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를 상납하는 사람들 
      
    자기만 살겠다고 좌파에게 추파 던지는 우리 사회의 기업인-언론인-지식인들, 홀로코스트에 협력했던 유대인 지도자들과 흡사

    강철군화    

      

  • ▲ 한나 아렌트 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 한나 아렌트 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새벽.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다 일어나 글을 쓴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 때문인지, 아니면 지난 며칠 동안 읽고 있던 책 때문인지, 마음이 편치 못하다.
    지난 며칠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을 읽었다.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라는 부제(副題)가 붙은 이 책은 독일계 유대인 정치사상가인 저자가 유대인 학살의 핵심 책임자 중 하나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기록이다.

    이 책은 실패한 세일즈맨, 몰락한 중산층 소시민에 불과했던 한 사내가 어떻게 600만 유대인을 학살하는 주역이 되었는지, 그러면서도 어쩌면 그렇게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무심(無心)할 수 있었는지를 탐구한 책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아이히만의 의식구조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600만 명이나 되는 유대인들이 죽음의 수용소로 걸어 들어간 과정이 더 흥미로웠다.
    물론 유대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나치 전체주의의 총칼이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그 뒤에는 유대인들, 특히 유대인 상층부의 자발적인 협력이 있었던 것이다.

    홀로코스트에 협력한 유대인 지도층

    나치는 대개의 경우, 랍비나 장로, 기업인, 지식인 등 유대공동체의 지도층 인사들로 구성된 유대인위원회를 구성했다. 그 아래는 유대인 경찰도 두었다. <쉰들러리스트> 같은 영화에 베이지색 제복을 입고 모자와 가슴에 ‘다윗의 별’을 달고 곤봉을 휘두르는 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나치로부터 권한을 위양 받은 유대인의 ‘자치’조직을 표방한 이들은 나치의 손발이 되어 유대인들을 거주지에서 소개(疏開)해 게토로 몰아넣고, 재산을 독일당국에 바치고, 나중에 가서는 강제수용소로 향하게 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동족들의 자유와 생명을 박탈하는 것인 줄 몰랐다. 그 길의 끝이 결국 죽음이라는 것이 드러나기 시작했을 때에도 그들은 ‘소수(少數)의 목숨을 희생해 다수(多數)를 구하기 위한 것’이라며 애써 자위했다. 물론 맨 마지막에 가서는 그들도 팽(烹)당해 아우슈비츠의 가스실 신세를 면하지 못했지만….

    수용소로 가는 유대인들 역시 순응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자신들을 2등 시민으로 전락시키는 뉘른베르크법 때부터 시작해 게토를 거쳐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에 이르기까지, 매 단계마다 ‘순응’했다. 자유를 위해 투쟁하기보다는 그 단계에서 안주하는 길을 택했다. 그 결과는 절멸(絶滅)이었다.

    아이히만도, 아렌트도, 그리고 유대인 학살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유대인위원회의 자발적 협조가 없었다면, 600만 명이나 되는 유대인이 그런 식으로 죽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이다.

    좌익에게 추파를 던지는 사람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섬뜩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이 나치에게 죽어간 유대인들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의 중심, 남북간 체제대결의 중심에는 ‘자유’의 문제가 있다. 정치-경제-사회적 영역에서 ‘자유’를 지켜내는 것이 이 대결의 알파요 오메가다. 그 싸움에서 ‘자유’를 지키려는 세력이 차츰 밀리고 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가질 만큼 가진 자, 누릴 만큼 누린 자들 가운데 이상한 짓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자유의 적’들에게 추파를 던지는 자, ‘자유의 적’들에게 뇌물을 주는 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런 자들을 수없이 많이 본다.

    좌파 매체에 광고를 주고, 좌파시민단체에 지원금을 주고, 수천억원을 사회에 쾌척(?)하면, 그런 식으로 ‘보험’을 들어두면 유사시 자기는 봐 줄 것으로 기대하는 기업인들이 대표적이다.
    <한겨레>나 <경향신문> 기자들이 거리에 나앉지 않게 보살펴 준 것도, 박원순 변호사를 오늘날 서울시장 자리에 도전하면서 '10년이면 싹 바꿀 수 있다' 고 호언장담할 수 있는 거물(?)로 키워 준 것도, 바로 그들이었다.

    좌(左)클릭하면 ‘진보적’ 지식인들이 달리 봐 주지 않을까 착각하는 언론, 좌파지식인들과 어울리면서 “나는 보수(保守)지만 ‘수구꼴통과’는 다르다”고 똥폼 잡는 일부 전직 고관대작이나 우파지식인들도 그와 다를 바 없는 부류다.

    “아스팔트 우파는 품위가 없다”느니 하면서, ‘중도실용’이라는 환상 속에 금쪽같은 시간들을 흘려보낸 MB정권 사람들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들을 동족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면서도 자신은 살아남기를 기대했던 ‘유대인위원회’의 유대인 지도자들에 비유한다면, 지나친 얘기일까.

    이 밤 그들의 면면을 떠올리면서 나는 아우슈비츠에서 죽어간 유대인들을 생각한다. 자신이 누리던 시민권을 내주면, 자기가 가진 재산을 내놓으면, 게토에서의 삶을 감수하면, 동료 유대인들의 생명을 내 주면, 자기는 그럭저럭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는 어리석은 기대를 거듭하다가 죽어간 ‘바보 같은’ 유대인들을 말이다.

    그들 가운데서도 ‘상(上)바보’는, 동족들을 계도할만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데 앞장섰던 유대인위원회의 지도층 인사들이었다.

    운명에 맞서 싸운 자가 살아남았다

    헝가리의 유대인위원회를 이끌었던 루돌프 카스트너 박사는 1684명의 ‘지도적’ 유대인(여기에는 그의 가족들도 포함된다)을 구출했다. 그 대가로 그가 희생시킨 헝가리 유대인은 47만6000명에 달했다.

    카스트너는 자신의 행동을 동족을 구하기 위한 고뇌어린 결단으로 자위했지만, 전후(戰後)에 그 행적이 드러나면서 결국 동족의 손에 살해되고 말았다. 자기만 살겠다고 발버둥쳤던 인간의 비참한 말로였다.

    물론 모든 유대인들이 그랬던 것은 아니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그 수는 적지만, 죽음의 수용소로 가는 대열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쳤던 사람들, 빨치산이나 레지스탕스에 가담했던 유대인들의 사례도 소개하고 있다. 그들은 양처럼 고분고분하게 죽느니, 저항을 선택한 이들이었다.

    나치의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바로 운명에 맞서 싸웠던 이들이었다. 물론 그러다가 희생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고분고분하게 수용소로 끌려간 경우보다는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 사람들의 생존비율이 훨씬 더 높았다.

    지금 우리는 자유와 번영을 지켜내느냐, 못하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보다 더 척박한 처지에 놓여 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여기까지 올 때까지 흘린 부모님의 피와 땀과 눈물 때문에, 초롱초롱한 조카 녀석들의 눈망울 때문에, 여기서 주저않을 수는 없다.
    이 새벽, 가만히 다짐해 본다. 우리는 수용소로 고분고분하게 끌려갔던 유대인의 전철(前轍)을  밟지 않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