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반도 25시

  • 소박하기 짝이 없는 루마니아인 농부 출신 포로 '요한 모리츠'. 나치는 그를 '아리안 족(族)의 전형'으로 조작했다. 반대로 연합군은 그를 나치 협력자로 보고 잡아넣었다. 여기서나 저기서나 그는 자신이 아니라 다른 무엇으로 만들어지는 존재였다. 루마니아 작가 게오르규의 소설 <25시> 이야기다. 그러나 한반도 북쪽에서는 물론이고 남쪽의 '어떤 흐린 날'에도 기구한 '요한 모리츠'들이 곧잘 '제조'되곤 한다.

    북(北)은 김현희에게 "인간도, 김현희도 아닌 살인 로봇이 돼라"고 했다. KAL기 폭파 후 그녀는 인간 김현희로 돌아왔다. 그런 그녀에게 남(南)의 노무현 당국은 "김현희 아닌 가짜가 돼라"고 했다. 그 뒤를 이은 이명박 정권 역시도 진짜임을 호소한 그녀에게 "정권이 또 바뀌면 어쩌려고 그러느냐"고 했다. 그녀는 한반도의 '요한 모리츠'였다.

    탈북청년 신동혁은 북의 수용소에서 태어나 그 안에서만 살았다. 철조망 밖에도 세상이 있다는 지각(知覺)이 그에겐 애초부터 없었다. 자신의 고발로 어머니와 형이 공개 처형당하는데도 아무런 가책이 없었다. 세상엔 사람이 간수와 죄수의 두 종류만 있는 줄 알았다. 그렇던 그가 세상에는 통닭이라는 음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홀연 인간으로 깨어났다. 그러나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남으로 탈출한 그를 남쪽의 일부는 '변절자'라고 했다. 그는 피난처에서도 '요한 모리츠'였다.

    지난 2002년 제2연평해전 당시 참수리호 장병들은 적(敵)의 기습공격에도 정당한 자위권 행사를 제한당했다. 'DJ 교전수칙' 때문이었다. 도발 정보도 묵살당했다. 당국자는 "우리 해군에도 잘못이 있었다"고 책임을 덮어씌웠다. 대통령은 장례기간에 일본으로 월드컵 구경을 갔다. 우리 해군 장병들에게 '그냥 닥치고 죽어달라'는 것이었나?

    김현희와 신동혁의 두 '요한 모리츠', 그리고 참수리호 영령들 이야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 '자칭 진보'의 도덕적 타락이고 자살이었다. '참진보'라면 드레퓌스를 옭아맨 프랑스 군부 같은 조작을 할 수는 없다. '참진보'라면 인도적 난민과 경제적 난민 얼굴에 침을 뱉을 수는 없다. '애국적 진보'라면 아군의 정당방위가 적을 화나게 할까 봐 노심초사할 수는 없다. 그리고 '중도실용' 정권은 그 타락의 위세에 눌려 전의(戰意)를 접곤 했다. 비겁이었다.

    한국정치 최대의 대치선은 그래서 보수·진보 이전에 타락이냐, 반(反)타락이냐의 싸움이다.
    타락은 거짓과 억지로 표출된다.

    "'햇볕' 아니면 전쟁하자는 것"
    "미국 쇠고기 먹으면 구멍 탁, 뇌 송송"
    "연평도 포격은 이명박 탓"
    "애국가는 국가(國歌)가 아니다"
    "북한인권 시비는 외교적 결례"
    "한미 FTA는 이완용"
    "제주 해적기지…"라는 따위가 그것이다.

    이걸 진실이라고 해야 '진보적'이 된다. 억지라고 하면 '수구적'이라고 한다. 난센스다. 이 난센스가 한국의 재난이다.

    왜 재난인가?

    '진보'의 이름으로 "김현희는 가짜"라고 한 거짓이 진실인 양 통하면 그건 대한민국이 테러국가란 뜻이다.
    '진보'의 이름으로 "신동혁류(類)는 변절자"라는 억지가 순리인 양 행세하면 그건 대한민국 아닌 '수용소 군도(群島)'가 기준이란 뜻이다.
    참수리호 영령들을 홀대한 것은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 바칠 의지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이보다 더한 국가적 재난은 없다.

    이명박 한나라당은 이 재난과 마주치는 게 버거워 시종 엇비슷이 비켜갔다. 박근혜 새누리당은 그런 한나라당과 달라야 한다. '정의'를 자처한 광신(狂信)의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불법, 부정, 꼼수, 추한 것, 천한 것, 그러면서도 '공안 탄압' 어쩌고 하는 뻔뻔함에 맞서 당당하게 가치투쟁을 해야 한다. 각론적인 정책들은 그다음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20만 명의 '요한 모리츠'들이 북녘 땅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홀로코스트(燔祭·번제)' 순번을 기다리고 있다. 남(南)에서는 그것을 '내재적 접근'에 따라 눈감아 주어야 '평화적'이라는 위선이 판치고 있다. 평화는 그러나 히틀러의 '파이널 솔루션(유태인 종말처리)'을 인정해 주고 얻는 게 아니다.

    오늘의 대한민국 대통령 지망자가, 또는 새 대통령이 훗날 "당신은 왜 그때 그 위선과 싸우지 않았느냐?"는 '요한 모리츠'들의 한 맺힌 원성을 듣지 말아야 한다. 지도자의 족적은 그것 하나로도 족하다.

    [조선일보 특별기고/201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