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총강도를 어떻게 果刀(과도)로 잡을 수 있나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준비를 하라---보다 강한 힘에 대해서는

    감히 공격하가나 업신여기고 얕잡아 보지 못 한다-

    -베게티우스의 ‘로마 군사교본’-
  • 최 응 표 (뉴데일리 고문 / 뉴욕에서)

    2000년 6월, 김정일에게 核개발 자금을 상납하고 온 김대중의 제1성은
    “이제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2001년 김대중의 북한 감싸기 행각은 최고조에 달한다.

    “북은 핵을 개발한 적도 없고, 개발할 능력도 없다.
    그래서 우리의 대북 지원금이 핵개발로 악용되는 얘기는 터무니없는 유언비어다.
    북이 核을 개발했다거나 개발하고 있다는 거짓 유언비어를 퍼뜨리지 마라.
    만약 북이 核을 개발한다면 내가 책임지겠다.”


    김대중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북한에 퍼주는 것은 주는 것이 아니라 많이 가져오는 것”이라며 김정일의 核개발 은폐공작의 전도사 역할을 했다. 정신병자가 아니고선 할 수 없는 발언이다.

    어떤 변명을 한대도 김대중은 북한핵개발의 일등공신이다.
    적군에게 일등공신은 아군에게는 일등역적이고 배신자이다.


    김대중의 말대로 크게 퍼준 만큼 크게 돌아오고 있다.

    그런데 민주당 내에서 김대중의 말에 책임을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北核에 책임지고 자숙해야할 민주당이 여전히 한국정치의 한 축을 틀어쥐고 있다는 자체가 어쩌면 새 정부의 대북정책에 걸림돌이 될지도 모른다.

    민주당에 양심이 있다면 北核에 대한 책임은 물론 북한 인권문제 제기도 앞장서야 할 터인데 북한인권 결의안의 발목을 잡고 있는 자들이 바로 민주당 아닌가.
    국정 파트너를 말하기 전에 당을 틀어쥐고 있는 從北세력부터 쓸어내야 한다.

    2011년 2월, 石原愼太郞(이시하라 신타로) 동경도지사는 “중국과 북한에 맞서 일본도 자국을 보호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일본이 핵무기를 가졌다면 중국이 尖閣(센카쿠)에 침입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북한이 일본인을 납치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울분을 토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시하라의 말을 우리식으로 바꾸어 말하면, “한국이 핵무기를 가졌다면 북한이 감히 핵을 가지고 장난을 칠 수 없을 것이고, 중국은 강제적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북한의 핵개발을 막을 것이다.” 이것이 지금 와서 이시하라의 핵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는 이유다.

    인류역사의 흐름에는 가끔 변태적인 역류현상으로 인한 소용돌이가 역사의 물줄기를 뒤틀어 놓을 때가 있다. 지금 한국이 바로 그런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새로 출범하는 박근혜정부가 넘어야 할 山이 너무 험하고 높다.

    첫째가, 박정희와 김일성의 체제경쟁에 이어 박근혜와 김정은의 제2의 체제경쟁(군비경쟁)이라는 山이고, 1962년 전면전을 각오하고 쿠바미사일 위기에 맞섰던 케네디 대통령의 운명적 결단을 넘는 것이 그 다음이고, 소련을 ‘惡의 帝國’으로 규정하고 몰아붙인 결과 소련을 무너뜨린 레이건 대통령의 유산을 우리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 것이냐는 것이 그 세 번째이다.
    아마도 6.25 이후 최대의 시련일지도 모른다.

    이제 새 정부에 주어진 민족적, 역사적 과제는 ‘北核의 평화적 해결’이나 ‘북한 달래기’ 또는 ‘북한을 자극하면---’ 등을 주장하는 ‘내부의 敵’을 척결하면서 보다 강력한 대북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흔히들 북한에 대한 결정적 압박 수단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승만, 박정희, 케네디, 레이건의 의지와 결단의 지혜를 모으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


    북한의 재정 40%가 대한민국과의 교역에서 생기는 달러로 충당 된다는 보고서들이 나오고 있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대한민국이 북한의 명줄을 쥐고 있다는 이야기다.

    북한은 지금 1990년대 3백, 4백만이 굶어 죽던 ‘고난의 행군’시절보다 더 경제적 파탄과 사상적 해이, 그리고 자유의 바람으로 체제붕괴의 위기를 맞고 있다.
    40배, 50배의 국력의 위력을 발휘할 절호의 시기라는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주신 하늘의 기회가 아닌가 싶다.


    문제는 김일성,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을 정상적 사람으로 보느냐, 다시 말해 북한을 정상국가로 보느냐, 국제범죄 집단으로 보느냐에 따라 대처방법도 달라진다는 말이다. 정신병자 치료법과 일반 환자의 치료법이 다르다는 말이다.

    “도덕적 사회에서는 사랑이 통할 수 있지만, 비도덕적 사회에서는 힘으로 힘을 제압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신학자 라인홀트 니버의 말이다.

    정의와 진실이 외면당한 ‘드레퓌스 사건’을 고발한 에밀 졸라는 “진실이 땅 속에 묻히면 조금씩 자라나 엄청난 폭발력을 축적하고, 마침내 터지는 날에는 세상 모든 걸 날려 버린다”고 했다.

    박근혜정부의 출범과 함께 그 동안 잠자던 국민의 ‘정의의 분노’가 폭발할 때
    北核은 물론 내부의 敵(종북세력)을 세상 밖으로 날려버릴 때가 온 것이다.

    준비가 기회를 만나면 행운이 된다고 했다.

    우선 북한 재정의 40%를 차지하는 교역 루트부터 차단해야 한다.
    다시 말해 교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개성공단 철수와 함께 현금조달 루트 전체를 폐쇄하고
    천안함 폭침 보복책으로 마련됐던 5.24조치를 실천에 옮겨야 한다.

    거기엔 저들을 미치게 하는 대북 심리전이 있다.
    戰時에 있어서의 심리전은 적에게 치명상을 준다.
    그래서 북한은 일선의 대북 방송이나 대북 삐라를 사실상 핵무기 이상으로 두려워한다.

    사랑과 진실이 담긴 대북 삐라가 평양하늘을 뒤덮고, 일선 장병의 마음을 흔들어 멘붕상태로 만들 대북방송이 24시간 북쪽 하늘을 울릴 때 저들이 미치지 않고 배길 수 있겠는가.

    그리고 40배, 50배의 국력으로 본격적인 군비경쟁을 선언하는 일이다.
    거기엔 케네디의 결단과 레이건의 신념과 의지가 필요하다.
    박정희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박근혜는 할 수 있고 해야 할 숙명적인 일이다.


    권총강도를 과도로 잡을 수는 없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는 일부를 버릴 수 있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잃는 것 없이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그건 욕심이다.
    이 세상에 희생 없이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60년 전 전국을 뒤덮은 휴전 반대의 태극기 물결이 나라를 살렸고,
    온 산천을 울린 휴전 반대의 함성이 미국과 세계를 변하게 했다.

    이제 그 때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北核의 위협과 종북세력에게 휘둘리는 모멸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언제까지 핵 공갈에 움츠리고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구걸한 평화, 돈 주고 산 평화는 평화가 아니다.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도 힘이고 지키는 것도 힘이다.
    통일도 마찬가지다. 2차 대전의 승리도 미국과 연합국의 힘의 결과였고,
    독일 통일도 서독 경제력의 우위와 자유의 힘의 산물이다.

    권총강도를 잡으려면 권총보다 화력이 강한 기관단총이 필요하다.
    바로 核무장이다. 과도를 들고 권총강도를 설득하겠다는 것은 위약한 이론가들의 말장난이고
    종북파들의 북한 감싸기 전략일 뿐이다.

    10만, 100만의 태극기 물결과 함께 核무장 주장의 함성이 한강을 건너 태평양을 넘어 세께로 울려 퍼질 때, 대한민국의 자유와 정의의 바람은 동토의 땅 북한에 봄을 실어가고 중국 대륙의 되놈 울타리도 허물 것이다.

    권총강도, 절대로 과도로 잡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