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진화로 가는 길-2]

    <Pink Princess>


    김유미 /뉴데일리 논설위원, 재미작가


  • 다섯 살, 여섯 살짜리 꼬마 여자애들 축구 팀 이름입니다.
    유니폼은 물론이고 양말까지 온통 핑크색인 팀이 있는가 하면, 온통 초록색, 빨간색 팀 등등,
    동네 공원에서 매주 금요일 오후에 열리는 이 축구시합에 가보면 정말 코미디가 따로 없다싶을 정도입니다.

    선수들은 어디가 자기 골인지, 어디가 상대편 골인지조차 잘 모르는 듯 그냥 우우 몰려 신나게 뛰어다니기에 바쁩니다. 하지만 부모들은 다릅니다. 부모들은 마치 자기 아이가 제일 잘하는 선수인 듯, “great!”, “good!” 연방 외쳐가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기도 하고, 자기 아이가 공을 차고 있으면 '여기, 여기'로 넣으라고 소리 질러가며 그 방향으로 뛰어갑니다.

    쉬는 시간에는 주스나 물병을 들고 있다가 아이에게 주며 "한 눈 팔지 말고 그저 공만 보고 뛰라"는 등, 개인코치를 하기에 바쁩니다.
    그러다 개임이 끝나면 양 쪽 부모들이 다 함께 두 팔을 올려 터널을 만들어 선수들이 그 밑으로 지나가면 내 아이 팀이든 상대 팀이든 잘했다고 칭찬을 해줍니다.

    Pink Princess 팀에 유난히 눈에 띄도록 잘 하는 선수는 다른 아이들보다 키가 작았습니다.
    그 꼬마가 골을 두 개나 넣어 그 팀이 우승을 했을 때, 딸애가 너무 자랑스러워 어쩌지를 못하며 신나하는 아버지 모습이 참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아이들 장난이나 다름없는 경기장에 나타나 딸애를 응원하는 아빠. 그 곁에서 아빠 못지않게 소리 질러가며 응원하는 열 살 정도의 오빠.

    사랑한다는 말이 따로 필요 없습니다.
    이게 바로 사랑의 모습이고 이게 바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심어주는 가족의 참 모습인 것입니다.
    어찌 보면 아주 하찮아 보이는 꼬마들 경기지만 아이들은 경기를 통해 아주 어려서부터 팀워크가 중요하다는 것과 규칙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는 어울려 살아감의 기본원칙을 저절로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나이 대로 구분된 운동 팀들이 참 많습니다.

    아홉 살, 열 살짜리로 구성된 아이들 학키 경기에서 어떤 엄마가 아들에게 당부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반칙하지 마라! 반칙을 하면 네가 경기를 하지 못하고 반칙박스에 들어가 있으니 네 자신에게도 손해지만, 네 팀에게 굉장히 불리한 짓을 저지르는 것이다.”
    너 자신뿐 아니라 팀 전체에게 손해를 저지르는 짓이라는 것을 환기시키는 엄마.
    이것이 바로 선진문화 의식이고, 이것이 바로 산교육입니다.

    미국에는 마을마다 유난히 아이들 운동 경기가 많이 벌어집니다.
    다민족, 다문화 사회인 미국에서는 거의 매일같이 크고 작은 끔찍한 사건들도 일어나고 있지만
    보통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에서는 주말이면 아이들 운동 경기 외에는 할 일이 없다는 듯, 많은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운동 경기를 할 수 있는 공원은 주로 시에서 관리하는 곳입니다.

    미국에서는 학교에 다녀 온 아이들이 공부를 더 하기 위해 학원에 가는 모습은 참 보기 힘듭니다. 대신, 학교에서 오자마자 야구나 축구 또는 하키나 태권도 등등 좋아하는 운동하러 나갑니다.
    참으로 공부가 더 중요한지, 운동이 더 중요한지, 아리송할 정도입니다.
    아이들을 이런 저런 운동연습장, 경기장에 데리고 다니는 부모들.
    그들이 직장이 없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맞벌이 부부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부부 둘 중에 누구든 시간을 만들도록 애쓰고, 정 두 사람 다 시간을 내기 힘들 때는,
    아이 돌봐 줄 사람 또는 이웃에게 부탁해서라도 운동을 시키는 것입니다.

    때로는 의사 가운을 입은 채 경기장에 나타나는 아빠도 있고, 주유소 유니폼을 입은 채 달려오는 아빠도 있고, 출장 갔다 비행장에서 직행한다며 정장 차림으로 나타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사랑한다는 말보다 이런 행동, 즉 부모의 관심입니다.
    부모의 관심을 받아가며 자란 아이와 부모와 별로 대화도 없이 홀로 크기처럼 자란 아이와는 정서가 다릅니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에는 한 지붕아래 살면서 너 따로 나 따로 하는 식으로 살아가는 가정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아버지는 으레 아침에 나가 밤에나 들어오는 사람. 직장 여성도 아닌데 늘 바쁘다며 낮에는 얼굴 보기조차 힘든 엄마.
    이런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가 성실한 시민 의식과 세련된 교양 등, 이런 교육을 제대로 받을 리 없고, 밝고 맑은 아이로 성장하기 힘듭니다.

    가족은 무엇보다 다함께 식사하는 시간이 많아야 합니다.
    집에서 가족이 다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하는 시간은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해가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온 식구가 다 함께 저녁식사만이라도 날마다 같이 한다면 이상적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적어도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이런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서로가 바쁘다는 핑계로 각자 편한 시간에 식사를 하며 지내는 가정이라면,
    아이는 어느 날 갑자기 어떤 심각한 문제, 고민이 생겼다하여도 부모에게 쉽게 마음을 열리 없습니다. 열고 싶어도 습관이 안 되었기 때문에 되질 않는 것입니다.

    최근 한국에서 나온 어느 조사 통계에서 청소년들이 '부모와 가끔 대화한다, 아예 안한다'는 응답이 30퍼센트도 채 안되었다는 결과는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요일이면 꼭 아빠가 아침을 만드는 집이 있었습니다.
    아빠가 아이들에게 계란을 어떻게 만들어 줄까? 물으면 큰 애는 '오버 이지', 둘째 애는 '스크램블' 이런 식으로 주문을 합니다.
    “아빠 귀찮게 뭘 따로 따로 주문하니? 오늘은 그냥 식구 모두 스크램블로 하자.” 엄마가 말합니다. “그러지 말아요. 먹고 싶은 게 다르면 다르게 해주면 되지, 왜 똑같은 걸로 통일을 해?” 아빠는 아이들이 주문한대로 해줍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10여년을 자라난 아이들은 나중에 자신이 부모가 되어서도 자식들 각각 개성이 다르다는 것, 그 개성 또는 특성을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기본을 저절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니 각 자의 개성을 존중해줘야 한다는 것.'
    '나와 의견이 다르다 해도,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
    이런 모든 선진문화인의 기본 교육이 바로 아버지, 어머니의 삶 자체에서 옮겨져야 하는 것입니다.

    “해달라는 거, 다 해주는 데 저 애는 왜 부루퉁할까?”
    “뭐가 부족해 늘 불만족일까?”  
    “어째서 물어보는 말 외에는 부모와 말을 섞으려 들지조차 않을까?”
    이런 불만을 하는 부모님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왜 일까?
    물질적으로 해달라는 거 다 해준다는 것이 아이의 행복치수가 아닙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아이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도록 방치해 두는 무관심이야 말로
    아이에게 “나는 있으나마나 한 존재” 라는 자기 비하증이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부모의 참된 관심입니다.
    일주일 내내 아빠 따로, 엄마 따로, 형제들 따로, 시간 되는대로 들쑥날쑥 하는 집안이라면
    아이들에게 집은 잠자는 곳일 뿐입니다.  
    경제적인 이유로 부모들이 늦게 귀가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각자 따로 식사하는 집안도 많겠지만, 형편이 여유로울수록 각자 행동하는 현상이 더 심하다면, 그건 사람 만드는 교육의 근본마당인 가정이 아예 없다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학교나 학원에게 모든 교육의 책임을 전가할 수 없습니다.
    학교 선생님은 먼저 배운 지식을 다음 세대에게 전달해주는 역할이 우선입니다.
    인성 교육까지 신경을 써주는 선생님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인성 교육의 마당은 가정입니다.

    선진문화인 의식.
    특별나게 대단한 게 아닙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인간의 기본 덕목, 이것을 제대로 실행할 줄 아는 자세가 바로 선진 문화인의 의식입니다.
    이것을 부모세대가 아이들에게 생활속에서 자연스럽게 실천해 보여야
    다음 세대들이 선진국민으로 자라 날수 있지 않겠습니까?

    김유미 홈페이지 www.kimyum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