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토해양부와 한국도로공사는 7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경부고속도로 개통 40주년 기념 ‘도로의 날’ 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정운찬 국무총리와 정종환 국토부장관을 비롯해 도로 및 건설 관계자 1200명이 참석해 경부고속도로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했다.

  • ▲ 도로의날 기념식. 왼쪽에서 다섯번째가 정운찬 국무총리, 여섯번째가 정종환 국토부장관. ⓒ 뉴데일리
    ▲ 도로의날 기념식. 왼쪽에서 다섯번째가 정운찬 국무총리, 여섯번째가 정종환 국토부장관. ⓒ 뉴데일리

    경부고속도로는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산업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지만, 착공 당시 정치권과 언론, 학계의 우려와 반대가 극심했다.
    첫번째 이유는 경제적인 측면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142달러에 불과했던 1967년 당시 국가 예산의 23.6%인 429억 7,300만원을 투입하는 대형국책사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두번째는 서울과 부산 간 복선철도가 있으므로 고속도로는 중복투자라는 주장과, 수도권과 영남에 특혜를 주는 것이라고 각계의 비판을 불렀다.

    또한, 당시 자동차 등록대수는 5만 대에 불과해  “한국의 모든 차들을 줄 세워봐야 다닐 차가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또 도로 건설보다는 농산물 가격안정과 중소기업 육성에 투자해야 한다는 주장과, 도로를 건설하더라도 고속도로보다는 국도증설이 필요하다고 주장이 많았다. 산을 깎거나 농지를 훼손하는 등 환경 파괴에 대한 우려까지, 반대 주장이 지금의 4대강사업 반대와 비슷한 양상도 보였다.

    하지만 여론의 반대, 자본 등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1968년 2월 1일 착공한지 2년 5개월만인 1970년 7월 7일 완공됐고, 이후 서울-부산 소요시간을 단축(15시간 이상 → 5시간 35분)시킨 것을 뛰어넘어 사회 전반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한편, 경부고속도로 준공식에서 젊은 도로 기술자들이 부동자세로 선 채 눈물을 흘리는 동안 박정희 대통령도 눈물을 흘렸다는 기록이 있다.

    또 경부고속도로 개통 40년을 기념하는 사진 전시회와 도로정책 및 기술발전을 위한 정책토론회, 기술세미나, 건설 관련 콘퍼런스 등도 열렸다.

    도공은 지난 6일 고속도로 금강휴게소 위령탑에서 경부고속도로 건설 과정에서 순직한 77명에 대해 위령제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