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停戰 60주년, 돌아본 대한민국

    이현오 /칼럼니스트, 뉴데일리 객원기자

     지난 7월12일, 최전방 비무장지대가 지척인 강원도 철원, 최북단 월정리 역(驛)으로 가는 길의 차량행렬은 장대비로 온통 젖어든 채 군데군데 도로는 물웅덩이를 만들어 마치 폭우를 뚫고 세찬 물보라를 일으키며 적진을 향해 기세등등하게 포효하며 ‘공격 앞으로!’ 진격하는 전차군단의 위용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한 모습이었다.

     민통선을 통과해 바라본 최전방 DMZ 일대는 고요와 침묵에 잠겨 있었다.
    이곳이 세계 최대의 잠재된 화약고로 핵무기와 미사일 등 최첨단 무기와 재래식 무기로 중무장된 북한군 등 180만이 넘는 남북군사력(북한 : 119만, 남한 : 63만 9천여명)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눈 채 60년을 이어온 ‘평화의 땅’ 이라는 게 보고 또 봐도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63년 전 중부산악지대를 울창하게 뒤덮었던 산림은 이 땅을 유린한 붉은 괴뢰 야수(野獸)들이 뿜어대던 포성(砲聲)고 포연(砲煙)으로 천지가 진동한 가운데 앙상하게 남은 죽어간 잡목으로 표변하고, 수많은 젊은이들은 조국과 이 땅의 자유와 평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의로운 고혼(孤魂)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 날도 철의삼각지대(철원-김화-평강) 월정리 역 일대는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비무장지대(DMZ) 전면에 걸쳐 있을 것임에도 겉으로는 쏟아지는 빗줄기가 애잔함과 더불어 평화의 서곡으로 울려퍼지는 듯한 감을 부채질 하는 듯해 보였다.

     2013년 7월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뜨겁고 잔인한 달이기도 한 6월과 더불어 역사에서 또 한번 잊을 수 없는 약소민족의 설움과 안타까움이 교차된 달이기도 하다. 분단 극복과 통일의 기운이 뻗치던 결정적 시기를 뒤로한 채 우리 민족의 의지와는 달리 정전협정 조인(유엔군 대표 : 클라크 사령관, 북한대표 : 김일성, 중국 대표 : 팽더하이)이 이루어진 달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전사자

     전쟁의 포화가 멎은 지 어느덧 60해. 사람 나이로 쳐도 이순(耳順)에 해당하는 환갑이다.
    대한민국은 1945년 일제 36년 굴곡진 역사를 벗어나 광복의 기쁨을 채 나누기도 전  38도선을 경계로 남과 북으로 민족과 국토가 갈린데 이어 1950년 6월25일 김일성의 남침계략과 소련군의 사주, 이어진 중공군의 대거 개입으로 ‘국호’ 자체가 지구상에서 사라질 뻔 했던 대한민국이 혈맹의 미국을 중심으로 UN 21개국의 전폭지원에 의해 기사회생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대부분 나라가 그러하듯 대한민국 또한 우방의 도움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생명은 부지했으나 세계 최빈국 중 빈국으로 전락해 인명피해는 물론 국토의 대부분이 폐허 그 자체로 변하고 말았다. 한국군 및 UN군 인명피해는 77만 6천명으로, 한국군 사망 전사자 14만명, UN군 4만명, 한국군 부상자 45만명, UN군 10만명, 실종포로 한국군 3만 3천명, UN군 1만명에 이른다.

     북한군 인명피해는 142만명으로 추정한다. 북한 인민군 전투손실 52만명, 중공군 90만명에 비전투 손실 4만 6천명을 합치면 147만명에 이른다. 당시 우리 측 물적 피해는 민가, 각급학교시설, 도로, 항만, 철도, 교량, 전선, 공업시설, 발전시설, 탄광시설, 경찰서, 행정기관, 의료, 금융, 종교단체, 생산업체 파괴와 가축 등이 소실로 물경  23억 달러로 추정되었다. 말할 수 없는 피해가 산적했다. 그게 북한 김일성 집단이 불법남침에 의해 파괴된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인 것이다.

     그로부터 우리는 정전 60주년을 맞았다. 고난과 아픔을 되씹고 있기엔 너무 우리의 삶이 절박했던 것은 일단은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 ‘꽃제비’로 불리어지는 북한의 거리 부랑아이들 처럼 길거리를 헤매야 했던 당시의 숱한 ‘거리의 아이들’은 머잖아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안보일선의 전사들이었으며, 가난을 물리치고자 구국의 횃불을 높이 든 산업의 역군이기도 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케 한 기적의 주역들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국가로는 최초로 국민소득 2만 달러, 인구 5000만명을 넘은 세계 7번째 20-50클럽 가입 국가에, 2년 연속 무역액 1조 달러를 달성한 세계가 놀라고 경이롭게 바라보는 국가로 발전했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도 전쟁(전투)의 무거운 그림자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있다. 가까이에는 숱한 NLL(북방한계선) 침범과 1․2차 연평해전에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이라는 참혹한 쓰라림을 당해야 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김정은 집단의 어떤 파괴적 도발과 만행이 자행될 지 누구도 속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전쟁의 폐허, 동족상잔의 대 참상, 1천만 이산가족이라는 세계 역사상 전무후무한 비극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이를 악물고 삶의 전선에 자신을 바친 것은 내일에 대한 희망, 잘 살수 있다는 믿음으로 선진 대한민국을 이룩하자는 불굴의 기상과 은근과 끈기로 대변되는 우리민족 특유의 오뚜기 정신이 발현된 때문 아니겠는가. 그렇게 대한민국은 성장과 발전을 거듭했다.

    2003년 7월27일

     10년 전인 2003년 7월27일 오전 9시, 그 날도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당일 필자는 판문점 ‘평화의 집’에 위치하고 있었다. 정전 50주년을 맞아 판문점에서 개최한 정전 50주년 기념행사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남북분단의 상징인 이 자리에서 지난 50년전을 회상하게 되니 깊은 감회에 젖게 됩니다. 53년 전 저는 이곳에서 용감한 부하들과 더불어 공산침략군과 혈투를 전개하였습니다. 이제 5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한반도는 완전한 평화가 요원한 채 북한 공산 측의 끊임없는 위협과 도발은 그치지 않고 있으며, 세계에서 군사밀도가 가장 높은 곳으로 초긴장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냉전의 유일한 산물로 남아 있는 곳입니다.

    이제 경의선이 연결되고 남북의 도로가 개설된다 해도 교류와 왕래가 없다면 길이 없는 것이고, 길이 없더라도 진정한 교류왕래가 있다면 평화의 길은 열릴 것입니다.”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연설문을 읽어가는 우리 군의 대원로이시자 ‘살아 있는 전설’ 백선엽 장군(당시 6․25 50주년 기념사업위원장)의 상기된 표정에서 지나간 현대사 중 한 시대가 겪어야 했던 격동의 순간들을 다시 한번 가슴 저미게 느낄 수 있었다.』(재향군인회 발행 ‘향군보’ 제482호. 2003. 8.1 자, 필자의 ‘정전 50년 그 평화의 반세기’ 칼럼 중)

     그랬다. 10년 전 백전노장의 6․25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의 말처럼 10년 전이나 10년이 지난 오늘에나 북한의 도발 야욕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보이지 않는 게 아니라 물경 68년 째 3대를 세습한 북한 김정은은 부친 김정일 이상 겉으로는 평화를 외치면서도 그 이면에 3차 핵실험(2013. 2.12)과 미사일 발사(5.18, 5.19)에 ‘조준격파 사격’ ‘정전협정 백지화,’ ‘개성공단 폐쇄’ 조치를 단행하는 등 막가파 적 행태로 파국 국면을 마다하지 않는 양상이다.

     그 일면 미국에 미세한 추파를 보내며 우리에게도 접근 시그널을 보내고 있는 즈음이다.
    하지만 북한 정권 유일의 믿는 구석 최대 우군 중국이 이전의 중국과는 현저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북핵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언질을 주고 있다.

     결과적으로 ‘어린 왕자’ 북한 김정은 정권이 살 길은 분명해 보인다. 중국과 러시아가 김정은 입맛 다시는 대로 어떤 것을 들어 줄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 첫 실험적 기저가 지금 ‘한반도 비핵화’ ‘북핵 불용’으로 가시화 되고 있는 현상이다.

     2013년 들어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을 통한 공조체제가 이를 일깨워 주고 있다. 김 정권은 결코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전 60주년인 27일 오전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밖근혜 대통령은 “중무장지대가 되어버린 비무장지대의 작은 지역에서부터 무기가 사라지고, 평화와 신뢰가 자라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며 (DMZ에) 합의에 따라 평화공원을 만든다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의지를 표현했다. 

     북한 정권도 이 날을 전승절로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실시했다. 하지만 북한은 이 날 박근혜 대통령이 한 말처럼 “핵무기를 포기하고 북한 주민들의 민생과 자유를 책임질 수 있는 변화” 의 방향으로 전환할 때 국제사회의 동정의 한 표라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정전무력화 기도 북한 속내는?

    그럼에도 북한은 정전무력화와 동시에 평화협정과 평화체제구축에 혈안이 되고 있다. 공산주의 전술에 입각한 뻔한 술책이다. 북한은 지속적인 도발과 문제제기를 통해 한반도가 분쟁지역임을 국제사회에 인식시키고, 이를 통해 정전협정을 무력화함으로써 평화협정의 필요성을 부각시키려는 것이다. 북한이 평화협정과 평화체제를 거론하는 주목적은 주한미군 철수다. 무력도발과 적대행위의 종식을 빌미로 주한미군을 철수시켜 한반도 적화통일의 장애요인을 제거하려는 의도다.

    정전협정이 아무런 효력 없는 종잇조각에 불과하다고 주장함으로써 평화협정 체결을 이끌어 내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평화협정 요구 이면에는 주한미군철수와 대남 적화통일이라는 지난 60여년 동안 변하지 않는 의도가 숨어 있다. 북한의 대남적화전략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국제사회가 이에 동조하지 않고 있음을 북한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비무장지대에 진정한 평화의 꽃이 활짝 피어날 때까지 정전협정은 향후 또 다른 60년을 내다보며 진화를 거듭해야 할 것으로 본다. 통일의 서기가 고조되는 그 날까지!

    그 날 나는 최전방 월정리 역 멈추어 선 철마를 지켜보며 우리 민족의 비원(悲願)이 어떤 것인가를 새삼 되새겨야 했다.

    이현오(칼럼리스트 holeekv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