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 "노조가 경영 일선에 참여하는 것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유례없는 일" 지적
  • ⓒ뉴데일리DB
    ▲ ⓒ뉴데일리DB

    서울시 산하기관인 서울주택도시공사와 서울에너지공사가 노동 이사를 임명하면서 '노동(근로자) 이사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아울러 "산업이 노조에 휘둘려서는 안된다"는 우려도 시민사회에서 나오고 있다.

    서울시는 서울주택도시공사(SH) 노동 이사에 김우철 택지사업본부 차장과 박현석 도시재생본부 차장을, 서울에너지공사 노동 이사에 최진석 집단에너지본부 과장을 임명했다고 22일 밝혔다.

    이로써 서울시의 16개 투자·출연기관 중 120 다산콜센터를 제외한 15개 기관이 노동 이사 임명을 마무리했다.

    '노동 이사제'란 노동자 대표가 이사회에 참여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노동자 경영참여제도다. 정원 100명 이상의 서울시 산하 출연기관은 의무적으로 노동 이사를 임명해야 한다. 노조의 경영참여를 의무사항으로 법제화한 것이다.

    서울시는 2014년 '노사관계 모델 도입'을 발표하며 노동이사제를 추진했다. 이후 2016년 서울시의회가 '노동이사제 운영 조례안'을 의결·공포하면서 제도가 본격 시행됐다.

    해당 제도 시행을 사실상 주도해 온 박원순 서울시장은 "노동 이사제가 우리 사회 갈등 지수를 치유하는 데 근본적 해법이 될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문재인 정권 탄생 후 정부 차원에서 해당 제도 도입을 공식화하며 이는 지자체를 넘어 중앙 정부로도 확대되고 있는 모양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100대 역점 국정과제'를 통해 노동 이사제 시행을 발표했다.

    노동 이사제를 찬성하는 이들은 "유럽에서도 시행하고 있는 제도"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선진국일수록 노사간 관계 개선을 위해 노사공동 결정제도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독일에서 시작한 노동 이사제를 보면 노조가 '경영 일선'에는 일체 참여하지 않는데 그 점을 서울시가 간과하고 있다"며 지적하고 나섰다.

    오정근 교수는 22일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은행 중심으로 돌아가는 독일의 금융제도 사정 상 은행에서 회사 경영에 많은 간섭을 하게 됐고, 이를 막아내는 방패로 도입된 게 노동 이사제"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독일은 이사회를 '경영 이사회', '감독 이사회'로 나누어 노조는 오직 감독 이사회에만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며 "노조가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자본주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했다. 그렇다면 노조가 경영 일선에 직접 참여하는 일은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사실상 한국이 '최초'가 된다.

    오 교수는 "노동 이사제를 두고 서울시가 '독일'을 비유하는 것은 국민을 호도하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우리처럼 해당 사안을 직접 연구하지 않은 일반 시민들은 서울시의 설명을 사실이라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우리나라 공공기관 빚이 600조 가까이 되는데, 공기업을 계속 구조조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나아가 경영진을 '혁명의 대상'으로 여기는 강성노조가 주를 이루는 국내 노조 방향을 감안하면, 이는 노사 갈등을 더욱 심화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실장은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서울시 산하 대부분의 투자·출연 기관에 있는 노조들은 민노총을 상급 기관으로 두고 있다"며 "강성 노조가 뒤에서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이사제는 노조의 정치적 권력만 키워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박 실장은 "서울시에서 나가는 세금이 조금 더 효율적으로 쓰여야 하는데, 서울시가 시민들의 의견 수렴도 없이 노동 이사제를 강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또한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 등으로 인해 '구조조정'의 시행이 시급할 때 노동이사제가 구조조정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사실상 노조가 추천한 노동 이사가 구조조정에 찬성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박 실장은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이나 비효율은 우리사회 공공기관의 해묵은 과제"라며 "효율성 제고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라 할지라도 노조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한 부분이 있다면 (노조 입김으로) 해당 개혁은 진행되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최준선 교수 역시 지난해 9월 한 토론회에서 "노동조합 내에서 특정인을 사외이사로 임명하면, 노동자의 경영참여 제도가 왜곡돼 노조 독립성과 노동자 간 연대를 약화시키는 위험성을 갖는다"고 했다.

    이어 "이사회에 노동자 이사를 포함시키도록 강제하는 제도는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원칙으로 하는 헌법 이념에 반한다"며 별도 법률 규정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유럽 14개국이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노동이사제는 1970년대 독일을 중심으로 도입된 제도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1990년대 극심한 경기 침체로 인해 이는 독일에서 사실상 거의 사문화 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