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민주 낡은 세력 어떻게 정리할까… 버거운 싸움 될 것
  •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낭독한 “통합진보당 해산 헌재 결정문”은 ‘통진당의 목적’을 모두(冒頭)에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통진당이 지도적 이념으로 내세우는 진보적 민주주의는 이른바 자주파에 의해 도입된 강령이다. 자주파는 민족해방(NL) 계열로 우리 사회를 미 제국주의에 종속된 식민지 반(半)봉건사회 또는 반(半)자본주의사회로 이해하고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식민지반(半)봉건사회론’은 통진당의 지도이념일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에 깊게 뿌리 밖은 운동권의 기본노선이기도 하다.

이 논리는 한국경제학계의 주류논리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중심으로 한동안 큰 위세를 떨쳤다. 요약하면 “남한은 일본식민지에서 미국식민지로 변한 것뿐이고, 아직도 봉건적 잔재가 반은 남아있는 사회”라는 것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미국대사 리퍼트는 이토 히로부미같은 총독같은 존재기에 “처단돼야”했던 것이다. 압도적 채택률을 자랑했던 금성출판사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에 “일장기가 걸려 있던 그 자리에 펄럭이는 것은 이제 성조기였다. 광복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역사적 순간은 자주독립을 위한 시련의 출발점이기도 했다”라는 경악스런 설명이 버젓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민족경제론’이란 다른 이름으로 치장된 이 논리의 결론은 1948년 대한민국 수립과 이후의 한국사회경제의 진로는 다 비정상적인 일탈이기에 남한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더 가난한 나라가 될 것이고, 종속적인 국가에서 더 종속적인 국가로 전락할 것이란 것이었다. 즉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가 시장경제체제에선 자립적 근대국가를 이루기가 불가능해서 민족해방혁명으로 사회주의로의 체제전환을 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이런 주장과는 정반대방향으로 향했고 번영과 자립을 이뤘다. 이 진영의 이론적 대부였던 서울대 안병직 교수는 1980년대 중반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연옥의 고통을 통해“모택동주의자에서 자유주의자로 변신을 했다. 그런데 죽을 때까지 자기 이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은 박현채 교수 같은 사람들도 있었다. 지적인 진실성을 결여한 정신적 파산이었다. 모택동주의와 종속이론의 한국적 변형인 이 사이비 경제학의 주장은 결국 현실화되는데 실패했고, 결과가 증명되는 경제학계에선 8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이 사이비 이론은 한국사 등 관념론에 빠지기 쉬운 인접학문으로 전이돼 아직도 압도적 다수를 이루고 있다, 그러니 국사학계의 한국근현대사 해석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또한 소위 운동권과 현재 야권의 가치관·세계관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통진당뿐 아니라 이들과 야권연대를 구성했던 현 더불어민주당의 다수 세력도 이런 철 지난 감성을 기본인식으로 깔고 있다. 

경제학계에서 이 논리가 득세할 때 유일한 반대의견을 개진한 곳이 서강대 경제학과를 중심으로 한 “서강학파‘였다. 남덕우,이승윤 교수를 중심으로 수출 중심의 경제성장과 세계경제체제로의 적극적 편입을 통해 한국이 발전할 수 있다는 정반대 입장을 견지했다. 서울대에선 젊은 송병락 교수가 온갖 비난을 무릅쓰고 이 진영에 용감하게 동조했다. 일본의 좌파경제학의 영향을 받지 않고 서구의 첨단 경제이론으로 무장한 이들은 결국 1970~80년대 한강의 기적이라는 고도성장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하고 실제 경제성장 정책을 주도했다.

  • 재밌게도 현재 더민주당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김종인 위원장은 서강학파의 막내 격이었다. 뿌리가 다른 두 세력이 동상이몽으로 잠시 동거하고 있는 형국이니 파열음이 나올 수밖에는 없다. 더민주의 주류는 어쨌건 운동권이다. 김씨가 그들 몇 명 쳐낸다고 해서 순순히 물러날 세력이 아니다. 실제로 남민전이나 사노맹 등과 같은 이적단체에서 민족해방 공산혁명운동을 주도한 인사들이 요번에도 버젓이 더민주의 공천을 받았다. 이들은 이를 갈고 총선 혹은 대선이후에 ”고용사장’인 김씨에 대해 반기를 들고 내쫒을 궁리를 하고 있을 것이다.

    과연 김종인씨가 더민주의 뿌리 깊은 낡은 인식을 불식시키고 새로운 수권정당을 만들어낼지 귀추가 주목이 된다. 더민주당은 이런 곰팡이냄새 나는 세계관을 버리지 않고는 수권정당이 될 수가 없다. 문제는 열혈 지지층이 낡은 인식을 지닌 행동파들이라 쉽게 내치지 못한다는 딜레마에 있다. 그래서 김위원장의 ‘용도폐기론’이 여기저기서 나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인태 의원은 총선 후에도 김씨가 주도권을 잡을 가능성은 없다고 최근 단언했다. 문재인 의원은 공공연히 정청래 의원의 불공천은 잘못된 것이라 변명하고 다닌다. 김씨의 정치적 도박이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연장시키려는 노욕이 아니라면 향후 이런 낡은 세력을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그 진실성이 입증될 것이다. 버거운 싸움이 될 것이다. 아니면 그냥 야합의 형태로 가게 되던지....

    * 위 글은 4일자 <조선일보>에 게재된 것을 수정증보한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