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R&D 예산 75% 배분·조정하는 막강한 권한 행사부처간 조율 못하고 휘둘리면 옥상옥 비판 못면할 듯
  • 과학기술기본법 시행과 함께 국가 연구개발(R&D) 정책의 밑그림을 그릴 국가과학기술위원회(위원장 김도연) 28일 공식 출범한다. 국가 과학기술 컨트롤 타워로서 관련 예산 3분의 2 이상을 좌우하게 된다.

     

    국과위는 지난달 23일 이명박 대통령이 김도연 울산대 총장을 위원장으로 내정함과 동시에 위원회를 꾸리는 작업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주어진 역할이 큰 만큼 기대와 우려를 한 몸에 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각 부처에 흩어진 R&D 과제의 우선순위와 투자 규모 등을 명확히 정리하고 적극 후원한다

    면 그 소임을 십분 다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부처 이기주의를 극복하지 못하고 부처간 나눠먹기식 예산 배분에 휩쓸리게 되면 존재가치를 두고 '옥상옥(屋上屋)' 논란만 만드는 상황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 국가 R&D 예산 75% 배분·조정 = 일단 국과위는 당초 설립 취지대로 전체 국가 R&D 사업 예산 가운데 75% 이상을 배분, 조정하는 막강한 권한을 갖는다.

     

    지난 22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시행령에 따르면 국과위가 다룰 국가연구개발사업은 '인문·국방 부문을 제외한 연구개발 사업 중 △5년 이상 중장기 대형미래성장동력 창출기초과학 △(부처 간) 유사·중복 사업' 등이다.

     

    부처간 협의 과정에서 진통이 있었으나 일단 법제상으로 국과위가 중요한 R&D 사업 부문을 모두 담당하는 것으로 정리됨에 따라 국가 과학기술 컨트롤 타워로서 권한을 행사 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 힘은 갖췄다.

     

    기초 연구 부문만 해도 올해 총 정부 R&D 예산(149000억원) 내 비중이 46%에 이르고, 신성장 동력 관련 예산 비중도 15%가 넘는다. 두 부분만으로도 이미 국과위 관할 범위가 60% 이상인 셈이다.

     

    여기에 5년 이상 대형 사업의 규모도 상당한 수준이다. 500억원 이상 규모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치는 R&D 사업은 대부분 5년 이상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 부처 간 조율 걱정 = 그러나 실제 운용 과정에서 국과위의 막대한 예산 조정, 배분권이 기획재정부의 예산 편성권과 충돌없이 100% 발휘될지는 지켜볼 문제다.

     

    과학기술기본법 제12조는 '기획재정부장관은 정부 재정규모 조정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위원회의 검토·심의 결과를 반영해 다음 연도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국과위의 결정을 거의 의무적으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전체 재정 규모 등을 고려해 R&D 예산 관련 조율이 필요할 때는 예외라는 뜻이다.

     

    또 시행령 제21조는 국과위가국가연구개발사업 목표 달성을 위한 중점 투자분야 조정 내역기술분야별 투자규모와 기술분야 내 사업별 투자 우선순위 및 적정투자규모 조정 내역유사·중복사업 조정 내역 등을 검토, 심의한 뒤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동시에 '기획재정부장관은 국가연구개발사업 관련 예산 편성 결과를 위원회에 제출하고 위원회는 필요한 경우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는 조항을 뒀다.

     

    결국 기재부 고유 권한인 예산 편성권은 그대로 두고 위원회와 기획재정부가 협의해 전체 국가 R&D 예산을 짜라는 얘기다.

     

    한 과학기술 연구기관 관계자는 "기재부가 국과위의 배분 결과를 상당 부분 존중하겠지만, 재정 적자 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기재부도 충분히 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무원 중심 조직' 논란 = '민간 과학기술인의 지혜를 빌려 국가 과학기술정책을 효율적으로 조정한다'는 국과위 설립 취지는 이미 상당 부분 퇴색했다는 지적이 많다.

     

    우선 2명뿐인 상임위원과 국과위 실행조직인 사무처 수장 자리를 R&D 정책 및 예산에 대한 기득권을 주장하며 힘겨루기를 해왔던 기재부, 교육과학부, 지식경제부 등 3개 부처 출신 인사가 사이 좋게 나눠 가졌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이를 두고 관련 부처의 협조와 원활한 협의를 위해서라고 말했지만 뜻대로 될 지는 미지수다. 이들이 출신 부처를 떠나 소명의식을 갖고 일한다면 당초 의도대로 되겠지만 부처 의견을 위원회에 전달하는 창구역할에 머문다면 말은 많고 되는 일은 없는 조직이 될 수도 있다.

     

    민간 과학기술계 인사의 참여가 제한적이라는 사실은 심의관 수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애초 구상 단계에서는 사무처 연구개발조정국 산하 4개 과(연구조정총괄·거대공공조정·미래성장조정·생명복지조정)에 각각 한 명씩 민간 전문가인 '심의관'을 두기로 했다. R&D 예산의 배분과 조정 과정에 민간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최종 조직안은 연구개발조정국 아래 단 1명의 심의관이 4개 과를 총괄 감독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국과위는 과학기술정책국장, 성과관리국장, 심의관 등 3개 국장급, 5개 과장급 직위를 민간에게 개방했다고 강조하지만, 다수 과학기술계 인사들은 "관료 출신 사무처장 밑에서 이들 국·과장이 얼마나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