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헨티나 사회가 독립 200주년이라는 국가적인 경사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비관론에 사로잡혀 있다고 브라질 일간 에스타도 데 상파울루가 24일 보도했다.
    아르헨티나는 1810년 '5월 혁명'을 통해 스페인에 대한 독립전쟁을 선언했으며, 실제 독립은 이보다 6년 뒤 이루어졌다.
    이 신문은 현재 아르헨티나 사회를 짓누르는 비관론이 현재의 경제·사회적 어려움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기인한다고 지적했다.
    아르헨티나 일간 클라린이 여론조사기관 로메르 이 아소시아도스(Romer y Associados)에 의뢰해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5%가 "부모 세대의 생활 형편이 현재보다 더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는 "생활수준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답했으며, "과거보다 생활수준이 더 좋아졌다"고 답한 경우는 15%에 불과했다.
    또 응답자의 38%만이 "자식들 세대가 미래에 더 나은 생활환경을 갖게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으며, 27%는 "생활환경이 앞으로도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나머지 35%는 "사정이 더 나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조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응답자 가운데 4명에 1명꼴로 "자식들을 위한 더 좋은 선택은 아르헨티나를 떠나 다른 국가로 가는 것"이라고 답한 사실이다.
    일간 라 나시온이 보도한 다른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응답자의 71%가 "(다시 태어나도) 아르헨티나 국민이 되고 싶다"고 답한 반면 11%는 "유럽인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4%는 우루과이, 2.8%는 미국, 2.3%는 브라질 시민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나타냈다.
    아르헨티나 사회에 팽배한 비관론은 지난 100년 사이 잇따른 쿠데타와 경제위기의 산물로 해석되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1916년 처음으로 보통·비밀선거가 실시되며 민주주의에 들어섰으나 1930년대 들어 군부 쿠데타와 재정위기, 불안정한 경제정책이 이어지면서 큰 혼란을 겪었다. 특히 최근 20년 사이 계속된 경제위기는 아르헨티나 국민의 절망감을 키웠다는 평가다.
    아르헨티나는 1910년 독립 100주년 기념 당시에는 중남미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차지하는 지역 최대 경제국이었으며,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남미의 파리'로 불리며 눈부신 발전상을 보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아르헨티나의 경제력은 중남미 GDP의 10%를 차지하는 데 그치고, 1인당 소득 수준은 세계 50위 수준으로 전락했다.
    한편 25일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대통령,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 등이 참석한 가운데 독립 200주년 기념식이 열린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