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편의 드라마

     

              일본의 공영 방송인 NHK에서는 지난 연말과 올 초에 괄목 할 만한 대하드라마 두 편을 방영하였다. 지난 해 12월, 매 일요일 밤 8시에 방송된 <언덕 위의 구름>은 모두 13부작으로 된 90분짜리 대하역사드라마로  2009년에 1부(5부작)를 방송하고, 2부(5부작)는 2010년 12월에 방송하며, 나머지 3부(3부작)는 2011년 12월에 방영하겠단다. 우리나라의 프로덕션 드라마 <선덕여왕>이나, <아이리스>보다 훨씬 더 많은 제작비를 투입하면서도 3년에 걸쳐 방송하겠다는 것은 한 치의 하자도 없는 완벽한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NHK의 저력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한다.

              제작은 그렇다 치고 드라마의 내용은 또 어떠한가. 명치유신을 끝낸 신생 일본국은 새로운 나라의 체제를 갖추기 위한 급물살에 휩싸인다. 이  드라마에 처음 나오는 자막은 <國家>였고, 처음 울린 해설은 <보잘 것 없는 작은 나라가 개화기를 맞고 있었다.>이다. 시고쿠(四國)의 작은 고을(松山)에 가난에 시달리는 세 사람의 소년이 있다.
              이 세 사람의 소년들 중에서 아키야마(秋山) 형제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각각 일본군 육군 기병대의 사령관과 러일전쟁의 승리를 부르는 연합함대의 작전참모가 된다.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인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는 피를 토하는 폐병을 앓으면서도 하이쿠(俳句)와 단가(短歌)를 일본국 근대문학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해 나간다.

               이들 젊은 세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이들을 에워싼 동료, 선배들, 그리고 스승들 또한 입만 열면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 강대국으로 도약하게 하고, 세계의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열망을 입에 담는다. 이 같은 절체정명의 과제를 무려 3년에 나누어 방송하는 NHK의 느긋한 자신감에 부럽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TV에서는 매주 일요일 밤 8시가 되면 대하역사드라마를 방영한다. 1회분을 45분짜리 길지 않은 역사극으로 제작하여  총 50여 회를 1년간에 걸쳐 방송하는데, 1963년 <꽃의 생애花の生涯>로 첫  방송을 시작하였으니까 어언 47년의 역사를 간직한 NHK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정착했다. 장장 47년 동안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방송 된 47편의  드라마가 모두 시청률이 높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 동안 단 한 번도 편성이나 포맷을 바꾸지 않는 NHK의 양식과 뚝심에도 갈채를 보내게 된다. 
            
               또 채택되는 소재만을 살펴도 NHK나름으로 시대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일본 국민들의 역사인식이나 정체성을 점검하도록 배려함으로써 공영방송이 국가에 기여해야하는 책무까지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있음은 배울만하다.
             2010년 1월 첫 일요일에 방송된 대하역사드라마는 <료마텐(龍馬傳)>이다. 물론 명치유신의 영웅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의 일대기를 그리게 되면 역시 <국가>, <변화>, <꿈>, <국가의 미래> 등을 외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1835년, 도사 번(土佐藩:지금의 시고쿠(高知市)의 고오시(鄕士:하급무의 사)의 아들로 태어난 료마는 19세가 되어서야 검술공부를 하기 위해 에도로 떠난 촌놈중의 촌놈이다. 그가 검술도장에서 호쿠신잇토류(北辰一刀流)의 연마에 전념하고 있을 때, 소위 쿠로부네(黑船)의 소동과 함께 일본국은 존황토막(尊皇討幕:황실의 존엄을 되찾고, 막부를 때려눕힌다)의 소용돌이 속으로 희말려든다.
               열혈청년 사카모토 료마의 운명을 바꾸게 한 것은 후일 일본국의 해군을 창설하게 되는 개화의 선각자이자 13년 연상인 가쓰 카이슈(勝海舟)라는 걸출한 선각자와 만나게 되면서다. 사카모토 료마가 급변하는 세계정세를 정확하게 읽고 행동할 수 있는 모든 논리와 체험의 길을 터준 후원자요 선각의 스승이었기 때문이다.
         
                  29세의 열혈청년 사카모토 료마는 가쓰 카이슈의 사숙(私塾)인 고베(神戶)의 해군조련소의 우두머리(熟頭)가 되어 후진을 양성하면서 해원대 대장(海援隊 隊長)이 된다. 그후 사카모토 료마는 가쓰 카이슈가 주선한 상선을 타고 전 일본국 국토의 연안을 누비고 다니면서 국제공법(國際公法)을 몸으로 익혀간다.
                1865년, 31세 때 사카모토 료마는 동지 50명을 규합하여 일본상사(日本商社)의 원형이라고도 평가되는 카메야마샤추(龜山社中)를 조직하여 사무소를 나가자키(長崎)에 두고, 운수, 개척, 투기, 수입대행 등의 업무를 개시했는데 모든 직원의 월급을 차등 없이 동일하게 지불할 만큼 신감각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이 일을 료마의 친구이자 미쓰비시상사(三菱商社)의 창업자인 이와사키 야타로(岩崎你太郞)는 참으로 놀라운 상술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회고 한다.

                  사카모토 료마가 이루어낸 최대의 공헌은 사이가 벌어진 조슈와 사쓰마를 화해하게 하여 이른바 삿조 동맹(薩長同盟)이라는 회천(回天)의 대업을 성사시킨 일과 선중팔책(船中八策)이라고 불리는 이른바 평화적 대정봉환(大政奉還)이라는 획기적인 계책을 마련한 일이다.  

                 물론, 사카모토 료마가 드라마 화 된 것은 이번이 첨이 아니다. 속된말로 심심하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서 일본의 청소년들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를 상기하게 하고, 아울러 꿈과 희망을 심어 주어왔다. <료마전> 제 1회가 방송된 뒤의 시청률 조사는 무려 23%를 기록하였고, 또다시 사카모토 료마의 붐이 일 것같다는 견해가 쏟아져 나왔다.  참으로 놀랍고 부러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똑 같이 국민의 시청료를 걷어서 운영하는 이웃나라의 공영방송의 드라마는  국가, 미래, 희망을 역설하고, 청소년들을 이에 열광하게 하는 데, 우리 방송은  <국가>나 <꿈>라는 라는 개념은 고사하고, 억지 춘향으로 꾸며진 스토리에 쓰잘 데 없는 말장난이나 일삼는 막장드라마에만 매달리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