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보야, 문제는 이념이야!
    교육감선거 단일화 실패를 보면서

    강철화   

      6·4지방선거에서 서울·경기 등 핵심 지역을 포함한 거의 전국에서 소위 진보 후보들이 승리했다. 보수 성향 후보들이 얻은 표를 합산하면 소위 진보 후보들이 얻은 표를 훨씬 상회하는 지라 안타까움이 더욱 크다.

    정치나 행정이 잘못되어도 교육이 바로서면 희망이 있다.
     나라를 사랑하고, 경쟁력 있는 인재들을 길러내면 된다.
    그런데 교육감 자리마저 죄다 자칭 진보 쪽으로 넘어가 버렸다.
    이제 학교는 좌파사관학교가 될 것이고, 전교조는 더욱 날뛸 것이다.

    수월성(秀越性) 교육은 싹부터 잘릴 것이다. 하향평준화가 더욱 고착화될 것이다.
    서울시장-시의회-교육청의 삼각편대는 농약급식 사건을 덮으면서 무상급식을 강화할 것이고,
    학교안전은 방치될 것이다. 시-도지사 몇 자리 날아간 것보다 교육감 선거 패배가 더 아프다.
    나라가 안 되는 방향으로만, 퇴행하는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것 같아 속이 탄다.

    돌이켜보면, 교육감 후보 단일화 실패는 이번에 처음 보는 게 아니다.
    2010년 서울시 교육감 선거 때도 범(汎)보수후보들은 소위 진보 후보인 곽노현 후보보다 훨씬 많은 표를 얻었다. 하지만 그들은 분열되었기 때문에 결국 ‘진보후보 단일화(물론 그 뒤로는 비열한 금전거래가 있었지만)’에 성공한 곽노현 후보에게 교육감 자리를 내 주고 말았다.
    국회의원 선거나 기초자치단체장 선거 등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왜 이런 일이 되풀이될까? 그것은 결국 ‘이념(理念)의 부재(不在)’ 때문이다.

    지금 ‘보수후보’임을 내세우며 경기교육감 후보로 나섰던 사람들은 ‘이념적으로 견고한 ‘보수주의자’였나? 아니면 교육문제나 사회문제를 보는 그들의 시각이, 즉 ‘성향(性向)’ 이 ‘보수적’일 뿐이었나?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 차이는 크다.

    ‘이념’과 ‘성향’

    ‘이념(理念)’이란 무엇인가? 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이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생각이나 견해’를 말한다. 때문에 진정 ‘이념적’으로 투철한 사람이라면, ‘이념’을 위해서는 자기를 희생할 수 있다. 그 ‘이념’을 나보다 더 잘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을 위해 양보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념’을 같이 하는 우리 편의 승리고, ‘이념’의 구현이고, ‘이념’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꼭 내가 아니어도 다른 사람을 통해 그 이념을 구현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얼마든지 나를 버릴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약간의 ‘거래’도 할 수 있다. 그 ‘거래’는 결코 정의롭지 못한 것이 아니다. 숭고한 ‘이념’의 실현을 위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성향’의 경우, 얘기는 달라진다.
     ‘성향(性向)’은 ‘성질에 따른 경향’에 불과하다. ‘성향’은 자신을 희생할 만한 고상한 가치(價値)가 아니다. ‘이념’을 위해 양보하고 희생할 수는 있지만, ‘성향’ 때문에 그러는 경우는 없다.

    나도 ‘보수적’이고, 저 사람도 ‘보수적’이다. ‘성향’은 비슷하다. 하지만 저 사람보다 내가 더 잘났다. 저 사람이 잘난 점은 하나도 안 보이지만, 내가 잘난 점은 100개도 넘게 댈 수 있다. 저 사람은 흠결투성이지만 내 흠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발견할 수 없다. 혹시 있다고 해도 그것은 아주 사소한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내가 골이 비었다고 저 사람에게 양보해야 하나? 이번에 서울·경기 교육감 등 선거에서 장하게도 완주를 한 이들은 모두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양보와 희생을 요구할 수 있을까?

    여기에다가 선거에 후보로 나서면, 측근과 후원자, 지지자들의 눈치도 봐야 한다. 설사 후보가 대의를 위해 양보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도, 그가 당선되면 그를 통해 한 몫 보려는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

    물론 ‘성향’도 중요하다. ‘진영(陣營)’싸움에서는 이념적으로 투철하지 않더라도 우선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을 끌어 모아 세(勢/세력)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세력에서 꿇리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사회적으로 발언권이 생기고, 상대방에게 맞설 수 있다. 특히 지금 한국의 보수진영, 자유진영의 입장에서는 단 한 사람의 힘이라도 아쉬운 실정이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싸움을 위해서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장정(壯丁)들을 모아 놓았다고 그들이 군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 군복을 입히고, 총을 쥐어주고, 훈련을 시켜야 한다. 그래야 전장(戰場)에 나가 싸울 수 있는 군대가 된다. ‘이념전쟁’에서도 마찬가지다.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을 모아서 하나로 묶은 후에는, 이들을 ‘이념’으로 무장(武裝)시켜야 한다. ‘이념’은 ‘이념전쟁’에서의 군복이고, 총이다.

    장정들에게 군복을 입히고 총을 쥐어 준 후에는 훈련을 시켜야 하듯이, 여기에서도 ‘교육’이 필요하다. 그게 ‘의식화학습’이다. 특히 젊은이들에 대한 교육이 중요하다. 가능하다면 어린 시절부터 그 바탕을 마련해 주는 조기(早期)교육도 필요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시련과 시행착오도 있을 것이고, 탈락자도 나올 것이다. 그것은 감수해야 한다. 어차피 ‘교육’은 1만 명, 10만 명을 교육해서 한 명 ~ 열 명의 정수(精髓)분자, 열 명 ~백 명의 열성분자, 백 명 ~ 천 명의 동조자를 키워내는 과정이다.

    그러다보면 그들 가운데서 ‘이념’을 체화(體化)한 사람, 자신의 삶을 통해 그 이념을 실천해 왔고 더 나아가 공적(公的)활동을 통해 그 이념을 확산시키는 데 자신의 인생을 걸려는 사람이 나올 것이다.

    그들 가운데 정치적 자질을 가진 사람을 골라서, 그들을 기초의원이나 광역의원, 기초단체장, 광역단체장, 교육감, 국회의원, 그리고 대통령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그리고 일정한 단위에서 정치적 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자신이 가진 권한을 통해 ‘이념의 동지’들을 지원하고, 임용 하고, 활용해야 한다. ‘이념의 동지’들로 진지를 구축하고, 기동부대를 편성해야 한다.

    이념 不在 → 교육 不在 → 인물 不在의 惡循環

     지금 이 나라 보수진영, 자유진영의 문제점은 확고한 보수주의자 내지 자유주의자가 없다는 것이다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는 연혁적으로는 서로 다르고 상충되는 부분이 있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서로 수렴하고 있다고 본다).

    곰곰이 생각하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박근혜 대통령도 보수‘성향’일지는 몰라도, 보수주의자나 자유주의자는 아니었다. 취임 초 대불공단 전봇대를 뽑았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어느날 갑자기 ‘공정사회’를 소리 높여 외친 것이나,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에는 ‘줄푸세(세금 줄이고, 규제 풀고, 원칙 세운다)’를 주장하던 박근혜 대통령이, 2012년 대선 때는 ‘경제민주화’를 외치다가, 최근 들어서는 다시 ‘규제혁파’를 역설하는 것이 그 증거다. 확고한 보수주의자, 자유주의자들이 왜 나오지 않는 것일까? 이들을 키워내는 교육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운동권 출신인 김문수 경기도 지사는 “우리는 옛날에 운동할 때 밤낮없이 교육(의식화학습)을 했는데, 한나라당에는 교육이 없다”고 말하곤 한다. 한나라당만 그런 게 아니다. ‘보수’라는 동네 어디를 봐도 제대로 된 교육은 없다. 왜 그럴까? 교육해야 할 ‘이념’이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얘기하자. 대한민국에 제대로 된 보수주의가 있나, 자유주의가 있나? 역사와 전통에 뿌리내린 보수주의가 이 나라에는 없다. 있다면 막연하게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취를 자랑스러워하면서 공산주의나 북한, 혹은 자칭 진보세력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안보를 걱정하는 ‘보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이 땅에는 자유주의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영국이나 미국에서와 같은 유전자(遺傳子) 속에 아로새겨진 ‘자유’의 전통이 없는 이 나라에서 자유주의는 본격적으로 수입된 지 10여년이 조금 넘는 박래품(舶來品)일 뿐이다.

    대한민국의 정체성(正體性)에 바탕을 둔 보수주의, 한국의 현실에 맞는 자유주의가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기까지는 얼마나 긴 세월이 걸릴지, 요원하기만 하다.

     이념의 부재가 교육의 부재로, 교육의 부재는 다시 인물의 부재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본 보수교육감 단일화 실패는 이러한 이 나라 보수-자유진영의 한계를 보여주는 작은 사례일 뿐이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2017년에 ‘진보’를 자처하는 좌익세력에게 다시 나라를 빼앗기게 될 수도 있다 (‘정권’을 빼앗기는 게 아니라 ‘나라’를 빼앗기는 것이다).

     근래 젊은이들에게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자유주의를 가르치는 모임, 젊은이들끼리 모여 그런 주제들에 대해 토론하고 공부하는 모임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반가운 일이다. 이들은 소중히 여기고 잘 키워내는 것은 보수주의, 자유주의의 싹을 키우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을 지키고 더 나아가 그 자유와 번영을 휴전선 이북으로 북진(北進)시킬 ‘자유군단(軍團)’을 기르는 것이다.

    아직은 초보단계지만, 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장차 한국의 마거릿 대처나 로널드 레이건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