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흔히 '알쏭달쏭'하거나 '불분명한 상황'을 설명할 때 '애매모호(曖昧模糊)하다'라는 표현을 무심코 하게 됩니다. 이 말은 '애매하다'와 '모호하다'가 합쳐진 말로 알고 많이들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역전(驛前)앞' '백발머리'처럼 의미가 중복되는 겹말로 엄밀히 따지면 어법에 어긋난 표현입니다.

    순수 우리말에서 '애매하다'는 엉뚱한 죄를 뒤집어 썼을 때 쓰이는 표현으로 '억울하다' '애꿎다'와 같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일본말에도 한자어로 '애매(曖昧)'가 있는데, 이 용어는 우리가 쓰는 한자어 '모호(模糊)'와 비슷한 뜻을 지닌 말로 '희미하여 분명치 못하다'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그러다보니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식 한자투에 익숙한 일부 식자층에서 두 용어를 무분별하게 결합하여 쓰던 것이 오늘날까지 그대로 굳어져 내린 듯합니다. 중국어 사전 '사원(辭源)'에는 '모호(模糊)'와 '애매(曖昧)'가 표제어로 등재되어 있는데, 둘 다 '불분명하다'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이로 보아 중국에서는 이 두 낱말이 비슷한 뜻으로 같이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일본의 '대사전(大辭典)'에는 '애매(曖昧·あいまい)와 '모호(模糊·もこ)', 그리고 '애매모호(曖昧模糊·あいまいもこ)'가 모두 '불분명하다'라는 뜻으로 함께 등재되어 있습니다.

    이로 보아 '애매모호'는 일본인들이 만든 조어인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우리나라 '한국한자어사전(韓國漢字語辭典)'에는 '모호(模糊)'만 등재되어 있습니다. 즉 우리나라에서는 '불분명하다'는 뜻의 한자어로 '모호'만 사용하고 '애매(曖昧)'는 사용하지 않았는데, 아마도 우리 고유어에 '애매하다'(=억울하다)라는 용어가 있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상대방에게 뚜렷한 청각적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비슷한 말을 겹쳐 쓰는 언어 현실을 인정해 '애매모호'도 쓸 수 있다고 주장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불분명하다'는 뜻을 나타내고자 할 때 '애매하다' 또는 '애매모호'라는 잉여적 표현은 하지 말아야 하겠으며 그냥 '모호하다'라고 해야 어법에 맞습니다.

    참고로 우리 고유어에 '불분명하다'라는 뜻을 가진 '아리송하다' '알쏭달쏭하다'라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표현도 있으므로 많이 활용해봄직 합니다. '애매하다'라는 말은 '억울하다'라는 뜻으로만 사용하고, '불분명하다'라는 뜻으로는 '아리송하다' '알쏭달쏭하다', 뭔지 잘 모르겠을 때는 '모호하다'라는 말을 쓰는 것이 어떨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