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오르지 못한 채 꺼져버린 가슴 속 작은 불꽃 하나. 그와 그녀의 새빨간 거짓말….

  • ▲ 영화 '제로포커스'(좌-히로스에 료코, 우-나카타니 미키) ⓒ 뉴데일리
    ▲ 영화 '제로포커스'(좌-히로스에 료코, 우-나카타니 미키) ⓒ 뉴데일리

    누구에게나 결코 밝히고 싶지 않은 비밀 하나쯤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모두 필사적이 된다. 그러는 동안 자신이 얼마나 더 추한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지도 모른채.

    유명인들의 학력위조 파문이 한때 우리 세대를 시끄럽게 달궜던 때가 있었다. 거짓말과 더불어 그로인한 명예와 부를 축적해온 이들에 대한 지탄의 목소리가 세상 가득 에워쌌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을 느낀 사람들도 분명 존재했다. 어이없는 거짓말임이 분명하지만, 그들에게는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지키고 싶었던 세상에 알려질까 두려운 단 하나의 자존심이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 영화 '제로포커스'(좌-니시지마 히데토시, 우-히로스에 료코) ⓒ 뉴데일리
    ▲ 영화 '제로포커스'(좌-니시지마 히데토시, 우-히로스에 료코) ⓒ 뉴데일리

    영화 ‘제로포커스’는 데이코(히로스에 료코)가 결혼 일주일 만에 행방불명이 된 남편 겐이치(니시지마 히데토시)의 흔적을 쫓아 가나자와로 향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의 행방을 찾아 진실에 가까워 지려는 찰나 어김없이 일어나는 의문의 연쇄 살인사건. 그 사건의 진실을 향해 달려가는 한 여인의 여정을 그린 드라마다. 이 영화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인간의 원초적인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인간 본질에 대한 고민과 물음표를 심어놓는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속 사치코(나카타니 미키)라는 인물에 대한 공감이 크다. 거짓말에 거짓말을 더해갈 수 밖에 없는 단 하나 남은 자존심. 무너뜨릴 수 없는 그 마지막 희망 하나. 자신의 가장 밑바닥이라 여기는 기억을 차마 세상에 내어놓을 수 없기에 어떠한 진실도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그녀의 신음소리. 이 영화는 말 할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한 이들에게 특별한 울림을 주는 영화다.

    이 영화는 스릴러지만 괴기스럽거나 긴장감이 폭발하지 않은채 그들의 뒤를 쫓는다. 특히, 지난해 드라마 ‘Jin 仁’을 통해 화려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나카타니 미키의 광기어린 연기가 눈길을 끈다. 마치, 남편의 불륜 상대를 살해한 영화 '시크릿' 속 송윤아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섬세한 그녀의 표정 연기에 어쩌면 처음부터 맥이 빠져버리는 결과를 보게 될지도 모르지만, 여느 미스터리 영화와는 달리 이 영화는 범인이 누구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라는 물음표를 달고 있는 꼴을 갖추고 있기에 그녀의 불안정한 감정 곡선이 오히려 극을 안정된 스토리 안에 들여놓는다.

  • ▲ 영화 '제로포커스'(왼쪽부터 기무라 타에, 히로스에 료코, 나카타니 미키) ⓒ 뉴데일리
    ▲ 영화 '제로포커스'(왼쪽부터 기무라 타에, 히로스에 료코, 나카타니 미키) ⓒ 뉴데일리

    '시대'는 변해도 '과거'는 변하지 않는다. 일본 추리 문학의 전설로 불리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 진 이 영화는 그의 소설 '제로의 초점'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1950년대 전쟁의 파편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그 시대에 '새로운' 인생을 꿈꾸던 일본 젊은이들이 '과거'에 얽매여 추락해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담아냈다. 이 영화는 대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의 스토리텔링과 인간 심리에 대한 세밀한 묘사에 능한 이누도 잇신 감독이 만남으로써 완벽한 꼴을 갖춘 작품으로 탄생하게 된다.

    한편,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는 한국과 일본의 모습에 때때로 불편함을 느낄 때가 있다. 특히 '전쟁'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을 때의 반감은 더 크다. 영화 초반 일본의 경제성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흑백 영상들에 달갑지만은 않은 감정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철저히 일본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이 작품에 한국인들의 공감은 다소 부족할 수 있다.

    다만, 이누도 잇신 감독의 이야기 처럼 과거는 물론 현 시대의 일본인들 역시 이 영화를 통해 공감을 일으켰듯, 사회상은 닮지 않았다 하더라도 과거를 떠나 새로운 길을 준비하는 우리 시대의 이들에게도 공감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충분히 많은 작품이다.

    특히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구구는 고양이다' 등을 통해 담담하게 인간 내면에 숨겨진 깊은 고독을 담아냈던 이누도 잇신 감독의 팬을 자처한다면 이 영화 역시 만족스러울 것이다. 데이코의 손 위에 남겨진 캐러멜 하나의 달콤한 처럼 이전 시대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요소들도 곳곳에 눈에 띈다. 결론에 있어 다소 허망스러운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그 과정만큼은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