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웅과 그 딸의 정치 변증법

     

    허문도 /전 통일부 장관

     


  • 박근혜 후보를 끝내 5.16의 심판대에 세우는 오늘의 한국정치를 보면서, 우리 민족은 영웅을 가질 수 있는 민족인가고 묻지 않을 수 없다.

    박후보와 그를 싸고 있는 대선 캠프는 또 한번 심각한 패착을 두었고, 역사 앞에 죄를 범했다.

    박후보의 이번 사과는 민족사의 거인 박정희를 왜소한 인간으로 만들고 말았다.
    박후보가 그린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 위한답시고 권력잡기 위해 헌법을 함부로 어기고, 민주를 주저없이 짓밟고 인권을 예사로 탄압하는 어느 남쪽나라 세계에 흔한 삼류 권력의 화신 정도이다.
    이는 중대한 역사왜곡이다. 그리고 조선사람(민족전통에 깊이 젖은 한국사람) 정서에 맞지 않다.

    한 속담에 “‘우물 물’ 마실 때 우물을 판 사람들의 노고를 떠올려 봐야 물도 안걸리고 넘어간다.”가 있다.

    박근혜 후보로서는 세가지 경우로 역사 왜곡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첫째는 단군이래 일찍이 없었던 보리고개 잊어버린 풍요 속에 있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렇고,

    둘째는 대한민국에서 일으키고, 세우고, 지키고, 국부를 창조해온 세력을 대표하는 대선후보로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셋째는 영웅 아버지의 유산을 정치로서 물려받은 딸로서는, 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박근혜 후보의 정치가 입신을 떠 받치는 바탕을 생각해 볼 일이다.

    바닥을 기던 민족사를 산맥처럼 부푸르게 일떠 세워놓고 비극적으로 죽어간 영웅의 운명에 대한 국민대중의 애절한 공감! 돌팔매 던지는 쪽에 서기도 했던 미안하고 어리석은 어제와 고마운 오늘의 심사를 투사할 대상으로 거기, 그의 딸 박근혜가 있었던 것이다.

    자기확신은 없어도, 윗사람과 아랫사람 상하 양방향 포퓰리즘에 민첩한 자들이 모여드는 곳이 대선 캠프인 것 같다. 이런 자들에 파묻혀, 시기 질투의 가상공간을 지나치게 의식하다보면, 물에 뛰어 드는 것이 오히려 살길이라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번 사과를 있게 한 사정일 것이다.

    숨넘어 가지 않으려면, 생명의 언덕으로 다시 나와야 한다. 후보를 그만 두겠다면 몰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박후보 손으로 영웅 박정희의 역사상을 왜곡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정치인 박후보의 자기 부정이고, 국민을 자기모순의 미로로 끌고 들어가는 것이다.


  • 답은 역시 박정희 속에 있을 것 같다.

    언제나 위대한 반전은 의식의 틀(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얻어진다. 대표적인 예로 코페르니쿠스(1473 – 1543)의 지동설 – 해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땅이 움직인다는 – 을 들 수 있겠다. 다들 막연하게 르네상스기가 되어 코페르니쿠스가 새롭게 천체를 관측하여 지동설을 내 놓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그동안 선인들이 이미 관찰해 놓은 천체에 관련된 자료들을, 코페르니쿠스가 상식이 되어 있는 천동설 – 하늘이 움직인다는 – 을 믿지 않고 버리고, 이미 있는 자료들을 꿰 맞춰 보았더니, 땅이 움직이는 지동설로서 아귀가 맞아들더라는 것이다. 생각의 틀을 바꾸어서 근대과학의 문을 여는 대 발견은 얻어진 것이다. 문제를 이미 있는 역사사안을 바로 보는 창발적 안목, 선입관을 걷어 찰 수 있는 대국관과 담력이다.


  • 결론적 인식을 먼저 밝히겠다. 우리 민족이 낳은 거인 박정희는 제3세계의 산업화와 근대화에 문을 연 세계사적 혁명가라는 것이다.

    90년대에 중국은 우리나라 새마을교육의 최고전문가들을 불러다가, 인민해방군 장교들과 공산당 간부들에게 새마을 연수를 시켰다는 얘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연전에 정부는 서울에서 한국.아프리카 경제장관 회의를 열었는데 53개 나라 중 35개 국가에서 왔다. 멀리서 온 장관들은 처음에는 구체적인 인프라 등 경협사업을 거론하다가, 점심시간 가까이 가서는 하나같이 모두 한국이 오늘 이처럼 발전한 노하우를 알려달라 했다. 이들은 한국도 아프리카 국가들처럼 제2차 세계대전으로 식민지에서 해방되었고, 거기다가 전쟁으로 폐허되었던 나라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특청으로 오후에는 일정을 바꿔 비서와 수행원들까지 원래의 빈객들이 모두 함께 급조 새마을 교육을 받았던 것이다.

    제국주의의 침탈과 식민착취에서 해방된 제3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오늘날 일본도 아니고, 미국, EU(유럽연합)도 아닌, 한국의 산업화와 근대화에서 모델을 구하고 영감을 얻고자 한다. 그 불은 이미 붙었다.
    제3세계 산업화와 근대화의 문은 대한민국이 열었고, 거인 박정희가 열었다.
    박정희식활계(活計:살리는 계책)가 전파되면서 세계사의 역동점이 동아시아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을 누가 아니라 할 것인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서양 선진 문명이 진단했던 제3세계 산업화와 근대화의 문을 연 세계사적 혁명가는 박정희를 두고는 없다.

    코스트가 없는 역사적 위업이 고금동서의 역사에 어디 있던가.
    민주 유보는 코스트였고, 값비싼 희생이었다. 코스트에 발목이 잡혀 승리의 역사를 되돌릴 수는 없다.
    더더욱 오늘의 국민 모두가 향유하게 된, 우람한 실체의 창조자를 먹칠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정치인들이 복지 포퓰리즘을 능사로 알면, 국민을 좀스럽게 만들고, 끝없는 배금주의에 빠져들고, 나라살림은 거덜나는 것을, 먼저 달린 서양 나라들이 다 보여주고 있다.

    통일을 앞둔 국민을 좀스럽게 만드는 것은 그 자체로서 정치인의 범죄행위다.
    국민이란 처칠이나 케네디 같은 지도자의 경우에는 포퓰리즘의 반대인 땀과 눈물과 피와 노고를 요구했을 때 더 잘 따르는 어떤 존재이다.

    추석이다. 중추야 밝은 달 아래서 영웅 박정희가 천상에서 내리는 계시를 놓지지 않는다면 새 길이 보일 것이다.(2012. 9.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