "책이 전체적으로 현실 상황과 맞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전면 검토에 들어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올해 개정판이 나올 것인지는 확정된 바 없고, 저자 3명과 연락을 계속 시도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