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망자 5천838명, 부상자 42만6천여 명.

    전쟁 사상자 통계가 아니다. 2009년 한 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사상자 통계다. 1965년부터 1973년까지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우리 군의 사망자가 5천99명, 부상자가 1만1천230명, 전쟁 후유증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 2만여 명이라는 통계와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매년 도로 위에서 ‘베트남 전쟁’을 치르고 있는 꼴이다.

    그리 강조되지 않는 교통안전

    최근 아동 성폭행을 시작으로 우리 사회의 안전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이에 정부와 치안당국 등은 범죄자에 대한 양형 기준과 감시망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일상생활 속 안전, 특히 교통안전은 그리 부각되지 않고 있다.

    치안당국이 도로교통상황실을 운영하고, 주요 방송들 또한 아침마다 실시간 교통상황을 중계하지만, 현재의 도로 위 사고나 주·정체 도로 상황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간간히 빗길 미끄럼 주의나 여름휴가, 명절 귀향길, 귀성길에 안전운전 수칙 등을 알려줄 뿐이다.

    교육기관이나 지자체 등이 실시하는 교통안전 교육 또한 신호 준수, 학교 주변에서의 서행 지키기 등 기본적인 게 대부분이다. 인터넷 등에서 찾을 수 있는 교통안전 또한 일부 커뮤니티에서 거론되는 문제제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면허 시험이나 학생들의 교통안전 표어 질문, 안전 교육들 위주로 검색된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교통안전 문제를 그저 개인의 법규 준수와 안전의식 고취 등으로 풀 수 있다고 여기고 있다. 하지만 실제 도로 위의 상황을 자세히 관찰하면 다양한 문제들이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교통안전, 대중교통은 예외?

    지난 7월 3일 오후 1시 10분 경 서울서 인천공항 방면으로 가던 버스가 고장으로 도로 위에 정차해있던 승용차를 제대로 피하지 못해 그대로 들이받고선 길 가로 돌진, 가드레일을 뚫고 추락했다. 이 사고로 버스 승객 12명이 숨지고 12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후 1주일가량 언론들은 교통안전에 대해 떠들었지만 대부분은 고장에도 불구하고 운행하다 도로 위에 정차한 소형차 운전자의 안전조치 문제에 대해서만 집중 보도했다. 버스 운전자는 ‘대중교통’이라 그런지 별 다른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일반 운전자들의 눈에 대중교통은 일부 영업용 차량과 함께 ‘거리의 무법자’ 중 하나로 보인다. 과거에는 고급교통수단이었으나 지금은 대중교통 중 하나로 인식되는 택시, ‘서민의 발’로 불리는 버스의 운전 행태는 일반 운전자들에게 늘 비판의 대상이 된다.

    실제 광화문이나 강남대로, 신촌로타리, 여의도 공원 주변과 같은 서울 도심의 대로변은 물론 주요 광역시 대로에서 볼 수 있는 버스와 택시의 운전습관은 대단히 위협적이다.

    버스의 경우 전용도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차들이 뒤에서 질주해 와도 1차선에서 3차선으로 진입했다 다시 1차선을 오가는 곡예운전을 하는 게 예사다. 그 거대한 덩치로 도로를 오가는 다른 차는 아랑곳하지 않고 불법 U턴을 할 때면 도로가 마비된다. 그럼에도 버스 운전자들은 자신들의 운전습관이 얼마나 위험하고 위협적인지 잘 모른다.

    택시는 더 심하다. 차선 변경 시 방향 지시등을 켜지 않는 건 예사고, 급차선 변경에다 무리한 끼어들기, 초보 운전자 위협하기, 여성 운전자 또는 초보 운전자가 모는 외제차 앞에서 급정거하기, 아무 곳에나 주정차 하기, 승객을 태운다는 명목으로 교통흐름 무시하고 아무데서나 급정차하기 등은 예사고, 심야에는 도심에서 시속 140킬로미터로 자기네끼리 경주를 벌이기도 한다. 

    택시 운전사들과 대화를 해보면 더욱 황당한 이야기도 있다. 낮 시간에 술을 먹고 운전하는 택시 기사가 있는 건 물론이고, 일부 유흥가 주변에는 심야 여성승객 등을 노리고 수면제나 마약을 탄 음료수를 권한 뒤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까지 있다고 한다. 실제 지난 4월 6일에는 상습적으로 강절도를 저지르던 전과자가 택시기사로 취업, 만취한 여자 승객을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았다 붙잡힌 일이 알려졌다. 그 외에도 택시와 관련된 범죄는 보험사기, 폭행, 성범죄 등 다양하다.

    이런 현실임에도 치안당국은 물론 언론도 이들의 문제를 별로 크게 부각시키지 않는, 이상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서민정책’ 핑계로 난폭 운전하는 영업용 차량들

    지난 10년 사이 또 다른 ‘도로 무법자’들도 생겼다. 바로 각종 소형 영업용 차량들이다.

    지난 정권에서부터 정부는 우리나라를 ‘관광대국’으로 만든답시고, ‘외국인 관광객 탑승차량’이라는 팻말을 붙인 차량에 대해서는 다양한 특혜를 베풀어 왔다.

    서울의 경우, 우리나라 국민은 20분 이상을 기다려 만원버스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남산타워지만 ‘외국인 관광객 탑승차량’은 그대로 통과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놨다. 일부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영 주차장 등에서는 ‘외국인 관광객 탑승차량’에게 주차료 할인도 해준다. 경찰이나 지자체들의 불법 주정차 단속에서도 이 ‘외국인 관광객 탑승차량’은 예외에 속한다. 때문에 일부 관광지역에는 이런 팻말을 단 승합차와 버스 등이 도로를 점거하고 있어도 아무런 불평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인터넷 유통의 발달로 거대해진 유통업체 차량들도 만만치 않다. 잠깐 동안의 주정차를 핑계로 도로를 점거하는 건 예사고, 시간에 쫓긴다는 명목으로 신호위반, 급차선 변경을 예사로 한다. 경차형 배달차량들은 더욱 심하다. 정부가 서민대책이라며 LPG를 연료로 사용하는 이런 차량들에게 금전적 혜택을 줘서인지 몰라도 이들은 연료비 걱정 따윈 안하는 것처럼 운전한다. 아슬아슬한 곡예운전과 과속, 끼어들기도 예사다.

    곡예 운전의 대가, 이륜차

    앞서 언급한 이들과 맞먹는 운전자들이 또 있다. 바로 이륜차 운전자들이다.

    2008년 유가 급상승으로 도로에는 이륜차들이 크게 늘어났다. 차량을 구입하거나 유지하기 어려운 대학생들 또한 이륜차의 중요한 수요자가 됐다. 문제는 이런 이륜차 운전자들의 교통질서에 대한 인식이 그 대중화 속도에 전혀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운전자들이 바로 ‘퀵 서비스’ 기사들이다. 자가용 운전자들이나 낮 시간에 업무 때문에 차를 몰고 다니는 이들은 퀵 서비스 이륜차들의 운전 습관을 익히 안다.

    이륜차 또한 도로교통법 상의 차임에도 차와 차 사이를 곡예 하듯 운전하는 건 기본이고, 신호 대기 시에는 차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맨 앞으로 튀어 나온다. 신호가 바뀌면 다른 방향에서 진행하다 멈춰선 차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급발진하기 일쑤다.

    일부 악랄한 이륜차 운전자들은 외제차를 모는 초보 운전자 앞에 갑자기 끼어들어 사고를 유도하기도 한다. 여기다 음식 등을 배달하는 이륜차 운전자들은 안전장구 하나 없이 곡예 운전을 한다. 그럼에도 현재 대중들에게는 일반 승용차와 이륜차 간에 사고가 나면 무조건 승용차 과실이 된다는 인식이 퍼져 있어 이들에 대해 누구도 문제를 삼지 않고 있다.

    이상한 습관 자랑하는 승용차 운전자들

    그렇다고 이 같은 영업용 차량 운전자들만 나쁜 습관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승용차 운전자들 또한 만만치 않다. 

    도로 위에서 운전을 하다 보면 종종 어떤 차량들끼리 살벌한 레이싱을 벌이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자기보다 앞서 가는 차를 도저히 못 보는 운전자들과 여기에 지지 않으려는 운전자 간의 이상한 경쟁 때문이다. 이런 레이싱을 벌이는 이들은 주로 면허를 취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0대 남성 운전자들이 많지만 때로는 중년남성과 여성들도 있다.

    일부 외제차 운전자, 고급 승용차 운전자들도 특이한 습관을 갖고 있다. 정체된 도로에서 무리하게 끼어들거나 방향지시등도 켜지 않고 급차선 변경을 하면서도 앞뒤 차량의 안전을 위협한 것에 대해 전혀 미안한 감정을 갖지 않는다. 되레 ‘내가 이렇게 좋은 차 모는데 어디 감히’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운전하면서 흡연하는 사람들도 문제가 있다. 바로 창문 밖으로 담뱃재를 털고 꽁초를 버리는 것. 고속 운전 시에는 그 불씨가 뒷차나 보행자에게 튀어 사고를 유발할 수 있음에도 위험하다는 생각은 전혀 안한다. 이런 이들에게 왜 그러는지 물어보면 ‘내 차 안이 더러워지니까’라는 대답을 천연덕스럽게 한다.

    ‘아기가 타고 있어요’라는 스티커를 붙인 차량, 그 중에서도 선루프를 장착한 승합차나 SUV를 운전하는 이들 중에서는 종종 어린이들이 선루프 바깥으로 머리를 내밀거나 상체를 내밀어도 가만 두는 경우가 있다. 스티커만 붙이면 어떤 사고도 피해간다고 생각하는 걸까.

    면허 취득 10년 이상 된 운전자 사고, 초보 운전자의 3배

    이상과 같이 도로에서 드러나는 각 차종별 운전자들의 습관에다 불법 주정차나 신호위반, 심지어는 음주운전으로 단속이 돼도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보다는 ‘재수가 없었다’고 여기는 사회적 인식이 팽배하다는 것까지 생각하면 매년 5천여 명 이상 사망하는 게 충분히 이해가 된다.

    물론 이 같은 분석에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 혹자는 “경찰청 통계를 보면 연간 발생하는 사고 중 승용차 사고의 비율이 60%를 넘고, 화물차는 10% 남짓, 승합차와 이륜차는 각각 7%대와 5%대인데 대중교통과 영업용 차량들이 교통사고의 주요 원인이라는 건 억지”라고 말한다.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영업용 차량 운전자들과 같이 운전을 업(業)으로 하는 사람들이 도로 위의 질서나 초보 운전자들의 습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실제 2009년 경찰청 통계 상 면허취득 10년 이상 된 사람들의 사고 건수(12만5천978건)가 면허 취득 5년 미만의 초보 운전자의 사고 건수(4만2천482건)보다 3배가량 많다는 점 등은 주의 깊게 봐야 할 부분이다.

    따라서 현재 치안당국이나 언론 등에서 강조하는 초보 운전자들에 대한 규정 강조, 질서의식 강조를 통해 교통사고 예방정책, 음주운전, 법규위반에 대한 단속과 처벌도 이런 점을 고려, 영업용 차량 운전자나 숙련된 운전자들을 그 대상으로 하는 등 새로운 사고로 접근하는 게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③또 다른 가정파괴범죄, 사기'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