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바닥 준설 2.5m가 뭡니까. 11m 이상 파야죠.”

    정부는 운하 오해받을까봐 입조심, 반대단체는 운하라고 우기려고 부풀리는 ‘수심’.... 용감하게 ‘11미터를 파내자’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무슨 연유일까?

    영산강 뱃길살리기 연구소장 김창원씨는 명함부터 예사롭지 않다. 무심코 받은 명함을 다시 보라고 했다. 古지도였다.
    “영산강 수심 三丈, 만조 때 四丈... 지금 미터법으로 보면 3장은 9미터 가량, 4장은 12미터 정도 됩니다. 130년 전 지도입니다.”

  • ▲ 영산강뱃길복원 운동을 펼치는 시민들이 영산포등대 근처에서 뱃길복원을 호소하고 있다. 옆엔 한길이나 자란 풀숲이 가득안 강변. ⓒ 뉴데일리
    ▲ 영산강뱃길복원 운동을 펼치는 시민들이 영산포등대 근처에서 뱃길복원을 호소하고 있다. 옆엔 한길이나 자란 풀숲이 가득안 강변. ⓒ 뉴데일리

    고지도 바탕 위에 새긴 명함! 김 소장과 자리를 함께 한 ‘영산강 뱃길 복원 추진 위원회’ 양치권(61) 회장 명함에도 옛 영산포 등대 주변 선착장의 모습이 담겼다.

    “정부에서 국비를 대서 썩은 강바닥을 긁어내고 물을 채워준다는데 왜 이리 난리인지 모르겠어요”

    뱃길 살리자는 주장은 요즘같은 분위기에 “유람선 띄우자는 거냐”며 반박을 살 수도 있겠다. 그러나 뱃길은 실제로 1977년 영산강 하구둑이 완공되기 전까지 살아있었다.

    구 영산포는 서남해의 주요 포구였다. 그래서 일제는 1915년 이곳에 등대를 세우고 번화한 항구를 수탈에 활용했다. 영산포 등대와 영산포는 하구둑에 이어 1978년 영산호 물막이 공사로 포구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면서 동시에 역할을 다했다. 설치당시 뱃길의 안내자였던 영산포 등대는 그 뒤, 영산대교에 새로 수위 측정 시설이 생긴 1989년 이전까지는 영산강의 수위 측정 기능을 계속하였다.

    “등대좀 보세요. 저것도 문화재인데 옹벽에 가려 등대로 보입니까? 영산강 범람을 막기 위해 시멘트 옹벽을 쳐 저렇게 된 겁니다. 벽을 쌓고, 제방을 높이기만 하면 무엇 합니까. 강바닥을 파내야지” 김창원 소장, 양치권 회장 등 영산강뱃길 살리기 회원들은 한때 번화한 포구였던 영산포와 등대를 가리키며 혀를 찼다. 그러면서 지금 영산포등대가 마치 다 썩어버린 영산강바닥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나주평야를 배경으로 하는 영산강 중류에 자리 잡은 영산포는 한때 해운과 수운이 발달한, 호남 최대의 포구였다. 고려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는 세곡을 보관하고 운반하는 조창이 이곳에 있었다. 그러나 영산포를 오가는 수로가 길고 험난하여 1512년 영광의 법성항으로 그 명성을 넘겨주었다.
     
    그러다 영산창이 다시 주목받은 것은 구한말이다. 일제는 너른 나주평야의 쌀들을 영산포에 모았다가 일본으로 실어 보냈다. 1897년 목포항이 개항된 이후로는 목포항을 통해 들어온 외래 공산품이 영산강 뱃길을 따라 영산포를 거쳐 내륙 각지로 흘러들었고, 1914년 대전과 목포를 잇는 호남선이 뚫리고 영산포역이 생기면서는 일제의 조선 수탈 창구가 되었다.

    이 영산포 선창에 그때 그 등대가 지금 남아 있는 것이다. 운하가 발달한 외국에서는 강가에 등대가 있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영산포등대는 강변 등대로서 유일하다.

    얼마나 많은 배들이 드나들었으면 등대까지 세웠을까. 비록 일제가 곡창지대인 호남의 수탈 창구로 번창했던 영산포에서, 일제 침략의 산물로 생겨났지만, 등대는 한때 번창했던 영산포구 모습을 증명해주고 있다.

    이 지역 사람들이 영산강 뱃길 살리기에 나선 것은 지난 98년. 뱃실을 살려 지역 경제도 살리자는 뜻이었지만 하천살리기가 급선무였다.
    “89년 영산동 제방붕괴로 15명이 희생된 것은 하천바닥이 낮았기 때문이에요. 비 320mm만 내리면 위험수위가 되는 강이 어디 강입니까. 2004년 태풍 '매미'때도 범람위기였지만 '불행중 다행'인지 지천이 먼저 터지는 바람에 본류가 넘지 않았어요” 비만 오면 조마조마했다며 회원들은 강바닥 준설 필요성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목청을 높였다.

    “뱃길을 내려면 준설을 해야 하죠. 만일 10m를 파내면 얼마나 깊습니까. 5미터만 준설한다해도 배는 다닙니다. 배가 다닐 정도로만 되면 수량은 저절로 늘고, 홍수도 예방되지요, 경제도 살지요, 1석 4조,5조입니다.” 김창원 소장과 양치권 회장은 “뱃길 살리기만으로도 묵은 숙제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창원 소장은 “같은 무게의 화물을 70km이상 수송하는데 선박으로 수송하는 것이 육상 수송보다 연료비도 5분의 1밖에 안든다고 합니다. 내륙항구가 생기면 하류부터 내륙까지 경제가 한번에 살아날 겁니다”라고 경제 효과까지 줄줄 욌다.

    김 소장은 또 “지금 반대단체들 하는 걸 보면 ‘환경파괴’ 반대가 아녜요. 배가 다닐 것 같으니까 반대, 운하가 될 우려가 있다며 반대해요. 이게 뭡니까. 거꾸로예요. 배가 다닐까봐 준설도 6m이상하지 말라니 참...”이라며 어처구니없어했다.

    그는 또 수해예방과 관련 “하천 복구비의 10분의 1만 쓰면 피해를 예방할 수 있어요. 일본은 복구비보다 예방비가 많다는데 우리는 복구비가 예방비보다 4배 많다”며 늦었지만 현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 4대강 살리기에 나선 것을 잘한 일이라며 칭찬했다.

    이들은 정부나 전라남도의 사업추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최근 복원 추진위원회 양치권 회장과  뱃길연구소 김창원 소장은 최근 회원40여 명과 함께 전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광주시 영산강오염행위를 즉각 중단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이날 행사는 광주,전남지역 반대단체가 4대강 사업 반대 농성을 벌이고 있는 도청앞에서 찬성집회를 겸해 열렸다.  이 자리에 김옥기 전라남도의원 당선자, 나주시의회 김철수 당선자도 참석해 “영산강 살리기 사업은 220만 영산강유역민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며 지지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영산강살리기 지난 98년도부터 시작된 시민운동인 영산강뱃길복원사업과 내용이 일치된다. (당시)전남도지사를 비롯한 광주시장이 이에 동참했고 16대 대통령 선거  때는 노무현 후보 역시 공약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이 지역 민주당소속 국회의원들 역시 선거 때마다 한 목소리를 냈었다.”며 “이제와서 몇몇 시민단체가 이를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며 4대강 반대자들에 맞섰다.

  • ▲ 영산강뱃길복원운동을 이끄는 시민들과 지역정치인들이 전라남도청 앞에서 4대강 사업 찬성과 뱃길살리기 촉구 집회를 하고 있다. ⓒ 뉴데일리
    ▲ 영산강뱃길복원운동을 이끄는 시민들과 지역정치인들이 전라남도청 앞에서 4대강 사업 찬성과 뱃길살리기 촉구 집회를 하고 있다. ⓒ 뉴데일리

    또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해 부정적인 광주광역시 강운태 당선자를 겨냥 “썩어버린 강물로 고통 받는 우리 영산강유역 주민들은 영산강 살리기 사업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를 반대한다” 며 “광주시는 더 이상 시민단체라는 이름을 내세워 주민들을 현혹하고 우롱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말하는 시민단체라면 강가에 사는 주민들의 생존권이 위태로워지는 것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고 주장했다.

    뱃길복원 추진위원회원인 안국현 씨는 “옛말에 우물을 파야 머구리(개구리)도 뛰어든다고 했습니다. 강에 물이 있어야 물고기도 살고 사람도 사는 것 아닙니까. 물없는 강을 되살리자는데 반대하는 게 말이 되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창원 소장은 “노무현대통령 당시에도 영산강살리기 프로젝트가 들어가 있었어요. 박준영 지사도 공약에 영산강프로젝트를 넣고 영산강 살리기에 앞장서 왔고, 민주당 당론을 거슬러가며 영산강 살리기 의지를 불태우는 까닭도 오랜 지역주민의 숙원을 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현재 반대하는 건 현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어서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고 일침을 놓았다.

    한편 두 단체는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광주, 전남지역 90여 단체가 농성을 하고 있는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30일 맞불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7월 8일엔 광주시청에서 4대강사업을 반대하는 강운태 시장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