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극대륙에 장보고과학기지가 들어서는 2014년 한국의 탐험가들이 남극횡단에 도전한다.

    우리나라의 극지연구가 아남극권에서 남극대륙으로 본격 진출하는 원년에 맞춰 국내에서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 남극횡단에 도전장을 내민 이는 대한산악연맹의 유한규(56.코오롱) 이사다.

    유 이사는 19일 남극해를 항해 중인 아라온호에서 "남극대륙 연구를 제대로 하려면 과학자와 탐험가가 한 몸이 돼야 한다"며 "본격적인 남극대륙 연구를 위해 탐험가들이 먼저 남극을 횡단하면서 '코리안루트'를 개척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루트'는 웨델해에서 남극점을 지나 장보고기지가 들어설 테라노바베까지 거리가 3천600㎞에 달한다. 1957년 영국 푸크스 박사 탐험대의 남극 최초 횡단 이후 최장 거리다.

    유 이사는 알프스 3대 북벽을 80년대 초 한국 최초로 등반한 베테랑 산악인이다. 특히 남극 최고봉 빈슨 매시프(4천897m)를 스키로 등반한 바 있는 국내 스키등반의 1인자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 5년간 남극의 산악지대에서 극지연구소 과학자들과 운석탐사를 함께하면서 안전을 책임지며 연구활동을 지원해 왔다.

    남극대륙은 고도가 높은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연구가치가 높아진다. 내륙의 만년빙은 수천 미터의 깊이만큼이나 오랜 지구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또 대기가 안정돼 있기 때문에 천문, 우주, 고층대기를 연구하기 좋은 환경이다. 해발 2천m 이상에서 탐사활동을 벌여야 하는 운석 연구도 내륙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위험요소는 많아진다. 최대 풍속이 초속 65m에 이르는 블리자드와 곳곳에 입을 벌리고 있는 크레바스는 연구원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연구활동에 어려움을 준다. 남극 내륙에서 핵심적인 연구활동을 하자면 탐험가들의 도움이 절실한 이유다.

    이에 대해 남극 내륙에서 연구활동 경험이 가장 많은 극지연구소 이종익 책임연구원은 "우리보다 앞서 대륙에서 연구활동 수행 중인 다른 나라들은 이미 탐험가들의 역할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다"면서 "장보고기지 건설지와 이웃한 마리오 쥬켈리 이탈리아 기지만 해도 7명의 산악부대 요원들이 상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책임연구원은 "이제 갓 100년이 넘은 극지연구의 역사를 돌이켜봐도 목숨을 걸고 남극점을 정복한 아문센 같은 탐험가들이 없었다면 극지 과학은 발전할 수 없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전세계 남극탐험의 역사에서 남극횡단을 성공한 사례는 한 손으로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국내에서는 허영호 대장과 박영석 대장이 시도한 바 있지만, 남극점까지 도달하는 데 그친 절반의 성공이었다.

    유 이사는 "고인이 된 박영석 대장이 태양열로 움직이는 스노모빌을 타고 횡단을 시도했던 '그린원정'의 정신을 선배 산악인으로서 더욱 완벽하게 실천하고 싶다"며 "바람과 다리 힘으로만 남극을 횡단해 친환경 탐험을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유 이사가 말하는 친환경 탐험이란 카이트(kite)와 산악스키만을 이용해 남극을 횡단하는 것이다. 카이트는 연의 원리를 활용해 시시때때로 강풍이 부는 남극의 환경에서 활용할 수 있는 친환경 이동 수단이다. 역풍이 불어도 45도 방향으로 전진할 수 있어 크레바스(빙하가 갈라진 틈)가 없는 지대에서는 먼 거리를 빠른 시간 내에 이동하는 데 매우 효율적이다.

    이에 대해 유 이사는 "예전과 비교하면 무게와 기능 면에서 놀라울 정도로 진보한 장비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요즘 탐험의 경향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유 이사가 몸담고 있는 코오롱은 남극횡단을 위한 장비 개발에 이미 착수했다. 남극의 환경에 맞게 카이트를 개량하고 식량과 장비를 운송할 썰매를 개발하는 등 국산 아웃도어 장비 기술을 이번 남극 횡단에 집중시키겠다는 각오다. 8억원의 횡단비용도 책정한 상태다.

    횡단에 함께할 3명의 대원도 이례적으로 공개 선발할 계획이다. 국내 산악인 중에서도 연과 스키 등 이동 장비에 능숙한 대원 뿐 아니라 루트 개척을 위한 과학적 등반지식을 겸비한 대원을 뽑겠다는 것이다.

    장비 개발과 대원 선발을 마치면 알래스카의 극지 탐험학교에서 성공적인 횡단을 위해 장기 훈련에 돌입할 계획이다.

    유 이사는 "내 인생 마지막 탐험이 될 이번 남극 횡단에 산악인 인생 40년의 경험을 쏟아붓겠다"며 "꼭 성공해 제2의 극지연구 시대를 맞은 한국의 과학자들과 후배 탐험가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