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부 못하는 학생들의 천국

    아무리 공부 못해도 출석일수만 채우면 졸업하는 나라, 등록금만 내면 대학 가는 나라

    최성재   
     
      2001년 미국생산성본부(American Productivity & Quality Center)는 교육부문 국가 모델(National Model)로 알래스카의 한 중등학교를 지정하고 생산성 최우수상
    (the Malcolm Baldrige Quality Award)을 수여했다.
    수상의 영광은 실상 한 학교가 아니라 6개 학교로 구성된 추가치 학군(Chugach School District)에게 돌아갔다. 학생 수는 다 합해야 250명 내외, 교사는 30명이니까, 1개 학교의 재학생은 40여명밖에 안 된다. 

    이 지역 학생들은 원래 학력이 전국 평균 수준에 한참 못 미쳤다. 유급생도 많았고, 중도 탈락자도 많았다.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은 드물었고, 취업하더라도 손가락질 받기 일쑤였다. 이래선 안 되겠다고 자각한 교사와 공무원이 교육에 대한 발상과 고정관념을 깨고 모든 학생을 위한 교육(whole child education)을 시작한 지 7년 만에 미운 오리새끼들을 우아한 백조로 거듭 나게 만들었다. 미국 대통령은 직접 이들에게 상을 수여했다. 

    추가치 학교는 먼저 개인의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했다. 교과과정도 크게 바꿨다.
    필수과목(수학, 과학, 영어)은 반드시 이수하게 하되, 직업훈련과 교양교육과 체육도 나란히 가르쳤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동일 연령, 동일 학년의 체제를 허물어 버렸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과정을 어떤 학생은 14살에 마칠 수도 있지만, 어떤 학생은 21살에 겨우 마칠 수도 있다. 이 차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 것이다. 아무 것도 몰라도 진급시키거나 졸업시키면, 그 학생은 평생 바보로 지낸다. 학력 미달에 말썽만 피운다고 가차 없이 퇴학시켜 버리면, 그 학생도 평생토록 위풍당당 자존심을 갖추기 어렵다. 이렇게 학생의 능력과 흥미에 맞추어 교육을 실시하면서도 시험은 대충 쉽게 출제하는 게 아니라 국가가 요구하는 최고 수준으로 높였더니, 고등학교 졸업자격 시험(the High School Graduation Qualifying Exam)을 필수적으로 통과하도록 했더니, 학력이 전반적으로 놀랍게 신장되고 중도 탈락자가 급격히 준 반면, 졸업 비율은 도리어 높아져서 3분의 2가 대학에 진학하게 이르렀다. 졸업 후 바로 취업해도 어디 가나 능력도 뛰어나고 인간성도 좋다는 칭찬을 받게 이르렀다. 

     한국에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사실상 유급제도가 없다. 나이가 곧 학년이다.

    지원자 100%를 무시험으로 데려가는 평준화가 공사립 가리지 않고 전국의 웬만한 도시에는 다 자리 잡게 되면서, 고입 선발고사가 만악의 근원으로, 사교육의 원흉으로 낙인찍히면서, 반면에 대학정원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상상불허 학력 미달자가 고등학교를 넘어 대학까지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심지어 어떤 대학은 조직폭력단이 총학생회를 조직적으로 장악하여 중견기업보다 큰 현금 수익을 올리는 경우도 생겼다. 지상경제의 지하경제화! 왜? 아무나 들어갈 수 있으니까! 전문대 포함 상위 33%가 진학하던 1991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대학 수학능력 불가능자가 지금은 4년제 대학에도 해마다 수만 명씩 진학한다. 더욱 황당한 것은 대학에 일단 입학하면 이런 자들도 졸업장을 받기가 과히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학점은 갈수록 화려해져서 A학점이 연립주택 옥상의 나일론 빨랫줄에 빼곡히 달린 빨래집게보다 흔하다. 과히 한국은 공부 못하는 학생들의 천국이다! 대학 졸업장 대량생산과 고등학교 졸업장 휴지화로 교육부는 역사적 사명을 다한 듯 목에 잔뜩 힘을 준다. “한국을 보라!”는 오바마의 칭찬에 만면가득 플라스틱 미소를 짓는다.
    전교조와 정치인, 기자와 시민단체로부터는 열렬한 박수를 받고. 

      한국이 입시지옥이라고? 학력 과열경쟁이라고?

    그것은 죽어도 공부하지 않고 생각은 숫제 증오하는 기자들의 반세기 앵무새 합창일 뿐이다. 초중고대 1천만 학생과 50만 교육자를 호령하는 재미로 사는 교육부와 교육청 나리들의 반세기 청개구리 걱정일 뿐이다. 외국 이론을 달달 외워 줄줄 읊어대며 잘난 척하는 정치교수들의 반세기 서당 개 풍월일 뿐이다. 강압적 평등과 협박성 협동을 지상낙원의 알파와 오메가로 확신하는 전교조 교사들의 반의 반세기 호루라기 경고일 뿐이다. 

    아무리 공부 못해도, 전 과목 9등급이어도 학년이 척척 올라가게 되면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진학하는 것도 특목고나 자율형사립고가 아닌 한 100% 가능해짐에 따라서(고교 진학률 4년 연속 99.7%), 고3이 되어도 중1 실력이 안 되는 학생이 수두룩하다. 너나 나나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학원에서 공부하는 것 같지만, 실지로 제대로 공부하는 학생은 열에 한둘이다. 많아야 열에 네댓이다. 졸고 떠들고 비밀 전화하고 인터넷 검색하고 문자질하고 빈둥거리고 코고는 시간이 훨씬 많다. 게다가 인권 운운하면서(이런 자들일수록 인류 역사상 최악의 북한인권에는 눈을 부라리거나 먼 산을 쳐다본다만), 교사의 따끔 체벌도 인권유린으로 규정하면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 나오는 어린 폭군처럼 어른 뺨치는 학생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 가끔 교실 현장이 인터넷이나 방송에 생생히 중계되는 걸 보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숨 막히는 일정표에 따르면 너도 나도 공부벌레처럼 공부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공부에 집중하는 시간은 거의 없다. 

    조기교육이니, 선행학습이니, 와글와글 떠들어대지만 내신 하위 0.01%, 전교 꼴찌도 인문계로 진학할 수 있으니까, 고등학생이 되어 일반고에서 실지로 수학과 영어와 과학 시간에 알아듣는 학생은 3분의 1만 되면 아주 우수한 반이다. 욕설 외에는 어휘력이 어찌나 빈곤한지, 우리말(국어)도 못 알아듣는 게 더 많다! 한두 명이나 서너 명이 이해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사회나 과학같이 학습 부담을 줄여 준다며, 결과적으로 공부 못하는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어 주기 위해서, 또는 국영수 잘하는 강남이나 특목고 학생을 위해서 과목을 무지막지하게 축소하는 바람에 탐구영역에서 어떤 과목은 선택한 학생이 한 반에 다섯 명을 넘지 못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나마 그중에서 알아듣는 학생은 한둘? 

      내신이 중요하다고? 대체 무얼 알아들어야 중요하지!

    수학 같은 경우는 끝까지 푸는 학생이 한 반에 다섯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다. 웃기는 것은 우열반을 편성하면, 찍기 실력에 따라 C반에서 껑충 B반을 건너뛰어 A반으로 곧장 올라가는 학생이 드물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수능에서 난이도와 관계없이 6등급 이하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보면 된다. 중1부터 새로 공부해야 될 실력이다. 분수 계산도 할 줄 모르고 1차 함수 그래프도 그릴 줄 모르는 고3이 전혀 외계인이 아니다. 새벽달 보고 저녁별 보는 고3 학생 중에 그런 학생이 전혀 외계인이 아니다. 뒤늦게 고3이 되어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공부하는 경우는 많지만, 공부는 공 들여 차근차근 탑을 쌓는 것과 같은데, 기단부와 탑신부와 상륜부가 뭔지도 모르고 닥치는 대로 쌓으려니 탑의 형태가 1년이 지나도 갖춰질 리 없다. 

    대체로 3월에 거창하게 시작한 수험생들이 5월만 되면 너도 나도 포기한다. 외우면 된다고? 이해가 안 되는데 어떻게 외워? 암기식 공부를 개탄하는 자들이 많은데, 대중매체에서든 술자리에서든 교육 문제만 나오면 입에 거품을 물고 잘난 척하는 자들이 많은데, 사람이 어디 앵무새인가? 초등학생이면 몰라도 사춘기에 접어들면 인간은 이해 안 되는 것은 열 번 스무 번 듣고 봐도 외워지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가만히 있어도 싱숭생숭해지고 간밤에 8시간을 자도 졸음이 살금살금 몰려오는 ‘계절의 여왕’의 방문을 받으면, 전국의 수험생 중에서 절반은 포기한다고 보면 된다. 어째 초인적인 의지로 끝까지 죽어라 공부하더라도 6, 7등급이 4, 5 등급으로 올라가기는 천하명장 나폴레옹이 70만 대군으로 시베리아의 동장군 1명에 맞서 이기기보다 힘들다. 재수, 삼수? 

      정말 웃기는 건 6등급 이하도 전국으로 따지면 오라는 대학이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그런 대학의 교수는 기생보다 간드러지게 웃으며 신입생을 상대로 눈물겹게 호객한다. 6등급 이하가 40%나 되니까, 통계청에 따르면 재수생 빼고 재학생만 전문대 포함 대학 진학률이 2008년 83.8%, 2011년 72.5%라고 하니까(2013년은 70.7% 교육부), 아무리 적게 잡아도 중1, 2 실력도 안 되는 학생들이 무늬만 대학생이 되는 비율이 최소한 23.8%에서 12.5%는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대학정원이 수능에 응시하는 재학생 숫자를 초과한다. 2014년 수능에 응시한 수험생은 총 65만 명인데, 그중에서 재학생은 51만밖에 안 된다. 대학정원은 56만이다. 실업계 학생도 대부분 수능에 응시하니까, 재수생이 없다면 대학정원이 재학생 응시생보다 5만을 초과한다. 

      고3 수능 응시생을 기준으로 단순 계산하면 2014학년도 대학 진학률은 109.8%이다.
    단 2013년 고3은 총 633,676명이다. 이를 기준으로 졸업하는 해에 대학진학률을 계산하니까, 70%에서 80% 정도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는 재수, 삼수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실질 대학진학률은 이미 100%라고 볼 수 있다. 그나마 대학은 입시가 있어서 일종의 유급제 역할을 대신했지만, 교육 포퓰리즘에 의해 대학 정원이 고3 수능 응시생을 초과해 버리는 바람에 그나마 하위권 대학은 입시의 유급제 해방구다. 박근혜 정부가 대학입학정원을 현재 56만에서 2023년까지 40만으로 축소하겠다는 것은 수십 년 만에 처음 듣는 교육 낭보다. 이것도 알고 보면, 2023년에 대학에 입학할 초등학교 3학년은 455,895명밖에 안 되니까(초2는 421,027명), 실은 대학정원을 굳이 줄이지 않더라도 2023년에는 절로 대학정원이 그만큼 줄어든다. 

    국제경쟁력이 있는 인재를 배출하려면,

     강제로 대학정원을 줄이는 것보다는 독일의 아비투어(Abitur, 라틴어로 ‘떠남’의 뜻)처럼 엄격한 고교 졸업시험 내지 대학 자격시험을 보아야 한다. 예전의 예비고사나 수능 초기처럼 정부가 문제 난이도에 대해서 일체 간섭하지 말고 최고 수준의 출제위원(고려와 조선의 과거科擧 시관試官은 당대 최고의 학자)에게 전적으로 맡긴 후에 대학정원에 관계없이 절대평가로 대학수학능력 가능자를 뽑되, 15살에 통과하든 25살에 통과하든 기회는 얼마든지 주면, 그렇게 될 리는 없지만, 실질 대학진학률이 100% 되더라도 크게 문제될 게 없다. 

      이런 시험을 상급 학교에 진학하는 초등 6학년과 중학 3학년을 대상으로도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처럼 12년 동안 길게는 16년 동안 공부 못하는 학생들의 천국이, 공부 잘하는 학생이 죄인이 되는, 두더지 방망이에 얻어터지는, 금의야행(錦衣夜行)하는, 나라로 계속 남을 것이다. 과학고나 외고, 자율형사립고에 중학 정규 과정에 따른 전 과목 연합고사를 절대 못 보게 하는 바람에 세계적 수준의 잠재력을 가진 학생을 이제는 전국적으로 골고루 선발할 수가 없다. 서울 강남이나 목동, 대구 수성구, 경기 일산과 분당 등 특정 지역의 부모 잘 만난 학생 아니면 명문고에 들어가는 것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기본도 제대로 안 가르치고 교사의 양심에 어긋나는 쉬운 문제만 내는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사교육도 그 정도 수준에 맞추어 가르치는 지역에서 자란 학생들은 스티븐 호킹의 잠재력을 타고 났더라도 고3이 되면 아무리 잘해도 고1, 고2 수준의 현 수능에 고득점하는 정도를 벗어나지 못한다. 실지로는 그런 학생은 수능에서 평균 2등급 받기도 힘들다. 서울대 지역균형선발에서 해마다 4개 영역 중 2개 영역 2등급도 못 맞추는 학생이 100여 명이나 된다. 그들의 내신은 내장산이나 그 옆의 백암산 단풍처럼 화려하다! 

      예비고사까지 합해서 2009학년도에 처음으로 무려 30년 만에 교육부 주관 대입에서 만점이 나온 까닭은 무엇일까. 그때까지만 해도 최소한 출제에 관한 한, 정치권력이 거의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무엇보다 겸손을 배웠다. 아무리 공부해도 만점은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실수 한두 개로는 인생이 변하지 않는다는 귀한 교훈도 체득했다. 그러나 그 후 현대판 프로크루스테스가 교육 권력을 틀어쥐고 물수능 불수능을 오가는 바람에 금년처럼 만점자가 무려 33명이나 양산되는 개그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 33명 중에 과연 피겨 스케이팅이나 수영으로 말하면, 김연아와 박태환이 참가하는 종목에 단 한 명 올림픽 기준을 통과할 자가 있을까. 국내 1위의 기준이 세계대회 자격기준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탁월한 능력을 가진 공부의 김연아와 박태환을 공개적으로, 제도적으로 물 먹이는 셈이다. 잠재능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것이 교육이라고 볼 때, 평가는 엄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선발 시험을 교육 포퓰리즘의 치맛자락으로 감싸면 교육 도토리족이 양산된다. 

      수능 전국 1등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지도 않은 지도 오래되었다. 일선학교에서 성적표 보고 역추적하여 발표한다. 65만 많을 때는 100만 명 중의 1등한 인재를 쉬쉬한다. 경쟁을 부추긴다며, 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질투심을 사회정의로 호도하고, 다름을 틀림이나 나쁨으로 확신하는 획일화를 교육평등으로 호도하는 교육 포퓰리즘이 자리 잡은 이후의 일이다.

    그러면서 노벨 과학상은 5000만이 꿈에도 소원이다.

    김연아의 올림픽 금메달 수상을 경쟁과열, 사교육 망국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국가 1급 비밀로 분류하여 보도 금지한다면, 과연 국민 여동생이 금메달을 딸 수 있었을까.
     노벨 과학상은 공부 잘하지 않으면 절대 수상하지 못한다.
    공부 잘하는 학생을 국민 동생으로 떠받들 때, 중국처럼 국가 주석과 국무원 총리가 1월 1일을 수학 원로와 과학 원로에게 세배 드리는 것으로 시작할 때, 전국의 잠재력 뛰어난 인재들이 너도 나도 죽자 사자 공부에 매달리는 법이다. 귀족 학교라니, 사교육 부추기라니, 하면서 실지로는 음습하고 음침한 데서 일부 돈 많고 정보 밝은 부모 잘 만난 학생들만이 입학할 수 있게 함으로써 과거의 빛나는 경기고나 경북고 같은 세계적 명문학교가 아니라 특목고를 진짜 귀족학교로 만들고, 게다가 중학교에서 정식으로 그런 학교에 들어가는 비밀 교육과정을 가르치지 않으니 실지로는 특수한 사람들만의 특수한 사교육을 더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