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F 이름은 정수민, 24세. 작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계속 백수로 지내다가 인간 컨테이너 노릇을 한지 두달째라고 했다. 김동수가 묻지도 않았는데 사분사분 말해 준 것이다.

    「오빠, 고마워요.」
    하고 정수민이 그렇게 인사를 했을 때 김동수의 얼굴에 저절로 쓴웃음이 번져졌다. 그만큼 이용가치가 있기 때문에 이런 대접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멀, 그쯤이야.」
    「나, 사기 당할 거 막아주었으니까 내가 오늘 술 사줄 수도 있어요.」
    「다음에.」
    「오빠, 애인 있어요?」

    정수민의 시선이 부딪친 순간 김동수는 심호흡을 했다. 본능적으로 갈림길에 선 자신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윽고 김동수가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있어.」

    그 순간 박미향의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으므로 김동수는 당황했다. 왜 박미향인가? 숨긴 것을 누구한테 들킨 느낌이다.

    「알았어요.」
    따라서 머리를 끄덕인 정수민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표정이 어느덧 차분해져 있었으므로 김동수는 이제 뭘 놓친 느낌이 들었다.

    「오빠, 가끔 연락해도 되죠?」
    카운터로 다가가면서 정수민이 물었다.

    「아, 그럼. 언제든지.」
    정수민의 뒷모습을 보면서 김동수가 대답했다. 아쉬운 기분이 조금 가셔졌다.

    사무실로 돌아왔더니 외출했던 사장 박한식이 박미향의 책상 옆에 서 있다가 김동수에게 말했다.
    「이봐, 이번에 배경필이가 잣 가져올 때는 중량 체크 잘하라구.」
    「예, 사장님.」
    「그놈은 한눈만 팔아도 뭐든 집어가는 놈이야. 방심하면 안돼.」
    「예, 사장님.」

    사무실 안에는 사장과 박미향까지 셋이 남았다. 경리부장 오기호는 오후부터 외근이었고 그 사이에 최용기는 퇴근한 것 같다. 오후 6시 10분이 되어가고 있었으니까.

    그때 박한식이 말을 잇는다.
    「아무도 믿으면 안된다구. 알아? 이런 일은 제 부모도 믿으면 안된단 말야.」

    열변을 토하는 박한식이 조금 앞으로 나와서 박미향은 뒤쪽이 되었다. 그때 김동수는 뒤쪽에 앉은 박미향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져지는 것을 보았다.

    「주변의 모든 놈들이 도둑놈이라고 생각 하라구. 그래야 실수가 없어. 알았어?」
    「예, 사장님.」

    고분고분한 김동수가 마음에 들었는지 머리를 끄덕인 박한식이 몸을 돌려 박미향을 보았다. 그 순간 김동수는 박미향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번개처럼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나, 그럼 퇴근할게.」
    「네, 사장님.」

    자리에서 일어선 박미향이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안녕히 가세요.」

    턱을 치켜든 박한식이 인사를 받으며 사무실을 나갔을 때 박미향의 얼굴에 다시 쓴웃음이 돌아왔다.

    「흥, 도둑놈 좋아하네. 등잔 밑이 어둡다는 걸 잊어먹었나봐.」
    「이보셔, 말씀 삼가쇼.」
    하고 김동수가 비아냥거렸을 때 박미향이 컴퓨터 전원을 끄면서 묻는다.
    「김동수씨, 오늘 한잔 할까요?」
    「좋지요.」

    그때 김동수는 눈앞에 떠오른 정수민의 얼굴을 보고는 저절로 쓴웃음을 짓는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는지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