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진권 원장의 <조선일보> 칼럼에 대한 想念

    이동복   
     
1월4일자 <조선일보>가 34면에 현진권 자유경제원장이 쓴 “산업화와 민주화, 다음은 ‘자유화’다”라는 제목의 <조선칼럼>을 게재했다. 필자는 이 글의 내용에 관하여 굳이 토를 달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 글의 제목이 필자로 하여금 이 ‘댓글’을 쓰게 하는 상념(想念)이 있다.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1999년 이 나라에서는 김대중(金大中) 정권과 <동아일보> 사이에 ‘언론자유’의 차원에서 엉뚱한 갈등이 빚어지고 있었다. 이 갈등은 국제 언론사회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서 국제언론인협회(International Press Institute·IPI)가 한국을 ‘감시대상 국가’ 명단(Watch List)에 올려놓고 매년 실태조사단을 한국에 파견하여 상황의 진전을 점검하는 상태가 몇 해 동안 지속되었다.  

한국에 오는 IPI 실태조사단의 단장은 IPI의 사무국장인 오스트리아 출신 요한 프리츠(Johan Frtiz)라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이 당시 15대 국회의원이었던 필자와의 면담(面談)을 요청해 와서 어느 날 저녁 조선호텔에서 식사를 겸한 만남의 자리가 이루어졌다. 이 자리에서 있었던 적지 않았던 대화 가운데 프리츠 단장이 거론했던 2개의 화두(話頭)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프리츠 단장은 그가 ‘언론자유’ 문제로 몇 차례 한국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두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우선 그는 한국에 와서 한국 사회를 관찰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democracy)와 ‘민주화’(democratization)라는 두 단어의 개념이 서로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두 단어가 거의 동의어(同義語)로 혼용(混用)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에 의하면 ‘민주주의’는 ‘가치체계’(value system)인 반면 ‘민주화’는 정치인과 운동가들이 즐겨 입에 담는 ‘선전구호’(propaganda rhetoric)에 불과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민주화’만 주장하면 곧 ‘민주주의자’로 통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인식상의 혼돈이 많은 경우 정치 불안의 촉매(觸媒)가 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는 것이었다.   

필자가 현진권 원장의 <조선일보> 기고문을 보면서 이 댓글을 쓸 충동(衝動)을 느낀 것은 ‘민주화’라는 단어를 새해 벽두의 주요 화두로 제기하면서 그는 그때 프리츠 단장이 느꼈던 ‘민주주의’와 ‘민주화’ 사이의 갈등을 인식하지 않았는지의 여부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필자는 현 원장이 그의 글의 제목에 ‘자유화’라는 단어를 등장시키면서 ‘자유화’라는 ‘구호’와 ‘자유주의’ 또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치’ 사이에는 어떠한 상관관계를 상정(想定)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궁금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가능하다면 이에 대한 현 원장의 고견(高見)을 듣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프리츠 단장이 ‘발견’한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에서는 “종교의 정치 간여가 우려스러울 정도로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가톨릭 신자’라면서 한국의 경우 “가톨릭 교회의 정치 간여”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필자로서는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지만) “본래 가톨릭교회는 교회 활동이 허용된 국가에서 그 국가의 정부와 ‘내정 불간섭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는 것이 관례”라면서 “바티칸은 교회의 현실 정치 간여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었다.   

필자가 남아메리카에서 한때 창궐(猖獗)했던 ‘해방신학(解放神學)’을 예거하면서 반론(?)을 제기하자 프리츠 단장은 “그렇지 않다”면서 “남아메리카에서 한때 ‘해방신학’이 창궐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바티칸은 ‘해방신학’을 불법화하는 조치를 취했고 ‘해방신학’에 동참했던 성직자(聖職者)들은 모두 처벌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에서의 가톨릭교회의 정치 간여에 대해서는 자신이 “로마 교황청에 이의 시정을 요청하는 청원서(petition)를 제출하겠다”고 말했었지만 과연 실제로 그가 문제의 청원서를 제출했는지의 여부를 필자는 오늘에 이르도록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때 프리츠 단장의 이 말이 지금 필자의 뇌리(腦裏)에 기억으로 떠오르는 것은 최근 한국 가톨릭교회의 성직자 사이에 날이 갈수록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종북(從北)’ 사고(思考)와 활동의 창궐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들리는 바로는 전직 고등학교 교장인 이계성 씨가 공동대표로 수고하고 있는 ‘대한민국후호천주교인모임’이 최근 날이 갈수록 정도(正道)를 이탈하고 있는 일부 성직자들의 ‘종북’ 언동(言動)을 수집하여 로마 교황청에 고발하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로마 교황청이 이에 대하여 어떠한 반응을 보일 것인지도 필자의 궁금증을 자극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