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택동에 참전 간청...황급한 한글에 오자 수두룩
  • 포복절도! 김일성의 '모택똥(毛澤東) 한국전 개입요청' 서한 
      
     미(美)참전에 '깜짝 놀라' 중(中)군사지원 요청…다급했는지 오자(誤字)로 가득 찬 서한 보내
    金泌材    
     
    1950년 10월1일 국군(國軍)은 38선을 넘어 평양으로 진격했다. 9.28 서울 수복 이후 미국과 UN이 전쟁 확대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자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은 국군(國軍) 단독으로 38선 돌파를 명령했다.

      6.25 전쟁 이후 계속 인민군에게 밀렸던 국군(國軍)이 ‘남한사수’에서 ‘北進自由統一’(북진자유통일)로 목표를 전환한 것이다. 10월1일 ‘국군의 날’은 여기서 유래한다.

     당시 김일성은 戰況(전황)이 불리해지자 모택동(毛澤東)에게 中共軍(중공군)의 ‘직접 출병’을 요청하는 긴급 서한을 전달했다.

    이 서한의 원본은 현재 중국 당안관(檔案館·문서기록보존소)에 보관되어 있으며, 사본은 丹東(단동)의 抗美援朝(항미원조)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김일성·박헌영 공동명의로 되어 있는 <출병 요청 서한>(A4 용지 두 장 분량)의 제목은 ‘존경하는 모택동 동지 앞’으로 시작된다.

     이 서한에서 김일성은 “미군이 인천에 상륙하기 전에는 우리 형편이 좋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면서 “적들이 패전을 거듭해 남조선 최남부 협소한 지역에 몰리어 최후 결전에서 우리가 승리할 가능성이 커졌고 미국의 군사적 위신은 여지없이 추락되었다”고 주장했다.

     김일성은 그러나 “적들이 우리의 엄중하고 위급한 형편을 이용,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고 계속 침공한다면 우리 자체의 힘으로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면서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자인했다.

     그러면서 김일성은 “우리는 당신(모택동)의 특별한 원조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적군이 38선을 침공하면 ‘약속했던 대로’ 중국인민군의 직접 출동이 필요하다”면서 중국 공산당에 군사지원을 요청했다.

     김일성과 박헌영의 군사지원 요청을 받은 모택동(毛澤東)은 “참전의 이익은 매우 크며 참전하지 않으면 손해가 클 것”이라며 같은 해 10월 19일 3만 명의 중공군(中共軍)을 파병해 본격적으로 6.25전쟁에 개입했다.

  •  [자료] 아래는 김일성이 친필(親筆)로 작성해 모택동(毛澤東)에게 보낸 <출병 요청 서한>의 마지막 단락이다. 여기서만 5차례에 걸쳐 오자(誤字)가 나온다. '평양'을 '평야'라고 해놓았다. 서한을 보면 전문(全文) 내내 오자(誤字)가 여러 차례 발견된다. 그는 서한에서 자신의 이름을 제외하고 한자(漢字)를 사용하지 않았다. <주>

    "적들이 금일 우리가 처하여 있는 엄중하고 위급한 형편을 리용하여 우리에게 시간 여유를 주지 않고 계속 진공하여 38도선을 침공하게 되을 때에는 우리의 자체의 힘으로 새는 이 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신의 특별한 원조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즉 적군이 38도선을 침공하게 될 때에는 약속한 바와 갓치 중국 인민군의 직접 출동이 절대로 필요하게 됩니다. 이상과 같이 우리의 의견을 당신에게 제이하게 되는데 이에 대한 당신의 회답을 우리는 기다림니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김일성 金日成
    박헌영 朴憲永   

    1950년 10월1일   평야시

    김필재 기자 spooner1@hanmail.net 
    (조갑제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