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라마다 나라꽃이 있다. 영국은 장미, 스위스와 오스트리아는 에델바이스, 스웨덴과 핀란드는 은방울꽃, 네덜란드는 튤립, 독일은 수레국화, 프랑스는 흰 붓꽃, 중국은 매화, 스코틀랜드는 엉겅퀴다. 하고많은 꽃들을 제쳐놓고 스코틀랜드가 엉겅퀴를 나라꽃으로 정한 이유는 “저 옛날 덴마크 바이킹이 몰래 쳐들어 왔다가 엉겅퀴 가시에 찔려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미리 침략 사실을 알아차려 위기를 모면했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 ▲ 조양욱 일본문화연구소장 ⓒ 뉴데일리
    ▲ 조양욱 일본문화연구소장 ⓒ 뉴데일리

    우리나라의 나라꽃이 무궁화인줄 모르는 한국인은 없다. 그렇다면 이웃나라 일본의 나라꽃은? 딱 부러진 규정이 없다. 가령 일본의 국기는 ‘히노마루’(혹은 일장기), 국가(國歌)는 ‘기미가요’, 국조(國鳥)는 ‘꿩’으로 명시되어 있는 것에 견주자면 나라꽃은 다소 어정쩡한 셈이다. 다만 이런 기록은 눈에 띈다.

    “일본에서는 예로부터 벚꽃이 나라를 대표하는 꽃으로 여겨져 왔다. 벚꽃은 일본의 신화에도 나타나며, 벚꽃이 질 때의 산뜻함이 사무라이(武士)의 인생관과도 결부 지어졌다. 일본 각지에 벚꽃 명소가 있으며, 활짝 핀 벚꽃 나무 아래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것이 큰 즐거움으로 꼽힌다. 한편 황실의 문장(紋章)이 국화(菊花)여서 이것 역시 일본을 대표하는 꽃으로 치기도 한다.”(<일본, 그 모습과 마음> 신일본제철주식회사 편, 가쿠세이샤學生社 발간)

    그러니까 법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로되 온 국민이 좋아하므로 나라꽃이나 다름없다는 뜻이겠다. 극작가 겸 수필가인 다나카 스미에(田中澄江) 씨는 옛 문헌을 뒤져서 일본인들이 얼마나 벚꽃을 사랑했는지 입증하기도 했다. 즉 예로부터 내려오던 전통 시가(詩歌)를 모아 10세기 초에 엮은 <고킨와카슈(古今和歌集)>라는 책자가 있는데, 거기에 수록된 봄을 노래한 시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벚꽃을 소재로 삼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좀 다르다. 중국의 고대 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에는 “군자의 나라에 무궁화가 많은데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지더라”는 구절이 나온다고 했다. 하지만 삼림생물학자인 전영우 국민대학 교수가 조선 말기까지의 우리나라 한시(漢詩)를 조사한 결과로는, 가장 빈번하게 읊어진 꽃이 흥미롭게도 복사꽃과 살구꽃, 그리고 배꽃의 순으로 나타난 모양이었다.
    신통하게도 소나무는 한국과 일본 양쪽에서 다 인기를 끌고 있었다. 위의 전영우 교수의 조사에서도 비록 1위를 차지한 최고 인기 품종은 버드나무였으나 2위는 소나무였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일본에서 소나무가 받는 대접은 해마다 설날이 닥치면 확연하게 드러난다. 집집마다 소나무 가지를 꺾어서 대나무와 함께 엮은 ‘가도마쓰(門松)’라는 이름의 꽃바구니 아닌 나무 바구니로 대문이나 현관을 장식하는 것이다. 일본의 민속에서는 조상신이 소나무에만 깃들인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도마쓰’의 소나무가 새해를 상징하다보니 당연히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으로도 이해되었다. 그로 인해 인생무상을 읊는 대상으로 둔갑시키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그 진수는 14세기의 괴짜 승려 잇큐(一休)가 풍자와 익살이 잔뜩 섞인 한 수의 시로 보여주었다.

     “가도마쓰는 명토(冥土= 저승)로 가는 나그네 길의 ‘이치리즈카’ / 경사스럽기도 하거니와 서글프기도 하여라!”

    ‘이치리즈카(一里塚)’라는 것은 옛날 일본에서 여행객들을 위해 대략 10리(=4킬로미터)마다 길가에 흙을 쌓아 팽나무나 소나무를 꽂아둔 이정표를 가리킨다.
     벚꽃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으니 벚꽃 이야기로 말문을 닫기로 하자. 일본에는 가는 곳마다 벚나무가 없는 곳이 없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일본 3대 벚나무’라는 것이 있다. 수령(樹齡)이 천 년을 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후쿠시마현(福島縣)의 ‘폭포 벚나무’(이름은 瀧櫻이다), 기후현(岐阜縣)의 ‘묽은 먹물 벚나무’(= 淡墨櫻), 야마나시현(山梨縣)의 ‘신화 벚나무’(= 神代櫻)가 그것이다. 폭포 벚나무의 경우 해마다 봄의 벚꽃 시즌이면 일본 각지에서 수 십 만의 관광객이 구경하러 밀어닥친다. 그래도 한국의 정2품송처럼 관위(官位)를 부여받은 나무는 아직 없으렷다!


    기미가요(君が代)
    1964년의 도쿄올림픽에서도 일본국가로 불렸으나 법적으로 공식 인정된 것은 1999년 8월13일이다. 일본정부가 이날 자로 국기와 국가에 대한 법을 공포, 시행했기 때문이다. 10세기 초에 만들어진 일본 최초의 시가집 <고킨와카슈>에 작자 불상으로 수록되어 있다는 기미가요의 가사는 “님(君)이 다스리는 세상 / 영원무궁토록 이어지소서 / 조그만 돌멩이가 바위가 되고 / 거기에 이끼가 낄 만큼 먼 훗날까지 / 영원히 이어지소서”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님’이 천황을 가리키는 건 코흘리개라도 알겠건만 일본정부가 딱 부러지게 밝힌 적은 없다. 곡은 메이지(明治) 시대(1868~1912년)에 와서 하야시 히로모리(林廣守)라는 궁중음악 연주자에 의해 붙여졌다고 한다.

    히노마루(日の丸)
    일설에는 예로부터 신사(神社)에서 달았다고도 하며, 16세기 경 일본 배들이 이 깃발을 달고 다녔다는 이야기도 있다. 기록으로는 에도(江戶) 시대(1603~1867년) 말기 사쓰마 번(薩摩藩= 현재의 규슈 가고시마 지역)의 영주였던 시마즈 나리아키라(島津齊彬)가 당시 일본 바다에 빈번히 출몰하던 서양 선박과 구분하느라 하얀 천에 태양을 그린 깃발을 휘하 선박에 달도록 한 데 이어, 중앙 행정관청이었던 막부(幕府)에 건의하여 국기로 삼도록 했다고 한다. 메이지유신 이후 새롭게 들어선 중앙정부가 히노마루를 국기로 인정한 것은 1870년이었다. 깃발의 치수는 가로세로 비율이 3대2, 가운데 동그라미의 지름은 세로 길이의 5분의 3이다.

    도서출판 기파랑 펴냄 '일본 상식문답' 중에서

    도서 문의 : 기파랑 02-763-8996

    조양욱 : y2cho88@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