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청년이 되면서 8.15 해방을 맞았고, 이어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6.25 전쟁과 베트남전의 최전방에서 몸을 불태웠다. 평생 군인의 반액 인생을 당연시 하며 살았다.

  • ▲ 이대용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원로 자문위원 ⓒ 박지현 기자 
    ▲ 이대용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원로 자문위원 ⓒ 박지현 기자 

    동료들이 하나 둘 눈 앞에서 죽어가고, 머리 위로 총알이 스치고 지나갈 때 마다 '내 죽을 곳이 왼쪽 소나무 아래인가, 오른쪽 소나무 아래인가' 하는 생각과 가슴을 칼로 찌르는 감각에 몸서리쳤다. 잔인한 시간이었다. 휘몰아치는 역사의 현장, 형제에 총을 드리운 그 '핏빛 전투'의 생존자 이대용 장군.

    지난 2000년 6월 중순, 그가 '김정일과의 악연 1809일'이라는 기록을 세상에 내놓은 그때 김대중 대통령은 평양에 가서 김정일과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정상회담이 있기 바로 전, 한국교육개발원이 전국 94개 중, 고, 대학생들과 교사들을 상대로 실시한 '북한 지도층은 우리가 싸워야할 적인가?'라는 설문에 전체의 53.3%가 '그렇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이 정상회담 직후 동일한 설문을 같은 이들에게 진행했을 때 '그렇다'는 응답은 19.2%로 확연히 줄어들었다. 그렇게 우리 국민들의 대북관은 2000년을 기점으로 확연히 변화됐다.

    그는 당시 어느 장관이 추천도서로 널리 보급하고 싶다며 책의 제목을 변경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민족은 반드시 망하고, 지난 날의 뼈아픈 역사를 통해 반성하며 거듭나지 않는 민족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신념으로 평생을 올곧게 살아온 군인이다. 이 장군은 "과거의 일을 과거의 일로만 처리해버리면 우리는 미래까지도 포기해버리는 우를 범한다"는 생각과 "힘을 동반하지 않는 문화는 내일이라도 사멸하는 문화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너여, 조국에 충성하라." 프랑스 패망의 실기를 담은 앙드레 모로아의 '프랑스전선'와 '프랑스는 패했다'. 이 장군은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구한말 우리 부조들이 사리사욕에 사분오열돼 서로 남의 발목을 잡느라 선진화를 이루지 못했고, 그로인해 나라를 잃고 일본의 식민지로 눈물겨운 36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 후 연합군의 승리로 해방을 맞긴 했으나 강토는 분단되고, 세계 최빈국으로서 처참하게 보릿고개에 허우적거리면서도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극한투쟁만 일삼던 우리의 현대사를 프랑스의 모로아가 대신 기록해 주는 것만 같았다.

    뼈 아픈 후회를 동반한 전쟁과 돌고 도는 복수의 굴레. 지난 19일 서울 중구에서 만난 그는 이번 천안함 사건 역시 북측의 보복에 의한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세월동안 단호한 대처를 하지 못한 채 그들의 복수를 허용한 것이 문제라 지적했다. 이 장군은 "이번에는 뭔가 교훈을 줘야한다"며 "경제적으로든 군사적으로든 분명한 공격을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강국들에 현재의 상황을 알리고, 정부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 움직임에 대해서 칭찬하며 "이명박 대통령이 뭔가를 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며 "세계에 종이 호랑이로 불려온 우리가 진짜 호랑이임을 보여줄 기회다"라고 덧붙였다. 다만, '전쟁'을 통한 무고한 희생과 그로 인한 '증오'와 '복수'의 끈을 끊어내는 것이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6.25와 베트남전 두 사선을 넘다'를 통해 1861년 4월 12일 발발한 미국 남북전쟁을 떠올린다. 4년간 치열하게 이어진 살육전, 그로인한 상대방을 향해 쏟아진 원한의 적개심. 전쟁에서 패한 남군 총사령관 리 장군은 총살을 각오하고 그랜트 장군을 찾아간다. 하지만, 그랜트 장군은 그의 군도를 받기 거부하며 항복한 남군 장병들을 포로로 억류하지 않고 석방했다. 마음속으로 울며 감동한 것은 리 장군뿐이 아니었다. 4년간의 남북전쟁에서 모든 것을 잃고 적개심에 불타던 남부 11개 주 전체 약 800만 백인들의 북군에 대한 적개심이 따뜻한 봄 햇살에 눈이 녹아버리듯 모두 사라진 것이다. 당시로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들었던 그랜트 장군의 큰 관용, 그것은 오랜 앙금으로 남을 뻔한 남북전쟁의 깊은 상처를 치유해주는 결정적 결과를 가져왔다. '힘 있는 관용' 바로 이것이 지금 우리가 배울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