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냥 몸보신에 휴양이나 하시지 않고...
    “6·15를 그렇게 외쳤건만, 무심한 놈!”
    구십 넘은 노파의 애원을 매몰차게 걷어 차다니...

    이 덕 기 / 자유기고가


      “우리 민족이 분단 70년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고 6·15정신으로 화해, 협력하면서
    사랑하고 평화롭게 서로 왕래하면서 사는 민족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평양을 간다.”
      이 때만해도 기대와 설레임으로 가득차 있었다.
    벌써 몇 해 째 오매불망하던 여정(旅程)인가?
    더군다나 어린 나이에도 씩씩하고 용맹스럽고 효성스러운 ‘최고 돈엄(豚嚴)’과
    마주 앉을 상상(想像)은 구십 넘은 나이가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온 몸에 자극이 되었다.

    잘만하면, 뉴스위크(Nesweek)나 타임(TIME)의 표지에 사진이 실릴 수 있다는 흥분도 일었다.
    그러나...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로 끝났다.
  •   많은 궁민(窮民)들의 소리없는 우려(憂慮)·지탄(指彈)·반대(反對)를 뒤로하고
    슨상님의 여사님이 역사적인 ‘공화국’ 방문 길에 올랐다.
    기어코 가시겠다고 고집을 부리시니, 그저 맛난 피양 요리를 드시면서
    명승지 구경과 휴식이나 하시고 무사히 돌아오시기만을 바랬다.
    허지만 시작부터 ‘6·15’를 들먹이는 게 심상치 않았다. 

      ‘6·15정신’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핵심은 남녘의 슨상님과 북녘의 ‘식견(食見)있는 지도자(脂盜者)’간에 합의한
    “연방제 통일”을 실현한다는 것 아닌가? 그래서인지 그에 걸맞는 수행원들도 동행(同行)했다.

    특히 “48년 체제 청산(淸算)” 즉 ‘1948년 8월 15일 건국된 대한민국의 막 내림’을 일관되게
    주장해 온 ‘원탁회의’ 기사단(欺詐團:남을 속이는 모임)의 좌장 등등...
    한마디로 북녘의 어린 ‘최고 돈엄(豚嚴)’에게 꼭 만나달라는 애걸을 에둘러 한 것이었다. 
  •   이와 함께, ‘민족 분단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스스로
    노(老) 천사(天使) 또는 여(女) 싼타클로스가 되기로 마음도 먹었다. 
      최신식·초현대적인 평양 산원(産院)과 옥류 아동(兒童)병원은 가히 무상(無償) 보육과
    무상(無償) 의료의 지상낙원(地上樂園)을 보여주는 곳. 그러니 여사님의 이 곳 방문이야말로
    남녘의 열악한(?) 보육·의료 체계에 경종(警鐘)을 울리는 계기가 될 듯도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지상낙원에도 고아원(孤兒院)이 있었다니...
    고아들에게 늘상 멋진 추리닝과 때때옷을 입혀 키우는 평양 육아원과 애육원은
    최신식 숙소와 식당·교육시설 외에도 물놀이장까지 갖추고 있단다.
    여사님이 가져가신 털모자와 목도리, 그리고 수 억(億)원어치의 영양제·감기약은
    완벽한 시설의 빵빵 터지는 냉풍기로 인해 냉방병(冷房病)에 걸릴 위험이 있는 가엾은 고아들에게 안성맞춤형 선물이 됐을 것이다.
    이렇게 북녘 고아들에게 자상하고 따뜻한 정(情)을 베푸시는 데는
    필시 특별한 사정이라도 있었나 보다.
    혹여 이 곳 고아원에 슨상님을 열열히 따르면서 6·15공동선언 즉 ‘연방제 통일’을 지지했던
    남녘 분들의 이산가족(異産家族)이라도 있는 건 아닌지?

      “평양에서 육아원 등을 방문하고 해맑은 어린이들의 손을 잡으면서
    다음 세대에 분단의 아픔을 물려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생각했다...
     국민 여러분도 뜻을 모으셔서 6·15가 선포한 화해와 협력, 사랑과 평화의 하나됨의 역사를
    이루게 되기를 바란다.”
    궁민(窮民)들의 입장에서 보면 무지하게 건방지고 괘씸하지만,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 
  •   그리고는 계속되는 만찬과 명승지 관광, 세계 인민들이 ‘백도혈통(百盜血統)’에 보낸 선물
    관람 등등 3박 4일간의 여정이 속절없이 지나갔다.
    이제나 저제나 ‘최고 돈엄(豚嚴)’이 만나러 오실 거라는 기별을 기다리며...
      하지만 결국 여사님은 어린 ‘최고 돈엄(豚嚴)’과 만났다는 말 대신,
    “민간 신분인 저는 이번 방북에 어떠한 공식업무도 부여받지 않았다.”고 강조해야 했다. 

      어린 ‘최고 돈엄(豚嚴)’이 여사님을 따뜻하게 직접 맞거나 배웅이라도 했더라면,
    고모부를 무참하게 주살(誅殺)한 패륜아·폭군 “돼지 새끼”의 오명(汚名)을 씻고
    경로효친(敬老孝親)의 아주 순진하고 맘씨 고운 귀여운 “새끼 돼지”로 화려하게
    세계 언론에 등장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내심(內心) 확실하다고 믿기도 했는데, 왜 이리 돼 버렸을까?

    ‘최고 돈엄(豚嚴)’의 뱃속을 한번 들여다 보자. 
      우선 “오고가는 조문(弔問)과 조화(弔花) 속에 대(代)를 이어 다져진 우애(友愛)”를
    끝낼 때가 된 것이다. 남녘 인민들의 속심을 파악컨대 이젠 한 마디로 “쓸모가 다 했다.”
    그러하니 그저 마지막 정리(情理)로 피양 요리나 대접하자고 마음 먹었다.
    바리바리 싸가지고 올 것이 분명한 만큼 본전은 뽑고도 남는 장사라고 계산한 거다. 

      또 한편으로는 기분이 엄청 상했다. 아직도 힘께나 쓰는 슨상님 똘마니를 시켜
    정치적으로 ‘북악(北岳) 산장’ 여주인 옆구리를 치던지, 아니면 다른 수를 쓰던지 간에
    그 여주인의 ‘특별한 사죄’(特謝) 편지 한 장 정도는 받아 왔어야 했다.
    그간 북녘, 특히 ‘최고 돈엄(豚嚴)’에 대해 까칠하게 굴었던 여러 일에 용서를 구하고,
    “앞으로는 무릎 꿇고 열심히 갖다 바치면서 노력하겠다.”는 전갈을 가지고 왔어야
    만나줄 마음이 생기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이 여사와 김 제1비서의 면담이 성사되지 못한 것은 아쉽다. 면담 불발의 원인 중 하나는
통일부가 ‘개인 자격’을 강조하며 이 여사의 전문적 식견을 전혀 활용할 생각을 하지 않고,
박근혜 대통령의 적극적 대화 의지도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鳥)연합의 논평을 보면 거의 확실한 것 같다. 

  사정이 이러하니 “6·15 정신을 기리며 키우는데 일조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모든 일정을
소화했다... 이번 방북은 박근혜 대통령의 배려로 가능했으며,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초청으로
편안하고 뜻깊은 여정을 마쳤다.”는 여사님의 북녘 여행 소감은 비장하다 못해 처절하다.
공식 석상이니 속심을 털어 놓기도 그렇고...

  “직접 초청이랍시고 해 놓고, 구십 넘은 내가 그렇게 만나달라 애원했는데도 매정하게 물리쳐? 사흘 밤 나흘 낮을 지내면서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무심한 놈 같으니. 하긴 뭐 그래도 할 수 없지, 슨상님의 업보가 워낙 크니 처분만 바랄 밖에는... 에잇! 더 나쁘고 괘씸한 건, 자존심이 뭐라고
그까짓 사죄 편지 한 장 못 써주는 속 좁은 너다.”

  이로써 조선반도를 무대로 한 한여름 찜통 더위 속에서 벌어진
희대(稀代)의 신파극(新派劇)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제 더위가 가시면서 좃선중앙TV 아나운서가 내뱉는 ‘국군통수권자’ 욕설·비방 목소리는
더욱 앙칼져지고, 남녘의 찌라시 언론과 사이비(似而非) 북한학자와 얼간이 위선자(僞善者)들은 “남북관계 복원(復元)” 운운하며 노골적으로 남녘의 무릎꿇기를 주문·강요할 것이다. 
<더  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