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국민은 30일 정권교체를 선택했다.

    1955년 이래 54년간 일본 정치를 주도해 온 자민당 정권에 대해 엄중한 심판을 내리고 사상 처음으로 야당에 4년간 거대 일본호의 운항을 맡긴 것이다.

    자민당은 집권 여당의 '책임'을 내세우면서 경제재건을 약속했지만, 54년 자민당 집권이 결과적으로는 빈부격차 확대, 도시와 농촌간의 격차 확대, 비정규직 대폭 증가 등 여러 가지 병폐를 양산한 것을 체험한 국민은 더는 표를 주지 않았다.

    ◇민주당 압승 배경 = 우선 자민당 장기 집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된 것을 꼽을 수 있다.

    냉전 체제였던 1955년 출범한 자민당은 반공과 경제성장을 내세우면서 일본의 경제발전을 이뤄 왔지만, 그 과정에서 관료 의존이 지나치게 심화되면서 각종 정책이 중앙 중심, 효율 중심으로 진행됐다. 그 결과 빈부격차, 도시와 지방간의 격차가 심각해지면서 자민당 정권에 대한 민심이 극도로 악화됐다.

    물론 2005년 총선에서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총리가 비효율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우정(郵政) 분야 민영화 등 각종 개혁 조치를 내걸면서 자민당이 3분의 2 이상 의석을 확보하는 등 선전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격차확대로 인한 서민들의 상실감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자민당이 1993년 일시 정권을 내줬을 시점에서 일본 정치권에서 자민당의 역할이 끝났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여기에 지난해 하반기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인해 다소 회복 기미를 보이던 경제가 다시 급속하게 후퇴한 것도 자민당에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했다. 특히 올해 선거 과정에서는 건설협회, 의사협회 등 각종 이익단체들의 자민당 이탈 현상이 이어졌다. 이들 협회는 사실상 자민당의 지방조직 역할을 해 왔으나 극도의 민심 이반이 이들 단체의 이탈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야마구치(山口)현립대학 아사바 유키(淺羽祐樹) 교수(비교문화학부)는 "4년 전 선거에서 압승한 자민당은 고이즈미 인기에만 편승한 나머지 그 이후에 정권을 갖고 놀다시피 총리를 바꿔 맡는 등 정부, 여당으로서 당연히 져야 했던 '책임'을 스스로 배반해 유권자들의 버림을 받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민주당의 선거전략도 이번 총선 판도를 조기에 정착시키킨 요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 그동안의 선거전에서 민주당은 주로 당 지도부들의 지원유세 등에 의존하는 '공중전' 위주로 전개해 왔다.

    그러나 2006년 출범한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대표 체제에서 유권자와 후보와의 대면접촉을 강화하는 등의 선거전략으로 전환했다. 이는 2007년 참의원 선거 대승으로 참의원 원내 1당의 자리에 오르는 결과로 이어졌다.

    여기에 이번 총선에서 자민당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겨냥, '새로운 일본', '이번엔 정권교체'라는 슬로건을 전면에 내세운 전략도 주효했다. 자민당이 수권정당의 책임력, 경제회생을 내걸었지만 54년 자민당 체제가 결국은 국민이 아닌 관료를 중심으로 한 정치였다는 점을 부각한 것이 유권자들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다만, 민주당으로서는 독자적인 경쟁력으로 인한 지지라기보다 자민당에 대한 실망으로 인한 반사이익이 적지 않았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메이지(明治)대 가와카미 가즈히사(川上和久) 부학장(정치심리학)은 "(민주당 선택은) 공약 실현성보다 우선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했기 때문"이라며 "그렇지만 민주당 정권이 어린이 수당 등 주목되는 정책 공약을 바꾸면 지지율 저하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정권의 내정과 외교 = 민주당 정권에서는 국내정치나 외교, 안보 등에서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우선 54년간의 자민당 정권에서 각종 정책의 중심에 서 있던 관료들의 위상이 상당히 추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차기 총리가 될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대표는 그동안의 선거 과정에서 "일본 정치의 중심을 관료에서 국민으로 바꾸겠다"고 역설했다. 각종 정책을 관료가 아니라 정치, 즉 민주당의 주도로 국민의 눈높이에 입각해 재점검하겠다는 것이다.

    외교면에서도 변화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자민당이나 민주당 모두 미·일 동맹을 외교정책의 핵심으로 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긴밀하면서도 대등한 외교'를 강조하고 있다.

    오는 1월 기한이 만료되는 인도양에서의 다국적군 함대에 대한 해상자위대의 급유 지원활동도 일단 연장을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했다. 또 미·일 지위협정도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는 등 자민당이 대미 의존적이었다면 민주당은 독립성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그동안 공약 제정 과정 등에서 민주당이 대미외교에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많이 약화시켰다는 점에서 실제 집권을 할 경우엔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외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민주당이 승리할 경우 차기 총리가 될 하토야마 대표는 이미 여러 차례 한국, 중국 등 아시아와의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일본 총리나 각료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반대, 야스쿠니신사를 대체할 국립추도시설 건설, 아시아 공통 통화 창설 등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이 그의 대아시아 관계 설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 총선 이후 정국 전망 = 민주당 정권의 향후 정국 운영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민주당으로서는 정권을 잡게 됐지만, 여전히 참의원에서 단독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참의원 1당을 차지하고 있지만 사민당, 국민신당 등 다른 야당의 협조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당장 이들 야당과의 공조 강도를 어느 정도로 설정할지가 과제다. 그러나 안보 등의 분야에서 사민당과는 시각차가 적지 않아서 연립, 또는 정책 논의 과정에서 마찰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또 이번 총선에서 이긴 근본적인 배경이 국민의 변화 요구인 만큼 당장 자민당 정권과의 차별성을 가시적으로 보여줘야 할 필요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내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국민이 어떤 심판을 내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릿쿄(立敎)대 이종원 교수(법학부)는 "관료들의 저항이나 보수파의 반발이 예상되지만, 이들을 억제하기 위해서라도 강한 속도전이 전개될 것으로 본다"며 "내년 선거 이전에 개혁의 성과를 연출해 확실한 개혁적 이미지를 국민에 심어놔야 하기 때문"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맥락에서 당 지도부는 선거 과정에서 제시한 대로 내년도 예산에 대한 전면적인 수술 등 강도 높은 개혁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야당' 자민당의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이란 게 문제다. 자민당도 새 지도체제를 구축한 뒤 그간 여당으로서의 국정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민주당의 각종 정책에 제동을 거는 등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크다.

    특히 자민당의 주류인 극우파 의원을 중심으로 민주당의 대미외교, 대아시아 외교, 대북정책 등 외교·안보 분야에 대한 강도 높은 공격도 예상되고 있다. 하토야마 대표의 정치자금 허위 기재 문제도 새 정권 출범 이후 정국의 최대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내년 7월 예정된 참의원 선거에서 단독 과반수를 확보할 때까지는 여야관계나 다른 야당과의 관계 등에서 대화와 협력을 내세우면서 신중하게 대응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결국, 사상 처음으로 정권을 잡게 된 민주당이 하토야마 대표 등 지도부를 중심으로 이런 과제들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하면서 내년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해 중·참의원 모두 단독 과반수를 넘게 되면 2013년까지는 각종 개혁정책들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기반을 마련하게 되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산적한 상황이다. (도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