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계종 승려들이 다투듯이 자신의 조계종 호적(戶籍)격인 승적(僧籍)을 자신의 손으로 “파겠다, 반납하고 떠나겠다”고 발표하여 언론에 오르내리고 진위여부(眞僞與否)가 불교계 사부대중(四部大衆)은 물론 일반 대중의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 ▲ 이법철 스님 ⓒ 뉴데일리
    ▲ 이법철 스님 ⓒ 뉴데일리

    조계종 승적은 어떻게 취득하는 것인가? 개인이 승려가 되려했을 때, 조계종 소속의 전국의 사찰 어느 사찰에서 승려가 되는 첫 관문인 행자(行者) 생활(예전에는 3년간 행자생활을 통해 승려가 될 수 있는지를 검증받지만, 지금은 1년이다)을 통해 검증을 받았을 때, 조계종 총본부인 총무원에서 실시하는 단일계단(單一戒壇)에서 검증받은 전국의 행자들을 한군데로 모와 소정의 교육을 실시한 후 사미계(沙彌戒)를 받게 한다.
     
    사미계를 받은 남자는 사미승(沙彌僧), 여자는 사미니(沙彌尼)라고 부른다. 사미승은 정식승려인 비구계(比丘戒)를 받기위한 수습기인 예비승이다. 사미계를 받았을 때, 당해자의 인적사항을 포함한 이력(履歷)이 최초로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의 승적부(僧籍簿)에 등재되고, 승적부에 등재될 때 정식 조계종 승려로서 인정이 되고 주민증 같은 승려증(僧侶證)이 발급되는 것이다. 사미승은 남녀 공히 옷깃에 가사 색 동정을 달아 자신이 정식 비구가 아닌 예비승 사미임을 표시해야 한다.
     
    그러나 사미승이 되고나서 정식 승려인 비구계(比丘戒)를 받으려면 사미시절, 조계종이 인정하는 승가대학을 졸업하거나 제방의 선원에서 소정의 안거(安居)를 마쳐서 인정을 받는 등 인정받는 교육을 이수해야 자격이 주어진다. 그런데 명진, 수경스님은 난행고행(難行苦行)하여 취득한 조계종 승적을 왜 스스로 “파버리겠다”, “반납하겠다”하는 것인가?
     
    조계종 승적이 건재해야 중 벼슬인 주지직과 본사 주지, 총무원장, 종정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승적이 없으면 무자격자가 되고, 조계종 사찰에서 살 수조차 없게 되는 형언할 수 없는 괄시를 받게 된다. 축객령(逐客令)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명진 스님은 총무원의 봉은사 직영이 당시 집권여당 원내 대표의 외압이라는 음모론을 펴며, “무슨 말을 누가 했다.”는 등 말시비를 좋아하는 몹쓸 동네아줌마처럼, 연일 법회에서 말시비를 해오더니, 2010년 03월 21일 일요법회에서 총무원을 향해 “납득할만한 해명 없으면 내 발로 걸어가 승적부를 파겠다”는 극언을 해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명진 스님이 승적을 파버리지 않은 것을 보면, 진심은 아니었던 같다.
     
    그런데 2010년 06월 14일 (월) 불교환경연대 대표였던 화계사 주지 수경스님이 갑자기 화계사 주지직과 조계종 “승적을 반납하겠다”며 언론에 ‘사퇴의 변’을 밝히고 잠적했다. 사퇴의 변에는 최근 문수스님의 소신공양을 보고 자신의 뇌리에 “벼락 쳤다”, “더 이상 자신을 속이며 위선적인 삶을 살 수 없다.”, "따듯한 겨울 바위 옆에 졸다 죽고 싶다" 는 등의 글을 남기고 잠적한 것이다.
     
    수경스님은 그동안 환경을 문제 삼아 부안 방폐장, 사패산 터널, 새만금 방조제, 천성산 터널, 4대강 문제 등 국책사업을 전매특허처럼 방해해오며 대정부투쟁을 업처럼 삼아오며 천문학적 국민혈세를 낭비해온 유명인사이다. 그가 갑자기 무엇이 “위선적인 삶인지” 참회하고 잠적해버렸다. 4대강 반대의 전고(戰鼓)를 울리던 수경스님이 갑자기 떠난 것은 화두가 아닐 수 없다.
     
    명진 스님의 ‘승적을 파겠다’, 수경 스님의 ‘승적을 반납하겠다’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 전례를 들어야 이해가 쉬울 것 같아 과거지사(過去之事)를 상기해본다.
     
    해방 후 조계종에서 조계종을 떠나겠다는 탈종 선언을 한 최초의 승려는 조계종 종정을 역임한 이청담(李靑潭) 스님이었다. 1969년, 청담 스님은 종정을 역임한 후 제2의 정화를 주창하다가 자신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 조계종 승려들에게 각성을 촉구하는 차원에서 탈종을 선언했다. 사부대중은 황급히 승려대회를 열어 청담 스님을 뜻을 봉대하여 총무원장으로 모신 바 있다. 이청담 스님은 종정을 역임한 분으로서 총무원장이 되고자 탈종선언을 일으킨 것이다. 전무후무(前無後無)할 사례로서 오랫동안 화제가 분분했다.
     
    그 뒤, 세계적으로 한국불교를 빛낸 유명한 일붕 서경보 스님도 탈종선언을 했다. 또 1994년 당시 종정인 송서암 스님도 탈종 선언을 하고 떠나갔다. 그들은 일평생 조계종 중흥을 위해 헌신한 고승들이었다. 왜 그들은 조계종 탈종선언을 하고 떠나야만 했을까? 송서암 스님은 95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한국 불교는 독화살을 맞고 중환자실에 누운 환자와 같다”고 개탄하여 비판하기도 했다.
     
    이청담 스님이나 서경보 스님, 송서암 스님의 탈종선언은 전 한국불교인들에게 각성을 촉구하며 자신들의 불교중흥안을 주창(主唱)하고 동의하고 따라줄 것을 바라는 봉기촉구의 격문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사부대중은 이청담스님의 뜻은 봉대했으나, 서경보스님, 송서암 스님은 외면했다. 고승들이 번신일척(?身一擲), 국면타개의 방편인 탈종선언을 소 먼 산 보듯 해버린 것이다.
     
    명진 스님, 수경 스님의 승적 파버리기, 승적 반납하기도 이청담 스님이나 서경보 스님, 송서암 스님의 탈종선언 같은, 전국 사부대중의 봉기촉구의 격문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사부대중은 명진, 수경 두 스님을 사부대중이 전례의 스님들과 같은 반열(班列)에서 존경하고 따를 수 있을까? 벌떼처럼 일어나 “큰 스님 안됩니다”는 눈물의 만류를 들을 수 있을까?
     
    불교중흥을 위해 조계종은 한국불교를 대표하여 할 일이 태산 같다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수시로 개혁과 정화를 위한 실천정신이 살아있는 모범종단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현재 가장 큰 병통은 첫째, 세속정치의 김대중 정권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흉내 내어 조계종에 각종 선거제도를 만들어 운용하는 것에 개혁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속인들은 돈 안 쓰는 선거를 시작한지 오래인데, 조계종 각종 선거는 속인들이 이미 쓰레기통에 버린 금품에 의한 부정선거의 부패한 악취가 천지를 진동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둘째, 빈손으로 절에 들어와 삼보정재를 도적질하여 졸부(猝富) 소리를 듣는 부정축재자들에 대한 척결이다. 셋째, 비구 종단을 표방하는 조계종에서 은처자(隱妻者)로 지칭되는 자들이 대한 개혁의 목소리가 충천하고 있다.
     
    그런데 불교 내부의 환부는 개혁하지 않고 상습적으로 국책사업을 망치고 반정부 투쟁을 하는 것이 한국 불교인들의 사명처럼 인식하고 홍보하며 행동하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할까? 바꿔말해 자신의 허물은 태산 같은데, 개혁은 아랑곳없이 반정부투쟁을 우선 순위로 투쟁하는 것은 종북정치(從北政治)만 외치는 일부 좌파 야당과 좌파 시민단체를 위한 전위부대 역할을 하자는 것이요, 멀리는 북한정권을 위해 전위부대 노릇을 하는 것이 아닌가? 악착같이 돈많이 나오는 사찰주지를 해서 공금을 제 마음대로 1억씩 좌파 단체에 쾌척하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당(唐) 무종(武宗) 때, 하루만에 승려의 목이 6만 명이나 참수 당한 역사가 있다. 왜인가? 당시 승려들이 돈과 권세로 황권(皇權)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어찌 무종시대만의 교훈일까?
     
    필자는 명진 스님이나 수경 스님이 어렵게 취득한 조계종 승적을 파버리고, 반납하는 것을 절대 바라지 않는다. 첫째, 그들이 출가위승한 초심을 존중하는 것이요, 둘째, 그만한 인물을 양성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직 그들이 한 생각 돌이켜 조계종 내부의 허물을 먼저 개혁하고, 대한민국에 헌신하는 불교중흥의 기수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청담 스님처럼 자신의 소신을 위해 대중 봉기촉구를 위한 방편으로 애써 취득한 승적을 파내고, 반납하는 탈종 같은 것이라면, 이청담 스님 같은 그릇이 못되기에 사부대중을 모독하는 것이요, 자존망대(自尊妄大)적 발상이어서 사부대중은 동의, 추종하지 않을 것은 물론, 오히려 고해대중의 웃음꺼리로 전락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바이다.
     
    그러나 사부대중과 일반 사회의 주목을 위한 방편의 탈종적인 언행이 아닌 초심을 위한 진짜 “버리고 떠나기”를 실천한다면, 수행자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것이라 기립박수로써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대중 기만책이 아닌 수행자의 진심이기를 바란다.
     
    조계종 승려는 행자 시절에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을 배운다. 재물과 여색은 독사(財色之禍 甚於毒蛇)와 같이 무서운 것이므로 경계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초심을 배울 때는 각골명심(刻骨銘心)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초심이 퇴색하여 무소유의 위선속에 재색을 탐하는 것은 어제 오늘 불가(佛家)의 고질적 병통(病痛)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정권은 국민들의 민주적 다수결에 의해 창출된다. 참된 수행자는 민주적 다수결을 무시하고, 반정부를 즐기면서, 돈과, 중 벼슬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