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황상민 연세대 교수 
    ▲ 황상민 연세대 교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북한 방문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기 위해 계속 연장된다는 소식을 중계방송처럼 며칠 동안 들었다. 이와 동시에 이명박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결심을 보여준다면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구상을 추진할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남한이 북한 경제를 발전시키고 북한 주민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국제협력 프로그램을 적극 실행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과 관련한 이 두 사건을 접하자 갑자기 올해 연구한 남한 사람들의 북한과 통일에 대한 '마음의 지도(코드)'가 떠올려졌다.

    남한 사람들은 북한을 '못사는 사촌'과 '못 먹을 신포도'라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마음의 코드로 본다. 이 코드로 보면, 북한 위정자의 마음을 끌려는 재벌 회장의 행보나 이 대통령의 메시지는 별로 그의 마음을 끌지 못한다. 그가 원하는 것이 아닌, 남한 사람들의 일방적 호소이기 때문이다.

    '못사는 사촌' 코드는 잘사는 형님의 입장에서 북한을 경제적으로 도와준다는 마음으로 북한을 본다는 뜻이다. 경제적 도움을 주지만, 이것은 인간적 교감보다 혹시라도 있을 골치 아픈 사촌의 말썽을 잠재우자는 의도가 담겨 있다. 사실 무시하면서 마치 남처럼 지내고 싶지만 가끔 골치 아픈 사고를 친다. 북핵은 망나니 사촌이 저질러 놓은 정말 골치 아픈 일이다.

    상호이익에 기초한 실용적 입장을 주장하지만, '못사는 사촌'을 어쩌지 못해 지원을 합리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다. 시끄럽지 않게 못 이기는 척 뒷돈을 대어주는 형편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통일이 되면 북한의 값싼 노동력과 풍부한 지하자원을 경제발전에 잘 활용할 수 있다"라고 기대한다. "통일 분위기 조성을 위해 민간단체 차원의 꾸준한 교류는 필요하다"거나 "통일이 되면 우리 기업들이 새로운 투자 기회와 시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라고 믿는다.

    북한의 최고위정자를 만나기 위해 출장일정을 계속 연장한 재벌 회장이나, 핵만 포기하면 잘살게 해주겠다는 우리 대통령의 마음도 '못사는 사촌' 코드에 충실하다. 이 코드의 사람들은 비교적 현실주의이다. 사실 통일문제에는 무관심하며, 북한에 대해서도 냉정하다. 이들에게 북한은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존재이다. 그렇기에 "남한 사회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통일은 가능한 한 천천히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고 있다.

    '못 먹을 신포도'의 코드를 가진 사람들은 북한을 "위협적인 존재"로 본다. 통일은 불가능하고, 만일 된다면 그것이 미칠 부정적인 영향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미리 통일에 대한 준비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이들이 걱정하는 것은 "김정일 유고시 대량 탈북자가 서울 한복판으로 몰려와 큰 혼란이 발생할 것"이란 점이다. "북한은 호시탐탐 남침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있다. 이들에게 통일은 "북한의 영토를 가지게 되는" 의미일 뿐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어떤 코드로 북한을 보든, 모두 현재 MB 정부의 대북 정책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못사는 사촌' 코드들은 현 정부가 대북정책에서 실용적인 것은 인정하지만, 실익이 없는 개성공단을 폐쇄하지 않아 불만이다. 심지어 북한을 무례하게 또는 시대착오적인 냉전적 사고로 대응한다고 비판한다. '못 먹을 신포도' 코드들은 겉으로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다. 이들은 북한정권을 비인륜적, 악독한 독재정권이라고 혐오한다. 뚜렷한 냉전적 사고를 지니고 있다. 북한 핵을 위협적이라 보지만, 정작 마음 한쪽은 북한이 핵을 가졌다는 것조차 믿지 않으려 한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에 여전히 끌려 다니는 것이다. 북한에 확실하게 본때를 보여주지 않고 잘 대해 준다는 것이 이들의 불만이다.

    북한에 대한 남한 사람의 마음의 코드는 현 정부의 대북 관계나 정책이 특별히 나아질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왜냐하면 대통령이나 대북사업을 하는 재벌 회장이나 모두 '못사는 사촌' 코드를 전형적으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잘난 북한 위정자에게 '잘사는 사촌'의 행동이 눈에 거슬릴 것이다. 그렇다고 냉전시대도 아닌데 북한을 '신포도'로 보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착된 남북 관계의 탈출구를 찾기 위해 이제 북한이 적어도 남한을 보는 코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할 것 같다. '못사는 사촌'에게 '잘사는 사촌'이 계속 관심을 구걸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기 때문이다. 북한에 대한 우리의 마음의 코드를 새롭게 정립하면서, 북의 위정자가 남쪽을 대하는 마음의 코드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통일을 대비하는 획기적인 대북전략이다.