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에서 빠져나간 다트가 허공을 가른다. ‘탁’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다트가 보드에 꼽히고 보드 위에 자리한 모니터엔 해당 점수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다트를 빌려 도전에 나섰다. 하지만 이게 웬걸. 보드 중심을 겨냥해 던진 다트는 어처구니  없는 곳으로 날아가 벽에 부딪치더니 떨어지고 말았다.
    “힘을 빼세요. 손목으로 밀듯이 던져야 해요.”
    옆에서 지켜보던 고준 프로가 ‘원 포인트 레슨’을 해준다. 몇 번이나 엉뚱한 곳에 다트를 날리다 모처럼 변두리나마 보드에 꽂을 수 있었다. 성취감이 밀려온다.

    한국의 젊은 기업인이 일본 다트 세계 움직여

  • ▲ 홍인터내셔날 홍상욱 사장 ⓒ 조선일보 제공 
    ▲ 홍인터내셔날 홍상욱 사장 ⓒ 조선일보 제공 

    지난해 12월 중순 일본 치바현 마쿠하리 멧세의 대형 전시장. 
    이른 아침부터 전시장 입구는 다트 동호인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일본 최고의 소프트다트 프로대회인 ‘2009 PERFECT FINAL’이 이날 열렸다. 멀리 홋카이도나 오키나와에서 달려온 다트 동호인들은 팀마다 다른 유니폼을 입고 선수 등록을 하고 장비를 챙기느라 부산했다. 주최 측은 약 3000명의 동호인들이 이날 경기에 참가했다고 귀띔했다.
    수상자들에게 주어지는 상금만 1억원이나 되는 프로다트대회 ‘PERFECT’는 지난 2007년 창설됐다. 전국을 돌며 매년 12회 경기를 치르고 연말에 결선대회를 치른다. ‘2009 PERFECT FINAL’은 2009년 한해의 다트 챔피언을 뽑는 결선대회. 경기장을 가득 메운 3000명의 ‘남녀노소’들은 직접 경기를 즐기고 프로들의 경기도 관전한다. 얼핏 보면 대학가 축제의 모습과도 닮았다.

  • ▲ 3000여명이 몰린 ‘2009 PERFECT FINAL’ 경기장 ⓒ 뉴데일리
    ▲ 3000여명이 몰린 ‘2009 PERFECT FINAL’ 경기장 ⓒ 뉴데일리

    이날 가장 바쁘게 대회장을 오가는 사람이 있었다. 홍인터내셔날 홍상욱 사장. 홍 사장은 일본 최대, 최고의 대회인 이 ‘PERFECT’를 창설 때부터 직접 운영과 후원을 하고 있다. 한국의 한 젊은 기업인이 일본의 다트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홍 사장은 지난 1998년 일본대 상학부(商學部)를 졸업했다. 이듬해 (주)하이테크원을 창업하고 사업에 입문했다가 2002년 소프트 다트 게임기인 ‘타우르스’를 개발해 다트 세계에 뛰어들었다.
    “미국에 갔을 때예요. 우연히 만난 미국인이 나무를 칼로 다듬어 정성스레 다트를 만들더라고요. 너무 지극정성이어서 이유를 물었더니 다트의 흥미로움과 장점들을 설명하는데 끝이 없어요. ‘아, 이것(다트)이 물건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지요.”
    한번 다트에 ‘필이 꽂히자’ 홍 사장은 국내에 들어와 스포츠게임기기로서의 디지털다트 개발에 매진했다.
    다트 인구가 일본에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적은 한국에서 디지털다트 개발은 쉽지 않았지만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월드컵의 열기가 채 식지 않았던 2002년 9월 ‘타우르스’ 개발에 성공했다. 우수한 품질 탓에 일본 최대의 게임메이커인 TAITO에 수출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2년 뒤인 2004년 8월엔 중국 시장에도 팔려나갔다.
    대성공이었지만 그래도 뭔가 부족했다. 인터넷으로 세계가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세상에서 다트도 그렇게 실시간으로 연결할 수는 없을까? 이런 2%의 부족함이 온라인 디지털다트인 ‘피닉스’ 개발로 이어졌다. 소프트 다트에 우리나라의 온라인게임 모델을 접목해 출시한 ‘피닉스’는 까다롭기로 이름난 일본시장에서 통했다.
    인터넷 통신망을 이용해서 원격대전을 할 수 있게 한 ‘피닉스’는 원하는 지역과 상대방의 수준을 입력하면 멀리 떨어진 곳에서 게임을 즐기는 사람과 실시간으로 승부를 겨룰 수 있게 해준다. 카메라로 상대방을 볼 수 있어 부정행위에 대한 걱정도 없다. 도쿄에 유학 간 아들과 나가사키의 아버지가 언제든 ‘한 게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다트의 왕국 일본에 다트의 변방인 한국이 만든 온라인 디지털 다트는 힘차게 뻗어나갔고 1000만을 헤아리는 일본의 다트 동호인들은 열광했다.
    ‘피닉스’는 일본 전역에 6000여대나 팔려 나갔다. 업계 최고의 성적이다.

    일본 대기업과 법정 분쟁에서 완승

  • ▲ 온라인 디지털 다트 '피닉스' ⓒ 뉴데일리
    ▲ 온라인 디지털 다트 '피닉스' ⓒ 뉴데일리

    “처음부터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은근히 차별이 심한 일본인들에게 ‘한국 것이 다 그렇지’라는 소리를 안 듣기 위해 홍 사장은 품질과 AS에 최대한 힘을 기울였다. 고객의 불만이나 고장 신고가 들어오면 한밤중이라도 차를 몰고 일본 전역을 누볐다. 납기를 맞추려고 항구에서 직원 두 명과 수백 대의 다트머신을 직접 선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끝없는 연구투자로 지난해 4월부터는 휴대폰과 연동하는 시스템을 선보였다. 일본에서 시작한 이 모바일 서비스는 휴대폰을 이용해 언제든지 자신의 점수를 확인하고, 친구가 어떤 다트 게임장에 있는지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피닉스'로 홍 사장은 일본 현지법인 HIC를 통해 지난해 3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잘 나가자 ‘유사품’들이 생기고 특허 분쟁도 일어났다.
    일본 국가대표 게임개발사 ‘세가’가 시비를 걸어왔다. 명백한 홍인터내셔날 기술을 자신의 회가 기술을 도용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소송을 걸어왔다.
    “법을 몰랐습니다. 더구나 일본법이어서요. 독학하다시피 일본 법전을 펴놓고 공부를 했지요.”
    낮엔 회사일, 밤엔 특허법 공부로 분주했다. 이를 지켜보던 일본 변호사가 스스로 변호를 자청했다. 두 번에 걸친 법정 싸움 끝에 법원은 홍 사장의 손을 들어줬다.

    일본을 평정한 홍 사장의 시선은 이제 한국으로 향하고 있다.
    홍인터내셔날은 일본 시장에는 성공적으로 안착했지만, 국내에선 3년째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형편. “한국에서 다트를 활성화하기 위해선 가장 먼저 다트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일부에서 다트를 단순한 오락이나 사행성 게임으로 보는 시각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다트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스포츠입니다.”
    홍 사장은 “내기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기도 한 스크린골프는 스포츠시설로 인정하면서 운동량이 적지 않고 집중력이 필요한 디지털 다트를 게임으로 분류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다트는 스크린골프에 비해 훨씬 대중성이 높다는 점도 지적했다.
    정준모 변호사 역시 의견서를 통해 “디지털 다트가 스포츠의 조건인 운동성과 자기목적성, 경쟁성, 규칙 및 조직성, 윤리성을 모두 갖춰 스포츠 및 체육으로 인정받을 요건이 완벽하다”고 밝히고 있다.

    홍 사장은 국내 다트 인구의 저변 확대를 위해 열성을 기울이고 있다. 국내 대회를 만들어 선수를 육성하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건전한 레저문화를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게임기 보급과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그 결실로 이날 열린 ‘2009 PERFECT FINAL’에서 홍인터내셔날 소속의 고준 선수가 8강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부산이나 후쿠오카 등에서 한국과 일본의 동호인들이 함께 우정을 나누는 대회를 성대하게 여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홍 사장은 “꼭 한국에서도 스포츠로서의 다트 돌풍을 일으킬 것”이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