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의 전공영역은 경영학이며 경영과 관련한 학문세계에서 필자가 견지해 온 우주관과 세계관의 골격은 한마디로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는 인과율(因果律)이다. 

    요컨대 사업경영, 기업경영, 산업경영, 국가경영의 그 어느 레벨에서든 인과율이라는 확정적 질서(deterministic order)가 존재하고 있다는 인식을 기초로 필자 나름의 연구세계와 학문세계를 펼쳐왔다고 감히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인과율에 대한 인식이 굳혀지기까지는 몇 번의 계기가 있었는데 그 첫 번째 계기는 자연계 안에 내재되어 있는 질서들에 대한 귀납적(歸納的) 추론이었다.

    예컨대, 빨간 페인트와 파란 페인트를 섞으면 페인트 색깔은 무슨 색이 될까?

    상온(常溫)에서 보라색이 된다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들어서 잘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이 보라색의 페인트에 열(熱)을 가하면 빨간색으로 변하고 계속해서 더 열을 가하면 파란색이 된다는 사실과 이제 이 파란색의 페인트를 다시 식히면 빨간색이 되었다가 드디어 상온이 되면 또다시 보라색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소위 화학 시계(chemical clock)라고 불리는 범주의 것으로, 하나의 확정적 질서(deterministic order)가 무생물의 세계에도 존재하는구나 하는 추론이었다.
     
    만약 초식동물에 육식사료를 먹이면 어떻게 될까?

    초식동물은 초식사료를 먹도록 조성된 존재이므로 만약 초식동물에 육식사료를 먹이면 결국 자연 질서를 어긴 탓에 그에 상응한 반대급부(反對給付)를 치루 게 되는 질서가 엄존할 것임도 추론 가능하며 여기에 이의(異意)를 달기가 어려워진다.
     
    또한 식물에게나 동물에게 들려주는 음악을 달리 하면 어떤 차이가 생길까?

    동일한 조건하에서 씨앗을 트일 때 바로크음악을 들려주는 경우와 헤비메탈을 들려주는 경우를 비교해 보면 식물의 생장(生長)에 있어서, 바로크 음악의 경우가 헤비메탈의 경우보다 생장속도가 엄청 빠를 뿐만 아니라 새싹이 향하는 방향이 바로크 음악의 경우에는 음악이 들려오는 방향으로 향하는데 반하여 헤비메탈의 경우에는 반대방향으로 향한다는 사실이 실험으로 확인되고, 또한 개에게 영영가가 높은 먹이를 주면서 헤비메탈을 들려주었더니 결국 그 개가 미치더라는 실험결과도 보고되고 있는 걸 보면 식물도 동물도 주어진 질서대로만 존재하게끔 되어있는 존재라는 추론이 역시 가능하다.
     
    여기에 더해 온 우주천체의 운행과 자연계의 변화, 계절의 변화, 해와 달의 뜨는 시각과 지는 시각 그리고 밀・썰물의 시각 등등을 우리가 사전에 알 수 있는 것은 자연계에 내재되어 있는 질서가 확정적 질서(deterministic order)임을 알게 해준다.

    이런 예들을 통해서 ‘자연계내의 모든 존재물 (무생물, 동식물, 인간) 안에는 어떤 의지(a will)의 자연 질서가 내재되어 있으며 만물은 오직 그 자연 질서대로만 반응한다’는 귀납적 추론이 필자로 하여금 인과율의 확정적 질서를 인식하게 한 첫 번째 계기였다. 

    두 번째 계기는 자연계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것을 존재케 한 메이커(maker)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고, 메이커는 존재물보다는 차원이 높은 존재일 것이므로 각 피조물에는 그 메이커의 의지가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 오직 그 메이커의 의지만을 따른다는 귀납적 추론도 가능하다는 인식이었다.  

    그리고 이를 확대해 보면 자연계 자체도 존재하는 하나의 존재물이므로 자연계를 존재케 한 메이커(Maker)가 존재할 것이며 이는 자연적 존재(natural being)보다 한 차원이 높은 초자연적 존재(super-natural being)로서 조물주 또는 창조주(Creator)라 불리어질 수 있는 존재일 것이다.  

    따라서 앞의 귀납적 추론은 ‘자연계 내의 온 만물 안에는 창조주의 절대의지(absolute will of Creator)가 내재되어 있으며 모든 만물은 오직 창조주의 절대의지대로만 반응 한다’는 것으로 보강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두 번째 계기가 되었다.

    세 번째 계기는 인간의 사고(思考)와 관련한 것이었다.  

    예컨대, “백만 원 빚진 사람과 천만 원 빚진 두 사람이 있는데 이들이 빚을 갚을 능력이 없음을 알고 돈을 빌려준 사람이 빚을 탕감시켜 주었다면, 두 사람 중 누가 더 감사해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사람들의 응답과 반응과 관련하여,

    1)‘더 많이 탕감 받은 사람이 더 감사할 것이다.’
    2)‘아니다, 적게 탕감 받은 사람이다.’
    3)‘아니다, 금액의 다과에 관계없이 다 같이 감사할 것이다.’
    4)‘상황에 따라서 다를 것이다.’
    5)‘각 개인마다의 돈의 가치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 따라서 다를 것이다.’
    6)‘심지어는 누가 탕감시켜달라고 그랬느냐 따라서 감사할 이유가 뭐 있느냐’는 등의 의견을 내보이는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빚을 탕감 받은 하나의 사실(a fact)에 대하여 그렇게 다양한 의견을 내보이는 것일까?    

    하나의 사실에 대하여 다양한 모든 의견들이 다 옳을 수 있을까?

    모든 의견들을 다 옳은 것으로 인정해 주자는 주장을 함축하고 있는 다원주의(pluralism)는 얼핏 보면 그럴싸해 보이지만 결국 분쟁과 쟁투와 싸움만을 유발할 뿐임은 자명하다. 요컨대 “더 많이 탕감 받은 사람이 더 감사할 것이다”라는 의견만이 참으로 올바른 것이라는 바이블(Bible)의 경구가 없다면, 옳고 그름에 대하여 끝없는 분쟁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하나의 사실에 대하여 다양한 의견을 내보이는 인간들을 대하면서 ‘온 만물 안에는 창조주의 절대의지(Will of God)가 내재되어 있으며 그들은 오직 그 의지대로만 반응 한다’는 앞의 귀납적 추론은 ‘인간을 제외한 온 만물 안에는 창조주의 절대의지(Will of God)가 내재되어 있으며 모든 만물은 오직 창조주의 의지대로만 반응한다’는 것으로 제한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세 번째 계기가 되었다.



  • 네 번째 계기는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이 인류사회에 끼친 영향과 충격에 대한 인식이었다.  

    1492년 콜럼버스의 미 대륙발견과 Copernicus(1473-1543)의 지동설로 천동설이 무너지면서 과거의 신본주의(God-centered)가 인본주의(human-centered)로 옮아가는 가운데 등장한 뉴턴(1642-1727) 역학은 선형 확정론(linear determinism)으로 과학시대를 열면서 신본주의를 인본주의로 이행시키긴 했지만 바로 이 선형 확정론에 입각한 우주관과 세계관으로 인해 지난 300여 년간 인류사회는 그런대로 하나의 확정적 질서에 기초하여 살아올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1920년대에 등장한 비결정론(indeterminism)의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은 이 세상에는 확정된 것이란 없고 온통 불확정적인 것뿐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철학자들에게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절대적으로 그른 것도 없다는 상대주의(relativism)와 모든 의견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다원주의(pluralism)의 혼란스런 주장을 펼치는 빌미를 제공했고 이들의 주장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급속히 확산되면서 급기야 1776년 독립헌법에 청교도정신(Puritanism)의 기독사상을 담고 있던 미국이 1965년에 헌법수정을 통해서 도덕다원주의(moral pluralism)를 그리고 거의 같은 시기에 로마가톨릭교회가 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서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를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도덕다원주의 및 종교다원주의를 수용한 지 50여년 지나며 급증해 온 미국의 범죄건수와 범죄 율, 이에 따른 변호사, 판검사의 급증, 교도시설의 거대화, 로스쿨(law school)의 호황, 비만급증과 만연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등 사회병리현상들이 과연 우연의 산물일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길이 없다.
     
    2차세계대전후 대량경제시대를 주도해 오던 절대강국 미국이 1960년대 초반에 수정헌법을 통해 상대적 가치판단기준을 수용하자 옳음과 그름,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자유와 평등 등의 가치판단에 있어서 대 혼란의 수렁에 빠지며 상대적 강국의 미국으로 그 위상이 바뀌어 온 현상이 과연 청교도의 기독정신이라는 절대적 가치판단기준을 포기한 데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하는 강한 의구심이 들었다.

    그리고 심지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유일성을 믿음의 유일한 토대로 삼아왔던 가톨릭교회가 2차 바티칸공의회(The 2nd Vatican Council)를 통해 소위 포괄주의(inclusivism)와 에큐매니즘(ecumanism, 교회일치주의)라는 이름으로 지난 2,000년 교회사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모든 종교의 구원가능성을 수용하는 듯한 유사 도그마(dogma)를 채택하자 영적・물질적・육체적 타락상이 증폭되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교회가 대위기를 맞고 있는 것도 과연 종교다원주의를 수용한 행위와 무관할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또한 강하게 들었다.
     
    그런데 앞에서 얘기한 양자역학에서의 비결정론(indeterminism)과 관련하여 1990년대 들어 강력한 컴퓨터의 도움으로 역동적 비선형세계의 질서를 규명해 오고 있는 복잡성과학(complexity sciences)과 카오스이론(chaos theory)은 ‘온 우주 안에는 무질서란 없고 비선형 확정적 질서(non-linear determinism)로 차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데 이는 필자로 하여금 우주 시스템의 하부하부… 시스템인 산업/기업시스템의 경영에 있어서도 확정론(determinism)과 절대적 기준을 따라야 할 것이다.’라는 인식을 갖게 하는 네 번째 계기가 되었다.
     
    다섯 번째의 계기는 자연계에는 정의라는 질서가 내재되어 있다는 귀납적 추론이었다.

    즉, - 물리학의 견지에서 작용=반작용 운동 제3법칙, 변화를 가하기 전후의 질량・에너지 불변의 법칙, E=mc2.

    - 세상사에서 얘기하는 적선(積善)지(之)인(人)은 필(必)유명(有名)이요, 적선(積善)지(之)가(家)는 필(必)유경(有慶)이라,

    - 성서 말씀의 견지에서 용서하면 용서받고, 심판하면 심판받고, 단죄하면 단죄를 받고, 자비를 베풀면 자비를 입고,

    - 속담의 견지에서 뿌린 대로 거둔다는 Give=Take의 정의(justice)의 질서가 자연계 안에 꽉차있다는 귀납적 추론이 또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여섯 번째 계기는 유독 인간에게만 자유의지가 부여되어있어 인간은 자유의지로 절대의지를 따를 수도 있고 또 안 따를 수도 있지만 정의의 견지에서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의 결과에 대해서는 누구든 피해 갈 수 없다는 인식이었다.

    이미 얘기한 바 있는 초식동물에 육식사료를 먹이는 경우이거나 이성이 아닌 동성끼리 음란한 행위를 하는 경우 또는 사람이 아닌 동물과 교접하는 경우엔 창조주의 절대의지인 자연의 섭리를 거슬리는 경우로서 괴질이 창궐하게 되는 결과를 피할 길 없다는 인식도 확정론의 인과율을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안락사나 낙태나 자살은 어떤 형태로든 실제의 존재를 인위적으로 말살하려는 의지가 작용한 것으로 존재의 지속(continuity)을 바라는 절대의지에 반하는 행위이므로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저주를 당하게 되어 있다는 인식도, 그리고 음행한 경우를 제외하곤 절대로 부부간에 이혼이 불가능하다는 절대의지를 자유의지로 따르며 부부생활을 하는 이들에게는 하늘의 축복이 함께하는 삶이 주어지지만 만약 음행이나 간음을 하는 경우엔 그에 상응하는 저주가 반드시 뒤따른다는 인식도 확정론의 인과율을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요컨대 ‘자유의지로 절대의지를 따를 때는 선과 진실과 아름다움과 결합되는 결과를 맞지만 자유의지로 절대의지를 거스를 때는 악과 거짓과 추함과 짝짓는 결과를 맞는다’는 인식이 여섯 번째 계기였다.
     
    그래서 ‘인간을 제외한 온 만물 안에는 창조주의 절대의지가 내재되어 있으며 그들은 오직 그 의지대로만 반응 한다’는 앞의 추론은 ‘인간은 누구나 자유의지(free will)를 지니고 있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지만 아무도 그 결과를 피해갈 수 없다’는 인식에 기초하여, 인간은 자유의지로 창조주의 절대의지가 투영되어 있는 자연 질서를 따를 경우에만 만사가 순조롭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풍파와 고통과 파멸이 따른다’는 추론을 받아들이게끔 되었다.
     
    결론적으로 자유의지는 유독 인간에게만 부여된 특권이긴 하지만, 인간 각자가 자유의지로 절대의지를 따를 때라야만 순조로운 삶이 보장되게 되며, 자유의지로 섭리를 저버릴 때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비참을 그 어느 누구든 피할 수 없다는 인식을 굳히게 된 것이다.
     
    이런 인식은 우리로 하여금 자유(自由)란 맘대로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자연의 섭리(攝理)만을 따르도록 부여된 자유임을 절감케 해준다.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자유의지로 섭리를 따를 수 있는 자유는 어떤 명분에서건 누구에 의해서건 절대로 제한되거나 억압되거나 부정되어서도 안 되는 자유임을 또한 일깨워 준다.  

    본질적으로 인류의 역사는 바로 이 ‘섭리를 따를 수 있는 자유’가 지독히도 부정되거나 억눌렸던 상태에서 점차로 인정되고 신장되어 온 과정으로 이해되어진다.

    자유에 관하여 상대주의 다원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지구촌에서는 자유의지로 섭리를 따르는 것은 물론 섭리를 거스리는 것조차도 모두 자유라는 이름으로 자유의 의미를 남발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가장 자유스런 삶을 살 수 있다는 캐나다에서 살고 있는 한 캐나다인 교수의 전언에 의하면 그곳에서 살려면 생활하면서 지켜야 할 소소한 규칙들이 200여 가지가 넘는데 그것들을 지키는 한은 아주 자유스럽지만 그것을 어기면 벌과금과 범칙금이 그야말로 말로 엄청나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상황은 지금 어떠한가?

    언제부턴가 함량미달의 언론과 얼간이 정객들에 의해 ‘표현의 자유’라는 말이 급작스레 on/off 라인을 통해 쓰이기 시작하더니 마치 인간의 모든 표현이 자유 인양 강조되는 분위기다.

    그래서 심지어 국회에서 여자대통령의 음화전시를 ‘예술의 표현의 자유’라며 호도하는 해괴한 후안무치(厚顔無恥)의 무리들과 급기야 대한민국의 정체성마저도 부정하는 것까지도 ‘정치적 표현의 자유’라고 미화하며 우겨 되는 억지와 왜곡과 반역의 작태가 이제는 크게 도를 넘어선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특정지역에 바탕을 둔 듯 보이는 여적・이적자들과 한 통속이 되어 돌아가는 쓰레기 언론들, 국개의원들, 김일성 장학생으로 그득한 사법부의 판사집단과 검찰집단 그리고 법적근거가 미약한데도 인민재판식으로 막나가는 특검의 작태를 보면서 대한민국을 말살시키려는 거대한 음모(?)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음을 화급히 깨닫기 시작한 애국국민들이 참다 참다못해 태극기를 들고 국내 주요도시를 비롯한 전국에서 그리고 오대양 육대주를 아우르는 해외 여러 나라에서도 지금 거세게 애국태극기집회를 이어지고 있다.
     
    다의(多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자유의 옳은 의미는 오직 사실과 진실의 편에 섰을 때라야만 참으로 옳은 자유이며, 같은 맥락에서 사실과 진실의 편에 서서 ‘표현의 자유’를 주장할 때라야만 참으로 옳은‘표현의 자유’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사실과 진실이 아닌 거짓과 허위의 편에 섰을 때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여적 이적 모독 명예훼손의 죄를 범하는 것이며, ‘뿌린 대로 거두는’자연의 질서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하늘로부터 내려치는 심판의 벌을 받게 될 뿐이다.

    - 김인호 명예교수(한양대), 다이나믹 매니지먼트 학회장
    

    ■ 필자 소개

  • 김인호(金寅鎬) : 한양대 명예교수, Dynamic Management Society 회장.

    지난 50여 년간의 대한민국 산업화 경험을 독자적으로 이론화한 Dynamic Management View 이론의 주창자.

    세계유수 전략경영학술지 Technology Analysis & Strategic Management (SSCI)에 등재되는 Dynamic Management View 이론의 실용적 접근법을 세계경영학계와 국내・외 산업계로 확산시키고 있는 국내 석학.

    중국 북경대와 천진 난까이(Nankai) 경영대 석・박사과정에서 이 이론을 정규과목으로 채택하고 있음. 그리고 현재 Dynamic Management View 관점의 한국 대기업 진화논리가 세계유수출판사인 Wiley 경영백과사전 (3판, 2015)에 실려 전 세계로 보급.

    주요논문으로는 Dynamic Management View: Logic of Profit Seeking based on the Adaptation to Technological change and Needs Evolution through Needs-Focused Innovation, Technology Analysis & Strategic Management (SSCI, 2017 forthcoming) 있으며, 저서로는 Dynamic Enterprise Strategy (Peking Univ. Press, 2013), Why Industrial Hegemony Shifts (Lambert Academy Publishing, 2010), Dynamic Management Theory (Hanyang Univ. Press, 2008), 다이나믹 매니지먼트과 기업일반이론 (비봉출판사, 우수학술도서), 세계 산업주도권 이동원리(한국경제신문사, 삼성맨 필독서), 기업파워는 어디에서 오는가? (한국경제신문사, 제7회 전경련 자유경제출판문화상, 1996) 등이 있음. 

    이익추구(Profit Seeking) 일반이론으로 불리는 ‘Dynamic Management View’와 ‘소유와 경영의 조화 (Harmony of Ownership and Management)’라는 한국특유의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로 대한민국 산업화 성공을 설명하는 Korean Style Management가 지난해 12월 12일 홍콩에서 열린 2016 Strategic Management Society Special Conference에서 세계석학들에게 소개된 바 있음.



    [사진 제공 = 픽사베이 (https://pixab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