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승지원 박차고 나왔나,평생 따라다니는 위기론,타고난 위기감지 능력, 일화 만발
  • ‘은둔의 제왕’(The Hermit King).

    뉴스위크는 고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삼성그룹의 지휘권을 물려받은 지 10년째 되는 해인 2003년 11월 24일자에 이건희 당시 삼성그룹 회장을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은둔의 제왕’이란 제목을 달았다.

    공식석상에 잘 나타나지 않고, 공직을 탐하지도 않으며, 유력 정치인과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삼성그룹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한국경제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에게 어울리는 제목이었다.

    이 제목에 걸맞게 이 회장은 뉴스위크의 인터뷰 요청도 거절했다.

    올 4월 이전까지만 해도 ‘은둔의 제왕’은 그와 어울리는 듯했다.

    2008년 삼성 특검 사태로 경영에서 물러난 뒤 23개월만인 지난해 3월 삼성전자 회장으로 복귀하고도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활동에 전념하는 듯했다.

             왜 승지원을 박차고 나올 수밖에 없었나

    대부분의 경영활동은 서울 한남동 자택이나, 집무실 겸 외빈 접견실인 승지원에서 이뤄졌다. 이곳에서 이 회장은 핵심 측근과 사장단을 불러 보고를 받고 경영 지시를 내렸다.

    이런 이 회장이 지난 4월 21일 서초동 사옥에 처음 모습을 나타냈다. 지난해 11월1일 ‘자랑스런 삼성인상’ 시상식에 참석한 것을 빼면 공식적으로 3년 만에 집무실을 찾은 셈.

    이후 이 회장의 서초동 출입이 잦아지더니 아예 매주 화·목요일 출근으로 굳어졌다.

    이 회장의 경영 스타일이 변했는가.

    삼성에 무슨 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닌가.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의 후계체제를 강화하려는 것인가.

    이 회장의 잦은 서초동 출입을 보는 세상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재계 인사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서초동 사옥에 나타나 기자들에게 툭툭 던지는 화두형의 짧은 발언에 담긴 뜻을 읽어내느라 야단이다.

            평생 이 회장을 따라다니는 '위기론'

    이 회장의 경영행보에 큰 변화가 일어날 때마다 이 회장을 에워싼 배경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위기론’이다.

    지난 4월21일 서초동 사옥에 처음 출근했을 때는 애플이 삼성전자를 특허권 침해로 제소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지 3일만이었다. 3분기 삼성전자 실적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고 LG전자와의 3D 기술논쟁도 불붙었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낙제점’발언의 여진도 이어지고 있었다.

    “애플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삼성에 대한 견제가 커지고 있다." "못이 나오면 때리려 한다”는 이 회장의 말은 위기감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 회장이 두 번째 서초동 사옥에 출근한 4월26일에는 삼성그룹 계열사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로 뒤숭숭한 분위기였고 ‘초과이익공유제’와 관련한 발언으로 정부와 대립각을 이룬 상태였다.

    그리고 이날 이 회장은 삼성전자의 각 사업부별 업무보고를 받고 삼성전자를 제외한 6개 계열사 사장단을 불러 미래 신수종 사업 준비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하루 뒤인 27일 삼성그룹은 국무총리실에서 새만금지구 350만평 부지에 그린에너지 종합단지를 구축한다는 프로젝트에 대한 양해각서를 교환했다. 2021부터 2025년까지 7조6000억원을 투입해 태양전지, 자동차배터리, 발광다이오드(LED), 바이오, 제약, 의료기기 등 친환경 에너지 및 헬스케어산업단지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장기적으로 2040년까지 23조를 쏟아 붓는 ‘제2의 반도체’사업이다.

    이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김재명 전북도 경제특보(59)가 삼성맨 출신으로, 이 회장 밑에서 메모리사업 기획팀장으로 활동하며 오늘의 반도체산업의 초석을 놓은 인물이란 점으로 미뤄 이 회장이 진두지휘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달 3일. 삼성 캐나다 현지법인에 날아온 삼성전자 사옥과 주한 중동국가 대사관 폭파하겠다는 이메일 때문에 특공대와 경찰 강력팀이 사옥 수색작업을 벌인 날.

    이 회장은 보란 듯이 서초동 사옥에 출근했다.

    금융계열사 사장들로부터 현안 보고를 받고 오찬도 함께 했다.

    일본에선 메모리 전문기업 엘피다가 25나노미터 D램 개발에 성공, 삼성반도체를 추월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이 회장이 서초동 사옥에서 카메라 세례를 받을 때마다 한결같이 위기감이 아우라처럼 감돌았다. 그리고 그의 출현을 전후에 중대한 결정이 이뤄졌다.

            타고난 위기 감지 능력에 숱한 일화 낳아

    이 회장은 삼성그룹을 승계 받았을 때부터 위기감을 등에 지고 다녔다.

    1987년 삼성그룹의 지휘권을 잡은 이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라”고 외치며 이른바 ‘신경영’으로 대대적인 개혁드라이브를 걸었다.

    만일 그때 이 회장의 개혁이 없었다면 오늘의 삼성그룹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현대가 깨지고 대우가 공중 분해되는 와중에도 삼성그룹이 소니나 모토롤라 같은 골리앗 경쟁자들을 뛰어넘어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바탕은 바로 이 회장 특유의 ‘위기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3월 오랜 칩거 끝에 경영에 복귀하면서도 그는 “지금이 진짜 위기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장은 그의 발언에 큰 의미를 주지 않았다.

    삼성 임직원들도 그의 ‘위기감’을 온전히 체감하지 못했다.

    이 회장이 한남동 자택과 승지원을 박차고 나올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이건희식 경영스타일의 특징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위기' 자체다. 

    위기감이 그를 감싸고 도는 것도 바로 위기 감지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회장의 위기 감지 능력은 동물적일만큼 탁월하다.

    신속하고도 과감한 대처능력 또한 타고 난 것 같다.

    멀리, 그리고 가까이서 혀를 날름거리며 다가오는 위기를 감지하고 현명한 대응전략을 세워 실천에 옮기는 결단력은 보통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기에 그의 행적은 숱한 일화로 남아 회자된다.

    임직원들에게 뭔가 자극을 줄 필요성을 절감한 이 회장은 1993년 삼성의 최고 경영진 150명에게 비행기 1등석을 타고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특급호텔 캠핀스키호텔로 모이도록 했다.

    그는 휴식시간도 없이 장장 7시간 훈시를 쏟아냈다. 화장실에도 안 갔다는 후문이다.

    놀라운 것은 이때 이 회장이 ‘세기말의 위기’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는데 많은 임원들이 그 의미를 알아듣지 못했다고 한다.

    이 회장의 훈시를 듣고 난 최고 경영진들은 일주일동안 남아서 관광을 하고 돌아왔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있었던 일.

    이 회장은 수십 명의 고위 임원들에게 각각 1천달러를 나눠주며 최고급 외제 가전제품을 사고 사용해 본 뒤 삼성 제품과 비교해 보라고 지시했다.

    삼성 제품의 현실을 직시하고 개선점을 찾아라는 경영지침을 내린 것이다.

    매년 연초의 동경구상은 이 회장 스스로 앞을 내다보는 예지력을 가다듬고 자신을 채찍질하는 기간이다.

    디자인 경영을 화두로 던진 2005년.

    이 회장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리는 세계가구박람회에 이재용 당시 상무를 비롯, 전자와 모직의 최고 경영진을 대동하고 관람한 뒤 밀라노에 있는 삼성디자인연구소에서 장시간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스피드시대, 원격 경영 한계 절감한 듯

    자동차사업 참여, 아들에게 주식을 승계하는 과정에서의 탈법 불법 행위, 불법 비자금 조성 등은 위기를 자초한 뼈아픈 실수였다.

    두 번 다시 되풀이해서는 안 될 이 같은 실수는 그러나 이 회장의 날카로운 위기 감지능력과 과단성 있는 리더십을 더욱 강건하게 하는 밑거름이 된 듯하다.

    선단을 형성하고 있는 삼성의 진로를 신속하게 바꾸기 위해서도 현장밀착경영이 필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술 개발이나 상품 주기가 하루가 다르게 빨라진 상황에서 항공모함이 방향을 털듯 해서는 생존할 수 없다. 고속정으로 타개하는 식의 신속 경영이 필요하다. 

    신속한 현장 밀착 경영을 위해 서초동 사옥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시각이다. 

    동반성장위원회와 껄끄러운 관계에 있던 삼성그룹이 정운찬 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대대적인 '공정거래 및 동반성장 협약' 체결로 위기를 넘기고, 곽승준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의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 구상에 대해 "별로 신경 안 쓴다. 환영한다"고 대응함으로써 불필요한 갈등관계를 노련하게 피한 것도 서초동 사옥 출근의 산물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 회장의 경영스타일이 어떻게 변하든 이건희식 경영철학을 관통하는 핵심은 '위기론'임을 알 수 있다.  

    ‘골프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만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을 때이다.’(진 사라센)라는 골프격언을 경영에서 가장 잘 실천하는 사람, 바로 이건희 회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