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日대지진과 쓰나미 보도로 망신당하고도 또 반복리비아 공습, 외신 베끼기 여전…영향, 원인 등 분석, 전망은 드물어
  • 지난 11일 오후부터 지금까지 일어난 ‘사고’들로 국내 언론들은 눈코 뜰 새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이를 보는 국민들의 심정은 불편하다. 日대지진과 쓰나미, 원전 사고도, 리비아 공습도 ‘알맹이’는 없이 ‘외신 베껴쓰기’ 경쟁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日대지진 보도에서 ‘망신’ 당하고도 여전한 언론들

    지난 11일 오후 일본 동북부 센다이 지역에서 강도 9.0의 지진이 일어났다. 지진은 높이 20m에 이르는 쓰나미를 동반, 엄청난 인명피해와 후쿠시마 원전단지 ‘사고’를 일으켰다. 이를 본 우리나라 언론은 호들갑을 떨었다. 일부 언론은 12일자 신문 1면에다 ‘일본침몰’ 운운했고, 일부 방송은 이 와중에 ‘한류 열풍에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 보도를 했다.

    우리 국민들은 ‘지금 수만 명이 숨진 일을 보고 침몰 운운하다니 제 정신이냐’고 분노하며 이들 언론의 보도 태도를 문제 삼았다. 오히려 그동안 인터넷 등을 통해 반일활동을 하던 사람들이 먼저 ‘일본을 도와야 한다’며 나섰다.

    같은 날 英<인디펜던트>지의 일본 응원기사 소식이 알려지자 우리나라 언론들도 슬그머니 태도를 바꿨다. 이후 언론들은 모두 일본 응원문구를 게시하고 모금활동을 하며 자극적인 보도를 자제하는 듯 했지만 후쿠시마 원전에서 ‘수소가스 폭발사고’로 방사능이 유출되자 다시 슬슬 자극적인 보도를 시작했다. 일부 케이블 방송은 아예 24시간 동안 후쿠시마 원전 사고 추이를 보도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일간지와 인터넷 신문, 포털도 이에 질 새라 ‘공포 분위기’ 조장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괴담’도 확산되기 시작했다. 정부와 원전관리 기관 등은 ‘광우병 괴담’을 떠올리며, 직접 나서 ‘사실’을 알리면서 ‘괴담’ 진화에 나섰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19일을 고비로 조금씩 수습국면에 접어들 때쯤인 20일 ‘리비아 공습’이 시작됐다. 언론은 이 기회를 놓칠 새라 다시 ‘급박한 상황연출’에 돌입했다. 공습 사흘째인 오늘도 언론과 포털 등은 ‘리비아 공습’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보도와 비슷한 리비아 공습 보도

    ‘현재 진행형’인 리비아 공습 보도를 보면 후쿠시마 원전 보도와 비슷한 점을 찾을 수 있다. 첫째,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 분석과 세계에 미칠 영향에 대한 객관적이고 냉정한 분석, 우리의 대응책 보다는 ‘공포 분위기 조성’에 더 주력한다는 점, 둘째, 세계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는가 보다는 당장 우리나라에 직접적인 피해가 있느냐 없느냐 에만 집중한다는 점이다.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의 영향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경제에 큰 타격을 주리라는 게 자명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 또한 우리나라에 방사성 물질 피해가 직접 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북태평양 지역과 일본에서 생산된 농축산물의 수입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것도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언론들은 대부분 ‘방사성 물질’ 확산 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리비아 공습 보도도 마찬가지다. 서방 연합군이 리비아에 몇 발의 미사일을 쏘았고, 지중해에 연합군 군함이 몇 척 있는가 보다는 서방 국가들이 왜 리비아 공습을 결정하게 됐고, 리비아 공습과 카다피 정권 붕괴가 유가와 중동지역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중동의 반정부 시위가 강대국의 대외정책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가 국민들에게는 더 중요함에도 지금도 언론들은 공습에 사용된 무기가 무엇이고, 폭탄이 어디에 몇 발 떨어졌으며 카다피의 아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카다피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 경제대국이라는 우리나라, 언론 보도도 걸맞게 가고 있나

    언론이 이런 식으로 보도해서인지 정부나 연구기관마저 세계적인 사건을 분석한 자료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만 거론하고 있다. 이게 과연 우리나라의 ‘격’에 맞는 걸까.

    정부와 언론은 국민들에게 늘 ‘우리나라는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라고 선전한다. ‘강국’에 걸맞게 국제원조도 늘이고 세계평화를 위해 힘써야 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전에 일단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국민들보다는 언론이 먼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지금 언론들처럼 ‘나’와 ‘우리’밖에 모르는 보도, 외신 보도 베끼기, 공포분위기 조성으로 시청률 올리기 경쟁이 국민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매년 100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해외여행을 하고 연간 수천 억 달러 이상을 수출로 벌어들이는 나라의 주요 언론이 이런 식의 보도를 한다면 세상 누가 믿을까.

    포털이 차려놓은 판에 끼어 ‘검색어 장사’를 할 수밖에 없는 영세 인터넷 매체는 능력이 없으니 그렇다 치자. 하지만 기자만 수백 명에 이르는 일간지와 방송사까지 포털에서 ‘검색어 장사’를 하며 ‘공포 분위기 조성’에 동참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지금 국민들이 ‘주요 언론’에 원하는 건 깊이 있는 내용과 객관적이고 냉정한 시각, 전체적인 흐름을 짚어볼 수 있는 보도라는 걸 우리나라 언론들이 깨달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