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각종 시위 때마다 나오는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이 노래가 부산저축은행 그룹의 전방위 로비에 연루된 박형선 해동건설 회장의 여동생을 위한 곡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드물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광주도청에서 계엄군과 대치하다 사망한 윤상원 씨와 1979년 노동운동을 하다 숨진 ‘들불야학’ 동료 박기순 씨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만들어진 곡이다.
이 노래는 1980년 12월, 황석영 씨와 광주 지역 운동권 인사들이 두 사람을 위해 만든 노래굿 ‘넋풀이’에서 발표되었다. 가사는 백기완 씨의 시 ‘묏 비나리-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에서 따왔고 곡은 김종률 씨가 지었다. 1982년 음반 ‘넋풀이-빛의 결혼식’에 수록돼 전국적으로 퍼졌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집회․시위 현장에서 분위기를 띄우는데 잘 어울려 곧 운동권 내에 널리 퍼졌다. 좌파 진영의 행사 때마다 하는 ‘민중의례’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해 애국가를 대체하는 이른바 ‘운동권 애국가’로 불리기도 한다.
-
특히 이 노래는 단순한 ‘운동권 애국가’가 아닌 5.18을 상징하는 노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광주시 북구 운정동 5ㆍ18 국립묘지에서 매년 열리는 5.18 추념식에서는 이 노래가 빠지지 않는다. 2004년 처음으로 정부 주관으로 치러진 5.18 추념식 때 故노무현 대통령이 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 장면이 방송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2010년부터 5.18 추념식 공식행사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사라졌다. 국가보훈처가 ‘국가 공식행사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외한 것이다. 2009년에는 전국공무원노조 등에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이 포함된 ‘민중의례’를 금지하기도 했다.
이렇게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이 노래의 주인공인 故박기순 씨가 박형선 해동건설 회장(구속)의 여동생이다.
박형선 씨는 박연호 부산저축은행그룹 회장, 김양 부회장 등과 광주일고 동문이다. 박연호 회장의 부탁으로 장외에서 부산저축은행 지분을 취득해 2대 주주(지분 9.11%)가 됐다. 오지열 중앙부산저축은행장(부산저축은행 계열사)이 사돈이다.
-
박형선 씨는 광주일고를 졸업한 뒤 전남대 재학 중이던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수감돼 1심에서 징역 12년, 2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가 10개월 만에 풀려났다. 박씨는 이후 5.18에도 참여했다.
5.18과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故윤한봉 씨의 여동생 윤경자 씨가 박형선 회장의 부인이다. 故윤한봉 씨는 5.18로 인해 수배를 당하자 미국으로 밀항, 민족학교와 재미국민연합 등의 단체를 만들어 활동했다. 1993년 수배가 해제된 뒤 한국으로 돌아와 민족미래연구소장, 들불야학 기념사업회장 등으로 활동한, 대표적인 '5.18 인사'다.
박형선 회장은 이런 주변 환경, '민청학련' 사건 등으로 함께 징역에 처해졌던 이해찬 前국무총리, 유인태 前정무수석, 이강철 前대통령 정무특별보좌관, 정찬용 前대통령 비서실 인사수석비서관,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등 노무현 정권에서 권력의 핵심 멤버로 활약한 인사들과 막역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홍준 전문화재청장과도 절친한 사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드러난 박형선 회장과 故노무현 대통령 간의 관계는 <오마이뉴스> 2003년 2월 6일자 기사로 나와 있다. 2003년 1월 당시 故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광주지역을 찾아갔을때 김수복 씨, 정향자 씨와 함께 정찬용 당시 광주YMCA 사무총장을 인사수석으로 추천했다고 한다.
그는 또 강금원 창신섬유회장, 박연차 태광실업회장과 함께 노무현 전대통령의 열렬한 후원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이유로 '강금원-박연차-박형선' 세사람을 '강박박-노대통령 3대 후원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각에서는 지난 정부시절 해동건설의 매출액이 연 300억 원대에서 연 1,000억 원대로 성장한 것을 의심하기도 한다. 2005년 행담도 개발사업 비리 사건 수사 때에는 관련 공사를 수주했다는 이유로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그는 지난 2008년 부산저축은행이 차명 부동산 매입과 특수목적법인에 대한 550억원 불법대출을 통해 조성된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고급 전원주택 사업에 대한 세무당국의 조사를 무마하기도 했다. 만일 이때 국세청이 제대로 조사를 했다면, 이번 부산저축은 비리 사건을 2년전에 막아 피해액을 줄일 수 있었다는 지적이 쏟아져 나왔다.
검찰은 또 해동건설이 지난 2009년부터 캄보디아 개발 사업에 뛰어든 점에 주목하고 있다.
금감원 자료에 따르면, 해동건설은 지난 2009년 캄보디아 현지에 '해동엔지니어링&건설'을 설립했다. 검찰은 이 회사가 부산저축은행그룹이 캄보디아 개발을 위해 설립한 9개 특수목적법인(SPC)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부산저축은행이 SPC에 대출해준 자금이 비자금으로 조성됐을 가능성과 이 과정에서 박 회장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검찰 주변에서는 부산저축은행 그룹의 ‘로비스트’로 알려진 윤여성 씨보다 지난 정권 고위층과 인맥이 닿아 있는 박씨의 역할이 더욱 컸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부산저축은행 그룹의 불법대출과 로비를 수사 중인 검찰의 ‘칼끝’이 어디로 향할 지, 여야 모두 긴장하는 이유에는 이런 ‘숨은 인맥 관계’도 포함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