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형국 녹색성장위원회 위원장 ⓒ 뉴데일리
    ▲ 김형국 녹색성장위원회 위원장 ⓒ 뉴데일리

    지난 8월 8일 태풍 ‘모라꼿(Morakot)’이 대만을 강타했다. 항구도시 가오슝 일대는 시속 1백8킬로미터의 기록적인 강풍에다 그곳의 1년 강우량에 달하는 2천5백 밀리미터의 폭우가 한꺼번에 쏟아져 온천휴양지 호텔이 무너지고, 산사태로 거대한 산 한쪽이 쓸려나갔다. 특히 3백 가구 1천3백명이 사는 샤오린 마을을 초토화해 1백36명 사망에 4백명 실종이라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천재(天災)는 인재(人災)라고 여기는 것이 고금의 상식이다. 초대형 재해를 예보하지 못한 데다 늑장 대응한 책임을 지고 내각 사무총장 등이 사임했다. 태풍의 진행 속도가 아주 느려 그 위력을 제대로 짐작하지 못한 탓이었다. 
    태풍은 바다에서 증발하는 수증기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뒤늦게 밝혀진 바로는 당시 인근 필리핀 해역의 해수면 온도가 섭씨 2도 올라갔다고 한다. 이 탓에 엄청난 양의 수증기가 생겼고, 그것을 머금은 태풍이 회오리를 치면서 폭우를 쏟아냈다. 슈퍼 태풍으로 50년 만에 최악의 재해를 입은 대만은 마침내 총통이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를 ‘국적(國賊)’으로 간주해 대처하겠다고 공언했다.
    ‘재앙은 하나로만 오지 않는다(禍不單行)’는 경구(警句)를 실증하듯, 태풍은 바람 난리인 풍재(風災)에 물난리인 수재(水災)가 겹치는 천재다. 천재가 예견되면 사람들은 우선 말로써 슬슬 달래게 마련이다. 
    19세기 말 이래 한반도에 수재와 풍재, 그리고 병화(兵火)인 화재(火災)를 더한 삼재가 닥칠 것을 두려워했던 팔도 사람들이, 예언서 <정감록>이 십승지(十勝地)의 첫째로 꼽았던 경북 영주시 풍기읍 금계동으로 몰려들었다. 
    고려 때 몽골의 침입이나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큰 피해가 없었다는 소문을 듣고는 한말에 이어 일제강점기에 특히 평안도 사람들이 대거 이주했다. 삼재가 들지 않은 ‘영험’이 ‘경험’으로 증명됐다며 6·25전쟁 때도 타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1980년대 초 통계가 말해주듯, 풍기 주민 80퍼센트가 1백년 안짝에 전국 팔도에서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주술적 말보다는 행동이 필요하다. 전통시대의 삼재는 국지적이어서 나라 땅에서 피할 곳이 있었다. 그러나 세계 곳곳이 산업화와 근대화에 매달리자 온실가스 농도가 높아지면서 지구가 데워졌다. 이젠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만이 지구를 살릴 수 있는 최우선 대책이다.
    그런데 대책 실현에 필수인 국민적 경각심은 함량 미달이다. 다른 선진국도 그렇다지만 온실가스가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 위험성을 말함은 ‘구름 잡는 허황된 소리’쯤으로 받아들여지기 일쑤다.
    가해에 일단의 책임이 있고, 피해가 무작위로 예상됨에도 시민들이 무감각하니 이런 딜레마가 없다. ‘저탄소 녹색성장’은 현장이고 생활의 절대 기반이다. 여기서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이해와 실감이 부족하니 어찌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할 것인가.
    최근 휴가차 모국을 찾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누구보다 두루 꿰뚫고 있는 분이다. 정부 요인들 앞에서 반 총장이 신신당부한 말은 미디어를 통해 알려진 보도보다 사태가 한층 심각함을 유념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모라꼿의 위력은 타산지석이고, 준비를 당부하는 반 총장은 선지식(善知識)이다. 더 위력적인 경보등도 우리가 빤히 보는 앞에서 켜졌다. 모라꼿 여파로 수도권 동두천에 8월 11일 즈음 3백58밀리미터의 물 폭탄이 떨어졌던 것이다. 우리에게도 온실가스를 나라 존망을 위협할 소지가 있는 공적으로 삼으라는 하늘의 재촉이 아니겠는가. 녹색성장과 녹색생활이 필요한 이유다.

    <위클리 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