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입제품을 시중에서도 손쉽게 구하게 되면서 미군용품이나 미제가 갖는 메리트가 확실히 줄었죠. 시대적 흐름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현상 같습니다"
    18일 경기 동두천시 생연동에 있는 양키시장으로 더 잘 알려진 애신시장을 찾았다. 한국전쟁 후 미2사단이 동두천에 주둔하면서 자연적으로 생겨난 미군용품 매매시장이다.
    100여m 되는 시장길 양쪽으로 ○○주류, △△만물과 같은 간판을 단 상점 10여곳이 띄엄띄엄 있었다.
    가게 바깥 진열대에는 미군이 신을법한 베이지색 군화와 군복을 비롯해 야외용 바비큐 그릴과 아이스박스 같은 캠핑용품, 수입 맥주 박스가 눈에 띄었다.
    한 상점에 들어가니 간이침대, 야전삽, 수통, 군용식량 등 각종 군용품부터 수입 양주와 맥주, 향수, 로션, 초콜릿, 스낵, 통조림, 머핀까지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다양한 품목이 빽빽하게 진열돼 있다.
    상점을 8년째 운영중인 주인 김병하(83)씨는 "평일에는 손님이 많이 오면 20명 정도인데, 주로 식품류를 찾는다"며 "이제 수입식품 코너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60~70년대 이곳은 미군이 내다 팔거나 부대에서 흘러나온 물품들로 가득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이라 미제는 선망의 대상이었고, 물건을 사고자 찾아온 내국인들로 시장은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80년대 후반 공산품 수입이 자유롭게 되면서 상황은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미군의 물품 관리시스템도 엄격해져 부대에서 나온 물건이 차지하는 비중도 많이 줄었다.
    또 다른 상점 주인 황재활(47)씨는 "수입이 다변화되면서 대기업들이 웬만한 수입품을 다 취급하다보니 가격 경쟁에서 밀린다"며 "매출이 5년 새 급격하게 떨어져 이제 20~30% 수준을 밑돈다"고 말했다.
    주인과 말을 나누는 동안 손님이 간간이 들어와 군용침대나 아이스박스 같은 제품 가격을 묻고 나갔다.
    황씨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사양사업이 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여기 있는 가게 대부분이 앞으로 3~4년은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양키시장은 미군 공여지가 43%를 차지하는 동두천의 비극적인 역사의 산물이다. 마땅한 생산기반시설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불법인줄 알면서도 생계를 위해 장사에 나선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런 사정은 캠프 케이시 앞에 있는 보산동 관광특구도 비슷하다. 이곳에는 미군들을 상대로 하는 클럽과 의류점, 음식점 등 업체 350여곳이 모여있다. 미군기지 이전이 확정되면서 흥망의 갈림길에 놓였다.
    지나가는 개도 달러를 물고 다닌다는 농반진반의 얘기가 있을 정도로 한동안 번성했던 이 지역 상권은 미군들이 빠져나가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1만2천명에 이르렀던 미군은 2004년 이라크 파병을 계기로 계속 줄어 현재 4천~5천여명 가량이다. 2007년 경원선 전철이 개통되고, 평일과 주말 귀대시간이 사라지면서 그나마 있는 미군들도 이태원이나 용산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옷가게를 운영하는 허모(53)씨는 "여기는 IMF 경제위기도 비켜갔던 곳"이라며 "환율이 1달러당 1천900원까지 치솟아 한달 장사만으로 두세달치 가게세를 벌었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허씨는 "지금은 매출이 5년, 6년전보다 10분의 1 수준"이라며 "생계 유지가 어렵지만 자본이 없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군기지가 반환돼 개발되려면 최소 5년이 걸릴텐데 그때까지 상인들의 생계는 막막할 것 같다"며 "그렇지만 기지 이전은 빨리 돼야 한다. 그동안 동두천의 희생이 너무 컸다"고 말했다.
    옛 명성이 바랜 생연동 양키시장과 보산동 관광특구는 역사의 흐름을 타고 있었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 중대한 기로에 선 동두천의 현재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