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이병형 장군의 경고,
    "군대 경험이 없는 국가 지도층은 위험하다."

    "인간은 위기에 닥쳤을 때 자신의 경험이 그대로 표출됩니다.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군사적 판단을 해야 할 때
    軍 경험이 없는 국군통수권자나 정치인들이 어떤 판단을 할 수 있을까요."

    김용삼   
  • ▲ 필자 김용삼
    ▲ 필자 김용삼


故李秉衡 장군은 2군 사령관, 전쟁기념관 건립 위원장을 역임한 분인데,
韓國戰 때 가장 잘 싸운 장교로 꼽힌다. 그가 쓴 '대대장'이란 책은 한국적
군사문화의 대표작이다. 그는 生前에 月刊朝鮮과 몇 번 인터뷰를 했다.
金容三 당시 월간조선 기자와 인터뷰한 내용중
軍事문화에 대한 설명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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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장군께서는 우리나라가 文武의 불균형으로 군사력이 약화되어 亡國의 비운을 겪었다고 했습니다. 金泳三 정부 출범과 더불어 우리 사회에 ‘文民’이란 용어가 유행하고 있는데요. 이 용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軍 출신들은 ‘文民’이란 말에 저항감을 느낀 것이 사실입니다. 그 말속에 軍이 惡役을 담당했다는 의미가 깔려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文民정부 출범은 우리가 겪어야 할 과정으로 이해합니다.”
   ―文武兼全, 즉 文과 武의 조화가 국가 구성의 궁극적 이상이라고 봅니다. 그런 측면에서 ‘文民’이란 용어가 文에 대한 우월의식을 강조하지는 않을지, 또 군사문화를 청산한다면서 尙武정신을 업신여겨 새로운 형태의 대립과 갈등을 야기할 위험이 있다는 우려가 있었는데요.
   “오늘날 선진국은 文武를 잘 조화시켜 국가를 운영하고 있어요. 미국에서는 사관학교 출신은 5년간 의무 복무하고 제대 후 공무원으로 임용하기 때문에 고급 공무원 중에는 사관학교 출신이 상당수라고 하더군요. 나폴레옹이나 드골, 퐁피두, 지스카르 데스탱과 같은 엘리트를 수없이 배출한 파리理工大는 원래 육군포병 학교였습니다. 30년 전만 해도 이 학교는 현역 육군 소장이 교장을 맡았습니다.
   政府는 군대 조직의 확대판입니다. 선진국은 군인들이 몇백 년 통치하며 軍 조직과 행정조직을 일치시켜오다가 현대에 이르러 정부와 군으로 분리된 겁니다.”
   
   공업생산력만으로는 선진국 불가능
   
   ―우리처럼 군사문화와 文民문화를 분리하고, 또 군사문화의 폐단을 지적하며 文民의 우위성을 강조하는 의식은 어디서 연유한다고 보십니까.
   “국민정신의 중요한 덕목인 騎士道, 즉 애국·충성·복종·희생·책임·용기라는 정신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저는 물질적 풍요나 공업생산력만으로 선진국이 될 수 없다고 봅니다. 騎士道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의식구조와 행동양식이 있어야 선진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요. 우리보다 오랜 전통과 국민정신으로 무장된 선진국과 경쟁하려면 애국·충성·복종·희생·책임·용기로 상징되는 군사문화는 매우 소중한 덕목입니다.”
   李장군은 세계 역사의 흐름 속에는 武士통치(騎士통치) 형태와 文民통치 형태가 있었다며 그 통치형태의 장단점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武士통치로 역사발전을 경험한 나라는 왕 자신이 騎士이며, 국가 지도부도 騎士로 구성됩니다. 이 나라들은 대부분 선진국이 되었고, 선비들로 지도부를 형성한 文民통치국은 대부분 식민지로 전락하며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과학기술이 발전되기 이전 시대에는 ‘大地에서의 수확’이 경제활동의 기초였습니다. 그러나 ‘大地의 생산은 늘 부족했고, 경작 가능한 大地도 한정되어 이 시대엔 전쟁을 통한 영토확장이 경제 활성화와 富國强兵의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전쟁은 국가의 생존을 담보한 제로섬 게임입니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과학적 연구’와 ‘국민의식교육’이라는 두 가지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인류 역사에서 과학의 발전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노력을 집중한 결과입니다. 비행기나 자동차도 敵時에 물자와 병력 수송을 하기 위해 고안된 것입니다. 이러한 기술이 산업분야에 활용되어 오늘과 같은 고도 산업사회의 원동력이 된 거죠.
   또, 전쟁에서 승리를 위한 尙武정신의 강화를 위해 꾸준히 국민의식교육을 시킵니다. 무사통치국가의 근본이념은 騎士道입니다. 그것은 국가를 사랑하고, 국가에 충성하며,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고, 大義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며, 임무에 책임을 다하고, 용기를 세우는 오늘날 우리의 군인정신과 같습니다.”
   ―우리 역사에서도 花郞이라는 騎士道 집단과 그 정신적 이념이 존재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소멸하면서 文武兼全의 틀이 무너지고 선비들이 중심이 되어 文을 숭상하는 문화가 지배했다고 보는데요.
   “그렇습니다. 신라는 중국의 힘을 빌어 통일을 했고, 東夷에게 생존을 위협받았던 중국은 우리에게 과거제도라는 文民통치의 틀을 요구하면서 尙武정신이 퇴색해 갔습니다. 선진국은 武士통치를 경험하며 전쟁을 현실로 인식하고 과학기술과 정신문화를 꽃피웠지만, 우리는 文民통치구조를 이어오며 전쟁을 두려워하고 국민정신은 나약해졌습니다. 전쟁이라는 사생결단의 현실을 회피한 채 비 오면 농사짓고, 비가 오지 않으면 하늘만 바라보는 소극적인 의식에 젖게 된 겁니다.
   또, 武士통치국은 국가운영구조가 지방분권적인 장원문화이고 文民통치국은 중앙집권 문화입니다. 武士통치국은 전쟁으로 어느 지역을 정복하면 영주에게 영토와 농민을 분배합니다. 그 대가로 평시와 전쟁시 물자와 병력동원의 의무를 부과하죠. 영토와 농민은 영주의 소유로서 세습되기 때문에 수탈이나 부정부패가 구조적으로 줄게 됩니다.
   文民통치국은 행정구역별로 지방을 분할한 후 중앙에서 관리를 파견합니다. 관리는 한 지역에서 2~3년 정도 순환근무를 하므로 지역민을 수탈의 대상으로 인식합니다. 이러한 부정부패의 구조적 모순이 오늘까지 반복되면서 통치자와 피통치자간의 알력과 불신이 이어져 온 겁니다.”
   
   軍복무는 騎士道 함양의 교육장
   
   ―騎士道가 오늘날의 군인정신과 같다고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우리 젊은이들의 군 복무는 ‘尙武정신 함양과 騎士道 정신의 교육장’이라는 긍정적 측면을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軍이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에게 騎士道와 같은 군인정신을 철저히 가르쳐 사회에 내보냈기 때문에 국가 발전의 기틀이 되었다고 자부합니다. 제가 현역에 있을 때 싱가포르의 李光耀 수상이 텔레비전에 출연해 중동 사막에서 일하는 한국 청년들을 칭찬하는 내용을 본 적이 있습니다. 더위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들이 사막에서 묵묵히 일하는 것을 보면서 李수상은 ‘한국 근로자의 강인한 정신은 軍이라는 특수경험을 통해 체득한 것’이라며 부러워하더군요.
   희망이 없으면 생존도 없습니다. 승리하는 역사만이 생존을 담보합니다. 우리는 군생활을 하는 젊은이들에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할 수 있다’는 정신교육을 시켰고, 월남전을 통해 그러한 가치관을 직접 체험시켰습니다. 그것이 자원과 기술의 不毛地에서 오늘과 같은 경제의 약진을 가져온 원동력이 된 겁니다.”
   ―군사문화에 대한 비판을 ‘권위주의의 타파’라는 측면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 문제는 어떻게 보십니까.
   “부모가 자식을 죽인 패륜사건을 언론은 ‘30년 군사문화의 惡習’으로 보도했더군요. 저는 권위주의가 왜 지탄의 대상이 되는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人間事에서 권위가 존재하지 않으면 매우 실망스러운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상하관계의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인간 상호간에 아무 제약이나 통제가 없는 원시사회를 지향하자는 뜻인지…”
   ―젊은이들 사이에 현역 입영은 ‘어둠의 자식’, 방위 입영은 ‘장군의 아들’, 병역 면제는 ‘神의 아들’이라는 寓話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군복무 기피현상은 매우 심각한 상황입니다. 그 원인과 치유방법을 국가 차원에서 연구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원래 군대란 한 나라의 지도급 인사나 지배세력을 주축으로 조직되는 것이 기본입니다. 선진국은 대부분 그러한 역사과정을 겪어왔습니다. 프랑스는 軍 경험이 없는 인사는 대통령 출마자격을 제한하는 전통이 있다고 하더군요.
   현역시절 저와 교분이 있던 모간 駐韓 美 해군사령관은 유명한 금융회사인 모간그룹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는 하버드大 재학시절 ‘海士에 입교하라’는 집안의 결정에 따라 사관학교에 입교했어요. 오늘날 미국 지배 계급은 모두 軍 지도부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인사들입니다. 그 집안의 자제들이 사관학교 교육을 받고 제대하여 정치 경제 군사 사회의 지도급 인사로 성장한 것이죠.
   우리 현실은 지도자 그룹일수록 군 입대를 기피하는 풍조가 역력합니다. 6·25 때 전선에서 싸운 것은 越南者와 길거리에서 헌병에게 붙잡혀 끌려온 힘없는 서민의 아들, 일부 학도병이 거의 전부였습니다. 面長만 지내도 그 아들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징집면제를 받게 만든 것이 현실이었으니까요.”
   李장군은 정치인들이 군복무를 기피하고 타락하면 국민은 중립적인 입장을 취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6·25를 경험한 국민들의 사회심리라는 것이다.
   “우리 국민은 이데올로기보다는 南과 北 어느 쪽이 힘이 센가에 관심이 큽니다. 6·25 때 정부는 국민을 팽개친 채 혼자서만 도망가고, 말 한번 잘못했다가 목숨이 달아난 경우가 부지기수였으니까요. 우리가 북한과의 전쟁에서 절대적으로 이긴다는 보장이 있어야 국민은 정부를 신뢰합니다. 국가 지도자들은 이 사실을 뼈저리게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 정치인이나 국가 지도자들 중에는 兵役의 의무를 필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의 軍 경험이 왜 중요하다고 보십니까.
   “軍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다릅니다. 인간은 위기에 닥쳤을 때 자신의 경험이 그대로 표출됩니다.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군사적 판단을 해야 할 때 軍 경험이 없는 국군통수권자나 정치인들이 어떤 판단을 할 수 있을까요. 軍 경험이 없는 인사들이 우리 사회 지도부를 구성할 때 국가안보에 심각한 부담을 안게 됩니다.”
   
   愛國이란 이웃을 사랑하는 정신
   
   李장군은 軍 경험이 없는 기업인이나 정치인, 언론인, 대학교수 등은 육군대학이나 국방대학원 과정을 이수시켜 軍의 본질을 이해하고, 국가이익과 안전보장을 최우선의 덕목으로 삼는 자세를 길러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애국·충성·복종·희생·책임·용기라는 군인정신의 궁극적인 지향은 ‘국가관’으로 이해됩니다. 우리는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 즉 愛國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이 드문데요.
   “愛國이란 국가의 주체인 국민, 즉 이웃을 사랑하는 정신입니다. 이 땅에 같이 사는 이웃에게 고통과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애국이라고 할 수 있죠.
   선진국들은 수많은 전쟁을 통해 국가관과 전쟁관을 길러왔습니다. 전투에서 부상한 戰友를 살리기 위해 업고, 메고 死地를 탈출하면서 평상시에는 느낄 수 없는 진한 우정과 우애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남의 자식이 귀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이웃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배워온 겁니다. 우리는 이런 국민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시행착오에 직면해 있는 겁니다.”
   李장군은 武士통치의 역사발전단계를 거쳐온 선진국들과 경쟁하려면 정신력 강화를 위한 국민정신교육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했다.
   “영국은 산업혁명을 계기로 국민을 산업 노동자와 군인으로 양성하기 위해 그들의 의식수준을 騎士道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교육에 전념했습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였어요. 明治維新 지도부는 사무라이 제도를 폐지하고 선진국의 근대국가제도를 모방하여 국민정신교육을 강화했습니다. 그들은 가장 먼저 사범학교를 세워 사무라이를 교사로 양성해 평민을 사무라이 정신으로 끌어올리는 교육을 시켰습니다. 日帝시대 교사들이 칼을 차고 교단에 선 이유는 자신이 사무라이 출신임을 나타내기 위해서였죠.”
   李장군은 우리 국가 지도부는 평민을 兩班으로 끌어 올리는 정신교육을 시도할 의욕도 능력도 없었다고 지적한다. 평민을 양반화하는 노력이 없는 상황에서 日帝 식민지 생활을 했고, 해방이 되면서 사회가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국민정신교육이 全無했다는 지적이다.
   “전쟁기념관을 건립할 때의 逸話입니다. 6·25의 재조명을 위해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등 참전국 학자들이 모여 심포지엄을 연 적이 있습니다. 전쟁문학을 전공한 미국의 윌리엄스 교수가 날카로운 지적을 하더군요. 미국의 전쟁문학 작품은 어떤 전투를 막론하고 영웅을 설정하여 그의 활약과 교훈을 전해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전쟁문학을 분석해보니 내용이 천편일률적이라는 데 놀랐다고 하더군요. 전쟁에서 주인공이 얼마나 고생했고, 고통을 받았으며 비참했는가를 나열하는 수준이었다는 겁니다. 영웅을 만들지 못하고, 전쟁을 개인적인 고통으로 혐오하는 이유는 국가 지도부가 평민을 양반화하는 국가관 교육을 게을리 했기 때문입니다.”
   
   평화는 전쟁을 통한 승리의 결과
   
   ―국제관계에서 모든 사고방식은 국가이익으로 귀결됩니다. 또 평화는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통한 승리의 결과’라고 합니다. 전쟁과 평화, 이 두 가지 상반된 개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어느 일본인이 ‘한국은 敵을 눈앞에 두고 平和病에 걸려 있다’고 쓴 칼럼을 본 일이 있습니다. 국제관계는 군사력이 없으면 존재를 인정받기 힘듭니다. 현실을 무시하고 우리만 평화애호를 주장하면 주변국에게 ‘우리는 힘이 없다’고 항복하는 행위나 마찬가지죠.
   국가정책의 목표를 ‘평화’에 두면 전쟁을 부정하고 軍備를 축소하며, 자주국방의 기틀인 방위산업을 등한시 하는 풍조가 만연합니다.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국가간의 이해관계를 따지고, 자위적 목적에서 전쟁도 하고 침략도 해본 경험이 있어야 살벌한 국제무대의 현실을 이해할텐데, 그런 경험이 없기 때문에 지식인들이 오직 평화만이 ‘절대 善’이라며 스스로 무장해제를 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겁니다.”

   李장군은 2천년 전 自主國防을 통해 국가의 위엄과 개인의 위신을 지켜야 한다는 荀悅(중국 後漢 말기 曹操의 부름을 받고 그에게 강의한 학자)의 정치철학에 감동한다고 했다.
   “荀悅은 정치지도자는 네 가지 憂患이 되는 일을 하지 말며, 다섯 가지의 뜻을 세우라는 정치철학을 설파했습니다. 憂患이 되는 네 가지 일은 위선적인 정치를 하지 말라, 私慾을 위한 정치를 하지 말라, 교만하고 방종한 정치를 하지 말라, 사치를 조장하는 정치를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다섯 가지 뜻을 세워야 할 요소는 백성을 배불리 먹여 살리며, 군주가 모범을 보여 사회기강을 바로잡는다. 교육을 통해 국민수준을 높이며, 자주국장을 통해 개인의 위신과 국가의 위엄을 높이고, 信賞必罰로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하라는 뜻이죠. 우리 국가 지도부가 새겨 들어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李장군은 오늘과 같은 평화가 지속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중국 경제가 선진국의 기득권을 위협할 때 그들이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방관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도 기성 경제대국이 신흥공업국을 상대로 집단린치를 가한 것 이었다고 해석한다.

   “만약 美日간에 제2차 태평양전쟁이 벌어지거나, 美中간에 전쟁이 벌어지면 우리는 국가의 운명을 걸고 어느 한 편에 가담해야 합니다. 국가안보 개념이 의심스러운 우리 정치인들이 그러한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