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에 대해서는

    늘 匕首(비수)를 품고 있어야

    중국에 속아 [자위적(自衛的) 핵무장] 카드를 버리면 안된다.
    한국이 미일(美日)의 미사일 방어망에 가세하는 것도
    중국의 핵(核)미사일을 무력화시키는 匕首(비수)이다.

    趙甲濟

         

      

    아인슈타인의 편지


     
     

  •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에
    유명한 평화주의자의 역할이 있었다는 사실은
    핵무기의 본질적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1939년 8월,
    제2차 세계대전 발발 한 달 전
    미국 프린스턴 대학 교수 엘버트 아인슈타인을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헝가리 출신 물리학자 레오 스질라드였다.
    아인슈타인처럼
    나치를 피해 독일에서 미국으로 망명온 유대인 과학자였다.
    그는 나중에
    이탈리아 출신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부인이 유대인으로서 무솔리니의 탄압을 받자 미국으로 피신)와 함께
    흑연을 減速材(감속재)로 이용,
    최초의 연쇄반응을 성공시켜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원자로를 만든 사람이다.

    스질라드는
    친구인 아인슈타인에게,
    나치 독일의 과학자들이 핵분열에 성공하였으며
    연쇄반응 실험에 몰두하는 것 같다면서
    가공할 新武器(신무기)를 만들 위험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발견한 질량-에너지 等式(등식)인 E = mc2(제곱)이
    핵폭탄 개발의 원리가 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친구의 설명을 듣고는 곧 깨달았다.
    핵분열과 연쇄반응이 핵폭탄 제조로 연결된다는 것을.

    스질라드는
    미국도 대응책을 세워야 하니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올리자고 했다.
    초안은 스질라드가 쓰고,
    아인슈탄인은 교정을 보고 서명하였다.

    이 편지는 아인슈타인-스질라드 편지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어떻게 편지를 전달하느냐였다.

    스질라드는
    최초로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
    국민적 영웅이 된 찰스 린드버그의 도움을 받으려 하였으나,
    그가 고립주의자이고,
    친(親)나치 인물임을 알고는 포기하였다.

    이 편지는 결국
    알렉산더 삭스라는
    루즈벨트 대통령의 친구를 통하여 전달되었다. 


    맨해튼 계획


     
    1939년 10월,
    독일의 폴란드 침공 직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물리학자 명의의 편지를 받은 루즈벨트는
    군사문제 고문인 와트슨에게 이를 건네면서
    "행동이 필요해"라고 했다.

    과학자들로 急造(급조)된 위원회는
    대통령에게 대응책을 건의,
    육군이 관할하는 핵폭탄 개발을 위한 [맨해튼 계획]이 시작되었다.
    뉴멕시코주 로스알라모스의 연구소를 중심으로 전개된 맨해튼 계획엔
    한때 13만 명이 종사하였고,
    20억 달러(요사이 가치로는 230억 달러)가 들어갔다.
    90%가 原子爐(원자로) 등 시설을 짓는 데,
    10%가 폭탄 제조-설계 등에 쓰였다.

    아인슈타인은
    당초의 핵개발 계획이 느리게 진전되자
    1940년 3월 다시 루즈벨트에게 편지를 썼다.
    [베를린에선 우라늄 프로젝트가 급진전하고 있다]고 경고하면서
    신속한 대응을 촉구하였다.

    대통령은 긴급 대책 회의를 소집하고,
    아인슈타인도 참여시키도록 지시하였으나
    그는 감기에 걸렸다면서 자리를 피했다.

    1945년 3월이 되자
    종말이 가까워진 독일이 핵폭탄을 개발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미국의 핵개발에 핵심적 역할을 한
    스질라드는
    원자폭탄의 파괴력을 알고 있었으므로
    사용을 중단시키려고 했다.

    그는 다시 아인슈타인을 찾아가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 달라고 했다.

    아인슈타인은
    스질라드와 과학자들을 만나 줄 것을 건의하는 편지를 보냈으나
    대통령은 전달된 편지를 읽지 않았다.

    루즈벨트가 4월12일에 죽은 뒤
    이 편지가 집무실에서 발견되어
    트루먼 후임 대통령에게 전해졌다.

    그는 편지를 번스 국무장관에게 주었고
    번스는 스질라드를 만났으나
    건의를 묵살했다.


    원폭(原爆) 사용 반대 건의


    스질라드는
    독일이 망한 후 핵폭탄이 일본에 투하될 것임이 확실해지자
    맨해튼 계획에 참여한 70명의 과학자들로부터 서명을 받아
    1945년 7월17일에
    트루먼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냈다.

    이 탄원서에서
    스질라드는
    [우리가 개발한 원자폭탄은
    첫 단계에 불과하고
    앞으로 이를 발전시킬 경우 거의 무한한 파괴력을 갖게 될 것]이라면서
    사용하기 전에 먼저
    일본에 최후통첩을 할 것을 건의하였다.

    즉 미국이 일본에 요구하는 조건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뒤
    일본이 이를 거부하면
    그 이후 신중하게 판단,
    사용을 검토해달라고 하였다.

    이 탄원서는 대통령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원자폭탄을 쓰지 않고 재래식 무기만 가지고 일본에 상륙전을 펼 경우,
    미군 피해는 1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미국 정책 결정자들은,
    전쟁이 끝난 뒤 원자폭탄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를 사용하지 않아 엄청난 인명(人命) 피해가 났다는 비난을
    정치적으로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

    맨해튼 계획을 지휘하던 글로브 장군은
    스질라드에 대한 조사를 지시하고,
    서명자 거의 전원을 해고하였다.

    아인슈타인은
    죽기 전에 핵폭탄 제조 요청 편지를 쓴 걸 후회하면서도
    독일의 핵개발 정보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자신을 합리화하려 했다.
    아인슈타인 자신은
    맨해튼 계획에 참여하지 못하였다.
    FBI가,
    그의 평화주의적 성향 때문에
    보안에 위험을 주는 인물이란 판정을 하였던 것이다.


    나가사키의 불운(不運)


    헨리 루이스 스팀슨은
    2차세계대전 때
    미국 전쟁성 장관이었다.
    그는 공화당원이었으나
    민주당인 루즈벨트와 트루먼 정부하에서 요직을 맡았다.
    국익(國益)만 생각하는 불편부당한 자세 덕분이었다.

    1945년에
    그가 원자폭탄 투하를 결정할 때
    나이는 78세였다.
    미국 지도부 인사들중 最年長者(최연장자)였고,
    공직(公職)경력이 화려했다.
    이런 권위로 해서
    대통령도 그를 존중했다.

    1893년에
    그는 마벨 웰링턴 화이트와 결혼했다.
    신혼여행을 일본 교토로 갔다.
    1,000년 고도(古都)의 아름다움에 취했다.
    일본인들의 정직과 예절에 반했다.

    1945년,
    미국 지도부는
    개발에 성공한 원자폭탄을 투하할 후보지를 논의하고 있었다.
    1차 후보지로 추천된 곳은
    히로시마, 교토, 니가타, 고쿠라였다.
    이들 도시는 그때까지 폭격을 당하지 않았으며
    군(軍) 시설이 있었다.

    스팀슨은
    교토를 제외시켰다.
    신혼여행 때의 좋은 인상도 한 이유였다.
    일본의 정신이 담긴 이 도시를 파괴하면
    민심(民心)이 흉흉해져 전후(戰後) 관리가 어렵다는 것이
    공식적인 이유였다.

    원폭 투하지 선정위원회는
    제외된 교토 대신에 나가사키를 집어넣었다.

    945년 8월6일 새벽,
    사이판 옆에 있는 티니안섬을 출발한
    미군의 B-29 폭격기는
    오전 8시15분
    히로시마 상공에서 폭탄을 투하했다.

    우라늄탄(彈)이었는데
    <리틀 보이>라는 별명을 가졌다.
    570m 상공에서 폭탄이 터졌다.
    7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후유증으로 더 많이 죽었다.

    8월9일 새벽,
    소련이
    대일(對日) 선전포고를 하고 만주를 침공하였다.

    이날 오전,
    티니안을 이륙한 미군 B-29는
    요코하마 상공에서 호위 전투기와 합류한 뒤
    목표지인 북(北) 규슈 고쿠라 상공에 도착했다.
    고쿠라의 하늘은 안개와 연기에 덮여 있었다.
    B-29는 몇 번 상공을 선회했으나
    투하 목표물을 육안(肉眼)으로 볼 수가 없었다.

    기장(機長)은
    B-29를 대체 목표지인 나가사키로 돌렸다.
    여기도 구름에 덮여 있었다.
    기름이 줄어드는 B-29가
    마지막으로 상공을 선회하는데
    구름이 갈라지면서 아래로 미쓰비시 중공업이 보였다.

    거기를 향해서
    <팻맨>이란 별명을 가진 플루토늄탄을 투하했다.

    약500m 상공에서 터졌다.
    오전 11시가 지난 시점이었다.

    이 플루토늄탄은
    폭발력이 TNT 기준으로 2만t이었다.
    히로시마 원폭(原爆)보다 40% 더 강한 것이었으나,
    나가사키에는 산이 많아 피해는 덜했다.

    히로시마와 마찬가지로 나가사키엔
    한국인들도 많았다.
    미국인 포로 수용소도 있었다.
    이 수용소에 있던 미군포로 수백 명도 죽었다.

    만약 미국이 원자폭탄을 쓰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미군은
    1945년 말에 일본에 상륙할 예정이었고,
    소련군은 8월9일에 만주를 침공하기 시작하였으니,
    한반도 전체가 소련군에 점령되어
    한국은 공산화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원폭(原爆) 투하는
    일본의 조기(早期) 항복을 불러
    38선 이남(以南)을 자유지역으로 확보하도록 하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한국의 자위적 핵무장론에 압도적 지지 여론


    지금 한국에서 핵무장을 주장하는 이들도
    아인슈타인처럼 [최후의 自衛的(자위적) 수단]임을 강조한다.
    아인슈타인이
    나치 독일의 핵개발에 대응하기 위하여 핵폭탄 개발을 건의한 것처럼
    이들도 북한의 핵무장에 대응하기 위한 자위적 목적을 강조하고,
    北이 핵무장을 폐기하면
    한국도 같이 폐기한다는 조건을 달자고 한다.

    2013년 초,
    북한 김정은 정권이 세번째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强行(강행)하자
    자위적 핵무장론이 公論化(공론화)되었다.
    보수단체들이 핵무장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언론도 처음으로 이 문제를 다뤘다.
    [NPT(핵확산금지조약)를 탈퇴하고 핵무장 여부를 국민투표로 결정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집권 새누리당도 가세하였다.

    당(黨) 대표를 지낸 鄭夢準(정몽준) 의원이
    특히 왕성한 활동을 했는데,
    외신 인터뷰와 워싱턴 출장 강연을 통하여
    자위적 핵개발의 불가피성을 호소하였다.

    그는 지난 봄 카네기 재단이 주최한 <2013 국제 핵정책 컨퍼런스>에 참석,
    “한국은 국가안보가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에서 NPT 10조에 의거,
    NPT에서 탈퇴할 권리를 행사할 수도 있다”고
    했다.

    중국에는 이렇게 경고하기도 했다.

    "북한이 계속 핵 보유를 고집하면,
    한국도 이 옵션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북한은 알아야 합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동북아시아의 핵 확산은
    중국이 감싸고 있는 북한 때문에 초래 될 것입니다.
    저는 중국에 묻고 싶습니다.
    한국이 미국의 전술핵을 재도입하길 원합니까?
    아니면 자체적으로 핵 보유 능력을 개발하기를 원합니까?”


    김정은 정권이 한국에 대한 핵선제공격 가능성까지 위협하는 상황에서
    한반도로 세계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뉴욕타임스>, <이코노미스트> 등 주요 외국언론도
    핵무장론의 대두를 보도하였다.

    한국의 여론도 압도적으로 자위적 핵무장 지지였다.
    峨山(아산)정책연구원(원장 咸在鳳)은
    3월23일 정기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응답자의 68.6%가 남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뉴욕타임스>紙는
    2013년 6월의 美·中 정상회담 직후의 평론기사(데이비드 생거 기자 작성)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習近平(시진핑) 주석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고,
    主席(주석)도 동의하였다고 썼다.


    "북한이 현재와 같은 길을 가면
    한국과 일본도 핵개발 유혹에 빠지고,
    미국은
    더 많은 병력을 태평양 지역에 배치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非核化)]


    2013년 5월 초
    워싱턴에서 회담한 朴槿惠(박근혜)-오바마 대통령이
    공동으로 발표한 <韓美동맹 60주년 기념 공동선언>엔 이런 문장이 있었다. 


    "Both the United States and the Republic of Korea are determined to achieve the peaceful denuclearization of North Korea..."

    "미국과 한국 두 나라는 북한의 평화적 비핵화를 달성할 결심이다..."


    [the peaceful denuclearization of North Korea]란 말은
    의미 있는 용어이다.

    북핵(北核)관련 외교문서나 남북관계 합의문엔
    [한반도의 非核化(비핵화)]로 나왔다.

    북한정권은 [한반도의 非核化]란 용어 속에
    미국 핵무기의 반입 금지-한국의 핵무장 반대-주한미군 기지 조사 등의
    의미를 포함시켰다.
    요컨대 미국의 핵문제와 북한의 핵문제를
    동시에 해결하자는 뜻으로 만든 말이
    [한반도의 非核化]이다.

    이미 한국에선 미국의 전술핵이 철수되었다.
    한국은 핵무장을 위한 재처리 시설과 농축 시설이 없다.
    즉 한국엔 [비핵화(非核化)]할 대상이 없다.

    그럼에도 6者회담은
    합의문에서
    [한반도 非核化]라는 말을 채택함으로써
    北의 용어혼란 전술에 말려들었다.

    최근 공개된 노무현-김정일 대화록엔
    6자회담 북한 대표 김계관이 한국 대통령을 앉혀놓고 이런 말을 한다. 


    "핵물질 신고에서는
    무기화된 정형은 신고 안 합니다.

    왜?

    미국하고 우리하고는 교전상황에 있기 때문에
    적대상황에 있는 미국에다가
    무기 상황을 신고하는 것이 어디 있갔는가.
    우리 안한다."


    노무현은 이 엄청난 이야기를 듣고도
    한 마디 반박을 하지 않았다.
    미국과 전쟁중이므로 핵무기는 숨기겠다는
    北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한국만의 비핵화(非核化),
    주한미군의 비핵화(非核化),
    더 나아가서 주한미군 철수를 함축한다.

    그런 점에서 韓美 두 대통령이
    [북한의 非核化]라고 정확한 용어를 쓴 것은 발전이었다.

    한미공동선언엔 또 이런 대목이 있었다. 


    "미국은
    확장된 억지력과 核 및 재래식 무기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美군사력을 동원하여 확고하게 대한민국을 지킨다는 약속을 견지한다."

    The United States remains firmly committed to the defense of the Republic of Korea, including through extended deterrence and the full range of U.S. military capabilities, both conventional and nuclear.


    한국이 南侵(남침)당할 때
    핵무기 사용도 不辭(불사)한다는 강한 표현이었다. 


    "연합사 전력(戰力)은 1조3,000억 달러짜리"


    韓美 사이에 진행되는 원자력 협정 개정 협상에서도
    한국 측은
    使用後(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두 나라는
    2014년 3월에 만료되는 기존 협정을
    2016년까지 2년 연장하기로 해놓고 협상을 진행중이다.
    한국이 재처리 및 농축시설을 갖는 게
    핵개발로 직결되는 일은 아니지만
    유사시 핵무장을 선택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을 갖추는 것이다.

    2015년으로 예정된 韓美연합사 해체도
    한국 측의 요구에 의하여 無期(무기)연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수개월 전 만난 정부 안보(安保)부서의 한 고위 당무자는
    "朴槿惠 정부가 韓美연합사 체제를 유지하기로 하였다"면서 이렇게 설명하였다. 


    "韓美연합사가
    전시(戰時)에 동원할 수 있는 전력(戰力)을 계산해보니
    1조3,000억 달러어치였습니다.
    우리 두 나라가 이렇게 엄청난 투자를 해놓았기에
    북괴가 남침하지 못한 것 아닙니까?

    통합된 전시(戰時)작전권을 이원화(二元化)시키고
    연합사를 해체하면
    이 자원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잖아요?

    보충하려면 얼마나 많은 국민세금을 써야 합니까?"


    우리 정부는,
    2015년으로 예정된 한미연합사 해체 시기를 재연기,
    또는 무기연기 시켜
    사실상 한미동맹군 체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고
    미국의 반응도 호의적이라고 한다.

    노무현은
    퇴임 후인 2008년 10월 강연에서,
    韓美(한미)연합사 해체를 가져오는 戰時(전시)작전 통제권 전환 결정이
    북한정권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놀라운 고백을 한 적이 있다. 


    북한은
    한국보다 미국을 더 불신하고 두려워합니다.
    유사시에 미국이 작통권을 행사하는 상황은
    북한을 더욱 두렵게 하여
    남북 간 대화와 협상이나 신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

    ...

    戰時(전시) 작전통제권은
    북한이 무력(武力) 도발을 할 때만 행사된다.
    도발을 안 하면 미국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강도질을 안 하면 형사를 겁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

    동북아 평화구조를 위해서는
    다자 안보 대화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미국이 한국군에 대한 작전 통제권을 행사하고 있는 상태라면,
    이 대화 체제에서 미국이 너무 커보이게 되고
    이것은 다자(多者)체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나는 작통권의 환수를
    남북 간의 신뢰구축에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고 추진하였습니다.


    노무현은
    적군(敵軍)이 동맹군에 대하여 불안해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韓美연합사 해체를 핵심으로 하는 전시(戰時)작전권 전환을 결정했다고 고백한 셈이다.
    그래놓고 이게 남북간 신뢰구축이라고 주장하였다.

    강도가 마음대로 부자집을 털 수 있도록
    경비원을 내 보내는 게 강도와 부자 사이의 신뢰 구축이란 식이다.

    韓美연합사가 있어야 北은 불안해질 것이고
    그래야 도발을 막을 수 있다.

    北의 두려움을 없앤다는 건 무슨 뜻인가?

    도발해도 응징을 받지 않을 것이란 믿음 아닌가?

    北이 안심하게 되면 도발 가능성은 높아지고, 한국은 불안해진다. 


    [유관(有關) 핵무기 개발]의 의미


    올해 초부터 한국에서 본격화된 자위적 핵무장론을,
    미국과 중국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고,
    한국 정부도 이를 외교 카드로 삼고 있으며,
    미국 정부도 중국을 압박할 때
    이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게 하였으나,
    중국의 북한에 대한 태도가 바뀌고 있다는 희망적 관측이
    한국의 언론 보도를 통해 확산되면서
    여름부터는 자위적(自衛的) 핵무장론에 대한 관심이 약해지고 있다.

    오랜 사대주의의 영향이 남아
    親中(친중)성향이 강한 한국 언론과 정치권은
    북핵(北核)문제 해결을
    중국에 부탁하여 풀려는 생각을 드러냈다.

    이런 가운데
    2013년 6월 말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 頂上(정상)회담을 가졌다.

    6월27일
    朴槿惠(박근혜) 대통령과 習近平(시진핑) 주석 회담을 거쳐
    발표된 <韓中미래비전 공동성명>엔
    진전된 표현이 없었다.

    성명의 핵심은 아래 대목이다. 


    한국측은
    북한의 계속되는 핵실험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북한의 핵보유를 용인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

    이와 관련,
    양측은 有關(유관) 핵무기 개발이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및 세계의 평화와 안정(安定)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 하였다.
    양측은
    한반도 비핵화(非核化) 실현 및
    한반도 평화와 안정 유지가
    공동이익(利益)에 부합함을 확인하고
    이를 위하여 함께 노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여기서
    <북한의 계속되는 핵실험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북한의 핵보유를 용인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 쪽은
    중국이 아니라 한국이다.
    중국이 이런 표현에 동의하지 않았으므로
    한국만이 그런 주장을 하였다고 明記(명기)한 셈이다.

    문제는 그 다음 문장이다.

    <有關(유관) 핵무기 개발이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및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 하였다>
    는데
    [유관(有關) 핵무기 개발]은 무슨 뜻인가?

    북한의 핵개발과 유관(有關)한 핵개발,
    즉 한국과 일본의 핵개발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표현이다.

    그런 핵개발은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및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 하였다>
    고 한다면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은
    북한정권의 핵개발을 저지할 수 있고,
    중국을 그 방향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카드,
    즉 [한국의 자위적 핵개발 카드]를 포기하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우리 외교부는
    [有關 핵무기 개발]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해석문제가 나올 정도의 애매모호한 표현은
    중국의 북핵(北核) 해결 의지가 우리가 바라는 수준이 아님을 드러낸 것이다. 


    친중반일(親中反日) 노선의 위험성


    중국은 또
    한국과 미국에 유리한 용어인 [북한의 非核化(비핵화)]는 거부하고
    중국과 북한에 유리한 [한반도 非核化]를 넣도록 하는 데는 성공하였다.

    朴槿惠-오바마 대통령은
    공동성명에서
    [한반도의 비핵화]란 용어 대신에
    [북한의 비핵화]라고 올바르게 썼는데,
    朴 대통령은 중국에 대하여는 이를 관철시키지 못하였다.

    중국은
    손님을 극진하게 대접하는 척하면서 분위기를 띄운 뒤
    實利(실리)를 챙긴 셈이다.

    이런 중국을 상대할 때
    한국은 반드시 匕首(비수)를 가져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환영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한미(韓美)동맹 덕분이었다.
    韓美 동맹은
    韓美日 동맹 구조의 일부이므로
    韓日관계가 나빠지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일본은 韓美 동맹군의 후방기지 역할을 한다.

    朴槿惠 정부의 親中反日(친중반일) 노선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민주국가인 일본과 멀어지고
    공산독재 국가인 중국과 친해지면
    한국의 國益(국익)이 증진되나?

    작년 8월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천황 비판 발언 이후
    韓日관계는 외교적으론 사실상 단교(斷交)상태이다.

    그 사이 일본에선
    아베 정권이 압도적 국민 지지로 전례 없이 강력해졌는데,
    지지의 원천은 보통 일본인들의 반한(反韓)-반중(反中) 감정이다.
    일본에선 아베 총리의 최고 선거운동원은
    李明博이었다는 우스개마저 나온다.
    외교적 갈등의 수준을 떠나
    양쪽 국민 감정의 악화로 치닫는 양상이다.

    한국 언론의 일본 비판이
    사실을 떠난 억측과 비약일 때도 있다.
    韓日 갈등의 결과가
    한국의 국익(國益)에 끼칠 득실(得失)에 대한 냉정한 계산도 실종상태이다. 


    중국이 동북아(東北亞)의 패권을 추구할 때


    중국은
    세계 패권을 놓고 미국에 도전할 수 있는
    군사력과 과학기술력이 없다.

    명(明), 송(宋), 한(漢) 등
    역대 漢族(한족) 왕조는 문화大國(대국)이었지만
    군사弱國(약국)이었다.

    다만 東北亞(동북아)에서 패권국가가 되려 할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韓美日 동맹을 깨야 한다.
    중국은
    한반도 통일과정에서
    韓美동맹을 약화시키거나 해체시키려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경우
    한국의 종북(從北)세력은 종중(從中)세력화할 것이다.
    일부 한국인의 기질 속엔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 根性(근성)이 남아 있다.
    이들이 韓美동맹을 해체하고,
    한국을 중립화하자고 나올 것이다.
    이는 중국 공산독재 체제의 引力圈(인력권)으로
    한국을 밀어넣게 될 것이다.

    중국은
    개인의 人權(인권)과 자유 등
    인류보편적 가치를 한 번도 구현한 적이 없는 나라이다.
    GDP 규모(구매력 기준)가
    EU(유럽연합)와 미국을 능가한 한중일(韓中日) 사이의 경제협력 관계는
    외교적 마찰에도 불구하고
    질적으로, 양적으로 깊어지고 넓어지고 있다.
    경제적 보복을 하면 쌍방이 다 손해를 보는 구조이다.
    경제의 힘이 갈등의 한계를 설정할지 주목된다. 


    핵(核)미사일 실전(實戰)배치


    朴槿惠-習近平 회담은,
    한국의 자위적 핵개발 필요성을 재확인시켜주었다.
    북한정권이
    시간을 끌면서 핵무기를 小型化(소형화)하여
    이미 보유하고 있는 미사일에 탑재,
    휴전선 북방에 實戰(실전)배치하는 상황을 저지할 수 있는 행동을
    중국에 기대할 수 있는가는 의문이다.

    시간문제인 북한의 [핵(核)미사일 실전(實戰)배치]
    한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이렇다. 


    1. 북한의 독재자가
    核미사일 발사단추를 누르는 걸 말릴 사람이 없다.

    발사단추를 누르면 7분 안에 서울 상공에서 터진다.
    한국은 이를 요격할 수단이 없다.
    완벽한 核미사일 방어망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개발될 것 같지 않다.

    서울-인천-경기도 등 수도권에
    한국 인구의 반(半),
    경제력의 거의 70%가 집중되어 있다.
    핵폭탄이 가장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는 곳이다.
    核선제공격이 성공하면
    대한민국은 회복이 불가능한 壞滅的(괴멸적) 타격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북한 독재자는 핵단추를 누르고 싶은 유혹을 강하게 느낄 것이다.


    2. 미국이 제공한다는 핵우산은
    이런 상황에서도 믿을 수 있나?

    7분이면 한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파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김정은에게
    애매모호한 [핵우산] 약속이 억지력으로 먹힐까?

    核미사일로 선제공격을 당한 한국은
    사실상 국가기능을 상실한다.

    미국이 이미 망해버린 나라를 구출하기 위하여,
    평양을 核무기로 보복공격할 수 있을까?

    북한정권은 核미사일로 수도권을 전멸시킨 다음
    미국에
    "만약 우리를 공격하면
    미국 본토는 물론이고 일본-오키나와-괌에 있는 미군 기지를 공격하겠다"고
    위협할 것이다.

    미국은 회복불능의 한국을 위하여
    그런 공격을 감수하고,
    즉 미국의 한 도시를 희생시킬 각오를 하고 핵무기를 쓸 것인가?

    미국의 대통령이, 의회가, 언론이
    이를 결단하거나 허용할 것인가?


    3. 서울의 위치와 집중도 때문에
    북한정권의 核미사일 실전(實戰)배치는
    한국이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實戰배치는 그 자체가 이미 한국의 파멸을 예정하는 것이므로
    이를 금지선으로 설정해야 한다.

    核미사일 實戰배치를 허용하면
    한국은 북한정권의 인질이 되든지 미국에 종속되어
    국가적 독립성을 잃게 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공개적으로 천명해야 한다:

    "북한이
    핵미사일을 실전(實戰)배치하는 것은
    선전포고에 준하는 행동이므로
    이를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
    우리는 국가 생존 차원에서 모든 수단을 동원,
    반드시 이를 저지할 것이다."


    4. 한국은 국가생존 차원에서
    北이 핵미사일 實戰배치를 하지 못하도록
    사전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북한의 核 및 미사일 개발 시설 파괴,
    기술자 무력화(無力化),
    북한정권 붕괴 작전 등도
    검토해야 한다.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 및 공동사용권 확보 ,
    핵잠수함 常時(상시) 파견,
    韓美연합사 해체 작업 중단 등도.
    국방비를 GDP의 4%까지 증액하겠다는 각오도
    천명할 필요가 있다.

    全面戰(전면전)을 각오하고서라도
    敵(적)의 핵미사일 배치는 막겠다고 나서든지
    자위적 핵무장에 착수해야
    국가 자격이 있다.

    핵문제는 이 정도의 국가적 결단 없이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핵을 개발하기로 한 북한이
    체제의 명운(命運)을 거기에 걸었으니
    그걸 막겠다는 한국도
    같은 수준의 결단을 해야 맞다.


    종북(從北)세력의 존재


    북한정권은
    한국이 갖지 못한 두 개의 전략 무기를 갖고 있다.

    하나는
    核무기와
    다른 하나는
    한국내의 從北세력이다.

    북한 지도부는,
    이 두 가지 神器(신기)를
    전략적으로,정치적으로 결합시키면
    한국을 공산화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므로
    개방에 나서지 않고 군사적 모험주의 노선을 견지하면서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예컨대 북한은
    재래식 군사력으로 기습 남침(南侵),
    서울을 포위한 다음,
    [현위치 휴전]을 제의하고,
    불응하면 核무기를 사용하겠다고 위협하면서,
    남한내 종북(從北)세력에 지령,
    평화至上(지상)주의를 내세우면서
    현위치 휴전제의를 받아들이자고 선동하도록 만들 수 있다.
    포위된 한국 정부가 결사(決死)항전을 결심하지 못하고
    [현위치 휴전]을 받으면 대한민국은 소멸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10월 김정일을 만난 자리에서
    “나는 지난 5년 동안
    北核문제를 둘러싼 북측의 6자회담에서의 입장을 가지고
    미국하고 싸워왔고,
    국제무대에서 북측 입장을 변호해 왔습니다”
    라고
    말하였다(國情院의 요약 보고서).

    敵(적)의 핵개발을 저지해야 할 대한민국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利敵(이적)행위를 했다는
    일종의 고백이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장이었던 林東源(임동원)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부시 대통령은 핵의혹을 조작해 제네바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썼다.

    북한정권도 인정한 비밀 핵개발을 [조작]이라고 조작,
    일방적으로 적(敵) 편을 들었다.
    퇴임한 김대중도,
    “미국은, 북한이 농축우라늄을 갖고 있다,
    그래서 핵까지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 증거를 내놔야 할 것입니다”
    (2004년 6월15일, MBC 특별대담에서)라고 하여
    애써 北을 감쌌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간첩 등 對共(대공)사범 3538명을 사면,
    대한민국 파괴의 자유를 주었다.

    국회엔 지금 28명의 반공법-국보법 위반 前歷者(전력자)가 들어가 있다.
    19대 국회가 개원될 때
    민주당 127석 가운데
    35%인 44명이 전과자였고
    그 가운데 절반은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위반자였다.

    2009년 7월
    폴란드를 방문중이던 李明博(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바르샤바 영빈관에서 유럽의 유력 뉴스전문채널 <유로뉴스>(Euro News)와 인터뷰를 갖고
    "지난 10년간 막대한 돈을 (북한에) 지원했으나
    그 돈이 북한 사회의 개방을 돕는 데 사용되지 않고
    核무장하는 데 이용됐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고
    밝혔다.

    敵의 핵개발을 돕는 것보다 더 큰 반역은 없다.
    미국은 소련에 핵 관련 정보를 제공한 과학자 부부를 사형에 처하였다.
    李明博 정부는
    좌파정권의 核개발 지원 의혹을 제기만 했을 뿐
    후속 조사를 하지 않았다.
    조사를 불가능하게 만들 만큼
    한국내 종북-좌파세력은 강대하다.

    자위적 핵무장론은 이들에 대한 견제도 될 것이다. 


    한국판 [스타 워즈] 전략


    중국 지도부는
    美日이 건설중인 미사일 방어망에
    한국이 가입하는 사태를 가장 걱정하고 있다고 한다.
    韓美日의 미사일 방어망이 완성되면(기술적 문제로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북한 핵미사일뿐 아니라 중국의 핵미사일이 무력화(無力化)된다.

    중국이 미국을 핵미사일로 위협할 수 없게 된다면
    전략적-외교적 위상이 약해진다.
    중국의 핵미사일 기지는 중국의 동해안에 집중 배치되어 있다.
    여기서 쏘아올린 미사일을 요격하기에 가장 적합한 위치가 한국이다.

    한국이 미국 및 일본과 협력,
    미사일 방어망을 완성하면
    중국 핵미사일의 전략적 영향력은 약해진다.
    중국이 한국의 미사일 방어망 가입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이것이 자위적 핵무장론과 함께
    우리의 유력한 대중(對中)카드라는 이야기이다.

    소련을 붕괴시킨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스타 워즈> 전략과 비슷한 개념이다.
    레이건은 1970년대의 데탕트 정책,
    즉 對蘇(대소)유화정책을 뒤엎는 對蘇강경책을 지속하려면
    국내의 지지기반을 다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減稅(감세)에 의한 경기회복에 성공하여 지지층을 단단히 했고,
    기독교적인 가치관에 입각한 對蘇비판 연설을 통해서
    보수층을 단결시켰다.

    그런 다음 군비증강 정책을 밀어붙여
    소련이 出血(출혈) 경쟁을 하도록 유도했다.
    레이건은
    1970년대의 소련이 高油價(고유가)의 득을 많이 보면서
    경제 개혁을 제대로 하지 않고서 군비지출을 많이 했고,
    越南赤化(월남적화)에 이은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 군사적 모험주의로 해서
    경제가 내부로부터 무너지고 있는 점에 착안했다.
    소련의 경제를 무너뜨리는 것이 소련 체제를 붕괴시키는 지름길이라고 본 것이다.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수상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공산권 붕괴의 功(공)을 레이건에게 전적으로 돌리고 있다.
    대처는
    레이건 대통령이 우직하게 밀어붙인,
    <스타 워즈>로 불린 [우주 전쟁 계획](SDI·Strategic Defense Initiative)이
    소련제국 붕괴를 가져온 결정적 조치였다고 평가했다.
    SDI란
    핵무기를 탑재한 미사일을
    우주에서 요격할 수 있는 기술과 방어망을 가리킨다.


    소련, 군비경쟁에 손 든 뒤 개혁 개방의 길로


    미국이
    사람을 달에 착륙시켰던 그 국가 기술력을 총동원하여
    <
    별들의 전쟁> 계획,
    즉 미사일 방어망 연구를 시작하려고 하자
    소련 지도부는 겁을 집어먹었다.
    미국과 맞서 그런 미사일 방어기술을 개발하고 배치하려면
    소련의 경제력과 과학기술력을 집중시켜야 하는데
    그렇게 하다가는 국가財政(재정)이 망가지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부문의 武器(무기)개발에 들어갈 돈도
    이 대응조치에 轉用(전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판단을 했다.

    그 이후 소련의 대미(對美)정책은
    SDI를 포기하도록 하는 데 집중되었다.

    레이건은
    소련의 이런 초조한 자세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SDI를 정력적으로 추진하는 척했다.
    미국 과학자들도
    당시 기술로는 완벽한 核미사일 방어망을 만든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레이건은 모른 척하고 이 계획을 밀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대처 수상에게 솔직하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이 계획을 밀고 나간다면
    소련의 경제에 큰 압박을 가하게 될 것이다.
    소련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인민들의 생활수준을 희생시키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결국 소련은
    미국의 도전에 굴복하고 말 것이다.
    즉 군비경쟁을 포기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개혁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對美우위의 군사력만이
    소련 지도부로 하여금 개혁을 거부하도록 한 마지막 보루였으니까.
    그런 근거가 무너지면
    비로소 경제개혁으로써 국민들을 먹여살릴 궁리를 하게 될 것이다.'


    레이건은
    SDI를 추진할 때부터
    대처 수상에게
    [나는 어떤 경우에도 이것만은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배우시절 좌익과 대결하면서 공산주의의 속성을 체험했던
    레이건의 이 무서운 일관성이
    소련 군사제국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그들을 개혁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게 했으며
    그 길은 공산권 해체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히틀러의 核, 김정은의 核


    한국이
    핵무장과 미사일 방어망 구축을 추진하면
    북한정권은
    자신들의 核이 무력화(無力化)되는 사태에 직면할 것이다.
    核으로 한국을 적화시킬 수도 없고
    체제유지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될 때
    개혁 개방에 의한 체제유지 방안을 심각하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북한처럼 취약한 체제는
    일단 개혁 개방에 나서면 무너진다.
    권력층의 노선 투쟁과
    주민들의 불만 폭발이
    동시에 이뤄지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문제는
    북한정권이 무너지거나 교체되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 거의
    通說(통설)로 굳어지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쓴 편지를 후회하였다고 하지만
    미국과 소련의 핵보유가
    공포의 균형을 이뤄 제3차 세계대전을 막았다는 견해도 있다.

    민주국가인 한국의 核보유도
    東北亞에서 같은 역할을 할지 모른다.
    한국의 핵무장이 일본의 핵무장을 誘發(유발)할 것이라고 걱정하는 견해도 있지만,
    일본은
    이미 결심만 하면
    6개월 안에 핵무기를 대량 제조할 수 있는 기술적 토대를 갖추고 있다.
    일본이 핵무장을 결심한다면
    그것은 북한정권 때문이지
    한국의 핵무장 때문은 아닐 것이다.

    미국-영국처럼
    민주화된 나라가 가진 핵무기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지난 150년간
    민주국가끼리는 전쟁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이
    미국 정부에 핵개발을 건의하기로 결심한 것은
    히틀러의 核이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핵무장론은
    히틀러보다 더한 북한의 독재자가 핵폭탄을 들고 있기 때문에 정당성이 있다.
      
    [조갑제닷컴=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