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를 빌미로 대통령 까대는 김용옥

    왕조시대의 신민적 정치의식으로 대통령 까는 미개성

    조영환(올인코리아) 
  • 3류 좌좀선동꾼으로 평가되는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가 왕조시대의 미개한 정치의식이나 좌익세력의 천박한 불평불만을 과시나 하듯이 세월호 침몰참사를 빙자하여 반정부(박근혜 대통령 비난) 군중선동에 나섰다.

    한신대 석좌교수라는 김용옥의 “더이상 애도만 하지 말라! 정의로운 발언을 서슴지 말라!”라는 ‘세월호 참사 특별기고’를 한겨레신문은 < 김용옥 “국민들이여, 거리로 뛰쳐나와라!”>라는 선동적 제목의 기사로 게재했다.

    김용옥은 좌좀선동꾼들이 즐기는 시적 형태의 “조선의 창공이 원혼의 피눈물로 물들어 잿빛 같은 암흑을 드리우고, 온생명의 분노가 열화같이 치솟아 암흑의 장막을 불태울 때, 원망조차 잊어버린 순결한 여린 혼령들은 신단수의 하늘에서 소리친다. 엄마 아빠 홍익인간의 천부인은 어디로 사라졌나요”라는 감성팔이로써 글을 시작했다.

    6.25전쟁 당시에 이승만 대통령이 공산세력에 살해당하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는 좌익세력의 선동술을 대표하듯이 김용옥은 “1950년 6월25일, 국민 전체의 안위를 책임지고 있었던 이승만은 새벽부터 전쟁 발발의 소식을 듣고 우선 자기 혼자 도망갈 생각부터 했다. 26일 아침 8시 신성모 국방장관이 방송에 나와 ‘국군이 인민군을 물리치고 북진중에 있다’는 담화를 발표한다”며 “그런데 27일 새벽부터 비상국무회의가 열렸지만 이승만은 회의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고 열차편으로 이미 몰래 서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는 대전 도피에 관해 각료는 물론, 국회의원, 하물며 육군본부에까지도 알리지 않았다”며 이승만을 도망자로 낙인하였다. 김용옥은 세월호 참사의 주범인 이준석 선장의 도피를 대한민국을 구한 이승만의 일시적 서울피난에 빗대어 왜곡과 요설과 궤변으로 박근혜 정부를 까대는 것이다. 

    이승만이 서울에서 죽었다면, 김용옥이 궤변을 즐길 수 있는 대한민국은 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승만은 대전에 도착하자마자 곧 특별담화를 녹음한다. 27일 밤 9시부터 서울중앙방송국에서 전파를 타고 전국민에게 전달되었다”며 “우리 국군이 용감하게 적을 물리치고 있습니다. 국민과 공무원은 정부 발표를 믿고 동요하지 마십시오. 나 대통령 본인도 서울을 떠나지 않고 국민과 함께 서울을 지키고 있습니다”라는 특별담화를 인용했다.

    전쟁 당시의 특별한 사정에 대해 온갖 전략적 선전과 선동이 필요한 점을 김용옥을 무시하고, “왜 이승만이 6.15남침 초기에 피살되지 않았느냐”에 대해 악랄하게 비난하는 것이다. 김용옥은 “이날 정훈국장교의 말만 믿은 모윤숙은 밤늦게까지 가두선전방송을 하고 다녔다”며 이승만을 생거짓말장이로 비난했다.

    남한사회에 북한 간첩이 우굴대는 특수한 상황은 이런 김용옥의 60년 뒤의 평가에 감안되지 않았다. 대한민국을 침몰시키려던 김일성을 비판하지 못하고 심지어 미화한 김용옥이다. 김일성을 비난하지 못하니, 김용옥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을 욕하기 마련이다.

    세월호 참사를 빌미로 삼아서 김용옥은 “이승만의 파렴치한 만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28일 새벽 2시30분 아무 예고도 없이 한강대교를 폭파시켜 버렸다. 사전 통보나 통제가 없었기에 50대 이상의 차량이 물에 빠지고 그 다리를 건너가던 시민 500여명이 폭사하였다. 군사전략적으로 볼 때도 이것은 터무니없는 실수였다. 서부전선에 배치되었던 우리 국군이 퇴로를 차단당하고 와해, 희생된 것이다”라며 “이승만은 7월1일 대전에서 또다시 도망갈 때도 목포로 가서 부산으로 배를 타고 갔다. 경부가도가 이미 위험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고 이승만을 무책임한 도망자로 비난했다.

    나에게 판단하라면, 경부가도가 위험해서가 아니라 김용옥 부류의 인간들이 사는 목포를 불신해서 믿을 수 있는 부산으로 이승만은 도피한 것이다. 대한민국을 구한 이승만의 위대성은 좌편향적 김용옥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김용옥과 같은 미개하고 신하적이고 좌편향적 역사관을 가지면 망한다.

    이승만이 전쟁 초기에 죽기를 기다리는 자신의 심정을 드러내듯이, 김용옥은 “이승만은 전 서울 시민을 서울에 가두어놓고 자기 혼자만 살 생각을 했다. 그리고 9·28 서울수복을 했을 때 서울에 남아 고생한 뭇 시민들을 부역했다고 죽이고 고문하고 연좌제로 묶어놓았다”며 “우리는 이러한 이승만을 성스러운 통치자로 모시는 기나긴 정치사적 이념의 굴레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라고 했지만, 김용옥의 시각과 논조를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을 최대한 감안하지 않고, ‘이승만은 서울을 벗어나지 않고 빨갱이세력에게 죽었어야 했는데’라는 좌익세력의 망상에 기반된 단편적이고 편향적인 이승만 비난으로 평가된다.

    이승만의 6.25남침 방어전을 오직 서울탈출에만 촛점 맞추어 비난하는 김용옥은 이승만 증오에 찌들어있다. 이런 잘못된 민중사관이나 민중신학을 가르치니, 툭하면 반정부 분탕질이 벌어지는 것이다.

    자신의 이승만 매도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격지심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자신의 이승만 평가가 상식인에게는 몰상식한 비난으로 비칠 것에 대한 변명인지 모르지만, 좌익기독교의 요람인 한신대의 김용옥 석좌교수는 “역사의 비극적 상황이란 모든 함수가 최악의 길을 재촉하도록 협동을 한 필연·우연의 사태이기 때문에 그 인과를 단선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사태의 해결이나 반성에 크게 도움을 주지 않는다”며 “그러나 수많은 인과계열 중에서도 움직일 수 없는 명백한 사실들이 있다”며 이승만을 마치 배를 남겨두고 혼자 도망친 선장으로 몰아갔다.

    6.25기습남침 당시에 구체적으로 누가 한강철교를 끊으라고 명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공산세력 척결의 세계적 용장인 이승만을 비겁한 도망자로 비판한 김용옥의 이승만 평가는 포괄적 판단자의 눈에는 좌편향적 인민재판에 불과하다. 좌익선동꾼들의 한계는 단견적, 부분적, 편파적 시각을 가졌다는 점이다.

    “자기만 먼저 탈출한 선장, 승객들에겐 ‘동요 말고 제자리를 지켜라’”라는 선동문구를 이승만과 세월호 선장에 같이 들이댄 김용옥은 “우선 배에 관하여 정확한 구조적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끝까지 남아서 승객의 안위를 책임지어야 할 선박직 승무원 15명 전원이 먼저 탈출하여 쌩쌩하게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가장 비극적인 사실은 이준석 선장과 일등항해사가 탈출하면서도 학생들에게 동요하지 말고 객실 속에서 제자리를 지킬 것을 명령하였고 그것을 계속 강요하였다는 가슴 아픈 일련의 사태에 내재한다. 모든 비극은 이 하나의 움직일 수 없는 명백한 사실로부터 연역되는 것”이라며, 세월호 승객들을 떼죽음시킨 세월호 선장을 대한민국을 공산세력으로부터 구한 이승만 건국대통령을 동일시하는 선동질을 김용옥은 해댔다. 김용옥의 이승만, 이명박, 박근혜 까대기는 그의 왕조신민적 정치의식과 좌편향적 정치성향을 확인해줄 뿐이다.

    김용옥은 “인간은 이기적 동물이다. 위기상황에 누구든지 나 먼저 살고보자는 본능적 움직임은 충분히 요해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승만과 이준석의 경우 도덕적 양심을 운운치 않더라도 이러한 생존본능의 논리조차 적용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승만의 서울 탈출이나 이준석의 세월호 탈출은 전혀 시민, 승객의 탈출과 충돌을 일으키는 사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라며 “이승만은 서울을 빠져나오면서도 서울시민들에게 탈출을 권고할 수 있었고, 이준석은 세월호를 빠져나오면서도 승객들에게 같이 탈출하자는 얘기를 할 수 있었다. 아니 해야만 했다. 자신의 탈출이 학생들의 탈출로 인하여 저지되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라며 이준석과 이승만을 동일시하며 비난했다. 김용옥은 단편적 시각으로 이승만을 도망자로 매도하지만, 포괄적으로 보면 이승만은 한국인을 구한 구세주와 마찬가지의 위대한 반공투사다. 그래서 친북좌익세력이 죽자살자 이승만의 나쁜 점만 강조한다.

    “일본 도호쿠지진 때 미야기농고의 학생들은 다급한 상황에서도 소·돼지 축사의 문을 열어주고 피신했다. 하물며 인간이랴! 이것은 이승만과 이준석의 디엔에이 심층구조 속에까지 사람은 존엄과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통제와 관리의 수단일 뿐이라고 하는 비인성적 무책임한 의식이 자리잡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전제하지 않으면 풀리지 않는다”라며 김용옥은 “이들이 생각하는 코스모스는 다중의 죽음이다. 죽음의 질서인 것이다. 이것은 우발적인 사태가 아니라 우리 민족사의 구조적인 사태인 것”이라고 이승만과 이준석을 비난했다. 부분적으로 보면 그럴싸한 주장을 하지만 김용옥의 주장을 다 읽으면 김용옥은 결국 세월호 참사를 일으킬 선동질을 하게 된다. 이승만이 전체 국민들을 살리기 위해서 부분적 오류를 6.25전쟁 당시에 저질렀다면, 김용옥은 6.25남침으로 전체 한국민들을 죽이는 김일성을 기쁘게 하는 망국의 요설을 풀어대고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도 선조는 대책 없이 먼저 도망쳤다. 사실 왜군은 이순신에게 해로를 차단당해 보급이 끊겼기 때문에 식량이 없었고 지쳐 있었다. 서울은 한강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다. 그리고 당시 서울에는 화약이 2만7천 근이나 저장되어 있었다. 한강의 대형 수송배들과 지형을 활용하고 강북 강변에 군사를 배치하여 대처했더라면 왜군의 도강을 쉽사리 막을 수 있었다”며 김용옥은 “그러나 선조는 가마를 메어줄 사람도 없어 우중에 말을 타고 쫄쫄 비 맞고 굶으면서 북상에 북상을 거듭했다. 그러면서 이승만처럼 자기가 건넌 임진강변의 건물과 배는 다 태워버렸다. 한번 생각해보라! 그가 의주까지 도망갈 때, 그의 말을 이끌었던 말단 관리 이마와 임란을 승리로 이끈 불세출의 영웅 이순신 장군 두 사람의 공훈을 평가할 때, 누굴 더 높게 평점했을까?”라며 이승만이나 선조를 비겁자로 몰아쳤다.

    이런 요설에 이어 김용옥은 곧바로 비겁하고 무책임한 선장에 의해 침몰된 세월호 침몰참사를 박근혜 정부 비난선동에 엮어넣기 시작한다. “지금 전국민의 애간장을 끓게 만드는 것은 세월호가 기울기 시작한 최초의 시각으로부터 적게는 20분, 넉넉하게는 2시간 정도, 충분히 사태 해결을 위한 구명결단의 여백이 있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이 최초 절명의 황금시간에 아무런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며 “언론은 부정확한 보도로 사태를 흐리게 했을 뿐 아니라, 모든 관련된 국가행정부서의 사람들은 혼선을 빚기만 하는 다양한 대책본부를 꾸리기만 하면서 황금시간을 허송했고, 또 거짓말만 남발했으며”라며 가장 편하고 자기의롭고 무책임한 비난선동을 이어나갔다. 탁상머리에서 당위성만 강조하는 김용옥은, 마치 다이빙벨의 이종인 대표처럼, 무소불위의 정죄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들이댄다.

    정몽준 막내아들 수준의 현실감각, 정치의식, 윤리의식도 가지지 못한 듯이 김용옥은 “민중의 직감적 판단 속에서만 우리 사회의 정의는 지켜져 내려온 것”이라는 ‘민중신학적 역사관’을 내비치면서 김용옥은 “이러한 사태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역사가 총체적 부실 속에서 결정권자가 부재한 상태로 표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 총체적 부실의 주체는 다름 아닌 박근혜 정부이다. 그리고 이 박근혜 정부의 구조적 죄악의 책임은 궁극적으로 모두 박근혜 본인에게 돌아간다. 세월호 참변의 전과정을 직접적으로 총괄한 사람은 박근혜 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의 정부의 사람과 이념, 그 모든 것이 박근혜가 창조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민간회사의 선박사고까지 대통령의 책임으로 몰아가는 김용옥의 정치적 판단은 왕조시대의 미개한 신민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고 강변하던 김용옥은 갑자기 ‘세월호 침몰사건의 주체는 박근혜’라고 교체했으니, 그의 시각과 논리와 역사관은 거짓 궤변에 불과한 것이다. 잘못은 자신이 싫어하는 통치자에게 돌리고 잘된 것은 미몽한 민중에게 돌리는 왜곡되고 편파적인 역사관을 민중사학자(민중신학자)의 아류로 분류될 김용옥은 가진 것이다. 한국의 역사를 왕조시대에서 민주시대로 바뀌었다고 선동하여 인기를 끌었던 김용옥은 갑자기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시각과 논조에서는 ‘왕조시대의 신민적 정치의식’을 적용한 것이다. “통치의 정점은 국가의 안위에 막중한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도 박근혜는 진심어린 전면적인 사과의 한마디도 없었다”며 김용옥은 세월호 사건의 책임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적으로 떠넘기는 왕조시대의 신민적 문화(subject culture)에 찌든 것이다. 

    과잉민주주의에 근거해서 군중의 권리를 과장하고 군중의 의무를 왕조시대에 근거해서 감축하는 김용옥의 이중적이고 편파적인 정치의식은 6.25남침 초기에 피살당하지 않은 이승만을 비난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과거의 황제인 한(漢)나라의 문제(文帝)조차 불상사가 일어날 때마다 거느리고 있는 신하를 탓하지 않고 자기가 국민 앞에 직접 사죄했다”며 “그러나 현 정부는 사도(死道)의 원리로써 생사람까지 죽이고 있다.

    이 불상사는 99.99%의 대중을 희생시켜 0.01%의 부귀권세가들을 봉양하려는 이명박 정부 이래의 줄기찬 신자유주의적인 정책기조가 교육·경제·정치·행정·법률·문화 전반에 끼친 영향이 만들어낸 것이다. 세월호의 실소유주 유병언은 이윤 극대화를 위하여 승객을 짐짝화한 것”이라는 김용옥의 세월호 책임규정은 그의 미신적이고 신민적인 정치의식을 잘 확인시켜준다.

    김용옥은 좌익세력의 대변인이나 되는 듯이 “선교사 김선일 사건 때에 박근혜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그건 국가가 아니며 국민 한 사람을 못 지켜낸 그러한 정부에 대하여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되었다는 논조의 말을 한 적이 있다”며 “박근혜, 그대의 대통령의 자격이야말로 근본적인 회의의 대상이다”라고 주장한다. 김용옥은 “그대가 설사 대통령의 직책을 맡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본질적으로 허명이다. 그대의 대통령이라는 명분은 오로지 선거라는 합법적인 절차에 의하여 정당화되는 것인데, 그 정당화의 법률적 근거인 선거 자체가 불법선거였다는 것은 이미 명백한 사실로서 만천하에 공개된 것이다”라며 김용옥은 ‘박근혜는 불법선거에 의해 당선됐다’는 좌익세력의 선동질을 반복했다. 

    “이 땅의 종교지도자(좌익 신분, 목사, 승려?)들이 이미 그대에게 대통령 사직의 권고를 한 바 있다. 트위터상에 올라오는 어린 학생들의 문구 속에도 항변의 언사들이 많다”며 김용옥은 “국민들이여! 더 이상 애도만 하지 말라! 의기소침하여 경건한 몸가짐만에 머물지 말라! 국민들이여! 분노하라! 거리로 뛰쳐나와라! 정의로운 발언을 서슴지 말라!”라며 거리투쟁을 선동했다. 이런 자가 바로 서울을 침공한 김일성 집단의 마음을 표출하는 게 아닌가? 김용옥의 정치적 의도는 바로 “박근혜여! 그대가 진실로 이 시대의 민족지도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정도일 것”이라는 선동질에 잘 드러난다. 세월호 사건에 박근혜 대통령이 무슨 직접적 책임이 있다고 김용옥은 ‘거국적 내각을 새롭게 구성하여 그대의 허명화된 카리스마를 축소하고 개방적 권력형태를 만들라’고 선동질을 한다.

    대책 없는 불평불만을 지식으로 착각한 김용옥은 “그대가 풀어야 할 규제는 사상통제의 규제이며, 언론의 규제이다”며 “유통을 장악하고 골목상권까지 독점하는 모든 대자본에 대하여 규제를 강화하라! 중소자영업의 생활세계를 보호하라! 그것이 민중의 갈망이다! 언론을 바로 세워라!”고 선동했다. 언론의 자유가 좌익선동꾼들의 방종으로 흘러서 나라가 망국지경인데, 몽상의 세계에 살고 있는 김용옥은 언론의 규제를 풀라는 헛소리를 한다. 민중신학의 신봉자 김용옥은 “그대(박근혜 대통령)가 중심이 된 국가개조는 악순환만 초래한다”며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시스템의 근원적 변화는 그대의 시녀가 되어버린 검찰이나 행정체계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주체가 되어 국민 스스로의 미래를 개혁해 나가는 과정을 그대가 적극 도와주는 그런 변화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용옥은 “이제마는 말했다. 투현질능(妬賢疾能) 이상의 대환(大患)이 없고 호현낙선(好賢樂善) 이상의 대약(大藥)이 없다. 맹자는 호선(好善)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천하를 다스리기에 넉넉함이 있다 했다. 호선이란 낙문고언(樂聞苦言)”이라며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를 애타게 챙겨주며 질서를 지킨 단원의 학생들, 그들을 보호하며 목숨을 던진 선생님들, 선박직이 아닌 헌신적 승무원들, 그리고 책임을 통감하고 ‘시신을 찾지 못하는 녀석들과 함께 저승에서도 선생을 할까’라는 유서를 남기고 떠난 강민규 교감님, 우리는 이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 민족의 도덕성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한다.

    민족 구원의 빛줄기는 있다. 세월호 희생자 302명은 살아 있다”며 고상한 희생자들을 자신과 동일시하며 교만한 눈으로 박근혜 대통령(정부)를 죄인시하는 비난선동을 했다. 김용옥은 김대중과 노무현에 대해서는 왕조시대의 신하처럼 무비판적이다.

    <김용옥 “국민들이여, 거리로 뛰쳐나와라!”>라는 기사에 한겨레신문의 한 네티즌(명가)은 “고등학생들 촛불 행진한다는데, 함 나가봐야겠네요. 고등학생들 아가야로 봤는데, 저보다 낫네요”라고 했고, 다른 네티즌(konstar)은 “김용옥씨, 정말 궁금해서 묻습니다. 채동욱 사건은 어떻게 보슈?”라고 묻었고, 또 다른 네티즌(konstar)은 “김용옥이 광화문 사거리나 청계천에 떴다는 소문이 들리면 댓글 좀 달아주세요. 만사를 제쳐놓고 구경 좀 나갈까 합니다. 구경거리지요. 저는 쭈쭈바 하나 건낼까 합니다만, 다른 분은 따귀를 쳐올린다고 하네요”라며 “우리 도올 선생은 머리가 없으셔서 영향이 많을 수 있습니다. 엊그제 철수한 이종인의 다이빙벨이 필요합니다. 그걸로 그늘을 만들어 세계적 사상가 김씨를 보호합시다”라고 힐난했다. 저변 네티즌들이나 정몽준 막내아들보다 못한 김용옥의 신민적(미신적) 정치의식이다. [조영환 편집인: http://www.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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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론보도문]

    위 기사와 관련돼, 유병언 전 회장 유족측은, 유병언 전 회장은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주식은 물론 청해진해운의 대주주인 천해지, 천해지의 대주주인 아이원아이홀딩스의 주식을 전혀 소유하지 않았으며, 세월호의 실소유주가 아니라고 밝혀왔습니다.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및 유병언 전 회장 관련 정정 및 반론 2   

    본 언론사는 기독교복음침례회(일명 구원파)및 유병언 전 회장 관련 보도에 대하여, 기독교복음침례회 교단 및 유병언 전 회장의 유족과 합의를 통해 다음과 같이 두 번째 통합 정정 및 반론보도를 게재합니다.

    1. 오대양 사건 및 5공화국 유착 관련 보도에 대하여

    기독교복음침례회 및 유병언 전 회장이 오대양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보도와 유 전 회장이 1980년대 전경환 씨와의 친분 및 전두환 대통령 시절 5공화국과의 유착관계를 통해서 유람선 사업 선정 등 세모그룹을 급성장시켰다는 보도는 1987년과 1989년 그리고 1991년 검경의 3차례 집중적인 수사를 통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으며, 2014년 5월 21일 인천지검에서 공문을 통해 관련 없음을 확인해 준 바 있습니다.

    2. 구원파의 교리 폄하 및 반사회적 집단 이미지 보도에 대하여

    일부 언론은 기독교복음침례회 교리는 ‘한번 구원 받으면 무슨 죄를 지어도 상관없고 회개도 필요 없으며, 유병언 전 회장의 사업이 하나님의 일이며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 구원이고 예배라는 교리를 가졌다’고 보도하였으나 해당 교단은 그런 교리를 가진 사실이 없다고 밝혀왔습니다.

    3. 이준석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이 구원파 신도라는 보도에 대하여

    세월호 사고 당시 먼저 퇴선했던 세월호 선장 및 승무원들은 모두 기독교복음침례회 신도가 아니며, 다만 승객을 먼저 대피시키다 사망하여 의사자로 지정된 故정현선 씨와, 승객을 구하다가 의식불명 상태로 구조된 한 분 등, 2명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4. 구원파의 내부 규율 및 각종 팀 관련 왜곡선정 보도에 대하여

    일부 언론의 “유병언은 금수원 비밀팀이 살해”, “투명팀이 이탈 감시했다” 등 기독교복음침례회 교단을 살인집단이나 반사회적 집단으로 호도하는 보도는 전혀 확인된 사실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5. 기독교복음침례회에서의 유병언 전 회장 지위 관련 보도에 대하여

    기독교복음침례회는 유병언 전 회장이 1970년대 극동방송국 선교사(미국 TEAM선교회 소속)들로부터 목사 안수를 받은 사실은 있으나 교단 내에서 교주도 총수도 아니며 해당 교단은 평신도들의 모임으로 목사가 없음을 밝혀왔습니다.

    6. 금수원 관련보도에 대하여

    금수원에 땅굴을 비롯해 지하벙커가 있다는 보도는 검찰 조사 결과 사실무근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리고 금수원은 기독교복음침례회 신도나 외부인들도 자유롭게 출입 가능한 곳으로 폐쇄적인 장소가 아니며, 금수원 내에 불법 시설은 대부분 비닐하우스였고, 곧바로 시정 조치를 하였으며, 금수원 내에서 발견된 치과시설은 유 전 회장 개인 진료와 무관한 과거 교인들의 주말 봉사 진료를 위한 시설인 것으로 밝혀왔습니다.

    7. 유병언 전 회장의 정관계 로비설 및 경영개입 보도에 대하여

    ‘유병언 키즈’나 ‘유병언 장학생’은 존재한 사실이 없으며, 이용욱 전 해경국장은 현 기독교복음침례회 신도가 아니며, ‘높낮이회’는 유 전 회장 경영 개입과 무관한 관련 회사의 친목 모임이라고 알려왔습니다. 또한 검찰 수사결과, 유병언 전 회장이 채규정 전 전북도지사를 통하여 로비를 하거나 50억 상당의 골프채 등을 통한 정관계 로비했다는 설은 사실 무근이며, 세모 그룹은 1997년 부도 이후 적법한 법정관리를 절차를 밟아 회생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8. 유병언 전 회장 작명 관련 보도에 대하여

    일부 언론은 ‘세월호’의 이름이 세상을 초월한다는 의미라고 보도했으나  ‘세월(世越)’이 아닌 ‘흘러가는 시간’을 뜻하는 세월(歲月)이며, 유병언 전 회장의 작가명인 ‘아해’는 ‘야훼’가 아닌 어린아이를 뜻하며 기업명인 ‘세모’는 삼각형을 뜻하고, 안성 ‘금수원’의 ‘금수’는 짐승을 뜻하는 ‘금수(禽獸)’가 아닌 ‘금수강산’에서 인용하여 ‘비단 금(錦), 수놓을 수(繡)’를 뜻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9.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의 유병언 전 회장 도피 관련 보도에 대하여

    유병언 전 회장의 밀항 및 망명 보도는 검찰 수사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병언 전 회장의 사망 날짜가 확인됨에 따라 기독교복음침례회에서 조직적인 도피 지원을 한 사실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기독교복음침례회에서 ‘엄마’라는 호칭은 특정 직책이 아닌 결혼한 여신도를 편하게 부르는 말이라고 알려왔습니다.
     
    10. 유병언 전 회장 사진 관련 보도에 대하여

    유병언 전 회장의 사진이 담긴 달력이 500만원에 판매되거나 기독교복음침례회 신도들에게 강매된 사실이 없으며, 인터넷에 4만원에 거래된 것은 사진 작품이 아닌 사진이 담긴 엽서 등과 같은 제품이며, 유 전 회장이 루브르 박물관 등에 기부한 것은 맞지만 그것을 대가로 전시회를 개최한 것이 아니라고 알려왔으며, 해당 박물관에서도 동일한 입장을 발표하였습니다.

    11. 유병언 전 회장 재산 및 대출 관련 보도에 대하여

    유병언 전 회장 일가 재산으로 보도된 2400억의 상당부분은 기독교복음침례회 교인들로 구성된 영농조합 소유이며, 미국 팜스프링스 인근 부동산 역시 유 전 회장과는 무관한 것으로 밝혀왔습니다. 또한 금수원 인근 아파트 240여 채는 유 전 회장의 차명 재산으로 볼 수 없다고 법원 판결이 났음을 알려드립니다. 또한, 특정 신협을 사금고로 이용하거나 일부 금융기관으로부터 4천억 가량의 비정상적인 대출을 받은 사실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12. 김혜경 씨 관련 보도에 대하여

    김혜경 씨는 유병언 전 회장의 비서를 역임하거나 비자금 관리를 한 사실이 없으며, 유 전 회장은 “김혜경이 배신하면 우리는 다 망해”라는 발언을 한 사실이 없으며 이것은 한 사람의 확인되지 않은 주장임을 밝혀왔습니다.

    13. 유병언 전 회장 신도 지시 보도에 대하여

    유병언 전 회장이 미국 쇠고기 관련 촛불시위를 지시한 사실이 없으며, 세월호 사고 직후 기독교복음침례회 신도들에게 SNS를 통해 정부의 공격에 대응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14. 기독교복음침례회 모금 관련 보도에 대하여

    유병언 전 회장의 사망 시점이 확인되어 기독교복음침례회에서 모금한 60억은 유병언 전 회장의 도피와 무관함이 밝혀졌으며,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해 모금한 5억 중 일부를 빼돌린 사실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15. 유병언 전 회장 개인 신상 보도에 대하여

    유병언 전 회장의 가방에서 발견된 다섯 자루의 권총은 검찰수사 결과 모두 실제 사용이 불가능한 장식용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유 전 회장은 다수의 여인들과 부적절한 관계였거나 신도들의 헌금을 착취한 사실이 없으며 해당 보도는 일부 패널들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법정 제재 조치를 받은 바 있습니다.

    기독교복음침례회 측의 좀 더 자세한 입장을 ‘구원파에 대한 오해와 진실 (http://klef.co.kr)’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