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3회 이승만 포럼] 김학은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강연 "두 대통령, 공화국 창건 위해 독립운동...윌슨 정치사상 영향"
  • 김학은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가 16일 서울 마포구 자유아카데미에서 '이승만과 데벌레라'를 주제로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뉴데일리 공준표 사진기자
    ▲ 김학은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가 16일 서울 마포구 자유아카데미에서 '이승만과 데벌레라'를 주제로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뉴데일리 공준표 사진기자

    "우리가 현재 남북으로 갈려져 있는데, 아일랜드에 비추어보면 국가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국제연합의 인정도 받고, 민주적 절차로 국회를 만들었고 헌법도 제정했습니다. 분명히 주권재민의 형식을 갖췄는데, 북한이라는 곳의 국가권은 그 기초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앞으로 논의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자유아카데미에서 진행된 제83회 우남 이승만(李承晩) 포럼에서 김학은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가 '이승만과 데벌레라'를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한국전쟁 이전인 1946년 인천에서 출생한 김학은 교수는 1980년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로 임용돼 40여년 간 재직 중인 경제학계 권위자다. 저서로는 <화폐와 경제>, <자유주의 경제학 입문> 등이 있다.

    김 교수가 이날 소개한 에이먼 데벌레라(Eamon De Valera, 1882~1975)는 미국 태생 아일랜드 정치가다. 그는 1913년 반독립파에 대항하기 위해 아일랜드 의용군(IVF)에 가입해 투쟁했고, 1921년 초대 아일랜드공화국 대통령이 됐다.

    아일랜드는 760년 동안 영국의 식민지였다. 지속적인 대영(對英) 투쟁으로 1922년 아일랜드 자유국이 수립됐으나, 완전독립국가가 아닌 자치국에 그쳤다.

    데벌레라는 1932년 영국에 대한 충성선서를 폐지하고 35년 시민법을 제정함으로써, 아일랜드인들이 역사상 처음으로 국제적으로 시민권을 인정받도록 만든 인물이다. 

    김 교수는 "데벌레라는 이승만과 사상적으로는 닮은 점이 없으나 행동은 아주 비슷했다"며 "무력으로는 완전독립을 달성할 수 없다는 현실과 영국의 시대가 저물고 미국의 시대가 왔음을 최초로 인식한 아일랜드 지도자가 바로 데벌레라"라고 설명했다.

    60여 년 동안 총리와 대통령을 수차례 역임하며 아일랜드 정치를 좌지우지한 데벌레라의 활동은 공과 측면에서 역사가들의 서술이 극명히 갈리고 있다. 여기서 김 교수는 타 저자들이 크게 강조하지 않은 '데벌레라의 외교독립방략 및 건국과정'에 주목했고, 연구 과정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과의 연관성을 찾아냈다.

    김 교수는 "데벌레라의 대미 외교독립방략과 건국과정은 이승만의 방식과 유사한 점이 있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데벌레라도 이승만처럼 공화국 창건을 목표로 독립운동을 했다. 둘 다 윌슨의 정치사상에 영향을 받았다. 본국에서 무단파가 영국과 독립투쟁을 벌이는 중인데도, 그는 윌슨 미국 대통령의 지지를 얻고자 미국에서 활동했다. 총리 직함 대신 대통령이라는 칭호를 사용했고, 독립공채표를 발행해 모금한 자금을 스스로 관리했다. 선전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이승만처럼 스스로 신문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 김학은 연세대 교수가 제83회 우남 이승만(李承晩) 포럼에 연사로 나섰다. ⓒ뉴데일리 공준표 사진기자
    ▲ 김학은 연세대 교수가 제83회 우남 이승만(李承晩) 포럼에 연사로 나섰다. ⓒ뉴데일리 공준표 사진기자

    데벌레라가 아일랜드 독립을 위해 미국에서 외교선전과 모금 활동을 벌이자 미(美) 외교관들은 "미국과 평화관계에 있는 국가에 대항하는 군사적 업무는 기소감"이라고 반발했다. 미국 의회에서도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의견이 쏟아졌다. 

    당시 미국 상원의원 윌리엄은 '1818중립법'을 들며, 데벌레라와 그의 추종자들의 이러한 행동에 대해 연방법으로 기소할 수 있는지 여부를 따져보기도 했다. 

    데빌레라처럼 미국의 도움이 절실했던 이승만은, 그의 외교독립방략을 위해 1818중립법의 골자를 자신만의 문장으로 정리해 독립활동의 초석을 다졌다. 

    다음은 1818중립법에 대한 김학은 교수의 설명이다.

    "아일랜드의 경우, 독립운동 주체·독립운동자금 소유권 문제·독립운동가 국적 문제 등이 중요하게 대두됐는데, 그것은 1818중립법 때문이다. (데벌레라 같은) 미국 시민권자 고국을 위해 저마다 군대를 조직하거나 군사행동에 도움을 준다면, 미국의 단결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에 자국 관할 내 모든 내·외국인이 적대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1번 조항: 미국 관할 내에서 외국군주, 국가, 식민지, 지역 또는 국민에 봉사하기 위한 임관을 수락하거나 이의 사령을 한 모든 미국 시민은 중한 범죄를 범한 것으로 간주한다. 

    5번 조항: 미국과 평화관계에 있는 외국군주의 영토나 지배자를 목표로 그곳에서 수행하려는 어떠한 군사적 원정이나 계획을 시작하거나 착수하거나 그 수단을 제공하거나 준비하는 자는 유죄이다.

    이 두 조항이 있었으므로 이승만은 미국인이 될 수 없었다. 미국인으로 한국(외국)에 봉사하는 군 통수권자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이승만은 미국에서 무장독립운동이 불가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데벌레라를 비롯한 공화파 지도자들은 1919년 아일랜드 공화국을 선포했다. 그리고 독립선언문과 헌법을 제정했다. 이승만 역시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했고, 임시헌법이 제정됐다.

    김 교수는 "영국 수상 체임벌린이 아일랜드의 새 헌법과 국호를 보고 '외국'이라고 언급했을 때 아일랜드는 국가의 조건을 만족했다"며 "이는 영국이 아일랜드를 주권국으로 인정했다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자치국은 식민지의 다른 말"이라며 "데벌레라는 아일랜드 땅에 상주하는 아일랜드인들에게서 국가의 모든 권력과 권리가 원천이 되는 주권재민(主權在民)의 기초를 다진 입지전적(立志傳的)인 인물"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